“고작 불 부적 몇 개인데 무서울 거 없어요.”차갑게 말한 서강빈이 허공에서 손을 몇 번 젓더니 그 불 부적들은 통제를 벗어나 뒤돌아 늙은 도사를 향해 날아갔다. 이 광경을 본 늙은 도사는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허공을 부적으로 간주하여 손으로 봉인을 풀다니, 너너... 너 도술 고수야?”지금 늙은 도사는 이미 서강빈의 실력에 놀라서 넋이 나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그가 계속 넋이 나가 있을 새도 없이 불덩이로 변한 부적들이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늙은 도사는 어쩔수 없이 허리에 꽂은 도목검을 꺼내 휘둘러서 불덩이들을 모두 쳐냈다. 하지만 회색의 도포에는 불에 타서 생긴 구멍들이 몇 개 나 있었다. 늙은 도사는 얼른 도목검을 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다. 그는 자신이 서강빈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허공에서 부적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도술이 자기보다 몇 배는 더 대단할 것이다. 하여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없을 게 뻔했다. 서강빈도 굳이 쫓아가지 않았다. 이런 타입의 늙은 도사들은 미꾸라지 같아서 따라잡는다고 해도 진흙탕 싸움이 될 게 뻔했다. 서강빈은 지금 서둘러 돌아가 주머니에 있는 화전옥으로 권효정을 위해 옥으로 된 영기를 만들 생각뿐이었다. 화전옥의 크기로 봐서는 두 개 정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만물상점에 돌아온 서강빈은 더 지체하지 않고 화전옥을 조각하기 시작해 두 개의 옥패로 만들었다. 이윽고 그는 이 두 개의 옥패에 소형의 진법을 배치하였고 이와 동시에 자신의 몸에 있는 영기로 이 두 개의 옥패에 자양분을 공급하여 기본적인 영성을 띠게 했다. 그러고 나서 서강빈은 만물상점의 뒤뜰에 있는 작은 정원에 구멍을 하나 파서 영기를 모을 수 있는 진법인 소형의 구영진을 배치하여 옥패를 거기에 묻어두었다. 7일 동안 구영진에 갇혀있으면 이 두 개의 영기가 완성되게 된다.서강빈이 이 두 개의 영기에 배치한 것은 방어 진법이었다.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이것들은 팔괘가 새겨진 청색 방패가
서강빈은 어두운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분명히 말했잖아. 내가 한 거 아니라고.”“그래, 나 너 믿어. 그러니까 나와서 나랑 얘기 좀 해.”송해인의 말에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지금 볼 일이 있어서 안 돼. 내가 돌아가면 다시 얘기해.”“무슨 일인데 그렇게 바빠? 나한테 해명할 기회도 포기할 만큼?”불만스러운 말투로 묻는 송해인의 말에 서강빈은 미간을 치켜들고 난감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효정 씨의 지인이 아프다고 해서 지금 거기로 가야 해.”“효정 씨, 효정 씨, 네 마음속에는 그 효정 씨 밖에 없지?”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송해인은 질투 어린 말투로 소리쳤다. 이렇게 말하고 난 송해인은 전화를 끊고 씩씩거리며 문 앞에 서 있었다.“서강빈, 쓰레기 같은 자식! 내가 다시 너랑 잘해보려는 걸 알면서도 왜 효정 씨와 그렇게 가깝게 지내는 거야! 짜증 나!”송해인은 씩씩거리면서 분을 못 이겨 발로 차바퀴를 찼다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절뚝거리며 다시 차에 올라탔다.한편, 서강빈도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무슨 일이에요? 해인 씨가 당신 찾아요?”권효정이 떠보는 말에 서강빈은 그렇다고 하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물었다.“환자는 어떤 상황이에요?”권효정이 대답했다.“성회의 전씨 가문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서강빈이 고개를 저었다.“잘 몰라요.”권효정이 설명해주었다.“성회의 전씨 가문은 무도 명문가예요. 가문 내부의 핵심적인 인물은 모두 무도인들이고 성회의 무도계에서 꽤 큰 지위와 세력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전씨 가문의 어르신은 무도의 고수인데 소문에는 10년 전에 이미 대가의 경계에 이르렀고 올해 일흔이 되는 나이인데 몸이 아주 건강했다고 해요.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5일 전 전씨 가문의 어르신이 갑자기 병들어서 앓아누웠다고 해요. 명의를 여러 명 찾아서 보여도 소용이 없대요. 전씨 가문의 셋째 딸인 전유진이 제 절친인데 저한테 연락이 와서 의술이 높은 사
