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상이 험악하고 얼굴에 흉흉한 기색이 감돌았다. 손에 잡힌 장도도 푸른 빛이 감돌았다.“저 새끼 잡아!”그중 한 명이 우렁차게 외쳤다.순간 몇십 명이나 되는 검은 도복을 입은 사내들이 굶주린 짐승처럼 장도를 휘두르며 서강빈을 향해 달려들었다.서강빈의 얼굴은 두려운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덤덤했다. 그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칼을 보고도 한 치의 당황함도 보이지 않았다.서강빈은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뿜어냈다. 이윽고 그는 손가락을 튕겨 담배꽁초를 날려 보냈다. 담배꽁초는 마치 총알처럼 슉하고 날아가 그의 머리를 적중시키던 장도를 명중해 떨어뜨렸다.‘캉'하는 소리와 함께 담배꽁초에 맞은 장도가 두 동강 났다. 이윽고 서강빈이 탁 우산을 접어 손에 쥐고는 발을 땅에 굴렀다. 그와 동시에 그는 날쌘 호랑이처럼 적들에게로 돌진했다.펑펑펑!그다음은 예상할 수 있다시피 하나가 여럿을 압살하는 장면이었다. 그 수많은 검은 도복 사내들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하나의 인영이 우레 같은 기세로 눈앞에서 반짝였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 사이에 그 검은색 우산은 그들의 이마, 가슴, 복부와 사지를 강타했다.순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트럭에 치이기라도 한 듯 저만치 나가떨어져 사방에 물을 튀기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혼절했다. 뒤에 떨어져 있던 한 사내는 그 장면을 보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무서웠다! 공포스러웠다!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리도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단 말인가!알아둬야 할 것은 이 몇십 명 모두 이씨 집안에서 키워낸 비범한 인재들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모두 일 대 십으로 싸울 수 있는 실력파 인재들이었단 말이다. 한데 지금 이 순간, 수십 명에 달하는 고수들이 삽시간에 서강빈 한 사람에게 당했다.이 자식, 혹시 정통적인 무자인가?여기까지 생각한 마지막 남은 도복 사내는 몸을 떨더니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서강빈을 향해 쏘려고 했다.하지만.슉하
류천은 차 한 모금을 마시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말했다.“이향연 씨,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드님 상처가 심각한 건 맞습니다. 보통 사람이 치료할 수 있는 상처가 아니지요.”“그럼 어떻게 해요? 우리 아들을 치료 해주실 수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낼 수 있어요.”이향연은 조급한 마음으로 말했다.그 말을 들은 류천이 눈썹을 치켜들었다.“이건 돈 문제가 아니라...”“그럼 뭐가 문젠데요?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 우리 이씨 가문에서 능력이 되는 한 모두 찾아드릴게요.”이향연이 다급하게 말하자 류천은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이렇게까지 말씀하셨으니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서야 이향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리고 그녀는 또 진뢰를 향해 말했다.“진뢰 씨, 만약 나중에 그 서강빈이라는 놈이 또 찾아오면 부디 그놈을 제대로 혼내주고 제압하세요.”“네, 알겠습니다.”진뢰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방금 이향연 씨의 말을 들어보니 서강빈이라는 자가 겨우 무술을 조금밖에 할 줄 모르는 보잘것없는 놈 같더라고요. 건방진 놈, 무술을 조금 안다고 아드님을 다치게 했으니, 정말 괘씸하군요. 이향연 씨, 걱정하지 마세요, 그놈이 찾아오기만 한다면 제가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말을 마친 진뢰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치자 순식간에 테이블은 산산조각이 났다.이향연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다.“그럼 진뢰 씨에게 부탁할게요.”‘역시 무영의 사람이라 그런지 다르구나, 대단해.’이향연이 말을 마치자마자 문밖에서 한 부하가 비를 맞으면서 다급하게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아가씨, 아가씨! 큰일났어요!”“조용히 하지 못해? 호들갑을 떨긴, 귀한 손님 접대 중인 거 안 보여?”이향연이 노발대발했다.부하가 다급하게 허리 굽혀 인사하더니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아, 아, 아가씨... 서, 서강빈이라는 놈이 쳐들어왔습니다.”“진짜 왔어? 그럼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보고 잡으라고 해야지
