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빈의 말과, 안색과 태도를 살핀 양미란은 순간 미간을 찌푸리면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욕했다.“무슨 일로 왔냐고? 우리를 환영하지 않는 거야?”“그러니까요. 서강빈, 잊지 마. 이 가게는 우리 누나가 구해준 거잖아. 우리가 와서 가게 좀 보겠다는 데 뭐 문제 있어?”송태호가 악다구니를 쓰면서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다.싸우기라도 할 듯이 굴자 서강빈은 미간을 구기고 안색이 어두워지며 물었다.“난 무슨 일로 찾은 거지?”“어머, 서강빈, 우리가 먼 길을 달려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를 그냥 이렇게밖에 세워둘 거야? 안으로 들어가서 차라도 대접해야지 않겠어?”양미란이 불쾌한 얼굴로 호통을 쳤다.서강빈은 이혼한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한때 장모님이었던 그녀를 이렇게 대하다니.“뭘 넋 놓고 있어? 어서 우리를 안으로 안내해야지!”송태호가 거만하게 지시했다.서강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안으로 들어오세요.”그렇게 양미란과 송태호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더니 건방진 태도로 고개를 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주변을 둘러보던 양미란과 송태호는 소파에 앉았다. 한 명은 무게를 잡았고 다른 한 명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서강빈은 찻잎을 꺼내며 물었다.“뭐 마실래요?”“마음대로.”송태호가 대답했다.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인 뒤 두 사람에게 차를 우려서 따라줬다.양미란은 찻잔을 들자마자 손을 흠칫 떨더니 큰 소리로 그를 욕했다.“날 데어죽일 셈이니?”서강빈은 미간을 구겼지만 어쩔 수 없이 새로 차를 따라줬다.양미란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차갑게 서강빈을 노려보며 말했다.“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건 다름이 아니라 너랑 해인이가 이혼한 것 때문이야.”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저랑 송해인이 이혼한 일 때문이라고요?”“그래. 네가 해인이와 이혼한 건 맞지만 이혼했다면 분명 잘못한 쪽이 있지 않겠니? 그런 소문이 돌더구나. 우리 해인이가 가난한 자를 싫어하고 부유한 자를 좋
길게 이어진 말과 거만한 태도에 서강빈은 얼이 빠졌다.동시에 서강빈은 마음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었다.두 모자가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가 그를 설교하고 그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라니.이게 뭐란 말인가?사람을 이렇게까지 괴롭히다니.선 넘는 일이었다.송해인과 이혼했을 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밖에서 도는 소문을 전부 그의 탓으로 돌렸다.서강빈은 마음속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최선을 다했다.이때 송태호가 서강빈의 표정이 달라진 걸 보고 차갑게 말했다.“왜? 표정을 보니 인정하기 싫은가 봐? 설마 억울해서 그래? 우리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송주 비즈니스계의 꽃이자 미래 비즈니스계의 여왕이라고! 우리 누나 좋다는 사람이 송주를 한 바퀴 에워쌀 정도인데 당신 따위가 뭐라고 그래? 우리 누나 아낄 줄 모르고 밖에서 다른 여자랑 놀아나다니, 정말 기가 막히네!”그 말을 들은 서강빈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오늘 왜 이렇게 재수 없는 걸까?이상한 모자에게 시비가 걸리다니.게다가 그들은 서강빈을 설교하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었다.서강빈이 아무리 너그럽다고 해도 이렇게 한바탕 질책을 받으니 화가 울컥 치솟아 올랐다.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송태호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송태호, 이 일 잘 고민해 봐야 할 거야. 송씨 집안이 파산할 뻔했을 때 내가 송씨 집안을 일으켰다는 걸 말이야.”“그런데 지금 여기까지 찾아와서 나한테 설교하려 하다니,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나는 화도 낼 줄 모르는 것 같은가 보지?”그 말을 들은 송태호는 경멸에 차서 차갑게 웃었다.“참나, 서강빈. 왜 이렇게 뻔뻔해? 왜? 설마 진짜 날 때리기라도 하게? 싸움 좀 한다고 해서 내가 널 상대하지 못할 것 같아? 설마 나 송태호가 지금까지 송주에서 빈둥거리기만 한 것 같아?”“경고하는데 난 송주에 아는 사람이 많아. 감히 내게 손을 댄다면 내 한마디에 넌 팔다리가 부러져서 평생 침대에 누워서 생활해야
