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지나지 않아 윤설아의 사무실 문이 다시 열렸고, 이번에는 노형원이 들어왔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탁자 위에 놓인 아직 치우지 않은 컵 두 개를 보고는 말을 꺼냈다."동생이 또 일러바치러 온 거야?""항상 그런 식이지 뭐, 걔는 이미 죽었어!"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다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니면 네가 죽거나.""하하하……"노형원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고 웃으며 말했다."너희 집 영감님이 그를 애지중지하시니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죽는 일은 더더욱 없을 거고……""됐어, 진지한 얘기 좀 해! 소겸이가 국제적으로 최고의 조향사를 부르겠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그녀는 정색을 하며 1초 만에 본론으로 돌아갔다. "넌 윤소겸이 정말로 최고의 조향사를 초대해서, 또 최고의 향수를 만들고 성과를 내서 네 자리를 빼앗을까 봐 두렵지 않은 거야?"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자를 당겨 맞은편 자리에 앉았고, 두 다리를 아무렇게나 꼬고는 이어서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느릿느릿 한 개비를 뽑아 불을 붙였다. 윤설아는 그의 동작을 막지 않고 무심코 말했다."네가 있는데 내가 그걸 걱정해야 해? 소겸이한테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고 얘기했어! 국제 최고의 조향사가 어디 그렇게 쉽게 초청할 수 있겠어, 예산 면에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설령 예산이 있다고 해도 초청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거잖아. 이 점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아?" "걔가 친구를 통해서 초청을 한다고 했지만, 국제 최고의 조향사들은 정말 많지 않고 가짜도 판을 치고 있는데 말이야. 전에 네 회사에서 일하던 그 사람 이름이……로젠이었나? 만약 나중에 프랑스에……"그녀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노형원의 안색이 변한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일은 네가 잘 처리하리라 믿어! 지금 윤소겸을 높이 추켜세우는 만큼 나중에는 그만큼 더 심하게 추락하겠지."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보 같은 동생은 그녀의 위협 범위 안에 전혀
"아직 모든 게 완전히 결정되지 않았으니 그렇게 의기소침해하지 마."노형원은 고개를 흔들고 손을 들어 담뱃재를 털었다."차성호가 혼자 강산을 차지하려 온 게 아니라는 걸 잊지 마.""그가 데려온 소위 고무세가의 사람들을 말하는가?""그 사람이 데려온 소위 고대 무술 가문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윤설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찬물을 끼얹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들어, 고대 무술 가문은 너무 과하게 전해졌어.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실제로 그들이 나서는 걸 본 적이 없고, 그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본 적도 없어. 내가 말참견한다고 생각하지 마, 너는 한소은이랑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걸 본 적이 있기는 해?""......""그러니까, 옛날 고대 무술 가문은 정말로 대단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잊지 마, 그 사람들의 피와 살이 총포보다 더 강할 수 있을까? 만약 정말 전설처럼 대단하다면, 왜 차성호는 아직도 손을 안 쓴 거지? 경찰이 개입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을까? 내가 보기엔……허세에 불과해!" 원래 그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일이 잘 풀리면 당연히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고대 무술 가문이 정말 그렇게 대단하든 아니든, 그녀와 별 상관이 없었고 어쨌든 그녀는 장사꾼이기에 그녀의 목표는 먼저 윤 씨 집안을 점령한 다음, 강성은 물론 전국의 시장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노형원은 아직도 차성호가 데려온 이른바 "고대 무술 가문" 사람을 들먹이고 있으니, 그녀는 찬물을 끼얹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역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게 좋다. 하지만 노형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의 생각을 묵인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확실히 한소은의 대단함을 본 적이 있다.그때의 포위 기습에서 그녀는 혼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 그는 그녀에 대해 한층 거리낌이 생겼다. 고대 무술 가문
USB를 챙겨서 돌아온 노형원은 반복적으로 재생했다.음성 파일을 통해 차성호와 그가 만나던 날 한소은이 현장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게다가 그녀는 그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만 바보처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노형원은 갑자기 등 뒤에 식은땀이 났다.자신은 어두운 곳에 숨어 있고 한소은은 밝은 곳에 있어서 자신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그의 뒤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이거 참… 조심해야겠군.’그래도 그나마 안심이 되는 건, 한소은이 그와 차성호의 거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차씨 어르신의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파일을 반복해서 재생하던 노형원은 갑자기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한소은은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차성호를 ‘중독’ 상태로 만든 걸까?영상이 없는 음성 파일이었기에 소리를 듣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차성호의 반응을 보면 중독됬거나 한소은의 함정에 빠진 것이 틀림없었다. 한소은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조향 과정에서 언제든지 아무도 모르게 독극물을 집어넣을 수 있다고 했다.그게 사실이라면 그녀는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노형원 자신은 조향사가 아니지만 이 업계에서 오랜 시간 몸담은 사람이었고 아는 조향사가 한소은뿐이 아니었다. 그도 자주 실험실에 탐방을 갔지만 조향 과정에 무색무취의 독극물을 넣어 냄새만 맡으면 중독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이게 과연 사실일까?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하지만 가능성이 있든 없든, 잘만 이용하면 그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조향사가 마음만 먹으면 독극물을 넣은 향수를 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 세간은 충격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한소은을 위험인물로 몰아갈 것이고 그에게는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이 사실이 가짜라고 해도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성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앞으로 아무도 그녀가 만든 향수를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밤새 고민한 노형원은 자
