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빈은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겼는데 덩치가 큰 중년 남자가 손에 옥돌을 굴리면서 실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는 걸 보았다. 그의 턱에는 검은색 점이 있었고 검은색의 개량 한복을 입고 서강빈을 쳐다보고 있었다.서강빈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한정산은 웃더니 그 중년 남자를 향해 주먹을 가슴 앞에 맞잡고 예를 표했다.“손 가주님, 서 거장은 내가 구경시키려고 데리고 온 것입니다.”“서 거장? 하하하, 한 가주님, 이렇게 젊은 녀석을 거장이라고 부르다니요?”손 가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서강빈을 향한 시선 속에는 불만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한 가주는 더 말을 섞지 않고 서강빈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서 거장, 이분은 손 가주이고 이름은 손성록일세. 천주 손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라네. 천주 소장 업계에서 명성이 작지 않아. 이 사람의 손에서 관리하는 것들은 다 회색 산업이고 천주 뒤 세계의 세력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네.”서강빈은 이를 듣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이윽고 한정산은 낮은 목소리로 서강빈에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다 소개해주었다.소장 업계의 거물들이 적지 않았다.손성록의 왼쪽에 있는 실눈을 뜨고 있는 노인을 놓고 봐도 여문선이라는 사람인데 조상이 대군이었고 가문에서는 목재 사업을 하고 있다. 목재 업계의 황제라고 칭하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용국 경내 절반 이상의 목재 시장의 가격을 좌우지 할 수 있었다.오른쪽에 있는 중년 남자는 부리부리한 눈과 짙은 눈썹을 가졌는데 진천호라 하고 명문가에서 태어나 가문의 배경이 무시무시하여 예전에는 어떠한 일 때문에 말 한마디로 절반의 땅을 봉쇄한 적이 있었다.한정산이 그에 관해 소개할 때도 조심스러워하며 말을 적게 했다.“서 거장, 저 진천호라는 사람을 우리는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네. 저 사람은 배경이 아주 어마어마해.”한정산이 작은 목소리로 귀띔했다.서강빈은 흥미가 생겨 고개를 들었는데 마침 진천호의 시선과 맞물려 작게 웃었다.하지만 상대방은 서강빈을 신경
선배들이라고 해도 서강빈과 붙었을 때는 절반 정도의 데미지밖에 입히지 못해 서강빈은 유유히 자리를 뜨고는 했다.이때 유선희도 서강빈 일행의 시선을 느끼고 미간을 치켜든 채 서강빈을 보더니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는데 익숙한 느낌 때문이었다.이 자식, 눈이 익은데 어디서 본 듯하다.하지만 당장에서 유선희는 떠오르지 않았다.“김 사장? 이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왜 아직도 안 와?”이때 손성록이 불만스러운 말투로 투덜댔다.룸 안에 있던 사람들도 작은 목소리로 의논하기 시작했다.그들은 몇십 분이나 기다렸는데 오늘 모임의 주최자인 김 사장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사람들의 원성이 높아질 때쯤,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문으로 들어오더니 사람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사과하며 말했다.“여러분, 저희 사장님이 잠시 일이 생겨 좀 늦을 것 같습니다. 하여 제가 대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사람들은 이 얘기를 듣고 안색이 어두워졌다.하지만 화루 배후 사장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을 고려하여 사람들도 참아주었다.“됐어, 얼른 시작하기나 해. 모두 자기가 가진 제일 값지고 가치가 있는 소장품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전시해.”손성록이 재촉했다.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이윽고 개인 소장품 감상회가 정식으로 시작됐다.순서는 간단했는데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소장품을 내놓고 다른 사람들이 감상하게 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당장에서 상의를 통해 살수도 있고 물물교환을 진행할 수도 있다.한 바퀴를 돌아본 서강빈은 사람들의 소장품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몇억짜리가 수두룩했고 몇십억씩 되는 것들도 있었다.“형님 차례이십니다. 오늘 밤 영석을 가지고 오셨다고요?”손성록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앉아있는 진천호를 바라보았다.사람들의 분위기도 덩달아 들끓었다.진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말하며 진천호는 뒤에 있는 부하에게 손짓하여 검은색 비단함을 동그란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윽고 진천호는 몸을 일으켜 동그란 테이블로 가더니 주위를
