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빈은 송해인을 바라보더니 물었다.“지금 나를 걱정하는 거야?”“그게...”송해인은 흠칫하더니 흔들리는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그냥 네가 내 일에 끼어드는 게 싫어서 그래.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그 누구도 무고한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라.”“해인아, 너 미쳤어?”양미란은 분노가 끓어올랐다.“한동훈은 서강빈이 때려서 다친 거라잖아. 그럼 당연히 서강빈이 책임져야지. 왜 자꾸 그렇게 어리석게 굴어? 게다가 상대는 성회 이씨 가문이야. 그쪽에서 책임을 묻는다면 너는 물론이고 송씨 가문까지 말려들 거라고!”“그래, 누나. 생각 잘해야 해.”송태호도 마음이 다급해졌다.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재잘재잘 떠들어대니 송해인은 몸도 마음도 지쳤다.“됐어요! 다들 그만해요! 난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까 다들 그만하라고요! 이번 일은 강빈이 혼자 책임지게 하지 않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양미란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너, 너 정말 왜 이렇게 엄마 속 썩여? 이런 보잘것없는 놈 때문에 송씨 가문을 망하게 할 생각인 거야?”“엄마 말이 맞아. 누나가 내린 결정이라고 다 따라야 해? 난 동의하지 않아.”송태호가 말을 이어갔다.“비오 그룹은 누나만의 회사가 아니야. 송씨 가문에도 누나만 있는 게 아니고. 서강빈 저 X끼 때문에 전체 송씨 가문과 비오 그룹의 운명을 걸 생각이면 난 절대 동의할 수 없어.”송해인은 미간을 구기며 뭔가를 설명하려고 했다.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양미란이 또 말했다.“해인아, 너도 어리지 않잖아. 지금은 제멋대로 굴 때가 아니야. 네가 굳이 서강빈이랑 함께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 난 어쩔 수 없이 너에게 등을 돌릴 거야.”그 말을 들은 송해인은 얼굴색이 확 변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양미란을 바라봤다.양미란은 턱을 치켜들고는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앞으로 회사와 송씨 가문은 태호에게 물려줄 거야. 너랑 서강빈 때문에 전체 송씨 가문과 비오 그룹의 앞날을 망칠 수는 없어.”장내에는 고
송해인이 전혀 뜻을 굽히지 않자 서강빈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목소리를 높였다.“그만해! 꼭 내가 똑똑히 말해야 알아듣겠어? 다시 한번 말하는데 이 일에 참견할 필요 없어. 네가 있으면 오히려 나에게 폐만 끼칠 거라고!”그 말을 들은 송해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마음이 시큰거려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방금까지도 다정하게 굴던 서강빈이 갑자기 태세 전환하며 이런 말을 내뱉다니!“뭐? 그 말, 진심이야?”송해인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물었다.얼음장처럼 차가운 그의 얼굴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지금까지 송해인은 서강빈을 위해서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는데 정작 그는 자신에게 폐를 끼친다며 그녀를 밀어냈다.“진심이야.”서강빈이 나지막하게 말했다.“안 믿어. 진심 아니지? 그런 거지?”송해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낯빛이 한층 더 어두워진 서강빈은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믿거나 말거나. 난 네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필요도 없다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잘할게. 그리고 내 생사도 너와 무관해. 우리 두 사람은 이미 이혼했어,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알겠어?”그 말을 들은 송해인은 제자리에 굳어버렸다.가족들과 연을 끊고 비오 그룹을 포기할 각오까지 했는데 고마운 마음은커녕 원망과 불만을 일으키다니, 지금의 서강빈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다정하게 굴던 서강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아무 관계도 아니면서 왜 나를 구했어?”송해인은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한 번 더 물었다.서강빈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쌀쌀맞게 대답했다.“그야 마침 지나가던 길이었으니까. 일부러 너를 구하러 간 건 아니니까 쓸데없이 김칫국이나 마시지 마.”장내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눈물범벅이 된 송해인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눈앞의 서강빈을 바라봤다.“그게 솔직한 마음이라는 거지?”송해인의 눈은 빨갛게 부어올랐다.“응.”서강빈이 차갑게 대답하자 송해인은 실망이
