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안에서 황규성은 정중하게 서강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그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어 보였다.“서...”그러나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도도한 분위기에 우월한 몸매, 엄청난 미모를 가진 여자였다.그가 모르는 여자였다.“죄송하지만 룸을 잘못 찾은 거 아닌가요?”황규성이 정중하게 물었다.도정윤은 웃으면서 앞으로 두 걸음 나서며 공손하게 말했다“안녕하세요, 황 사장님. 전 도정윤이라고 합니다. 전 비오 그룹을 대표해 오늘 황 사장님과 프로젝트 협력에 관해 논의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그 말을 들은 황규성은 표정이 굳더니 다시 자리에 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비오 그룹이요? 저랑 뭘 협력했나요?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죠?”“제겐 저만의 방법이 있습니다.”도정윤은 웃으면서 계속해 말했다.“전에 협력한 적은 없지만 이제 곧 협력하게 될 거라고 전 믿습니다.”황규성은 룸 문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도정윤 씨라고 했죠? 미안하지만 난 오늘 귀한 손님을 대접해야 해서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고 싶으면 저희 회사 매니저를 찾으세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셔야겠습니다.”황규성이 자신과 의논하려고 하지 않자 도정윤은 서류를 황규성의 앞에 내밀면서 머리카락을 넘기며 자신 있게 웃어 보였다.“황 사장님, 3분이면 됩니다. 전 황 사장님께서 틀림없이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황규성은 눈앞의 서류와 도정윤을 번갈아 보았다.도정윤은 확실히 미인이었다.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서류를 넘겨 보았다.미모는 어떤 상황에서든 가산점이 되기 마련이다.도정윤은 그 점을 믿었고 자신의 미모에 자신감이 넘쳤다.“마스크팩이요?”황규성은 미간을 찡그리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도정윤 씨, 저희 회사는 부동산과 엔터테인먼트, 광고 쪽 업무만 합니다. 마스크팩은 저희 회사랑 전혀 관계가 없는데요.”“이만 돌아가시죠. 전 귀한 손님을 대접해야 해서요. 이제 곧 오실 겁니다.”황규성은 다시 한번 그녀를
서강빈?왜 그가 이곳에 있는 걸까?그가 황규성의 귀한 손님일까?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서강빈, 당신이 왜 여기 있어?”도정윤은 일어나면서 놀란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했다.서강빈은 도정윤을 덤덤히 바라보며 웃었다.“무슨 문제 있나요?”이때 도정윤과 서강빈이 아는 사이라는 걸 발견한 황규성은 다급히 분노를 삭이고 의아한 듯 물었다.“서 거장님, 저 사람과 아는 사이인가요?”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지만 친하지는 않습니다.”그 말에 도정윤의 안색이 달라졌다.그러나 그녀는 이내 생각을 바꾸고 대꾸했다.“친하지 않다고? 난 당신 아내 친구야.”도정윤은 다짜고짜 자리에 앉았다.서강빈은 도정윤이 자리에 앉자 안색이 살짝 달라지면서 그녀의 말을 고쳤다.“전처죠.”도정윤은 그를 향해 눈을 흘긴 뒤 차갑게 코웃음 치고 황규성을 향해 웃어 보였다.“황 사장님,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프로젝트, 한 번 고려해 보세요.”황성규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서강빈과 도정윤을 번갈아 보다가 잠깐 고민한 뒤 웃으며 대답했다.“좋습니다.”황규성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서강빈과 도정윤이 아는 사이라는 걸 눈치챘다.비록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그러나 도정윤이 말했다시피 그녀는 서강빈 전처의 친구라고 한다.전처라는 건 과학적으로 고민해 볼 가치가 있었다.다시 합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어쩌면 그들 부부는 싸웠다가 충동적으로 이혼한 걸지도 몰랐다.그래서 황규성은 감히 도박할 수 없었기에 일단 비위를 맞출 생각이었다.혹시라도 앞으로 서강빈과 전처가 다시 살림을 합친다면 오늘 그가 한 일이 앞으로 이득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러면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황 사장님.”도정윤은 웃으면서 일어나 룸을 나섰다.그녀가 룸 안에 들어오고부터 떠나기까지 겨우 3분이 걸렸다.아주 깔끔하고 대범하며 자신감이 있었다.그녀는 서강빈이 있다는 이유로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심지어 서강빈을 자신의 디딤돌로 이용해
