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내공으로 공격을 막아내면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 그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아파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한편, 차성재는 다가가서 도와주고 싶었지만 한소은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가 끼어들어서 도움을 줄 필요가 전혀 없었다.언제 실력이 이렇게 일취월장한 건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바짝 긴장한 눈으로 싸움을 바라보는 차성호가 보였다. 그도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의식했는지 의기양양한 미소는 사라지고 의자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고작 저런 어린 계집애 하나 못 잡아? 그 실력으로 어떻게 돌아가서 가주 얼굴을 보려고!”조급해진 차성호가 음양듀오를 닦달하기 시작했다.차성재는 숨을 가다듬고 차성호에게 손을 뻗었다.“성… 성재야!”차성호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뒤로 물러서다가 의자에 다리가 걸려 뒤로 몸이 쏠렸다.차성재는 쓰러지는 차성호의 팔을 잡아 힘껏 당겼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당장 멈추라고 하세요!”“네가 감히! 나 네 삼촌이야!”당황한 차성호가 소리를 빽 질렀다.“삼촌?”차성재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얼음장같이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한데 나한테 삼촌은 없어!”“성재 너….”“당장 저것들 보고 멈추라고 해. 모가지 부러뜨리기 전에!”말을 마친 차성재는 손에 힘을 주었다.차성호는 숨이 막혀서 허덕였다. 차성재는 그의 경부 동맥 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정말 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계속 고집을 부리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차성호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멈춰!”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는 자는 없었다. 미소년 백영의 동작은 더욱 빠르고 잔인해졌다. 다쳐서 바닥에 쓰러졌던 흑막까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투에 끼어들었다.한소은이 둘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멈추라고! 내 말 안 들려? 그만하라고!”조급해진 차성호가 고래고래
차성재도 이 상황을 의식했는지 손에 힘을 풀었다. 지금 차성호를 인질로 잡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차성호의 목숨은 저들에게 위협이 아니었다. 차성호에게는 저들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표창을 보고 놀란 차성호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망연자실했다.차성재가 손을 풀자 그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에 충격적인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조금 전 표창이 제대로 박혔으면 그는 진작 승천했을 것이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표창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목을 향해 날아들던 그 아찔한 광경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하지만 소리를 낼 용기가 없어서 결투가 벌어지는 쪽으로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세 사람은 여전히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소은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이 여유롭게 응대하고 있었다. 10분이 지나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음양듀오가 바닥에 쓰러졌다. 아까 이미 큰 부상을 입은 흑막은 바닥에 쓰러진 채 꿈쩍도 하지 못했다.“당신… 도대체 누구야?”백영이 앙칼진 목소리로 물었다.“가서 너희들 가주한테 전해. 욕심부리지 말고 처신 잘하라고!”한소은이 냉랭하게 말했다.둘은 차성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서로를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녀를 힐끗 쏘아보고는 몸을 날려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적이 사라지자 한소은은 느긋하게 차성호의 앞으로 다가갔다.“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너….”차성호는 그녀가 음양듀오를 때려눕히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항상 여리기만 하던 어린 계집애가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걸까?“너 괜찮아?”차성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피곤하기는 했지만 어디 다치지도 않았고 불편한 느낌도 없었다. 몸에서 기가 들끓고 있었지만 아직 통제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 무시하기로 했다.차성재 역시 그녀의 실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아닌지 맞는지 대답만 하세요!”한소은은 손을 들어 그의 멱살을 잡고 그를 죽일 듯이 쏘아보며 다시 물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차성재는 그녀의 무지막지한 힘에 놀랐다. 그가 뭐라고 하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고개를 돌려 보니 아까 싸우면서 떨어진 그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그는 다가가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이 조금 깨지기는 했지만 쓸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잠시 상대의 말을 듣고 있던 차성재가 복잡한 표정으로 한소은을 바라보았다.차성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참 오랜 시간을 공들여 세운 계획이었는데 어린 조카 손에 모든 일을 망칠 줄은 몰랐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너를….”그는 말끝을 흐리며 격렬하게 기침했다.그리고 그때, 통화를 마친 차성재가 한소은에게 다가왔다.“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어. 부검 결과가 나왔대.”한소은은 숨을 죽이고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심정을 알기에, 차성재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최종 부검 결과는 할아버지가 지병에 의한 사망으로 나왔어. 자연사래. 타살이 아니라.”한소은은 물론이고 차성호마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자연사였어? 자연사? 하….”차성호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쓰러졌다.충격에 빠진 한소은은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나도 믿기 힘들지만 이게 사실이야. 부검 결과서는 언제든 가서 확인해도 좋대. 너….”차성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차성호가 한소은이 어르신을 독살했다고 몰아가고 부검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그들은 이것이 누군가가 짠 치밀한 음해라고 단정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믿기 힘들고 수상했지만 그들은 모두 범인을 속으로 단정 짓고 최종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타살이 아니라니. 독에 당한 게 아니라 자연사였다니! 그럼 이제껏 했던 일은 뭐가 되는 걸까? 헛웃음이 나왔다.“하하하… 자연사… 하….”차성호는 바닥을 뒹굴며 미친
