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 효과가 있다고요? 서강빈 씨가 보낸 거예요?”권효정은 깜짝 놀라면서 욕조에서 뛰쳐나왔다. 그녀는 가운도 입지 않은 채 도우미에게 물었다.“서강빈 씨는요?”도우미는 안달복달하는 권효정의 모습에 놀라서 말했다.“이미 가셨어요.”권효정은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병을 보았다.아주 평범한 병이었는데 장아찌를 담는 데 쓰이는 것 같기도 했다.열어보니 새까맣고 구린내도 났다.“이게 미용 효과가 있다고?”권효정은 좀 의심스러웠다.이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강빈에게서 온 문자였다.“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바르고 15분 뒤에 씻어내면 돼요.”짧은 말이었다.권효정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가 말했다.“서강빈 씨, 내게 관심이 많은 것 같네.”말을 마친 뒤 그녀는 우선 거울에 대고 사진을 찍은 뒤 병 안에 들어있는 진흙 같은 것을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차갑고 촉촉한 느낌이 들면서 피부에 순식간에 수분이 꽉 들어차는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15분 뒤 얼굴에 바른 것을 씻어내고 거울을 바라보니 놀랍게도 피부가 더욱 매끈하고 하얗고 탄력 있게 변해 있었다.살짝 건드려보니 촉촉했다.서강빈이 만든 팩은 효과가 매우 좋았다.권효정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윽고 그녀는 다급히 거울에 대고 사진을 찍은 뒤 글을 써서 팩을 쓰기 전과 후를 비교한 뒤 그것을 회사 채팅방과 동창들이 있는 채팅방, 그리고 자신의 SNS에 올렸다.“엄청 좋은 팩을 발견했어요. 방금 써봤는데 효과가 엄청나요.”평소에 게시물을 자주 올리지 않는 권효정이 갑자기 회사 채팅방과 동창들이 있는 채팅방에 홍보성 문구를 올리자 채팅방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말을 보냈다.“세상에, 대표님, 계정 해킹당하셨어요?”“어머나, 우리 미녀 권효정이 광고를 하네... 돈을 얼마나 받은 거야? 설마 너희 회사에서 만든 상품은 아니지...”“사진을 보면 확실히 효과가 좋은 것 같긴 하네요. 안 그래도 요즘 팩이 부족했는데 이거 어느 브랜드 거
송해인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이때 이세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대표님, 서강빈 씨는 아무 의도 없이 회사를 차린 게 아니에요. 이것 보세요. 정빈 마스크팩, 우리 회사에서 곧 출시할 마스크팩과 경쟁하려는 게 분명해요.”송해인은 침묵했다.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이세영은 쫑알거리면서 말했다.“대표님, 더 이상 우유부단해서는 안 돼요. 대표님은 이미 서강빈 씨와 이혼하셨잖아요.”“대표님이 서강빈 씨에게 손을 쓰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서강빈 씨는 이제 저희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려고 하고 있어요. 정빈 마스크팩이라니, 저희 회사 제품과 경쟁할 생각이라니까요. 전 서강빈 씨가 이렇게 날뛰게 내버려둘 수 없어요.”송해인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전면적으로 이 정빈 마스크팩을 공격하는 거예요. 만약 서강빈 씨가 이 제품을 홍보한다면 우리는 가격을 인하하는 거예요. 그래도 안 되면 여론몰이라도 해서 그의 회사를 무너뜨려야 해요.”이세영은 분통해하며 말했다.송해인은 미간을 구기며 차갑게 말했다.“그럴 필요 있어? 겨우 마스크팩일 뿐이잖아. 우리가 괜한 의심 하는 걸 수도 있어. 설마 우리 비오 그룹이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한 마스크팩이 서강빈 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이세영은 당황했다.송해인이 계속해 말했다.“이 일은 네가 상관할 필요 없어. 우리가 개발한 제품은 계획대로 행사 진행하고 홍보한 뒤에 출시하면 돼. 난 우리 회사 제품이 서강빈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송해인이 힘차게 말했다.그녀는 정빈 마스크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에 그녀의 회사에서 개발한 마스크팩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서강빈처럼 작게 소란을 피워봤자 자신에게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이세영이 망설이자 송해인이 곧바로 말했다.“됐고 내 말대로 해. 다음 주 구 선발대회에서 우리 마스크팩을