“당신 아들이 해인이를 추행하고 무례를 저질렀는데 왜 해인이가 당신 아들을 유혹했다고 말하는 거죠?”서강빈은 얼음장처럼 싸늘한 얼굴로 되물었다.하지만 이향연은 순순히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어갔다.“네놈의 전처가 반반하게 생겼다고 얼굴 믿고 여기저기 여우짓 하는 것 같은데, 그년이 유혹하지 않았다면 내 아들이 그년에게 넘어갔겠어? 네놈이랑 쓸데없는 대화를 하는 것도 시간이 아까워. 오늘 감히 이곳에 혼자 쳐들어왔다니, 네놈을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야.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죽고 싶다면 당장 무릎 꿇어!”서강빈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다. 이내 그의 눈빛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네. 이씨 가문에서 사람 됨됨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모양인데 내가 오늘 이덕용 어르신 대신 당신을 제대로 혼쭐내주겠어.”서강빈은 가슴에 쌓인 분노가 극에 달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개자식! 네가 뭐라고 감히 아버지를 대신해서 나를 혼쭐내?”이향연은 분노가 끓어올라 노발대발했다.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짝’ 소리와 함께 빗속에 선 서강빈은 허공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이향연은 뺨을 맞아 순식간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녀는 또 허공에서 몇 바퀴를 구르다가 ‘펑’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이어서 그녀의 처절한 비명이 별원 안에 울려 퍼졌다.옆에서 지켜보던 호위대 무사들은 눈앞에서 일어난 이 모든 일을 어안이 벙벙한 채 바라보기만 했다.서강빈이라는 자가 이렇게 거침없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감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향연을 쓰러 눕히다니!게다가 이향연은 이씨 가문의 아가씨이자 이덕용 어르신이 가장 아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딸이었다. 성회에서는 그야말로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존재였다.그런데 서강빈이 그런 이향연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이향연은 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쿵쿵.호위대 무사들은 잇따라 바닥에 쓰러지면서 피가 흘러내리는 다리를 끌어안고 비명을 질렀다.이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눈 깜짝할 사이에 호위대 무사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진 광경을 보고 이향연은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리고 공포에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이때 서강빈은 우산을 거두고 이향연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이향연은 두려운 마음에 뒷걸음질 치면서도 서강빈을 향해 큰소리를 질렀다.“개자식, 짐승만도 못한 개자식! 감히 나를 때려? 나 이향연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감히 내 몸에 손을 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나, 성회 이씨 가문의 아가씨야. 내 아버지는 이씨 가문의 이덕용이라고! 지금 당장 나에게 무릎 꿇고 빈다고 해도 난 절대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네놈뿐만 아니라 그 여우 년도 모두 죽여버릴 거야!”이향연은 분노가 끓어올라 목이 쉴 정도로 울부짖었다.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서강빈의 귀싸대기뿐이었다. 그녀는 또 한 번 바닥에 쓰러 눕혀졌는데 얼굴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이씨 가문을 빌미로 협박하면 내가 겁먹을 줄 알아? 오늘 당신이 해인이에게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사과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어! 이씨 가문 사람들을 부른다고 한들 오는 족족 때려눕힐 거라고! 당신 아버지이자 그 고고한 이씨 가문의 이덕용 어르신이 와도 난 두렵지 않아!”서강빈은 말을 마친 후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이향연에게 다가가며 귀싸대기를 때리려고 했다.잔뜩 겁을 먹은 이향연은 안에 있던 진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진뢰 씨, 살, 살려주세요! 이놈을 제발 죽여주세요!”“멈추지 못할까!”천둥과 같은 굉음이 안에서 울려 퍼졌다. 잇따라 진뢰가 걸어 나왔다.바닥에 쓰러 누운 채 얼굴이 피범벅이 된 이향연을 보고 진뢰는 잠깐 얼어붙더니 이내 버럭 화를 냈다.“무엄하도다! 여기가 어디라고 네놈이 행패를 부려? 감히 이향연 씨에게 손을 대? 정말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려는 모양이구나!”진뢰가 목소리를 높였다.서강빈은