빗속에서 검은색 밴 두 대가 만물상점 앞에 멈춰 섰다.차 문이 휙 열리더니 손에 칼을 든 검은 옷 사내 일여덟 명이 차에서 뛰어내리고는 표독스러운 얼굴로 입구 앞에 서 있는 서강빈과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상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네가 서강빈이야?”앞장선 사내가 싸늘한 목소리로 묻자 그의 손에 든 칼에서 눈부시게 차가운 빛이 비쳤다.“그래.”서강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앞장선 사내가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더니 칼을 휘두르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네놈은 오늘 내 손에 죽을 거야!”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사내는 칼을 든 채 서강빈을 향해 달려들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스피드와 파워로 말이다.대문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이상한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어쭈, 그래도 실력이 있는 놈이네. 보통 사람이 아니고 무술을 연마했다고.”서강빈도 당연히 이를 알아보고는 미간을 구겼다.그의 추측이 맞다면 눈앞의 사람들은 모두 무술을 익히 알고 있는 듯했다.서 있는 자세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으로 봤을 때 보통 사람들보다 간결하고 세련되었다.특히 칼을 든 채 그에게 달려든 사내의 스피드와 파워로 트럭 한 대도 충분히 넘어뜨릴 것 같았다.서강빈은 덤덤한 얼굴을 하며 전혀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사내가 칼을 들고 다가온 순간 그는 팔을 들더니 안정된 자세로 칼날을 움켜쥐며 상대가 더 앞으로 못 다가오게 했다.상대도 놀라운 마음에 미간을 구겼다. 서강빈이 피하지도 않고 맨손으로 자신을 향한 칼날을 맨손으로 움켜쥘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자식! 네가 감히...”앞장선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더니 ‘펑’ 소리와 함께 서강빈은 상대의 복부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사내는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하며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빗속으로 넘어진 그의 주위로 순간 빗물과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X발, 저 새끼 죽여!”나머지 사람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더니 칼을 들고 서강빈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서강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용호무관의 외문 제자들은 비를 맞아 홀딱 젖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몇 명은 견디지 못하고 바로 기절했다.“어르신, 용호무관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계세요?”서강빈은 옆에 있던 이상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이상한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며 대답했다.“용호무관은 송주의 무관에서도 랭킹 1위이지. 실력이 어마어마하고 별의별 사람들이 제자로 들어가 있어. 용호무관의 관장은 방지혁이라는 사람인데 꽤 대단한 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지. 내 추측이 맞다면 아마 무도 대가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거야. 방지혁은 워낙 친구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또 이 바닥의 개망나니들과 친분이 있거든. 그래서 많은 극악무도한 광인들이 용호무관 안에 숨어있지. 용호무관은 단순한 무관이 아니라 무림 연맹이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방지혁은 그 연맹의 우두머리로서 송주에서 꽤 높은 지위와 힘을 가지고 있고.”그 말을 들은 서강빈은 약간 미간을 구겼지만 여전히 덤덤한 얼굴을 보이더니 대답했다.“재미있네요.”“녀석아, 너 이번에 큰 사고를 친 거야. 성회 이씨 가문은 물론이고, 용호무관도 상대하기 버거울 거야. 방지혁은 송주 무도계에서도 손꼽히는 강자거든. 기공을 최고의 수준으로 연마했기에 그 어떤 상황이어도, 하물며 상대가 칼과 같은 무기를 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이기긴 어려울 거야.”이상한 할아버지가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내뿜으며 말했다.“그렇게 대단해요?”서강빈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그 사람도 결국 대가일 뿐이잖아요. 전혀 두려워할 것 없어요.”이상한 할아버지는 서강빈을 힐끔 보며 물었다.“네 실력은 지금 어느 정도인데?”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을 뿐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비는 점점 더 많이 내렸고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만물상점 문 앞의 거리는 행인조차 지나가지 않아 더없이 고요했다.이어서 귀를 울리는 천둥소리가 들려왔는데 마치 곧 전쟁이 임박하고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듯했다.부릉부릉!부릉부릉!바로 이때, 검은