차를 한 모금 마신 방동진은 어색한 얼굴로 헛기침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역시 서강빈 씨에게는 숨길 수가 없군요. 어제저녁에 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셨죠?”“네.”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였다.방동진이 다급히 말했다.“그러면 약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서강빈은 웃는 얼굴로 서랍 안에서 처방전을 꺼내 방동진에게 건넸다.“위에 적힌 대로 거리 맨 끝에 있는 한약재 가게에 가서 약을 사시면 됩니다.”방동진은 당황하더니 처방을 건네받고 말했다.“제가 올 걸 알고 계셨습니까?”서강빈은 웃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방동진은 그곳에 오래 있지 않고 진료비를 지급한 뒤 자리를 떴다.그는 떠나기 전 말했다.“참, 서강빈 씨. 제가 미리 얘기해 드리자면, 다음 주 구 대회는 총 7경기로 나눠서 매 경기 순위에 따라 포인트를 적립하고 꼴찌가 탈락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마지막에는 7번의 경기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10명 만이 다음 라운드인 구 대회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다섯 명이 송주를 대표해서 시 대회에 나갈 수 있습니다.”“첫 번째 경기 내용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현장에서 멘토들이 처방을 주면 약을 만드는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할 겁니다.”“전 이미 처방을 받았습니다. 먼저 드릴 테니 그동안 연습해 두세요.”말을 마친 뒤 방동진은 품 안에서 처방을 꺼내 재빨리 서강빈에게 건넸다.“서강빈 씨, 이 일은 꼭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절대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문제를 유출한 것이라 결과가 매우 심각할 겁니다.”곧이어 서강빈은 손에 들린 처방을 보며 덤덤히 웃었다.그는 그 처방을 탁자 위에 내려두고 하도운에게 말했다.“도운아, 가서 밥 먹자.”“네.”하도운은 곧바로 대답하며 자기 가게에서 부랴부랴 뛰쳐나와 서강빈의 뒤를 따랐다.그때 마침 벤츠 한 대가 문 앞에 멈춰 섰다.이세영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가게를 쓱 둘러보더니 싸늘하게 말했다.“흥,
이세영은 냉소를 흘린 뒤 액셀을 밟고 그곳을 떠났다.서강빈은 하도운과 식사를 마치고 가게로 돌아오다가 익숙한 차 한 대가 문 앞으로 지나가는 걸 보았다.“이세영?”서강빈은 의심스러웠지만 개의치 않았다.이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송해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송 대표, 무슨 일이야?”서강빈이 건성으로 물었다.송해인은 차가운 목소리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어투로 말했다.“서강빈, 1시 반에 새움 카페에서 만나. 할 얘기가 있어.”새움 카페.그곳에 도착한 서강빈은 창가 쪽 자리에 앉은 송해인을 보았다.그녀는 대표답게 도도한 모습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송해인의 앞에 선 서강빈은 덤덤한 얼굴로 자리에 앉더니 웃으면서 물었다.“한가한가 보네. 나한테 커피를 마시자고 연락하고.”“쓸데없은 얘기는 그만해.”송해인은 서강빈을 힐끗 쳐다본 뒤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효정 유한회사, 그거 어떻게 된 거야?”서강빈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무슨 문제 있어?”송해인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다른 여자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잖아. 내가 어이가 없어서.”말을 마친 뒤 송해인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마음이 쿡쿡 쑤셨다.서강빈은 자조하듯 웃으며 말했다.“송 대표, 나한테 그걸 물을 생각이었던 거야? 미안하지만 난 다른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어.”서강빈이 일어나며 떠나려 하자 송해인은 안색이 창백해져서 소리쳤다.“거기 서!”서강빈의 걸음이 멈췄다.“앉아.”송해인이 명령했다.서강빈은 잠깐 생각하다가 다시 앉았다.송해인은 그를 원망스럽게 노려보며 말했다.“왜? 우리 이제 그 정도 사이가 된 거야? 앉아서 얘기 나누는 것도 그렇게 힘들어?”“할 말 있으면 해.”서강빈이 차갑게 대꾸했다.송해인은 숨을 들이마신 뒤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정빈 마스크팩, 어떻게 된 거야?”“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서강빈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모른 척하지 마. 당신이 발뺌할 줄 알았어.”송해인은 서강