사실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해결하기엔 꽤 골치 아픈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을 지체하지도 않았을 터.“경찰 조사를 받은 거, 차씨 가문 이미지에 타격이 좀 있을 거야.”한소은은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그 어떤 것도 할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단호한 대답이었다.일을 크게 만들면 회사 이미지에 타격이 크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는 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입장이었다.말수가 적고 표현에 서툰 차성재였기에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안에 고요가 다시 찾아왔다.차는 어느새 저택에 도착했다. 며칠간의 풍파를 겪으면서 집안 분위기가 많이 어수선했다. 어딘가 모를 음침한 분위기가 저택을 둘러싸고 있었다.“뭔가 이상해!”이상함을 느낀 한소은은 경계 태세를 취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주변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저택이 평소에도 조용하고 제자들도 각자 조용히 지냈지만 오늘따라 어딘가 모를 불쾌감이 느껴졌다. 무공을 수련한 사람들의 예민한 촉이라고 할까.주변에 적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그녀가 느낀 점을 차성재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담담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때, 바람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그의 뒤쪽에서 달려들었다.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었다. 둘은 차성재와 한소은의 뒤에서 그들을 기습했다.아주 신속한 동작이었지만 차성재와 한소은에게는 느리게만 느껴졌다. 두 사람은 가볍게 적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에 돌입했다.차성재는 가볍게 몸을 날려 적의 뒤로 가서 손으로 상대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그러고는 상대의 팔목을 비틀어 제압하고 차갑게 물었다.“너희 누구야!”두 사람의 앞에 무릎을 꿇은 기습자들은 말이 없었다. 차성재는 한소은과 눈빛을 교환하고 동시에 손을 들어 둘을 기절시켰다.하지만 주변의 압박감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무거워지고 있었다.짝짝짝!어딘가에서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안에서 차성호가
차성호가 손짓을 하자 주변에 잠복하고 있던 그의 부하들이 우르르 뛰쳐나와 차성재와 한소은을 포위했다.한소은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기습을 피한 뒤, 돌려차기로 측면에서 공격해 오는 자의 배를 걷어찼다. 그러고는 가볍게 주먹을 휘둘러 후방에 있는 적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녀의 주변에는 벌써 세네 명의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고개를 돌려 보니 차성재도 놈들과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더 많은 적들이 몰려오고 있었다.한소은에 비하면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자들이었지만 차씨 가문 제자들과 비하면 꽤 수준 높은 실력자들이었다. 무공의 수련도가 높은 건 아니지만 모두가 두 사람을 죽일 각오로 덤벼들고 있었다.차씨 가문은 대대로 무술을 연마했지만 무인의 덕을 우선시했기에 권법과 수련의 근본은 방어와 반격이 위주였다. 하지만 그들을 공격하는 자들은 하나하나가 잔인했으며 약점만 골라서 공격했다. 이런 살벌한 기세는 한소은도 처음이었다.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 옆에서 무공을 수련했지만 접촉한 사람이라고는 차씨 가문 제자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평화주의 사회에서 그녀가 진짜 무술 실력으로 누군가를 제압할 일은 거의 없었다.저번에 노형원의 기습이 그녀에게는 첫 번째 반격이었다.적 몇 명을 때려눕힌 그녀는 차성재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역시 방어와 격퇴를 위주로 하다 보니 아직은 별 위험이 없어 보였지만 눈에 띄게 지쳐 있었다.‘이대로는 가망이 없어!’만약 이들을 제대로 쓰러뜨리지 않으면 이 싸움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체력적으로 불리해진다!결심을 굳힌 한소은은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지 않고 손으로 받아냈다. 상대가 중심을 못잡고 비틀거리는 사이, 한소은은 기를 운용하여 상대의 팔목을 꺾어버렸다.우드득!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상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한소은은 봐주지 않고 그의 팔을 끝까지 비틀어 제압한 뒤, 발을 들어 그의 아킬레스건을 힘껏 걷어찼다. 또 한번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상대가