서강빈의 이 말이 나오자 현장의 시선은 모두 그에게로 집중되었다.“연명 단약?”“무슨 연명 단약?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이 자식이 이게 어떤 자리인지 알아? 말을 또 함부로 할 거면 당장 꺼져!”사람들은 불친절하게 서강빈을 꾸짖었다.한정산도 멈칫하여 조금 당황하다가 얼른 일어나 해명하기 시작했다.“여러분, 죄송합니다, 서 거장이 말하는 연명 단약은... 그가 방금 직접 연마한 것입니다.”이 말이 나오자 룸 안의 모든 사람의 안색이 변하였다. 먼저는 경악이었다가 다음은 의심이었다가 마지막은 분노였다.퍽!손성록은 찻잔을 오른쪽에 있는 테이블에 소리 나게 내려놓더니 불만스럽게 말했다.“한 가주, 이렇게 어린 자식을 데리고 들어올 수 있게 한 것부터 규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자식은 함부로 입을 놀리면서 우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연명 단약으로 형님의 영석을 바꾸려 하는 것도 모자라 자기가 직접 연마한 것이라니요?”“한 가주, 당신은 현장에 있는 우리가 모두 생각이 없는 호구로 보입니까?”손성록은 몹시 화가 났다.그뿐만 아니라 진천호의 안색도 살짝 어두워졌다.그의 차가운 시선이 서강빈을 향했다.한정산은 다급하게 해명했다.“여러분, 서 거장의 실력은 제가 직접 느껴보았습니다. 천주에서 소위 말하는 거장들과 비교했을 때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이분이 만든 연명 단약은 절대 보통이 아닙니다.”“됐어! 그만해!”이때 진천호가 말했다.이윽고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서강빈을 보더니 차갑게 물었다.“젊은이, 그쪽이 지금 직접 만든 연명 단약으로 내 영석을 바꾸려는 건가?”“맞습니다.”서강빈은 태연하고 침착하게 대답했다.진천호는 서강빈이 꿈쩍하지 않는 것을 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으며 말했다.“패기가 있네. 그쪽이 어느 문파의 출신인지, 이 연명 단약은 또 무슨 단약이고 효능은 또 어떠한가?”“하하하! 형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하는 말을 믿는 것입니까?”손성록이 우습다는 듯 말했다.여문
“이 자식이, 나 진천호를 놀린 대가는 어떤 것인지 몰라?”진천호는 화를 냈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이 놀림을 받은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연명 단약?수명을 5년 연장해준다고?이렇게 귀중한 단약을 신문지에 보관한다고?서강빈은 오히려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급히 나오느라 상자를 찾지 못해서 잡히는 대로 신문지에 싸 왔습니다.”진천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낯빛이 아주 어두워졌는데 마치 폭주를 앞둔 호랑이 같았다.“얘들아, 당장 이 난동을 부리는 자식을 잡아!”순식간에 진천호의 등 뒤에 있던 경호원 두 명이 나서더니 손은 허리춤을 만지면서 차가운 눈길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서강빈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어르신, 먼저 제 단약을 보고 나서 말씀하시지 않겠어요?”“볼 필요가 있을까?”진천호가 차갑게 말하자 한정산이 다급하게 설득했다.“진 회장,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지 말아주세요. 서 거장은 다른 뜻이 없습니다. 만약 저를 믿는다면, 서 거장에게 한 번만 기회를 줘서 이 연명 단약을 직접 보십시오.”진천호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하더니 손짓을 하여 두 경호원을 물러서라고 하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한정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한 가주, 이 자식이 만약 저를 속인다면 한 가주도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한정산은 멈칫했지만, 기꺼이 서강빈을 믿고 바로 얘기했다.“만약 서 거장의 연명 단약이 진 회장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저는 저희 한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바치겠습니다.”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라 모두 낯빛이 변하였다.한정산은 미친 게 아닌가?이 아무도 모르는 어린 애 때문에 전체 한씨 가문의 재산을 걸다니!서 거장이라는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이때까지 왜 들어본 적이 없는지?모두 의아해할 때 서강빈은 이미 연명 단약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사람들이 보는 데서 그 신문지를 열었다.사람들이 봤을 때 그것은 그저 평범한 알약이었다.아무 특별한 점이 없었다.진천호는 몇 번