“이번 성분 조합은 우리 회사 연구개발팀에서 수백 번을 실험했는데 아무 문제 없었어. 그런데 문제가 있다고? 그러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말해 봐.”서강빈은 미간을 구기고 말했다.“소수의 사람은 피부가 가렵고 빨간 두드러기가 날 거야.”“우습네, 정말 우스워!”송해인은 웃음을 터뜨리며 비아냥거렸다.“서강빈, 당신이 말해 봐. 시중에 있는 마스크팩 중에서 부작용이 전혀 없는 마스크팩이 어디 있어? 지금 나 겁주려는 거야?”그 말을 들은 서강빈은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눈썹을 치켜올렸다.“겁주는 게 아니야. 그냥 귀띔해 주는 거야.”“당신의 귀띔 같은 건 필요 없어. 우리 제품에는 문제없어.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알아. 당신은 비오 그룹이 출시한 제품이 시장을 휩쓰는 걸 보고 있기만 하면 돼.”송해인은 차갑게 말한 뒤 문을 열고 카페를 떠났다.서강빈은 허탈했다.그는 잠시 앉았다가 자리를 떴다.송해인은 회사로 돌아온 뒤 곧바로 이세영을 불러 물었다.“우리 마스크팩 출시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이틀 남았어요.”이세영이 대답했다.송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더 많이 홍보해. 이번에 우리 비오 그룹은 뷰티 업계의 다크호스가 될 거야. 난 그가 평생 이런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걸 보여줄 거야.”이세영은 곧바로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고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혹시 서강빈 씨 말씀이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구멍가게 같은 작은 회사를 어떻게 우리 그룹과 비교하겠어요?”...오후가 되자 서강빈은 가게로 돌아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권효정이 제집 드나들듯 뒷짐을 지고 가게에 들어서면서 웃으며 물었다. “서강빈 씨, 오후에 시간 있어요?”서강빈은 빨간 펜으로 부적을 그리면서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대답했다.“없어요.”권효정은 입을 비죽이더니 그에게 다가가서 팔을 잡으면서 말했다.“없으면 안 돼요. 청성 펜션에 서강빈 씨 집 사뒀단 말이에요. 우리 같이 가서 봐요.”말을 마친 뒤 서강빈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권효정은 그
곧 권효정이 차를 운전하여 서강빈을 데리고 개화 시장의 고동 거리로 향했다..서강빈은 순간 눈앞에 펼쳐진 고동 거리의 떠들썩한 광경에 매료되었다.사람들이 아주 많았다.거리 양옆에는 골동품점이 늘어서 있었고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은 모두 싼 값에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이거나 관광객들이었다.거리에는 노점상들이 바닥에 천을 깔고 그 위에 여러 가지 골동품들을 진열해 놓고 팔고 있었다.권효정은 이런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든 건지 두리번거리면서 서강빈에게 소개했다.“서강빈 씨, 이곳은 천주의 반가원과 비슷해요. 하지만 반가원보다 훨씬 더 커요.”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몇 번 훑어보았는데 노점상들이 파는 것 중에 진품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못된 상인들이 관광객들을 속이려고 파는 것들이었다.서강빈은 많은 관광객이 가짜를 몇 개 사서 그것을 보물처럼 여기면서 기뻐하며 떠나는 것을 보았다.잠시 둘러보던 서강빈은 자신이 필요한 약로를 찾기 시작했다.이내 서강빈은 한 노점상 앞에 멈춰 섰다.까만 피부를 가진 노점상은 서강빈이 멈춰 서자 곧바로 물건을 팔 수 있다는 생각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웃는 얼굴을 한 그는 아주 정직해 보였다. 그가 소개했다.“물건 보시려고요? 여기 좋은 것들 많아요. 다 저희 집 뒤에 있는 큰 무덤에서 파낸 거예요. 무조건 진품입니다.”서강빈은 대충 훑어보았다. 얼마 되지 않는 작은 크기의 노점 위에는 수십 개의 물건들이 흩어져 놓여 있었는데 아주 낡고 흙도 묻어 있어서 정말 방금 땅에서 파낸 것 같았다.심지어 몇 개의 청동기는 녹이 슬기도 했다.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진짜 청동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마음대로 고르세요.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골라요. 저희 집에 중병에 걸린 노모님이 계시거든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 보물들을 팔지 않았을 거예요.”까만 피부를 가진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서강빈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몸을 웅크리고 앉아 이것저것 보면서 가격을 물었다.까만 피부를 가진 노점상은 참을
