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빈이라는 말에 김 비서는 어안이 벙벙했다.“이 비서님, 혹시 서 대표님이 저희 대표님의 전남편인가요?”김 비서는 궁금했다.그러자 이세영은 눈을 부릅뜨면서 차갑게 말했다.“회사에서 그런 말은 삼가세요. 송 대표님께서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죠?”김 비서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아무 일도 없었는걸요.”“나가봐요.”이세영이 차갑게 말하자 김 비서는 사무실을 재빨리 나갔다. 사무실에 앉아있던 이세영은 화가 솟구쳐 올랐다.“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 서강빈! 감히 나를 건드려? 내가 사과해야만 협력한다니… 흥. 꿈도 꾸지 마.”이세영은 씩씩거렸다.금방 깨어난 서강빈은 휴대폰을 꺼내더니 구역 판매 순위 차트 데이터를 확인했다.판매량 12만 건.엄청난 속도였다.이대로라면 1위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현재 1위는 비오 그룹의 팩이었는데 판매량은 50만 건을 돌파했는데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유지했다.어마어마한 수치였다.그러면서 송주 화장품 업계의 큰 반응을 일으켰다.각 브랜드에서는 아무런 경쟁심도 없이 소소한 수입을 유지하고 있었다.생산한 마스크팩은 효과가 다 비슷했기 때문이다.그런데 두 날 전, 비오 그룹에서 출시한 팩이 갑자기 큰 주목을 받더니 시중의 팩을 다 제치고는 구역 판매 순위 1위에 달성한 것이다.많은 화장품 회사에서는 한숨만 내쉬면서 부러워하거나 질투했다.그러나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작은 회사에서 출시한 정빈 마스크팩은 더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더니 2위에 안착했다.용호상박인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화장품 업계가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였다.그리고 정빈 마스크팩이 대량의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정빈 마스크팩 요즘 대세던데요? 출시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입소문으로 2위까지 했어요!”“효정 제약 뒤에 큰 회사가 지원해 주고 있는 거 아닐까요?”“제가 보기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빈 마스크팩이 1위 할 거예요. 비오
서강빈은 진지하게 대답했다.“설득하려 하지 않아도 돼요. 저의 처방대로만 단약을 만들 생각이라서요.”권효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그러고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저녁에 열릴 선발전까지 시간이 꽤 많이 남았는데, 식사하고 나서 뭐 할 거예요?”“시내에 있는 한의원에 가보려고요. 약재도 사야 해서요.”서강빈은 대답하고 나서 생각에 잠겼다.시간을 계산해 보니 15날 정도 지나면 서강빈 체내의 화독이 올라올 것이다.그전에 미리 화한단을 만들어서 체내의 화독을 눌러야 한다.또한 다른 약재들로 구기단과 여러 단약을 만들 생각이었다.지난번에 실력이 급증한 덕에 서강빈은 다른 단약을 만들 신심이 생겼다.심지어 사부님이 가르쳐준 무술과 도술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예를 들면 호신용 옥부를 만들거나 법진을 쳐서 이곳의 풍수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또한 사방의 영기를 모아 수행할 수도 있었다.“한의원에요? 제가 아는 유명한 한의원이 있는데, 같이 가볼래요?”권효정은 웃으면서 말했다.식사하고 나서 준비를 마친 후, 서강빈은 권효정이 추천한 합원당 한의원으로 함께 향했다.한편.비오 그룹.사무실에 있던 송해인은 최신 데이터를 확인했다.그러다가 갑자기 서강빈이 출시한 팩이 구역 판매 차트 2위와 전국 판매 순위 골든 차트 10위에 오른 것을 발견했다.송해인은 표정이 일그러졌다.하지만 보고 나서 신경 쓰지 않았다.송해인은 그 팩이 10위에서 비오 그룹을 제치고 올라갈 수 없다고 단정지었다.모든 상품은 홍보를 통해 그 존재를 알린다.그러나 서강빈의 성격대로라면 홍보하지 않을 테니, 정빈 마스크팩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얼마 후, 이세영이 걸어들어오자 송해인이 물었다.“이 비서, 판매 순위 차트 확인했어?”“네.”이세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송해인은 말을 이었다.“구역 판매 차트 2위, 골든 차트 10위던데.”“맞아요.”이세영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송 대표님, 별일 아니니 아무 걱정하지 마