유선희는 고개를 돌려 의아한 얼굴로 서강빈을 보면서 물었다.“이건 당신이 직접 만든 거예요?”“네.”서강빈은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유선희의 예쁜 얼굴에는 경악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진천호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유선희 씨, 뭔가를 보아냈나요? 진짜예요, 가짜예요?”다른 사람들도 분분히 이에 관해 물었다.“유선희 씨,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요.”“내 생각에 연명 단약은 무슨, 백 프로 가짜야!”“진 회장님, 손을 쓰시지요.”사람들의 조롱 섞인 말을 들으면서도 서강빈의 얼굴은 태연했다.진천호의 안색도 아주 안 좋았고 유선희가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자 마음속에 결론이 내려져 어두운 안광으로 서강빈을 보며 손짓을 했다.“여봐라! 당장 저 자식을 잡아!”말이 끝나자 두 경호원은 당장 손을 쓰려고 했다.“잠깐.”유선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유선희 씨?”진천호는 살짝 의외였다.유선희는 서강빈을 유심히 봤는데 자신이 어디에선가 서강빈을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한참이 지나서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자 유선희는 고개를 젓고는 진천호를 보고 말했다.“진 회장님, 이 연명 단약에 대해 90프로의 확률로 진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효능이 보통이 아니라 아마 5년 정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유선희는 백 프로라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90프로 정도의 확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서강빈의 이 연명 단약이 비범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다.진천호는 이 말을 듣고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눈이 휘둥그레져서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정말이에요?”유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천호는 크게 기뻐하면서 다급하게 테이블 위에 있던 그 하얀 단약을 들고는 아주 흥분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이 말을 듣고 숨을 들이쉬면서 흥분과 의아함이 뒤섞였다.진짜라고?이때 손성록과 여문선 등 사람들은 서강빈을 보는 시선부터 달라졌다.시선이 뜨거웠고, 흥분되어 있었다.“진 회장님, 바꾸시겠습니까?”서강빈이 덤덤하게 웃
“자네 지금 연명 단약 한 알을 가지고 나 진천호 앞에서 함부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유선희마저도 서강빈의 말을 듣고 미간이 찌푸려져서 서강빈이 너무 대담한 게 아닌지 생각하고 있었다.서강빈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없이 말했다.“진 회장님 요즘 자주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고 저녁에도 오래도록 잠이 들지 못하지 않으세요?”진천호는 미간을 찌푸리고 차갑게 말했다.“내가 불면에 시달리는 게 무슨 문제라고 있어?”서강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진 회장님, 그건 불면증이 아니고 기력이 밖으로 빠져서 생기가 소실되는 것입니다. 만약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진 회장님은 잠이 들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지가 자주 저리고 가끔 짧게 기절하기도 했을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진천호의 눈빛은 순식간에 변했다.이 자식은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인가?하지만 자신의 주치의는 괜찮다고 했다. 그저 과로일 뿐이니 휴식을 많이 취하면 된다고 했다.하여 진천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차갑게 말했다.“됐어. 내 곁에는 나를 담당하는 의사가 있으니 무슨 문제가 있더라도 네가 그런 얘기를 할 자격은 없어.”진천호가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을 보고 서강빈도 더는 엮이지 않고 뒤돌아 떠났다.서강빈이 떠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진천호의 낯빛은 조금 풀어져서 곁에 있는 경호원한테 말했다.“당장 이 연명 단약을 어르신한테 갖다 드려.”“네.”경호원은 대답하고는 신속하게 자리를 떴다.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진천호의 머릿속에는 서강빈이 방금 한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이때 손성록이 다가오더니 웃으며 말했다.“형님, 서른도 안 되는 어린놈일 뿐입니다. 저 자식이 한 말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제가 보기에 저 자식은 일부러 형님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말인 것 같아요.”진천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더 생각하지 않았다.한편, 서강빈 일행은 1층으로 내려왔다.한정산은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의 온몸은 비를 맞은 듯 땀에 젖어있어 숨을 거칠게 쉬었다.“