‘서른도 안 되는 신의, 거기다가 한의사라니...”전태산이 만났던 명의들을 봤을 때 한의학 영역에서 명의라고 소문난 사람들은 모두 50이 넘는 나이었고 모두 많은 경험을 쌓고 나서야 자신이 한의학 영역에서 성과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곁에 있던 전유진은 크고 동그란 눈을 깜빡거리며 서강빈을 훑어보다가 물었다.“효정아, 이거 맞아? 이분이 바로 네가 나한테 얘기했던 그 신의라고?”권효정은 전태산과 전유진이 불신하는 눈빛을 보고 해명했다.“태산 아저씨, 유진아, 강빈 씨가 나이가 어리다고 의술이 별로 없을 거라 판단하지 마세요. 이 사람의 의술이 전에 찾았던 나이 드신 한의사분들 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전태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다가 권효정의 체면을 보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효정 씨가 그렇게까지 얘기를 하니 한번 믿어보겠습니다.”전태산이 말을 이었다.“하지만 서강빈 씨가 잠시 기다려주셔야 할 겁니다. 마침 오늘 다른 한 분의 신의를 불렀는데 곧 도착할 거예요.”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전씨 가문처럼 큰 가문에서는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신중한 게 당연했다. 서강빈과 권효정은 자리에 앉아서 담담하게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그러던 중, 발랄한 성격의 전유진은 계속 서강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난감해진 서강빈도 그녀에게 웃어 보였지만 그녀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때 서강빈은 전유진의 얼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는데 그녀의 몸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서강빈은 따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때, 회색 도포를 입은 늙은 도사가 걸어들어왔다. 전태산은 그 사람을 보더니 서둘러 다가가서는 친절하게 맞이하였다.“삼절 도장, 드디어 오셨군요.”전태산이 다가가자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삼절 도장, 옷에 왜 탄 구멍이 났습니까?”전태산은 삼절 도장의 회색 도포에 난 네, 다섯 개쯤 되는 큰 구멍을 주목했다
전태산은 흠칫하여 의아한 눈길로 서강빈을 보았다.“삼절 도장, 무슨 오해가 있었든 게 아닙니까? 서강빈 씨는 권효정 씨가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려고 데리고 온 의사입니다.”전태산이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삼절 도장은 불쾌한 표정으로 퉁명하게 물었다.“뭐라고요? 저 자식이 어르신의 병을 치료한다고요?”전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절 도장은 미간을 찡그린 채 서강빈을 몇 번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물었다.“너 의술을 알아?”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좀 알아요.”“좀 안다고? 그럼 모르는 거야!”삼절 도장은 차갑게 말했고 그의 미간에는 화가 넘쳤다. 특히 서강빈과 싸웠던 그 장면을 생각하면 화가 나서 숨이 거칠어졌다. 두 사람이 싸우려는 징조가 보이자 전태산이 얼른 말했다.“두 분께서는 모두 어르신의 병을 고쳐주려고 오셨는데 이러지 맙시다. 이러지 마세요.”“흥!”삼절 도장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전태산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전 가주님, 제가 어르신의 병을 고쳐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무슨 조건이요?”전태산이 물었다. 삼절 도장을 모셔온 이유는 전태산이 친구한테서 삼절 도장은 도술이 대단한 것뿐만 아니라 의술도 대단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도문의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일반적인 서의학이나 한의학보다 더 대단한 의술이었다. “이 자식은 끼어들 수 없습니다.”삼절 도장이 서강빈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난처해진 전태산은 잠시 망설였다. 서강빈은 권효정이 데리고 온 사람인데 그렇게 하면 권효정의 체면을 저버린 격이 된다. 전태산이 망설이는 것을 보고 삼절 도장은 옷깃을 휘날리며 차갑게 말했다.“전 가주님께서 승낙하지 않으시니 저는 뒤에 또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삼절 도장이 뒤돌아 가려고 하자 전태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삼절 도장, 잠시만요. 그 제안을 승낙하겠습니다.”전태산이 승낙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삼절 도장의 얼굴에는 오만한 웃음이 피었다. 전태산