“고집도 세네! 이렇게 고집을 부려봤자 네놈을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라고!”방지혁은 코웃음을 친 후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나 방지혁은 약자를 괴롭히는 구차한 놈이 아니야.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목숨만큼은 살려줄 수 있어.”서강빈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관장님 정말 자비로우세요. 베푸신 호의에 눈물까지 나네요.”“알면 됐어.”방지혁이 거만하게 말했다.하지만 서강빈은 얼굴색이 확 변하더니 차갑게 말했다.“나랑 붙으려면 빨리 움직여! 이런 쓸데없는 소리는 작작 하고.”방지혁은 낯빛이 확 어두워지더니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자식,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 괜히 얻어맞고 내 탓 하지나 마. 얘들아, 뭐 하고 있어? 죽여!”방지혁이 손을 휙휙 저었다.그러자 뒤에 있던 무관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서강빈을 향해 돌진했다.기세가 어마어마한 그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 서강빈을 죽이려고 했다.하지만 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서강빈에게 돌진하던 무관 제자들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리면서 피를 뿜은 채 빗속으로 벌렁 나자빠졌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무관 제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서강빈을 빤히 쳐다봤다.어떻게 된 거야?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그들은 눈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유독 방지혁만이 얼굴이 굳어지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그는 서강빈이 손을 쓴 순간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서강빈은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을 향해 연속 일곱 번 귀싸대기를 때렸고 방지혁의 제자들은 모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자식, 영 실력이 없는 건 아니네. 어쩐지 천강문의 진뢰도 네 상대가 아니라더니.”방지혁이 차갑게 말하면서 눈으로 살기를 뿜어냈다.“그럼 이씨 가문의 일 때문에 온 거야?”서강빈이 되물었다.방지혁은 숨길 생각도 없이 솔직하고도 거만하게 대답했다.“그래!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내가 나선다면 넌 절대 살 기회가 없을 테니까.”서강빈은 눈썹을
‘스무 살에 벌써 대가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무도계에서는 앞길이 창창한 청년인데? 이런 재능을 가진 자가 왜 여기에 숨어있지?’“관장님, 관장님! 괜찮으세요?”제자들은 바로 그에게 다가가며 긴장한 기색으로 물었다.얼굴색이 어두워진 방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난 괜찮아. 방금 저 X끼는 내가 조심하지 않은 틈을 타 손을 썼어. 정말 얍삽해.”방지혁은 자신의 실력이 서강빈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차마 인정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인정해버리면 그의 권위가 크게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방지혁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향해 호통치기 시작했다.“네 이놈! 감히 관장님을 습격해?”“X발, 같이 저 X끼 죽여버리자!”“관장님, 저희가 대신 복수해 드릴게요.”잔뜩 흥분한 제자들은 방지혁을 위해 나서겠다며 소란을 피웠다.방지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내가 직접 저놈을 죽여버릴 거야!”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지혁은 외향 내력을 내뿜더니 소리를 지르고는 다시 한번 서강빈을 향해 돌진했다. 온몸의 힘이 실린 어마어마한 주먹이었다.하지만 서강빈은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손목을 휙 돌리고는 바로 방지혁의 손목을 잡았다.‘뚝’ 소리와 함께 방지혁의 손목은 그대로 부러졌다.서강빈 또 그에게 발차기를 날리자 ‘펑’ 소리와 함께 방지혁은 다시 한번 저 멀리 날아가 버린 후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피를 토하면서 한참 동안 일어서지 못했다.주위에서 지켜보던 용호무관의 제자들은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었다.방금 방지혁이 서강빈의 습격을 당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절대 습격을 당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방지혁도 서강빈을 상대할 수 없다니.덜컥 겁을 먹은 제자들은 뒷걸음질을 쳤다. 심지어 두려움에 바로 줄행랑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서강빈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하는 방지혁을 보고는 말했다.“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 각자 도망가기 바쁜