한소은은 호텔로 돌아갔다.최근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저택에서 잠을 자기 불편했다. 저택 곳곳에 그녀의 어린 시절 흔적들과 외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힘들었다.한때 그녀는 자신과 외할아버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돌아가신 뒤에야 자신이 그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게 되었다.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면서 그녀는 항상 그의 엄격함에 불만을 가졌었다. 성인이 된 뒤에야 그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만약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수없이 많이 다치고 아팠을 것이다.그런데 이제 외할아버지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다.그래서 외할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누구보다 진심으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게 전부 헛수고였고 결국 자연사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복수의 기회마저 사라진 것이다.“아직도 안 자요?”샤워를 마치고 나온 김서진이 침대에서 멍때리고 있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물었다.그녀는 두 팔로 다리를 감싸고 턱을 무릎에 괴고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김서진은 그런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녀를 알고 지금까지 이토록 힘없는 모습은 오늘이 처음이었다.노형원과 사이가 깨지고 오갈 데 없이 그에게 거래를 제안하러 왔을 때도 이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이 아니었다.김서진은 타올로 머리를 대충 말리고 침대에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사실 소은 씨에게도 차씨 가문에도 가장 좋은 결과잖아요.”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그도 무척 당황스러웠다.오랜 시간 조사하면서 범인을 비난하고 미워했는데 이런 결과일 줄이야.지금 생각해 보면 차성호는 그냥 어르신의 죽음을 이용해서 권력을 되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들이 부친을 살해한 사건이 아니라서 차씨 어르신에게도 잔인한 결과는 아니었다.한소은도 당연히 이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슬픈 건 어쩔 수 없었다.감정이라는 건 머리처럼 마음대로 통제할
한소은은 자신의 하얗고 가는 팔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중요한 순간에 체내에서 퍼지던 에너지 때문에 그녀도 순간 당황했었다.상황이 하도 긴박해서 다른 사람들은 뭔가 이상한 점을 감지하지 못했지만 그녀 자신은 경과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흑막과 대치할 때 그녀는 별로 우세를 차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흑막이 더 강했다.어릴 때부터 무예를 수련했지만 그건 그냥 호신용이었고 외할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배운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녀도 잘 알지 못했다.성인이 될 때까지 그녀는 사형제들과 차성재하고만 가끔 대결을 했다. 하지만 거의 적당히 서로 주고받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한소은은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대학에 입학한 뒤로는 별로 수련하지도 않았다.최근에 주먹을 들었을 때는 프랑스에서 납치당했을 때였다. 그때도 조금 놀랐는데 아마 위급한 상황에 신체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잠재적인 재능이 또다시 업그레이드된 걸까?“무슨 생각해요?”약을 다 바른 김서진이 멍하니 있는 그녀를 보고 물었다.“성재 오빠가 차성호를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고 있었어요.”혈연관계만 따지면 차성호는 그녀의 외삼촌이자 차성재의 삼촌이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그는 가문에서 내쫓겼고 이렇게 큰 사건을 일으켰으니 쉽게 용서할 수도 없었다.외할아버지도 중독으로 사망한 게 아니니 형사사건으로 처리할 수도 없고 차성호도 법의 심판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돌고 돌아 이는 차씨 가문의 집안일이 되어버렸다. 외부인을 데리고 차씨 가문에 쳐들어와서 가주의 자리를 강탈하려 한 것이니 집안일이라고 하는 게 맞았다.지금 차성재가 그를 잠시 가두었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할까?“차성재 씨라면 아마 차성호를 다시 외국에 내보낼 것 같네요.”잠시 생각하던 김서진이 말했다.“그냥 외국에 쫓아 보낸다고요?”“그것 외에는 딱히 벌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죽일 수도 없고.”김서진이 웃으며 고개를 흔