서강빈이 인정하자 양미란과 송태호는 시선을 주고받으며 희색을 드러냈다.“그래. 너도 인정했으니 우리가 이 가게를 돌려달라고 해도 넌 할 말이 없지?”양미란이 음흉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송태호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똑똑히 들었지? 서강빈, 이 가게는 지금부터 우리 거야. 그러니까 넌 지금 당장 나가.”그 말을 들은 서강빈은 안색이 더욱더 어두워졌다.두 모자는 이곳까지 와서 비아냥대며 서강빈을 조롱하고 모욕을 주고 위협했다. 그들은 그와 송해인이 이혼한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이 가게를 위해서 온 것이었다.가게?서강빈은 자조하듯 웃었다. 지금 두 모자의 모습을 바라보니 우스웠다.송해인과 이혼했을 때 그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았고 이제 가게만 남았다.그런데 지금 두 모자가 달려와서 가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정말 뻔뻔했다.서강빈은 조롱의 미소를 띠었고 양미란과 송태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들도 서강빈이 본인들을 비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아무런 능력도 없는, 진취심마저도 없는 그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고, 무슨 자격으로 그들을 비웃는단 말인가?“서강빈, 뭘 웃는 거야? 우리 말이 틀렸어? 이 가게는 우리 누나가 구해준 거였잖아. 그런데 왜 아직도 뻔뻔하게 이곳에 남아있는 거야?”“내가 당신이었으면 벌써 떠났을 거야!”송태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서강빈은 뻔뻔스럽게 큰소리치는 송태호를 바라보다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경멸로 가득한 비웃음이었다.“이 가게는 확실히 송해인이 대신 구해준 거예요. 오늘 두 사람이 왜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알겠어요. 이 가게를 원하는 거죠?”서강빈이 덤덤히 웃으며 물었다.“당연하지!”“너도 인정했으니 얼른 이 가게를 우리에게 돌려줘!”양미란이 호통을 쳤다.서강빈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렇게 원한다면 돌려드리죠. 하지만 이 가게는 송해인이 절 위해서 구한 것이니 돌려드리기 전에 먼저 송해인에게
송태호 손을 놓기는커녕 있는 힘껏 멱살을 잡으며 호통을 쳤다. 그리고 손을 들어 서강빈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당장 그 자리에서 기절할 수도 있을 만큼 한 파워로 힘껏 휘둘렀다!양미란은 그것을 보고도 막지 않고 차갑게 지켜봤다. 그녀의 눈에서 서강빈은 철두철미한 나쁜 놈이기에 자기 아들이 그를 훈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한 대는커녕 맞아서 폐인이 되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어차피 서강빈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양미란은 이내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서강빈이 손으로 송태호의 손목을 꽉 잡았다. 그러자 송태호는 깜짝 놀라며 소리를 쳤다.“감히 반격해?”송태호는 힘을 더 썼지만 그의 주먹은 꿈쩍도 하지 않더니 공중에 멈춰 선 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헐! 서강빈, 이 자식, 힘이 장난 아닌데!’“이렇게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니 그럼 내가 손을 쓰는 수밖에 없지.”서강빈은 차가운 표정으로 송태호의 손목을 잡고 살짝 힘을 주더니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뼈가 부러졌고 송태호는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서강빈은 발로 송태호를 퍽 걷어찼다. 그러자 송태호는 날아가 무릎 꿇은 자세로 떨어졌고 손목을 쥐면서 꽥꽥 비명을 질렀다.양미란은 이 장면을 보고 놀라서 멍해졌고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녀는 얼른 송태호에게로 달려갔다.손목이 부러졌다!“서강빈! 이 개자식아, 네가 뭔데 감히 우리 아들을 때려? 죽어!”화가 치밀어 오른 양미란은 송태호의 손목이 부러진 걸 보자 서강빈을 때리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얻어맞을 서강빈이 아니었다.짝!서강빈이 손을 들어 양미란을 뺨을 후려쳤다!뺨을 맞은 양미란은 어리둥절했다.‘서강빈이 나를 때렸어? 이 쓸모없는 인간에게 내가 얻어맞았다고?’“아아아!”양미란은 믿기지 않는 듯 소리를 질렀다.“너, 감히 날 때려? 미쳤어. 미쳤어. 정말 정신이 나갔구나! 나는 네 장모님이야!”그러자 서강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한 번 더 말씀드리는데요. 저랑 송