‘그게 사기꾼이 아니면 뭐야...’도정윤은 황급히 송해인에게 연락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해인아, 서강빈이 구마 같은 것도 할 줄 알아?”그 말에 송해인은 당황하더니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응. 지난 2년간, 도술에 아주 깊이 빠졌었어. 서강빈의 작은 가게는 사람들 관상을 봐주고 풍수를 봐주는 곳이야. 그리고 난 그 일 때문에 그와 이혼하려고 마음먹었었어. 그것에 빠진 뒤에 완전히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았어. 근데 그건 왜? 뭐 알아냈어?”송해인의 대답을 들은 도정윤의 안색이 점차 차가워졌다. 그녀가 말했다.“알아냈어. 서강빈이 악령을 내쫓는 방법으로 황 사장님 아내분의 불임을 치료했대...”“악령을 내쫓았다고?”송해인은 깜짝 놀랐다.“그 자식, 어떻게 사기를 치고 다닐 수 있어? 혹시라도 발각당하면 황 사장님에게 맞아 죽을 거 아냐?”송해인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해인아, 내가 지금 당장 가서 까발릴까?”도정윤은 물으면서 고개를 돌려 룸 문을 보았다.“아니, 놔둬. 황 사장님이 속은 걸 알게 되면 단단히 혼낼 테니까.”말을 마친 뒤 송해인은 전화를 끊었다.비록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송해인은 사실 살짝 걱정됐다.그러나 신경 쓰기 귀찮았다.“서강빈, 계속 그래 봐. 언제까지 속일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송해인은 씩씩거리며 말했다.예전에 서강빈이 도술 같은 것에 빠져 있던 걸 떠올린 송해인은 기분이 잡쳤다.마침 이세영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오늘 저녁 마스크팩 정식 출시 전 생방송이 있는데 대표님께서 나가셔야 해요. 진행자가 현장에서 인터뷰할 텐데 질문을 몇 가지 할 거예요. 이건 질문 원고라서 봐두세요. 여기 원고대로 대답하시면 돼요.”송해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알겠어.”“참, 진행자가 개인적인 감정 문제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는데 미리 준비해 두세요.”이세용이 웃으며 말했다.송해인은 미간을 살짝 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실검에 올랐던 걸 그녀도 알고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이러한 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괜히 귀찮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서강빈이 망설이자 황규성은 조급해하면서 아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사정했다.“서 거장님, 제발 이번 한 번만 더 도와주십시오. 앞으로 저 황규성과 대박 그룹은 서 거장님의 말에 따르겠습니다.”서강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요. 이번에는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황 사장님께서 해주실 일이 있어요.”황규성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기뻐하며 흥분해서 말했다.“서 거장님, 말씀만 하세요. 제가 불구덩이에 뛰어들어서라도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인 뒤 덤덤히 웃으며 말했다.“황 사장님께서 찾아주실 물건이 있습니다.”“무슨 물건이죠?”황규성이 물었다.“영석이요.”서강빈이 대답했다.황규성은 당황하더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영석이요? 그게 뭐죠? 옥석인가요?”서강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옥석이 아니라 일종의... 약석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색깔은 초록색이고 비취처럼 생겼어요. 하지만 비취보다는 부드럽고 만지면 차가워요. 손에 들면 편안한 기분이 드는데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어요. 제게 요즘 처방이 하나 있거든요. 수명을 늘리는 장생단을 만들어보고 싶어서요.”황규성은 특징을 기억해 두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의아한 듯 물었다.“서 거장님, 세상에 정말 그렇게 신기한 돌이 있나요?”“네.”서강빈은 긍정했다.당시 그의 스승이 그를 위해 영석을 몇 개 구해줬었다.약으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화하여 흡수하면 실력을 늘릴 수도 있었다.주먹만큼 큰 영석은 서강빈이 연기 5단계를 돌파해서 연기 6단계가 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었다.그러나 서강빈은 그것으로 약을 만들고 싶었다.그리고 주먹만큼 큰 영석은 가치가 어마어마했다.만약 황규성이 엄지만큼 큰 영석을 구해온다고 해도 충분했다.“좋습니다. 제가 꼭 서 거장님을 위해 알아보겠습니다.”황규성이 대답했다.서강