곧이어 박원재가 도착했다.박원재도 소식을 들은 후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작디작은 송주에서 이렇게 대단한 실력의 청년을 배출해 내다니. 재밌네요.”“선생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용호무관의 관장님마저 그놈의 적수가 못 된다고 하네요.”이덕용이 다급하게 물었다.박원재는 미간을 구긴 채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이덕용 씨,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이때 이덕용의 부하도 다가오면서 말했다.“어르신, 관장님께서 전할 얘기가 있다고 하네요. 서강빈 그 자식이 요구를 제기했다고 합니다.”“뭐?”이덕용은 얼굴색이 어두워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말해.”부하는 한참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서강빈이라는 그 자식이 만약 이씨 가문 사람들이 자기를 직접 찾아와 사과하지 않으면 아가씨는 물론이고 이씨 가문마저 성회에서 사라지게 하겠다며 협박했답니다.”“젠장! 감히 나를 협박하다니?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야?”이덕용은 버럭 화를 냈다.이향연을 때린 것도 모자라 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니, 그야말로 오만함이 극에 달했다.“선생님, 그 자식이 얼마나 건방진지 보십시오. 만약 우리 이씨 가문에서 나서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이씨 가문을 따를 자가 없을 겁니다.”이덕용이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박원재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침착하세요. 그놈이 관장님마저 다치게 한 걸 보면 실력이 대단한가 봅니다. 그러니 이 일은 신중하게 다뤄야 합니다.”“신중하게요?”이덕용은 얼굴색이 확 변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안 됩니다. 원한을 바로바로 되갚는 것이야말로 우리 이씨 가문답습니다. 오늘 일은 반드시 우리 딸, 향연이를 위해 빨리 복수를 해야지요.”“호영아!”“네, 어르신.”비단옷을 입은 경호원이 다가오더니 대답했다.그는 깡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었지만 두 눈은 빛나고 날카로웠다.제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기운을 내뿜었다.“당장 이씨 가문의 3천 정예 병사를 집
“그래서 지금 바로 수술을 진행해 은침을 빼낼 생각입니다.”병원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당장 수술을 진행해야지!”이덕용이 소리를 질렀다.“네, 알겠습니다.”병원장은 대답한 후 조수더러 빨리 이향연을 수술실에 들여보내라는 눈짓을 보냈다.하지만 이때, 박원재가 갑자기 나서더니 이덕용을 말렸다.“잠시만요!”“왜 그러세요, 선생님?”이덕용은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박원재가 미간을 구긴 채 말했다.“원장님, 방금 이향연 아가씨의 체내에 열댓 개의 은침이 있다고 하셨습니까?”“네, 아무래도 아가씨에게 손을 쓴 사람이 일부러 남긴 듯합니다. 아가씨를 괴롭히려고요.”원장은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검사 결과를 저에게 보여줄 수 있나요?”박원재가 물었다.“네, 그러죠.”원장은 CT 결과를 박원재에게 넘겼다.박원재는 결과를 살펴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염심십삼침이라니!”그의 말에 병실 안의 전문가들과 원장, 그리고 이덕용까지 모두 의문스러운 얼굴을 보였다.“선생님, 염심십삼침이 뭐예요?”불길한 예감이 든 이덕용이 물었다.박원재는 눈살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이건 오랜 세월 동안 잊힌 고대의 침술이에요. 이 침술을 사용하면 인체의 13개 혈이 막히죠. 처음에야 벌레가 뼈를 갉아 먹는 듯한 고통이 찾아오겠지만 이틀이 지나도 이 침술을 풀지 못한다면 아가씨는 이대로 사망할 거예요.”“뭐라고요?”이덕용은 얼굴색이 급변하더니 목소리를 높였다.“뭘 더 기다려! 당장 내 딸에게 수술을 진행해서 은침을 다 빼내!”원장은 몸을 흠칫 떨고는 허겁지겁 이향연을 밀고 나가려고 했다.하지만 박원재가 그를 말렸다.“안 돼요! 염심십삼침은 침을 놓은 사람만이 풀 수 있는 어마어마한 침술이에요. 만약 다른 사람이 강제로 은침을 꺼내려고 한다면 아가씨는 온몸의 피가 역류하면서 즉시 사망할 거예요.”뭐?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이덕용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침을 놓은 사람만이 풀 수 있다고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