이세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비서 사무실로 돌아온 이세영은 판매 차트 데이터를 확인했는데 서강빈이 출시한 정빈 마스크팩이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다.이대로라면 비오 그룹의 팩을 넘어설 수 있다.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여긴 이세영은 생각에 잠겼다.그러더니 가방을 들고는 서강빈의 가게로 향했다.어떻게 되든 시도는 해봐야 했다.정말로 안 되면 다른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해낼 것이다.이세영은 차를 운전해서 가게에 도착했는데, 마침 나가려던 서강빈과 권효정을 발견했다.권효정과 눈이 마주친 이세영은 낯빛이 어두워졌다.서강빈은 이세영이 차에서 내려 걸어오는 것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면서 비웃었다.“어? 이게 누구야! 이 비서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누추한 곳까지 왔어?”이세영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서강빈을 째려보더니 권효정한테 인사했다.그러고는 서강빈한테 담담하게 말했다.“서강빈 씨. 할말이 있는데 자리 옮기죠?”“아니. 여기서 말해.”서강빈은 차분하게 말했지만 이세영을 손님처럼 대할 마음이 없었다.이세영도 눈치가 있었기에 서강빈이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비웃었고 모욕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서 대표님, 들어가서 얘기하는 건 어떨까요?”이세영은 불만이 가득했다.그러나 서강빈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이 비서, 우리 사이에 그런 가식적인 대화는 필요 없잖아? 용건만 간단히 말해. 피차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없으면 가볼게.”이세영은 코웃음치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서강빈을 보면서 말했다.“정빈 마스크팩 협력 건에 관해 얘기하러 왔어요.”서강빈은 어이가 없었다.“협력? 이 비서, 우리가 협력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송해인이 시킨 거야, 아니면 스스로 온 거야?”이세영은 서강빈의 콧대를 눌러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말했다.“제가 오고 싶어서 온 거예요. 송 대표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거절하지 마시고 다시 고려해 보세요. 저희와 협력한다면 최고급 대우를 해드리죠. 그러면 회
이세영은 험한 말을 뱉었다.“당신은 아직 멀었어. 멀었다고!”보다 못한 권효정이 나서서 말했다.“이 비서님,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요?”이세영은 어이없어하더니 차분하게 말했다.“권효정 씨. 권씨 가문 따님이시니 제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서강빈 같은 사람 정도는 좀 뭐라 할 수 있잖아요? 아,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요. 서강빈을 멀리하세요. 이런 남자는 독이 될 뿐이에요.”권효정은 단단히 화가 났기에 차갑게 말했다.“제가 누구를 만나든 그쪽이 상관할 바 아니에요.”이세영은 권효정을 흘긋 보더니 더 언쟁하기 싫었다.그러고는 서강빈을 향해 말했다.“잘 고려해 보세요. 저희와 협력하면 회사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으니 회사의 발전에도 유리할 거예요. 송 대표님이 그래도 한때는 아내였는데, 다른 회사와 협력할 바에는 비오 그룹이 더 낫지 않아요? 어찌 되었든, 비오 그룹은 최고의 선택일 겁니다.”그런데 서강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차갑게 말했다.“이 비서, 얼른 가 봐.”“당신 정말!”이세영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씩씩댔다.“서강빈, 가부장주의 같으니라고! 끝까지 이렇게 나오시겠다? 그래, 협력 안 하면 당신이 손해야. 딱 기다려,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고. 평생 송 대표님의 그늘에서 살아. 대표님을 이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말을 마친 이세영은 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차에 오르려고 했다.그런데 이때, 서강빈이 피식 웃었다.“난 이길 생각이 애초에 없었는데. 이 비서, 넘겨짚지 마.”“하, 가증스러운 놈!”욕을 뱉고 난 이세영은 운전대를 잡고서 액셀을 힘껏 밟았다.권효정은 어이가 없었다.“저 사람 왜 저래요? 송해인 곁에 이런 비서가 있다니… 잘못하면 불똥이 튀겠어요.”“그러게요. 얼른 가요.”서강빈은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은 재빨리 합원당 한의원으로 향했다.송해인은 이세영이 서강빈을 찾으러 간 줄도 모르고 사무실에서 파일을 검토하기에 바빴다.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는데 송해인의 엄마, 양미란한