부적이 전씨 어르신의 단전 부근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격렬하게 떨리면서 화르르 불이 붙어 타버렸다.“근원을 찾았습니다!”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는 삼절 도장에게 전태산이 다급하게 물었다.“삼절 도장, 아버지는 무슨 병에 걸린 것입니까?”삼절 도장은 길게 한숨을 내뱉고 말했다.“큰 병은 아닙니다. 무술을 연마할 때 경맥에 착란이 일어나서 체내의 진기가 역행하여 단전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어르신께서 혼미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 진기들을 잘 조절하면 어르신은 괜찮으실 겁니다.”이 말을 들은 전태산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말했다.“그렇다면 삼절 도장께서 얼른 아버지를 치료해주세요.”“어렵지 않아요.”삼절 도장은 담담하게 말했다. 한편, 곁에 서 있던 권효정이 서강빈의 팔을 끌면서 물었다.“강빈 씨, 저 사람 말이 맞아요?”서강빈은 살짝 웃음을 띠며 말했다.“절반 맞았어요.”저 회색 도포를 입은 늙은 도사가 그래도 실력이 꽤 있는 모양이다. 전씨 어르신이 무술을 연마하는 도중에 생긴 문제로 혼미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냈으니 말이다.“절반만 맞았다고요?”권효정이 의아하게 물었다. 삼절 도장은 서강빈의 담담한 듯 조롱을 띠고 있는 말을 듣고 일어서서 호통쳤다.“망할 놈! 내가 치료할 때는 곁에서 헛소리 지껄이지 마! 전 가주님, 저 자식은 제가 전 씨 어르신을 치료하는 과정을 엄중하게 방해하였습니다. 당장 끌어내십시오! 아니면 치료를 그만두겠습니다.”이 말을 듣고 다급해진 전태산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서강빈이 끼어든 데에 대해 아주 불만인듯했다.“서강빈 씨, 잠시 나가서 기다려주십시오.”차갑게 말하는 전태산을 보고 서강빈이 피식 웃더니 물었다.“전 가주님께서는 제 얘기를 들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필요 없습니다. 삼절 도장이 여기 계시니 아버지는 괜찮아질 겁니다.”전태산의 말에 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그래요. 전 가주님께서 그렇게 얘기하시니 저는 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효정 씨, 우리 가요.”권효정은
삼절 도장은 전 씨 어르신의 기를 조절해주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이 복잡했다. 먼저 자신 체내의 진기를 어르신의 몸에 주입해서 혼란 상태에 있던 어르신 체내의 진기를 경맥을 따라 온몸에 퍼지게 한 다음 마지막에 단전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삼절 도장은 또 부적 몇 장으로 전 씨 어르신의 몸에 있는 몇 개의 혈 자리를 봉인하여 진기가 폭주하는 것을 미리 방지하였다. 이 과정은 십 분이 넘게 계속되었고 삼절 도장은 땀범벅이 되어서야 멈추고 말했다.“됐습니다. 좀 있으면 어르신께서 깨어나실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전태산은 감격하여 손을 모으고 연신 감사를 표했다.“삼절 도장, 너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도장은 저희 전씨 가문의 귀빈입니다.”“전 가주님 별말씀을요. 각자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이지요. 저는 은령초만 있으면 됩니다.”삼절 도장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전태산은 바로 뒤에 있는 전유진에게 미리 준비해둔 비단함을 갖고 오라고 하고는 삼절 도장에게 말했다.“삼절 도장, 얘기하신 은령초입니다.”삼절 도장이 손을 뻗어 건네받으려던 때, 침대에 누워있던 전 씨 어르신이 갑자기 검은 피를 토하면서 몸의 경맥도 지렁이처럼 빠르게 꿈틀거렸다. 그러고 나서 전 씨 어르신은 비명을 지르더니 다시 정신을 잃었다.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전태산이 황급히 물었다.“삼절 도장,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얼른 저희 아버지의 상태를 봐주세요!”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삼절 도장이 황급히 다가가 전 씨 어르신의 상태를 살피고는 당장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미간을 찌푸렸다. 삼절 도장이 다시 전 씨 어르신의 체내에 진기를 주입하려고 시도했지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삼절 도장은 거대한 힘에 밀려 날아가 곁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부수고 바닥에 널브러졌다.“삼절 도장!”전태산은 서둘러 삼절 도장을 일으켰다. 입가에서는 피가 흐르고 가슴을 움켜잡은 삼절 도장이 말했다.“큰일 났습니다. 어르신이 이성을 잃고 폭주하려 하고 있습니다.