차성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촌 동생이 조금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너….”차성호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무시무시한 실력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그는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빨리 저들을 때려눕혀!”한소은은 등 뒤에서 날카로운 바람이 느껴졌다. 뾰족한 것이 그녀의 등쪽에서 날아오고 있었다.“소은아!”차성재가 비명을 지르자 그녀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는 살짝 옆으로 피하고 몸을 비틀어 상대에게 다리를 날렸다. 상대도 민첩하게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차성호 당신 도대체!”차성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누군가가 그의 등 뒤에서 다가왔다. 대화를 나눌 사이도 없이 또 한차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차성재와 한소은 두 사람 다 여유롭게 싸움에 응하고 있었지만 처음에 비해 많이 지쳐 있었다. 나중에 가입한 두 명의 적은 조금 전 보았던 상대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한소은은 정신을 집중해서 싸움에 응했다. 그녀의 상대는 상당히 흉폭하게 생긴 남자였다.얼굴에는 긴 수염이 자라고 있었고 체격은 건장했다. 한소은의 발차기를 정통으로 맞고도 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마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차성재의 상대는 하얀 피부에 연약해 보이는 놈이었는데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잔인하게 약점만 골라서 공격하고 있었다. 차성재마저 상대하기 버거운 놈이라는 것이 느껴졌다.아마 그들의 예상이 맞다면 이 두놈은 무술계에서도 유명한 “음양듀오”였다.현대사회에서 무술 가문은 얼핏 보기에 몰락한 것처럼 보였고 이런 가문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실은 몰락한 게 아니라 사라진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술계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번성기를 누리고 있었다.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다. 차씨 가문은 제자를 받고 몸을 건강히 하려는 목적으로 무예를 수련하면서 상계에서 영향력을 넓혔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무예를 포기하고 몰락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단지 현실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상계로
그의 고함에 음양듀오의 동작이 더욱 빠르고 맹렬해졌다.예상치 못했던 두 사람의 출현에 차성재도 당황했지만 온 정신을 집중해서 싸움에 응했다. 하지만 아무리 싸워도 승부가 나지를 않았다. 차성호의 고함에 차성재가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진 사이, 상대의 발이 그의 얼굴 앞까지 날아왔다. 다급히 발을 피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가슴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더니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윽….”차성재가 신음을 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그가 다친 것을 확인한 차성호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죽이지는 말고 산 채로 제압해!”그가 돌아온 목적은 차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되찾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그래도 피를 나눈 가족이었고 그들 중 누구를 죽여도 그에게 득이 될 게 없었다. 차성호가 원하는 건 후대들이 자신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었다.“성재야, 소은아, 끝까지 버텨봐야 너희한테 득이 될 게 없어. 그러니까 삼촌 말만 들으면 좋았잖아? 삼촌이 가주가 되어도 너희를 가문에서 내쫓지는 않을 거야. 성재 네가 다치면 나도 마음이 안 좋다고!”말을 마친 그는 의자를 끌어다가 앉아서 싸움을 관람했다.처음에는 확신이 없었는데 차성재가 다쳐서 이제 이길 자신이 있었다.‘음양듀오를 데려오길 잘했어. 나머지 놈들로 백날 싸워봐야 저 둘을 못 이긴다니까!’그는 느긋한 표정으로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았다.“날도 늦었는데 빨리 결정해. 너희가 내가 가주가 되는 것을 반대만 하지 않고 앞으로 내 말에 따르겠다고 약속하면 이 싸움을 끝나게 해줄게.”차성재는 다친 몸으로도 굴복하지 않고 싸움을 이어갔다. 그는 차성호의 제안을 차갑게 거절했다.“꿈 깨시죠!”“쯧쯧… 어른 말을 이렇게 안 들어서야… 그럼 어쩔 수 없구나. 고생 좀 할 거야!”차성호는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야비한 미소를 지었다.쾅!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차성재와 미소년의 결투도
자신의 내공으로 공격을 막아내면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 그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아파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한편, 차성재는 다가가서 도와주고 싶었지만 한소은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가 끼어들어서 도움을 줄 필요가 전혀 없었다.언제 실력이 이렇게 일취월장한 건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바짝 긴장한 눈으로 싸움을 바라보는 차성호가 보였다. 그도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의식했는지 의기양양한 미소는 사라지고 의자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고작 저런 어린 계집애 하나 못 잡아? 그 실력으로 어떻게 돌아가서 가주 얼굴을 보려고!”조급해진 차성호가 음양듀오를 닦달하기 시작했다.차성재는 숨을 가다듬고 차성호에게 손을 뻗었다.“성… 성재야!”차성호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뒤로 물러서다가 의자에 다리가 걸려 뒤로 몸이 쏠렸다.차성재는 쓰러지는 차성호의 팔을 잡아 힘껏 당겼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당장 멈추라고 하세요!”“네가 감히! 나 네 삼촌이야!”당황한 차성호가 소리를 빽 질렀다.“삼촌?”차성재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얼음장같이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한데 나한테 삼촌은 없어!”“성재 너….”“당장 저것들 보고 멈추라고 해. 모가지 부러뜨리기 전에!”말을 마친 차성재는 손에 힘을 주었다.차성호는 숨이 막혀서 허덕였다. 차성재는 그의 경부 동맥 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정말 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계속 고집을 부리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차성호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멈춰!”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는 자는 없었다. 미소년 백영의 동작은 더욱 빠르고 잔인해졌다. 다쳐서 바닥에 쓰러졌던 흑막까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투에 끼어들었다.한소은이 둘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멈추라고! 내 말 안 들려? 그만하라고!”조급해진 차성호가 고래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