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싫어!”김준은 작은 손을 흔들며 저항했다.사실 김준은 증조 할머니에게 몇 번 간 적이 없다.항상 엄마 아빠와 함께 갔었다. 아직 어렸을 때여서 증조 할머니 댁은 아주 멀어 몇 번 잠들고 깨기를 반복해서야 도착한다는 것만 기억했다.게다가 그곳은 너무 심심하고 재미도 없었다.증조 할머니의 성격상 어린아이를 잘 달래지 못하니, 김준은 점점 더 재미없게 느껴졌고 증조 할머니를 보면 약간 어처구니없다는 느낌도 들었다.아이의 직관적인 감정은 가장 예민하고 간단했다.만약 이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더 이상 주동적으로 친해지기 어렵다.김서진은 어쩔 수 없었다. 김준이 원하지 않았고 자신도 그를 강제로 그곳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더군다나 자세히 생각해 보면, 할머니가 사는 곳은 여기서 좀 멀리 떨어져 있다. 그곳으로 김준을 보내는 건 시간을 지체하는 격이다.“그럼…….”“난 여기 남아서 할아버지를 돌볼 거예요!”김준은 작은 의자에서 뛰어내리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김서진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할아버지를 돌본다고?”“난 할 수 있어요! 엄마가 난 커서 아빠만큼 잘될 거라고 했어요!”그는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한소은이 했던 말을 자세히 회상했다.김서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이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변했고, 이미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원래는 몇 글자밖에 말할 수 없었고 말의 배열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말하는 게 이렇게 유창해 졌다.아이의 성장은 정말 빨랐다. 순간 김서진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우리 준이의 말이 맞아!”그는 웃으며 허리를 굽혀 아들을 품에 안고 그의 뺨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우리 준이는 사내대장부야!”“아빠, 가서 해야 할 일을 하세요!”김준은 한 쌍의 작은 손으로 김서진의 얼굴을 받들고,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말했다.“나는 할아버지와 철수 아저씨를 돌볼 수 있어요!”작은 얼굴과 맑고 의연한 눈을 바라보는 김서진의 마음은 벅찬 감회에 젖
“하지만 지금 상황이 명확하지 않은데 이렇게 섣불리 나간다면 리스크가 엄청나게 클 거야. 만약 밖에 나간다면…….”원철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서진은 그의 말을 끊었다.“밖이 아직도 평안할 거라고 생각해?”원철수은 할 말을 잃었다.“형세는 매일 변하고 있어. 더군다나 어르신도 고독이 확실하지 않다고 했었잖아. 지금은 이것이 바이러스인지 고독인지 알 수 없어. 하지만 만약 나가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곧 더 많은 이름 모를 바이러스가 사회에 유출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더욱 수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아.”김서진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그의 얼굴이 굳어지자 원철수는 그를 붙잡으려다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사실 원철수는 그 신비롭고 악랄한 조직이 한 종류의 바이러스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의 종류와 복잡성이 그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마음속에 잘 알고 있었다.당시 그가 그 실험을 보고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고 김서진은 그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나도 알아. 지금 당신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수하고 있다는 걸. 우리 모두 같은 스트레스를 감수하고 있어.”김서진은 손을 들어 가볍게 원철수의 어깨를 두드렸다.“알았어. 막지 않을게. 하지만 꼭 외부의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기억해야 해.”원철수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바이러스에 대해 그는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다.결국 자신이 바이러스의 발원지였다. 그것이 바이러스든 고독이든, 아니면 그들이 모르는 다른 무엇이든, 발원지는 자신이다. 그건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이런 죄책감과 깊은 자책감은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더 그를 괴롭게 했다.이 조직은 인간을 괴롭히고 고통에 빠뜨리는 법을 정말 잘 안다.신체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준다. 정신적인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백배, 천 배 더 심했다.“나도 알아.”김서진은 원철수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정원에서 진씨 저택까지는 교외에서 점차 시내로 들어가는 과정이었다.