“건방진 놈!”분노가 끓어오른 진뢰가 호통을 쳤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옆에서 뒷짐을 지며 말없이 서 있던 류천은 덤덤한 얼굴로 서강빈을 바라봤다.“네 이놈, 죽기 싫으면 얼른 무릎 꿇고 진뢰 형님에게 사과해. 아니면 형님의 주먹 한 방으로 네놈은 바로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류천은 거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진뢰가 누구던가?삼십육 문의 천강문에서도 이름난 존재가 아니던가!아홉 개 문파의 열여덟 명과 맞붙어도 승리했고 천강문 문주의 가장 우수한 제자 다섯 명 중의 한 명, 즉 천강문 5대 호걸이었다!그런 사람이 송주에서도 실력이 보잘것없는 놈을 상대로 승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게다가 진뢰는 무도계의 실력 랭킹에서도 언더 랭킹 32위였다!무도계의 실력 랭킹은 스카이 랭킹, 챌린지 랭킹, 언더 랭킹으로 나뉜다. 챌린지 랭킹은 방금 입문한 무자들의 실력을 가르는 랭킹이고, 언더 랭킹과 스카이 랭킹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들이 꿈에서라도 오르고 싶은 랭킹이었다. 언더 랭킹과 스카이 랭킹에 오를 수 있는 무자들은 무도계의 가장 뛰어난 인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언더 랭킹은 총 100위까지 있는데 진뢰가 32위에 올랐다는 건 그의 실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충분히 보여준다.물론 스카이 랭킹에 오르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총 13개의 자리밖에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무도계 13대 호걸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않은 채 무술만을 연마하곤 한다.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 분명 무도계에 피바람을 일으킬 것이다.“서강빈이라고 했지? 나 진뢰는 함부로 사람을 괴롭히지 않아. 네가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이향연 씨에게 머리를 열 번 박으면 내가 대신 용서해달라고 사정해 볼 수도 있는데.”진뢰가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천강문 5대 호걸인 그가 이런 애송이를 상대하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진뢰는 지금 내경대성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그는 두 달 전 이미 세미 마스터의 경지
“좋아요!”이향연은 표독스러운 표정을 보이며 진뢰에게 말했다.“진뢰 씨, 저놈의 목숨만은 남겨두세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잘 괴롭힐 테니까.”같은 시각, 진뢰의 천강권을 보고서도 서강빈은 전혀 겁을 먹지 않았는지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4년이 지났는데도 천강문은 전혀 달라진 게 없군. 이미 4년 전에도 당신네 문주에게 말했었지만 천강권은 위력이 어마어마하나 그 힘이 오로지 한 곳에만 집중되었다는 게 단점이야. 그러면 주먹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 부위는 타깃으로 삼기 딱 좋거든.”서강빈은 말을 마친 후 바닥을 힘껏 내딛더니 칠성보로 쉽사리 진뢰의 주먹을 피했다.진뢰의 주먹은 그대로 서강빈의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그 위력에 휘몰아치던 강풍은 얼굴이 쓰라릴 정도로 강력했다.진뢰는 서강빈이 자신의 주먹을 피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잠깐만!칠성보!방금 칠성보를 사용한 거야?진뢰는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낯빛이 어두워졌고 잇따라 얼굴도 극도로 겁에 질려 창백해졌다.천의문!칠성보는 천의문의 보행법이었다!그런데 서강빈이 어떻게 칠성보를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천의문은 무도계의 구종십팔부, 삼십육 문 중에서도 제일 가는 종가였다!하지만 천의문에는 세대마다 단 한 명의 후계자밖에 없었다. 몇 년 전에 천의문의 마지막 후계자는 구종십팔부와 삼십육 문의 문주에게 모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무패의 전적을 거뒀었다.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천의문의 마지막 후계자는 종적을 감췄다.‘설마 저놈이 천의문의 그 후계자란 말이야?’진뢰가 아직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서강빈은 이미 출격했다. 그는 진뢰의 복부를 향해 바로 주먹을 날렸다.“펑!”굉음이 울려 퍼졌다.진뢰는 방어를 하기도 전에 가슴에 주먹을 한 대 맞고 피를 토하더니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명치의 갈비뼈도 순식간에 십여 개가 부러졌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향연과 류천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무려 천강문의 진뢰가 서강빈의 주먹을 맞고 날아가