송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어머니, 그 정도는 저도 알죠.”한참 후, 비오 그룹.송해인은 사무실에서 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도중 양미란의 전화를 받았다.“네? 태호의 손이 부러졌다고요?”송해인은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특히 양미란이 서강빈이 때린 거라고 말하자 송해인은 믿어지지 않았다!“알았어요. 곧 갈게요.”송해인은 긴장하는 듯 말했다. 그녀는 송태호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공부도 하지 않고 게으르고 놀음을 즐기는 전형적인 부잣집 도련님이었다.가끔 큰 사고를 치기도 하고 거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송태호는 송해인의 하나뿐인 동생으로서, 부모님의 보배 아들로서 애지중지 키우다 보니 아무리 말해도 고치려 하지 않았다.그래서 송해인은 송태호가 밖에서 일을 치지 않는 한 돈을 쓰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양미란의 말에 의하면 서강빈이 송태호의 손을 부러뜨렸다.그러자 송해인은 어리둥절해졌다!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서강빈이 어떤 사람인지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지 않은 이상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양미란이 너무 확실하게 말하자 송해인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진짜 서강빈이 변한 걸까?송해인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서강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방금 한의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다시 화가 나서 핸드폰을 탁자 위에 던졌다.이때 이세영이 걸어들어오면서 송해인의 안색이 어두운 걸 보자 물었다.“대표님,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 생겼어요?”“엄마가 그러는데 서강빈이 태호의 손을 부러뜨렸대. 그래서 지금 병원에 있다고 해.”송해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러자 이세영은 깜짝 놀라면서 되물었다.“네? 손이 부러졌다고요? 서강빈이 때려서요?”송해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이 비서, 정말 서강빈이 한 짓일까?”이세영은 망설이는듯하다가 대답했다.“대표님, 제가 이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도 깜짝 놀랐지만
감히 보복까지!“개자식! 개자식! 정직한 사람인 줄 알았어. 그래도 소인배는 아니라고 생각했지. 이혼한 지 얼마 됐다고 사람이 이렇게 변해? 왜 내 동생을 때려? 제가 뭔데?”송해인은 꾹꾹 참아왔던 화가 끝내 치밀어 오르면서 욕을 했다.이때다 싶어 이세영은 한마디 덧붙였다.“제가 보기에는 권씨 집안 아가씨랑 같이 있더니 믿을 구석이 있는지 용기가 났나 봅니다. 대표님 전남편인 서강빈이 이제 권효정한테 찰싹 달라붙을 것 같은데요.”말이 끝나자 송해인은 더욱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그만해. 일단 병원으로 가볼게.”“저도 같이 갈게요.”두 사람은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엄마, 어떻게 된 일이에요?”송해인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화를 내면서 물었다. 양미란은 송해인을 보자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글썽이었다.“해인아, 드디어 왔어! 이것 좀 봐, 태호를 좀 보라고. 서강빈 그 자식이 얼마나 지독하게 때렸는지! 손이 다 부러졌다니깐!”양미란은 마치 송태호가 죽기라도 한 듯 엉엉 울어댔다.송해인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이 상황을 지켜봤다. 오기 전부터 양미란이 과장해서 말했을 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지금 침대에 누워 울부짖는 송태호를 보자 사건의 심각성을 알았다. 정말 손이 부러졌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송해인이 걱정스레 물었다.‘정말 서강빈이 이렇게 지독하게 때렸다니!’“다 서강빈 그 자식 때문이야! 미친것처럼 달려들어 태호의 손을 부러뜨렸지 뭐야!”양미란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나는 아들이라곤 태호밖에 없는데 우리 태호를 죽도로 때렸어! 그리고 태호만 때린 게 아니라 나도 뺨을 맞았다니깐. 봐봐, 이 자국! 지금도 멍들어 있는걸!”그리고 양미란은 자기 얼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송해인은 양미란의 얼굴을 보자 얼굴색이 어두워졌고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엄마, 솔직하게 말해봐요. 엄마랑 태호가 서강빈을 화나게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손을 쓴 거예요?”“해인아, 그건 무슨 소리야? 우리가 화나게 했다니? 너는 지금