서강빈은 조롱하듯 두 번 웃더니 약로를 노점상에게 돌려주더니 고개를 돌리고 떠나려 했다.서강빈이 가려 하자 노점상이 다급히 그를 불렀다.“잠깐만요, 정말 살 거예요?”서강빈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전 약로를 사서 집에 돌아가 약을 달일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4,000만 원이라니, 너무 비싸요. 400만 원이면 몰라도.”말을 마친 뒤 서강빈은 일부러 걸음을 늦췄다.노점상은 그 말을 듣더니 미간을 구기고 결심한 듯 그를 불렀다.“400만 원에 드릴게요. 더 싸게 드릴 수는 없어요. 정말 살 생각이라면 가져가세요.”서강빈은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좋아요.”권효정은 그 말을 듣고 다급히 물었다.“서강빈 씨, 정말 사려고요? 이 약로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데요. 게다가 더러워요. 정말 약로가 필요하다면 제가 사람을 찾아서 좋은 걸로 하나 드릴게요.”“가만히 있어요. 내게 생각이 있으니까.”서강빈이 작게 귀띔했다.결국 권효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서강빈은 곧 돈을 냈고 노점상은 내심 기뻐하면서도 겉으로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집에 갑자기 돈이 필요하지만 않았어도 400만 원에 팔지는 않았을 텐데. 이거 정말 좋은 물건이에요.”노점상은 말하면서 정말로 눈물을 흘렸다.서강빈은 옅은 미소를 띠면서 약로를 챙겨 떠났다.그러나 갑자기 맑으면서도 거만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잠깐만요, 그 약로 내가 사겠어요. 400만 원이라고요? 현금 드릴게요.”고개를 돌린 서강빈은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다니는 아름다운 차림의 소녀를 보았다.소녀는 기껏해야 18, 19살로 보였다. 그녀는 이목구비가 정교했고 얼굴에는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으며, 명품을 몸에 두른 걸로 보아 부잣집 딸인 듯했다.그리고 그녀의 옆에 있는 경호원들은 표정이 험악했다.그들이 출현하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길을 내줬다.서강빈은 미간을 살짝 구기면서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미안하지만 이 약로는 내가 먼저 봐뒀는데. 그리고 이미 돈도 냈고.”
“당신!”공인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원하는 건 모두 손에 넣었고 지금까지 그녀의 앞에서 대놓고 그녀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빌어먹을 자식!’“굳이 나랑 싸우겠다는 거지?”공인아는 음산한 얼굴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누군지 좀 알아봐야지 않겠어요? 이 고동 거리는 물론이고 송주 전체를 아울러봐도 내가 원하는 데 얻지 못한 물건은 없었다고! 오늘 그 약로를 주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거만하고 난폭하며 제멋대로인 그녀의 성격이 여지없이 드러났다.서강빈은 공인아를 훑어보며 차갑게 말했다.“그래? 그러면 어디 한 번 해보시지.”공인아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그녀가 호통을 쳤다.“우리 할아버지 공명진이야.”“내가 말했을 텐데. 네 할아버지가 와도 소용없다고.”공인아는 분통이 터져서 발을 쿵쿵 굴렀다. 남자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난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작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빼앗아!”그 순간 두 경호원이 서강빈을 둘러쌌다.주위에 있던 노점상들과 행인들은 안색이 삽시에 달라지며 다급히 몸을 사렸다.두 경호원은 험악한 얼굴로 다가왔고 그중 한 명이 권효정을 붙잡았다.서강빈은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그 경호원을 걷어찼다.쿵 소리와 함께 복부를 차인 경호원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그는 배를 끌어안고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다른 경호원은 그 모습을 보고 허리춤에서 전류가 흐르는 몽둥이를 빼 들어 서강빈에게 매섭게 달려들었다.“아, 서강빈 씨, 조심해요!”권효정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그러나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서강빈은 잽싸게 몽둥이를 피함과 동시에 상대방의 손목을 잡고 힘을 살짝 주었다.빠각 소리와 함께 몽둥이를 들고 있던 경호원은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손목이 부러졌다. 그는 심한 통증에 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주위에 있던 관광객들과 노점상들은 그 상황을 보고 모두 경악했다.서강빈은 실력이 아주 뛰어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