전 씨 어르신은 원래도 대가급이 되는 무도 고수였는데 지금 이성을 잃기까지 했으니 그 실력은 아마도 천인 경지에 발을 절반 들여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삼절 도장, 이제 어떡합니까?”다급하게 묻는 전태산을 보면서 삼절 도장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전 가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더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성을 잃은 전 씨 어르신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 가주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르신의 상태는 길어야 반 시간 정도 지속하고 힘이 빠질 것입니다...”“뭐요? 반 시간? 그다음에는요?”전태산이 계속 묻자 삼절 도장은 살짝 망설이다가 난감한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그다음에는 힘이 빠져서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뭐라고요? 삼절 도장, 나는 저희 아버지의 병을 치료해달라고 당신을 불렀습니다!”전태산이 호통쳤고 삼절 도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전 가주님, 이 은령초는 사양하도록 하고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말을 마친 삼절 도장은 빠르게 도망가려고 했고 이를 본 전태산은 어두운 표정을 하고 소리쳤다.“당장 잡아!”열 명이 넘는 정예병들이 허공을 가로질러 나타나더니 삼절 도장을 둘러쌌다.“삼절 도장, 제 아버지가 죽는다면 당신의 목숨도 내놔야 할 것입니다.”전태산의 말에 삼절 도장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둘러싼 열 명이 넘는 정예병을 보더니 말했다.“전 가주님, 진정하세요. 혹시 전에 왔던 그 녀석한테 방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서강빈 씨?”전태산은 번쩍 정신이 들어 곁에 있는 전유진에게 말했다.“유진아, 얼른 권효정 씨한테 전화해서 서강빈 씨를 데리고 오라고 해!”이 말을 들은 전유진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권효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아빠, 전화기가 꺼져있어요.”전유진의 말에 전태산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소리쳤다.“그럼 찾아! 이 도시 전체를 뒤져서 찾아! 반 시간 안에 반드시 서강빈 씨를 찾아내!”“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대
허윤재가 입을 열었다.“그만, 예쁜이가 놀라잖아.”허윤재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권효정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예쁜아, 이제 내 신분을 알겠지? 오빠랑 가서 술 한잔할까? 나랑 술 한 번만 마셔주면 팔로워 몇십만 명을 늘려주고 인플루언서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할게.”권효정은 차갑게 대답했다.“미안하지만 나는 인플루언서에 관심 없어.”이 말을 들은 허윤재는 표정이 어두워졌다.“예쁜아, 오빠 체면 안 봐줄 거야?”차갑게 묻는 허윤재의 말에 권효정은 똑같이 차가운 웃음을 짓고 대답했다.“내가 당신 체면을 봐줄 필요는 없잖아.”이 말을 들은 허윤재는 완전히 화가 치밀어 올라 담배를 한 대 꺼내물고 담배 연기를 뿜으며 차갑게 말했다.“예쁜아, 네가 내 마음에 들 수 있는 건 네 행운이야. 좋은 말 할 때 고분고분 따를 것이지, 이 성회에서 나 허윤재가 데리고 갈 수 없는 여자는 없단다. 마지막으로 한번 기회를 줄게. 잘 생각해봐. 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네 친구 생각도 해야지.”허윤재의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맞은 편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서강빈에게로 향했다. 그가 들어왔을 때부터 서강빈은 계속 음식만 먹고 있었기에 그는 서강빈이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찝쩍대고 있는데 밥이 목구멍으로 어떻게 넘어가는가 말이다.허윤재의 말이 끝나자 뒤에 있던 친구들이 바로 서강빈의 곁에 가서 둘러쌌는데 이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이윽고 음란한 웃음을 띤 허윤재는 손을 들어 권효정의 가녀린 허리를 감싸 안으려고 하면서 말했다.“예쁜아, 가자.”미간을 찌푸린 권효정은 테이블에 놓인 음료수를 들어서 허윤재의 얼굴에 뿌리고 차갑게 말했다.“가서 너희 엄마한테 같이 술 마셔달라고 해.”이 행동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던 손님들까지 깜짝 놀라게 했다. 허윤재의 친구들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눈앞에 벌어진 광경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허윤재는 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여자가 자신한테 음료수를 끼얹은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