“내가 이렇게 무서운데, 당신은 절 매일매일 봐도 두렵지 않나요?”그는 일부러 무서운 표정을 짓고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기며 이마를 대고 말했다.그가 일부러 무서운 표정을 짓자 한소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우울한 마음도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았다. “무서울 게 뭐 있어요. 당신이 절 잡아먹기라도 할 건가요?”“안 무섭다고요?” 그는 그녀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무섭지 않아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그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안 먹어본 것도 아니고!”“...”그녀는 입에서는 오그라드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볼은 이미 붉게 물들었다. 그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바로 한입에 잡아먹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그는 솟아오르는 욕망을 억누르고 이마에 입맞춤을 한 뒤 말했다. “때로는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 훨씬 쉽고,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 때가 있어요.”한소은은 그의 말을 듣자 침묵했다.그렇다. 그런 욕심을 가진 차성호를 영원히 소성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한다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할 뿐 영원히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정말 가장 큰 고통이라 할 수 있다.거의 살인과 같은 효과라고 할 수 있다.과연 그는 정말 잔인하다!“좋아요, 요즘 힘들었으니 빨리 쉬고 몸 좀 추스르세요. 외할아버지 잘 모신 후에 강성으로 돌아가요!” 그는 이부자리를 정리한 뒤 그녀를 눕히면서 말했다.“네.”여기 일은 거의 다 정리가 되었고 차 씨 가문은 이미 차성재가 관리하고 있다. 차성호도 더 이상 날뛸 수 없을 것이고 차국동도 이미 기력이 쇠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그녀가 할 일은 더 이상 없다.다만...오늘 그 두 사람을 생각하니 여전히 두려웠다.비록 이번에는 그녀가 승리했지만 그들이 여기서 멈출지 다시 시작할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녀는 ‘음양듀오’라는 말을 들었고 그들이 우 씨 가문에서 활약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이 그들 자의에 의해서 벌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들었는데 네가 잘 하고 있다고 들었다.” 서재에서는 윤중성의 만족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가 애써 데려온 게 헛되지 않은 것 같구나.”문 밖에 있던 윤설아는 걸음을 멈추고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였고 윤중성도 그녀가 밖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아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아빠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윤소겸의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제가 경영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만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성과를 내보이겠어요. 회사에 있는 노인네들의 눈에 들 수 있도록 할게요.”윤설아는 그의 말을 듣고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그가 말하는 우수한 성적은 자랑할 만한 성적도 아니었다. 그의 학력은 아버지가 외국에 돈을 발랐을 뿐이지 그의 성적과는 관련이 없었다. 게다가 실제 경영은 매우 복잡했고 하루 이틀 만에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게다가 윤중성은 편애가 심하고 자기 아들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쳐서 그의 말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인다. 아예 판단력이 흐려져있다.그래도 상관없다. 이렇게 동생이 바보 같을수록 그녀가 더 잘 통제할 수 있다. 장기판의 말에 불과하다.윤소겸은 이어 말했다. “그래도 아빠 저 조금은 걱정돼요. 아시다시피 회사의 그 노인네들은 모두 큰아버지 편이에요. 모두 고지식하고 제가 두 번이나 떠봤는데 제가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제 편에 서줄 것 같지 않아요. 게다가 큰아버지에게도 아들이 한 명 있는데 회사가 저희 것이 될 수 있을까요?”그래도 마냥 멍청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자신의 경쟁상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사실 이것은 윤설아의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이쪽은 자신이 잘 대처할 수 있다고 해도 큰아버지 쪽은 통제하기 쉽지 않다. 그녀는 준비를 잘 해놓았고 만약 때가 된다면 그녀가 준비한 수단을 써야 할 수도 있다.그녀가 속으로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방 안에서는 윤중성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지금 큰아버지는 점점 건
“엄마, 언제 왔어?”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닫고 나서야 그녀가 물었다. “얼마 안 됐어.” 요영 여사는 평온하게 말했다. 그녀는 술 진열대로 가서 한 병을 고른 다음 두 개의 잔을 들고 의자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딸에게도 앉으라고 말을 한 뒤 두 잔에 술을 따랐다.윤설아는 자연스럽게 앉아 잔을 든 뒤 가볍게 흔들었다. 그녀는 잔 속에서 붉은 액체가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엄마, 나 그동안 너무 억울한 일들을 겪었어.” 윤설아가 말했다.“억울한 게 너뿐이겠니.” 그녀와 반대로 요영 여사는 단숨에 술을 들이키고 빈 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참을성이 없어서 그렇다. 미안하다.”“엄마, 그렇게 말하지 마!” 윤설아는 그녀의 등을 손바닥으로 치며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아직 상황이 최악이 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말해.”“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 사생아를 집으로 들였잖아!” 그녀는 손가락에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잔을 세게 쥐었다. 그녀는 은퇴하고 집에 돌아온 후 오랫동안 윤 씨 가문을 위해 일했다. 자신의 미모와 수완으로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부잣집 사모님으로서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윤중성은 결코 안정된 사람이 아니었고, 그녀와 지낸지 얼마되지 않아 바깥에서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생아까지 낳아서 왔다.그녀는 줄곧 참았지만 이제는 그 사생아마저 집으로 들여와서 매일매일 그녀를 방해하고 있다.“엄마, 우리 힘을 합치기로 했잖아. 왜 또 화를 참지 못하는 거야.” 윤설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심해. 저 부자는 오래가지 못할 거야.”“난 하루도 보고 싶지 않다. 너도 알잖아. 그 여자가 지금 밖에서 윤 씨 가문의 부인 행세를 하고 있다는걸. 오늘도 밖에서 액세서리 사러 갔다가...”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정말 내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야!”“너도 네 오빠 일에 대해서 알고 있잖아. 걔를 위해서라도, 우리 가문을 위해서라도 나는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