가게에 있던 서강빈은 갑자기 송해인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보자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때렸어.”서강빈은 숨길 생각도 없이 당당하게 인정하였다. 이 말을 듣자 송해인은 벌컥 화를 내었다!“서강빈, 개자식! 왜 우리 동생을 때려? 네가 얘 손을 부러뜨렸다고! 아무리 원수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는 하지 않지! 얼마나 미워야 이래? 내가 너랑 이혼했다고 해서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복수할 정도는 아니잖아? 서강빈, 오늘 드디어 너의 정체를 똑똑히 알아봤어! 너는 철두철미한 소인배야! 이렇게 폭력을 쓰는 사람이랑 이혼한 건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야!”이 말을 듣자 서강빈은 얼굴색이 어두워지며 미간을 구겼다.그는 변명도 반박도 하지 않았지만 너무 실망스럽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도 3년 부부로 살았는데 이 정도 믿음이라니!심지어 송해인은 왜 때렸는지 묻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호통을 쳤다.서강빈은 한숨을 내쉬더니 덤덤하게 웃었다. 자기 자신을 비웃는 것도 같았다.“송해인, 네 마음속에 나는 그런 사람이었어? 폭력에 미친 사람? 왜, 송태호가 네 엄마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서강빈은 차갑게 물었고 말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우리 엄마와 태호가 뭘 했던 너는 손을 쓰면 안 됐어. 심지어 이렇게 지독하게 때리면 더 안 되는 거였다고!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네가 엄마도 때렸다며?”송해인은 강하게 밀고 나왔다. 그녀는 이미 전화로 의사를 잘 전달한 것 같은데 서강빈이 반성하려는 태도가 보이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자 살짝 당황했다!하지만 송해인의 말을 들은 서강빈의 마음은 더욱 허탈하고 실망스러웠다.누가 옳고 그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송해인이 서강빈을 대하는 태도였다. 서강빈이 옳든 그르든 그녀의 눈에는 다 그의 잘못으로 보였다! 서강빈은 이런 송해인의 태도에 너무 실망했다.“이젠 알겠어. 내가 뭐라고 하든 무슨 일이 발생했든 너는 다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걸. 송해인 네 눈엔 내가 뭘 해
송해인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병실에 있던 송태호와 양미란은 이 말에 이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흐뭇하게 웃었다.가게에 있던 서강빈도 나가라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다 끝내 입을 열었다.“알았어. 곧 나갈게.”그리고 서강빈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송해인도 한참 동안 그자리에서 멍하니 있다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놨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송해인은 갑자기 커다란 공허함을 느꼈다. 마치 지금까지 기대했던 모든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듯한 기분이였다. 그녀는 스스로 가장 소중한것을 망가뜨린것 같은 기분에 괴로워하였다.이때, 송해인은 비로서 정신을 차렸다. 이 모든것은 그녀가 홧김에 한 소리라는건 인식하기 시작했다. 서강빈이 만약 정말 가게를 떠난다면 그녀는 앞으로 서강빈과 완전히 인연을 끊게 될것이다. 이 가게는 그녀와 서강빈 사이의 마지막 연결점이였다.순간 송해인은 모든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병실을 뛰쳐나오면서 서강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꺼져있네.’“대표님, 어디 가세요?”이세영은 급히 쫓아나오며 물었다. “가게에 다녀와야겠어.”송해인은 대답하고 재빨리 차를 타고 곧장 가게로 향했다.‘서강빈, 미안헤. 그런 뜻은 아닌데. 정말 아니야.’송해인은 조급하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가게에서.서강빈은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면서 담배를 붙이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송해인이 방금 한 말이 계속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그래. 떠날때도 되였지. 여기에 계속 있어봤자 뭐해?’서강빈은 스스로를 비웃으며 담배를 끄고 일어나 간단히 짐을 쌌다.그리고 현관에 서서 작은 가게를 둘러보았다.2년이다. 이젠 떠나야할 시간이다.서강빈과 송해인의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젠 손을 놓아줘야 할때가 왔다.서강빈은 한숨을 내쉬며 캐리어를 끌고 잠시 고민하더니 열쇠를 문 앞에 있는 꽃병 아래에 놓았다.그리고 카카오톡으로 송해인에게 사진을 전송했다.“열쇠는 입구 꽃병 밑에 있어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