그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발걸음이 아주 가벼운 것이 무술이 실력이 꽤 있는 듯했다.그의 뒤에는 제자 4, 5명이 있었는데 다들 팔짱을 끼고 고개를 높이 쳐든 채로 기세등등하게 안으로 들어왔다.황규성은 신경 쓰지 않고 다급히 조홍규를 자리에 앉히며 웃으며 소개했다.“서 거장님, 이분이 바로 제가 말씀드린 무도 고수, 신현 지역 형의문 형의권의 문주 조홍규입니다. 내경대성이라 실력이 좋고 신현 지역 무도계에서 명망도 높습니다. 조홍규 씨 실력은 신현 지역의 무도계에서 다섯 번째입니다.”조홍규는 자리에 앉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거만한 표정으로 황규성의 곁에 앉아있는 서강빈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경멸과 멸시가 가득했다.그가 물었다.“황 사장님, 이분이 바로 제게 말했던 거장이십니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년 같은데요. 이 청년이 죽기를 바라는 겁니까?”조홍규는 가차 없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뒤에 있던 제자들은 조롱 가득한 얼굴로 경멸에 차서 서강빈을 힐끗댔다.황규성은 표정이 멋쩍어졌다.그는 조홍규가 상대방의 체면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대놓고 서강빈을 조롱할 줄은 몰랐다.“스승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나 거장이라고 자기 자신을 칭할 수는 없죠. 오늘은 목숨을 건 싸움이라 혹시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실력이 없으면 괜히 나서지 마요?”한 세자가 비아냥댔다.서강빈은 그를 덤덤히 보며 말했다.“언제부터 어른들이 얘기하는데 아이들이 끼어들었지?”“당신!”제자는 그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내며 서강빈을 노려보면서 손을 쓰려고 했다.“물러나.”조홍규가 차갑게 말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강빈을 바라보며 말했다.“성깔은 있네.”서강빈은 웃으면서 조홍규를 쓱 쳐다보았다. 그는 조홍규가 안중에도 없었다.그가 보기에 조홍규는 비록 실력도 능력도 있었다. 조홍규는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무도 고수임을 알아보지 못할까 봐 기운을 밖으로 내뿜고 있었다.그러나 서강빈이 보기에 그는 가시를 가득 세운 고슴도치처럼 가
황규성은 초조해졌다. 조홍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는 황급히 조홍규를 붙잡았다.“조홍규 씨, 오해하지 마세요. 전 그저 만일을 대비한 겁니다. 게다가 서 거장님은 의술도 뛰어나셔서 잠시 뒤에 싸우다가 다치기라도 하시면 서 거장님이 치료해 주실 수 있어요.”“흥!”조홍규는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황규성을 노려보며 말했다.“황규성 씨, 제가 다칠 것 같습니까?”황규성은 자신이 말을 잘못한 걸 알고 서둘러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제가 말실수를 해군요.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조홍규는 황규성의 말허리를 자르며 차갑게 말했다.“황 사장님, 오늘 황 사장님이 상대해야 할 적수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시는 것 같군요.”“주영찬은 더 이상 10년 전의 주영찬이 아닙니다.”“해외에 있는 제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주영찬은 해외에 꽤 큰 세력을 두고 있다고 하더군요. 특히 그가 창건한 용문은 해외에서 아주 잘 나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영찬 본인은 내경대성에 이르렀다고 해요. 실력 없는 황 사장님의 부하들이나 사기꾼인 저 청년이 그의 상대가 될 것 같습니까?”황규성은 그의 말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심장이 쿵 내려앉아 예를 갖추며 말했다.“조홍규 씨,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서강빈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묵묵히 들었다.이때 조용히 있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였다.그리고 그는 신현 지역 형의권의 무도 고수가 어떤 독특한 견해를 가졌는지 궁금했다.서강빈이 보기에 내경대성의 무인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조홍규는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서강빈을 힐끗 보았다. 그는 서강빈이 가만히 있자 그가 두려워하는 거라고 짐작했다.다시 자리에 앉은 뒤 황규성은 조홍규에게 차를 따라주었고 조홍규는 사양하지 않고 차를 마셔서 목을 축였다. 그가 유유히 말했다.“황 사장님, 주영찬은 일반인도 아니고 평범한 무인도 아닙니다.”“해외에 있는 제 친구가 조사한 실마리에 따르면 주영찬은 해외에서 실력이 대단한 분을 스승으로