서강빈은 차가운 얼굴로 이향연을 바라보며 얼음장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송해인의 전남편이야.”말 한마디로 그의 입장을 밝혔다.그는 송해인의 전남편으로서 오늘 송해인 대신 복수를 하러 온 것이다.그 말을 들은 이향연은 겁에 질렸다.서강빈에게서 전해지는 무서운 기운에 이향연은 감히 함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진뢰 씨, 얼른 일어나요, 얼른 일어나라고요!”이향연이 큰 소리로 외쳤다.하지만 바닥에 쓰러진 진뢰는 갈비뼈가 십여 개 부러져 꼼짝도 할 수 없었다.게다가 서강빈의 신분을 알게 되었으니 그는 차마 일어날 수도 없었다.상대는 천의문의 소문주다! 구종십팔부와 삽십육 문의 문주에게도 패배한 적 없는 전설적인 존재란 말이다.진뢰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향연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자신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서강빈을 향해 손을 휙휙 내저었다.“오지 마! 오지 말라고!”“내가 말했던 것 같은데. 만약 당신이 오늘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해인이가 받은 고통을 백 배로 되갚아주겠다고.”서강빈이 차갑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이향연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성회 이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언제 한 번 머리를 숙이고 사과했겠는가?안 돼!절대 굴해서는 안 돼!이향연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서강빈은 이미 몇 미터 앞까지 다가왔다.이향연은 겁에 질려 마구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내가 다시 한번 말하는데 네놈이 감히 내 몸에 손을 댄다면 분명 내일까지 살 수 없을 거야! 난 성회 이씨 가문의 아가씨이고, 내 아버지는 이덕용이라고! 감히 내 몸에 손을 댄다면 네놈은 물론이고 네놈의 전처, 그리고 친구들까지 모두 이씨 가문의 보복을 당할 거야!”“보복?”서강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씨 가문이 나선다면 나도 같이 놀아줄 의향이 있어. 다만 해인이가 겪은 고통과 괴롭힘을 당신도 오늘 똑같이 당하게 될 거야.”“그... 그게 무슨 뜻이야?”겁에 질린 이향연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서강
“참, 사람 찾아 은침을 꺼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마. 이 세상에서 그 은침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쉽사리 손을 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말을 마친 후 서강빈은 별원을 떠났다.잇따라 안에서 이향연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이씨 가문 호위대 무사들은 재빠르게 이향연을 안아 들고는 별원을 떠나 병원으로 향했다.같은 시각, 성회 이씨 가문에도 송주의 소식이 전해졌다.이씨 가문 저택 안.이씨 가문의 가주인 이덕용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한 노인과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선생님, 제가 몇 년을 더 살 것 같습니까?”이덕용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공손하게 물었다.백발 머리에 손에 염주를 쥔 박원재는 수염을 쓰다듬더니 품속에서 금빛을 띤 비단 상자를 꺼낸 후 이덕용에게 건넸다.“이덕용 씨, 이건 우리 백현문 문주가 제련해낸 회춘단입니다. 이덕용 씨에게 5년의 수명과 젊어진 용모를 줄 수 있죠.”“회춘단이요? 5년 젊어질 수 있다고요?”이덕용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두 손으로 그 비단 상자를 들고는 두 눈을 반짝였다.5년의 수명이라니!이덕용은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이를 되돌릴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수명을 늘리는 건 더없이 중요한 일이었다.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법은 아니기 때문에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마음은 사치로 느껴졌다. 그런데 박원재가 한 번에 수명을 5년이나 늘릴 수 있는 회춘단을 줬으니 이덕용은 어떻게 기쁘지 않겠는가!“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이덕용은 흥분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부하를 시켜 은행카드 한 장을 가져오게 한 후 공손하게 박원재에게 건넸다.“이 카드 안에는 200억이 들어 있습니다. 제 성의이니 선생님께서 부디 받아주시길 바랍니다.”박원재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은행카드를 도포 안에 챙겼다.“별말씀을요. 5년 뒤에 제가 다시 회춘단 한 알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네! 그러죠!”이덕용은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그러면 수명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