“백년 된 설련화요?”권효정은 의아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그러고는 합원당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끊은 권효정은 놀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강빈 씨, 정말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요! 최근에 합원당에서 마침 백년 된 설련화를 가져왔대요.”서강빈은 만족스럽게 웃었다.권효정은 액셀을 꽉 밟았다.이때.합원당 문 앞에서 차 한 대가 멈춰 섰다.송해인이 양미란과 송태호를 데리고 이곳에 온 것이다.“엄마, 그 거장이 정말 한동훈을 치료해 줄 수 있대요?”송해인은 여전히 걱정되는 듯싶었다.어제저녁, 한철산이 송해인에게 거듭 사과하긴 했으나 이런 일이 벌어진 후에 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한동훈을 치료해 줄 수 있다면, 한씨 가문과의 관계도 원만해질 것이다.“엄마를 못 믿어?”양미란은 송해인을 째려보았다.송태호는 옆에서 같이 거들었다.“누나, 걱정하지 마. 거장님을 내가 만나봤는데 대단하신 분이야! 거장님이 끊어진 손을 붙이는 걸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봤어.”“정말?”송해인은 깜짝 놀랐다.대단한 거장이라면 한번 시도해 볼 만했다.세 사람은 재빨리 합원당 한의원으로 들어갔다.양미란은 카운터로 가서 물었다.“원장님! 원장님, 계세요?”갑자기 살집이 있는 중년남성이 뒤에서 걸어 나오더니 웃으면서 물었다.“죄송합니다, 손님. 오늘 원장님이 안 계셔서요. 저는 한의원의 매니저, 유재혁이라고 합니다.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듣는 바에 의하면 이곳에 백년 된 설련화가 있다는데, 지금 가져와 봐요.”양미란은 거만하게 말했다.유재혁은 세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사과부터 했다.“죄송하지만 손님이 오시기 몇 분 전에 설련화를 예약한 분이 있습니다.”“뭐라고요? 예약이라니, 그게 무슨 헛소리야!”양미란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불만스럽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송태호는 책상을 내리치더니 손가락질했다.“유재혁이라고 했나? 당신 우리가 누군지 알아? 우리 누나가 누구인지 아냐고!”송해인은 깜짝 놀라더니 송태호를 째려보았다.유재
송태호는 미소를 지으며 유재혁의 어깨를 툭툭 쳤다.“유재혁 씨, 뭘 좀 아네. 설련화 가져와 봐.”유재혁은 싱글벙글 웃으며 직접 창고로 달려가 네모난 나무상자를 하나 꺼냈다.상자를 열자 마른 설련화가 있었다.향이 확 올라오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이것이 설련화에요.”유재혁은 웃으며 말했다.양미란은 통쾌하게 카드를 꺼내더니 말했다.“이걸로 결제해 주세요!”송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엄마랑 동생이 이러는 게 남의 것을 빼앗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한동훈은 확실히 이 설련화가 필요했다.그때 가서 예약한 사람에게 연락해서 보상을 해줄 수밖에 없다.그런데 유재혁이 카드를 긁으려 할 때, 한바탕 호통치는 소리가 문 앞에서 울려 퍼졌다.“잠깐만요! 설련화는 분명히 우리가 예약한 건데, 왜 다른 사람한테 팔아요?”그들이 고개를 돌려 보자 한 남녀가 걸어 들어왔다.서강빈과 권효정이었다.“여긴 왜 왔어?”서강빈을 본 송해인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의아했다.하지만 서강빈 뒤로 권효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그녀를 보자마자 어젯밤 가게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흥!송해인은 콧방귀를 끼더니 고개를 돌리고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지금 몇 시인데 두 사람이 같이 나타나다니.그리고 권효정은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이 상황은…어젯밤 권효정이 귀가하지 않고 가게에서 밤을 보냈다는 말이다.그 둘의 관계는 이미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을까?역시 남자는 다 여색만 밝히는 인간쓰레기다.“누군가 했더니, 병신 같은 놈이구나. 여기는 뭐 하러 왔어?”양미란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불만스럽게 물었다.송태호는 서강빈 옆에 서있는 권효정한테 반하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쓰레기 같은 서강빈이 이렇게 예쁘고 기품 있는 여자를 어디서 만났는지 궁금했다.송해인과 견주어 봐도 막상막하다.“쓰레기 같은 놈. 능력 있네. 우리 누나랑 이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밖에서 여자나 홀리고 다니