“이건 당시 윗분께서 정하신 규칙이에요. 단무영이 감히 우리 땅에 발을 들인다면 당연히 그를 처리할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전 오늘 밤 황 사장님이 무사할 수 있게 대신 주영찬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황규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눈을 번뜩이며 서둘러 일어나더니 조홍규를 향해 예를 갖췄다.“조홍규 씨, 그러면 저희 가족 목숨은 조홍규 씨께 부탁드리겠습니다.”“좋습니다. 주영찬이 오늘 연회에 온다면 저희 신현 지역 형의문의 형의권으로 그를 없애겠습니다!”조홍규가 자신만만하게 크게 웃었다.그렇게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조홍규가 일어나며 말했다.“그러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올라가죠. 옥상에서 원한을 풀자고 하지 않았습니까?”“그래요. 조홍규 씨, 이쪽으로 가시죠.”황규성이 황급히 일어나며 이쪽으로 가자는 듯이 몸짓을 해 보였다.말을 마친 뒤 그들은 곧바로 움직였다.서강빈은 잠깐 생각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따라갔다.그런데 조홍규가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말했다.“서강빈 씨는 괜히 올라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죽을지도 모르니 말이죠. 아래에 남아서 나 대신 차 좀 우려줘요. 내가 돌아왔을 때 차는 여전히 뜨거울 겁니다.”그는 교만하고 거만했으며 서강빈을 경멸했다.서강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가 덤덤히 웃었다.“조홍규 씨가 해결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죠. 조홍규 씨가 해결하지 못하면 제가 나서겠습니다.”그는 황규성이 체면을 잃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 말에 조홍규 일행의 안색이 순식간에 달라졌다.곧이어 룸 안에서 조롱이 들렸다.“하하하하, 우습군요. 서강빈 씨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고 있어요?”“저희 스승님이 나선다면 그 주영찬이라는 자는 반드시 죽을 거예요. 당신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요.”“제 주제도 모르고. 우리를 웃기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죠?”조홍규의 뒤를 따르던 그의 제자들이 비아냥거리며 냉소를 흘렸다.조홍규도 고개를 저으며 같잖다는 얼굴로 말했다.“황규성 씨, 당신이 부른 서강빈
조홍규는 여전히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위화감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계단 쪽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황규성 씨, 왔네요.”말을 마친 뒤 그는 서강빈을 보았다.서강빈은 그보다 먼저 사람이 온 걸 감지했다.진짜 실력이 있는 걸까, 아니면 때려 맞춘 걸까?서강빈은 덤덤히 웃으며 차분한 눈빛으로 유일한 계단 입구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옥상이 조용해졌다.모든 이들이 고개를 들어 계단 입구를 바라보았다.계단 입구에서 분노에 찬 고함과 쿵쾅쿵쾅 주먹질하는 소리, 심지어 칼과 도끼가 휘둘러지는 소리도 들렸다.그러나 아주 잠시 뒤 그 소리는 전부 사라졌다.곧이어 몇 개 그림자가 순식간에 계단 입구에서 날아오더니, 펑펑 소리와 함께 누군가는 바닥에 심하게 부딪혔고 누군가는 테이블과 의자에 부딪혔고 누군가는 수영장에 빠졌다.곧이어 사람들의 귓속에 타다닥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계단이었다.뒤이어 거대한 몸집에 검은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머리는 짧고 얼굴에는 흉터가 있어 인상이 험악했다.그중에서도 눈빛이 가장 매서웠다.엄청난 압박감과 위압감이 느껴졌는데 그가 바로 주영찬이었다.황규성은 주영찬을 보자 눈빛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목도 타고 간지러우며 두 다리는 저도 모르게 덜덜 떨렸다.10년 안 봤다고 주영찬은 기개가 더욱 강해졌다.아주 흉포하고 강압적이었다.십여 미터 떨어져 있어도 사람들은 주영찬에게서 강한 기운을 느꼈다. 그들은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황규성의 많은 부하들은 겁을 먹고 아예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큰일이네. 주영찬은 예전과 달라.”황규성은 속으로 놀라워했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그가 해외에서 시련을 겪고 온 주영찬을 얕본 듯했다.이렇게 무시무시한 분위기와 위압감은 수백 번의 생사를 건 전투를 겪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었다.서강빈은 시선을 살짝 돌려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주영찬을 관찰했다.확실히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