“한 가주님,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에요? 서강빈과 같이 모자란 놈이 어떻게 가주님을 구할 수 있어요?”진기준의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한정산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불만스럽게 말했다.“진 대표라고 했지? 내가 당신한테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서 거장한테 예의를 갖춰!”말하고 나서 한정산은 진기준의 의아한 표정을 보기조차 귀찮아서 서강빈을 향해 말했다.“서 거장, 이만 가보도록 하지.”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정산을 따라 차에 올라 떠났다.송해인과 진기준은 그 자리에 서서 망연하고 의문스러운 표정이었다.“젠장, 어디서 주름을 잡아! 어떤 저질스러운 수단으로 한 가주를 속였는지 알 게 뭐야!”진기준은 불만스럽게 투덜댔다.송해인의 시선은 멀어져가는 차량을 보면서 마음속에서는 영 찝찝했다.한정산이 서강빈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송해인은 무척 후회되는 기분을 느꼈다.자신이 틀렸던 것일까?자신은 아주 예의를 차리고 심지어 한정산을 우러러봐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서강빈에 대해서 이렇게 굽신거리다니.“해인아, 왜 그래?”진기준은 송해인이 멀어지는 차량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불만스럽게 물었다.송해인은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우리도 가자.”“그래.”진기준은 대답하고 운전하여 송해인을 데려다주었다.하지만 회사에 돌아온 송해인은 배고픔까지 다 까먹고 화루에서의 장면들을 생각하고 있었다.서강빈은 어쩌면 정말 변했는지도 모른다.“대표님, 왜 그러세요? 안색이 안 좋아요.”이세영은 걸어들어오면서 송해인이 계속 멍을 때리고 안색이 안 좋은 것을 보고 물었다.송해인은 미간을 치켜들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이 비서, 우리가 틀린 걸까?”“틀렸다고요? 뭐가 틀렸다는 말씀이신지?”이세영이 의아해서 묻자 송해인이 대답했다.“서강빈과 이혼한 일 말이야.”이세영은 이 얘기를 듣자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대표님,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갑자기 이렇게 묻는 거예요?”
전화를 받자마자 송해인이 화가 나서 따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서강빈, 너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서강빈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송 대표,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아직도 모르는 척이야? 정빈 마스크팩, 어떻게 해명할 거야?”송해인은 차가운 말투로 따져 물었다.서강빈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정빈 마스크팩? 무슨 문제라도 있어?”“서강빈! 지금 네가 하는 짓이 부끄럽지도 않아?”송해인이 화를 냈다.서강빈은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을 하고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았다.“부끄럽다고?”서강빈은 미간을 더 찌푸리고 마음속에서는 스멀스멀 화가 났다.영문 없이 이게 뭐 하는 짓인가.송해인은 차갑게 말했다.“네가 전에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아무한테도 도움을 받지 않고 네 힘으로 나한테 증명해 보인다며! 지금 뭐야? 지금 너는 그 권씨 가문의 딸을 등에 업고 몰래 마스크팩에 손을 쓰고 있잖아!”“아니면 너 혼자 힘으로는 무슨 자격으로 랭킹 4위에 오를 수 있겠어?”이 말을 듣고 서강빈은 그제야 영문을 알고 자조적으로 웃으며 되물었다.“송 대표, 네 말뜻은 정빈 마스크팩이 랭킹 4위에 오른 게 내가 권효정 씨를 등에 업은 결과라는 거야?”“그게 아니면 뭐야?”송해인이 차갑게 말했다.서강빈은 웃었다.“그래서 네 눈에 나는 뭐를 하든 간에 다 다른 사람의 덕을 본다는 거지?”서강빈이 물었다.송해인은 잠깐 침묵하더니 대답했다.“나는 너랑 그런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냥 너에게 알려주고 싶어. 네가 아무리 권효정 씨의 덕을 본다고 해도 나 송해인은 절대로 지지 않아!”“그래, 그럼 나도 똑똑히 알려줄게. 정빈 마스크팩이 랭킹 4위까지 오른 데 대해 나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은 적 없어! 네가 믿지 않는다면 직접 조사해봐!”서강빈은 차가운 말투로 말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전화의 맞은편에서 송해인은 흠칫하더니 소리쳤다.“서강빈! 서강빈!”“이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