“짝!”송태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권효정은 뺨을 때렸다.찰진 소리가 한의원에 울려 퍼졌다.보는 사람도 통쾌해지는 순간이었다.송태호는 어리둥절해 있더니 눈을 부릅뜨고는 권효정을 쳐다봤다.볼이 따끔따끔했는데 이윽고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잠시 후, 송태호는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두 눈을 크게 떴다.그러고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소리를 질렀다.“지… 지금 감히 날 때렸어?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이 년을 내가 때려죽일 거야!”송태호는 화가 솟구쳐 올랐다.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여자에게 뺨을 맞았다.남자로서 치욕이었다!“그럼 내가 누군지는 알아요?”차분하게 말하면서 머리를 쓸어 넘기는 권효정의 모습은 아주 도도했다.“누구든 상관없어! 썩을 년!”송태호는 권효정의 뺨을 내리치려 했다.“그만!”송해인은 상황이 심각해지자 송태호의 팔을 덥석 잡으며 소리쳤다.송태호는 어안이 벙벙하여 고개를 돌렸다.그러고는 송해인을 바라보며 소리쳤다.“누나, 뭐 하는 거야? 이 천한 년이 나를 때렸다고!”“짝!”결국 송해인은 손을 뿌리치고는 송태호의 뺨을 후려갈기며 차갑게 말했다.“저리 꺼져.”“누나, 왜 때려!”송태호는 멍해졌다.누나가 왜 다른 사람을 돕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닥쳐!”송해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노려보았다.송태호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양미란에게 소리쳤다.“어머니, 누나 좀 어떻게 해봐요. 누나가 저년을 위해 절 때렸어요!”양미란은 분노하더니 뛰쳐나와 송해인을 밀치면서 호통을 쳤다.“해인아! 뭐 하는 거야? 왜 동생까지 때리는 거야? 이 여우 같은 년이 먼저 손찌검한 거 못 봤어?”양미란의 말에 송해인은 화가 치밀었다.“엄마, 이분이 누구신지 알아요?”송해인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양미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러고는 눈을 부릅뜨더니 권효정을 보면서 소리쳤다.“누구겠어? 그냥 여우 같은 계집애 아니야? 무서워할 것 없다. 네가 손을 대지 못하겠으면, 내가 대신
송해인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책상 위에 놓여있는 설련화를 쳐다보았다.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양미란은 웃으면서 다급히 말했다.“그래요. 권효정 씨, 이 설련화는 돌려드릴게요.”송태호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맞… 맞아요. 돌려드려야죠.”권효정은 싱긋 웃더니 카운터로 가서 설련화를 가져오려고 손을 뻗었다.그런데 송해인이 갑자기 새하얀 손으로 케이스를 누르며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권효정 씨, 죄송하지만 이 설련화는 유재혁 씨가 이미 저에게 팔았어요.”바로 그 순간, 송해인은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절대 양보하기 싫었다.권효정한테 지고 싶지 않았다.특히 서강빈 앞에서는 더더욱 지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듣자 권효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스럽게 물었다.“송 대표님, 지금 무슨 말인지 알고 하시는 거죠?”양미란과 송태호는 깜짝 놀랐다.처음에는 돌려주기 싫었지만 지금은 권효정의 정체를 알았으니 뺏을 수 없었다.“딸, 미친 거니? 그건 권효정 씨가 요구한 설련화이잖아. 우리는 다른 가게에 가서 다시 보자.”양미란이 말렸다.송태호는 옆에서 거들었다.“그래, 누나. 이만 가자. 권효정 씨의 원한을 사면 안 돼.”송해인은 엄마와 동생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권효정 씨, 저는 이 설련화가 필요해요. 그리고 유재혁 씨가 이미 저에게 팔기로 약속하셨고요.”권효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하게 말했다.“송 대표님, 이 설련화는 제가 원장님한테 전화해서 예약한 건데요. 지금 이러시는 거, 되게 웃긴 거 알아요?”송해인은 웃기든 말든 상관없었다.“권효정 씨가 원장님한테 예약한 설련화는 원장님께 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 설련화는 유재혁 씨가 저한테 판 거라서요.”송해인은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손으로 상자를 쥐고는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한의원 안은 긴장감이 감돌았다.두 여자의 눈빛은 불을 뿜을 것처럼 무서웠다.서로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이 설련화는 제가 서강빈 씨에게 사준 거예요!”권효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