김서진은 내내 잠을 자지 않고 바깥 상황을 지켜보았다.교외는 인가가 드문드문 있어서 거의 사람을 볼 수 없었으나, 시내로 들어서자 북적거리기 시작했다.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면 옛날처럼 번화한 것이 전혀 다른 것 같지 않았다.이런 광경은 그를 조금 안심시켰다.하지만 나중에 바이러스가 통제되지 않으면 이 번화가가 곧 죽음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남아시아에 있을 때 엄청난 재난을 겪었고, 바이러스가 닥쳤을 때 얼마나 막아내기 힘들고 무서운지를 잘 알고 있었다.지금은 과거와 같은 시대가 아니다. 대규모 전쟁을 치르더라도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다.하지만 바이러스라는 것이 소리 없이 다가와 어느새 휩쓸고 들어온다.당시 남아시아도 매우 번화했지만, 거의 하룻밤 사이에 도시의 절반이 무너졌다. 처음에는 기침과 열이 났고, 나중에는 호흡이 마비되고 이어서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김서진은 그런 참상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이어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게다가 자신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험을 통해 그는 바이러스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았다.원철수도 당시 발작을 일으켰을 때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고 말했었다.만약 그 실험실에 바이러스가 넘쳐난다면, 지금 보이는 번화한 광경은 모두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것이다.길에서 김서진은 진정기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마음속에는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꺼려지는 것은 헛된 생각이다. 헛된 생각만 하면 큰일이 닥쳐오기 전에 자신이 먼저 혼란스러워진다.차는 곧 진씨 저택에 도착했다. 운전기사는 경적을 울렸고 경비가 김서진이 타고 있는 차를 한 번 쳐다보았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운전기사가 다시 경적을 울리려 할 때, 김서진이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곧장 다가가 물었다.“진 부장, 집에 없습니까?”그러나 경비는 문
방안은 마치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다.김서진은 거실에서 잠깐 서 있었는데 마침 진가연이 위층에서 내려왔다.진가연은 한눈에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살이 많이 빠졌다. 그녀는 검은색 치마를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김서진을 불렀다.“서진 오빠.”“너의 아버지께서…….”“아버지께서는 아직 쉬고 계십니다.”진가연은 손짓을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위층 쪽을 쳐다보았다.김서진은 멍해졌다.“쉬고 계신다고?”‘이 시간에 아직 쉬고 계시다니 정말 좀 이상한데. 이전에는 몸에 중독되어 줄곧 잠들어 있어서 이 핑계로 방문객들을 대처했었는데 지금은 이미 해독되었는데 왜 아직도 쉬고 계시는 거지?’“서진 오빠, 무슨 일로 갑자기 방문하셨습니까?”진가연은 먼저 물었고, 손을 들어 앉으라고 표시했지만, 하인보고 차를 따라오게 하지 않았다. 그다지 열정적이지도 않은 것을 보니 좀 이상한 것 같았다.김서진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 이유를 잘 몰랐다.“가연아,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김서진이 물었다.“아니요!”진가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요즘 아버지께서는 그냥 몸이 좀 허약하셔서 많이 쉬셔야 할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하자면 오빠와 소은 언니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언니랑 오빠가 아니었다면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빨리 해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진가연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홀가분한 척하며 애써 숨기려 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피하였다.김서진은 눈썹을 찡그리며 집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서진 오빠, 무슨 일로 아버지를 찾으십니까? 아버지는 요즘 몸이 많이 허약하셔서 아직 깨어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니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께서 깨어나시면 제가 다시 전할게요.”진가연은 계속 말했다. 그러나 김서진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너희 집 하인이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 그리고 아버지의 경비원도 철수했어?”김서진의 말을 들은 진가연은 고개를 돌려 양쪽을 바라보며 웃
지금 진가연의 반응을 보니 김서진은 자신의 생각을 더욱 확신했다.그가 만약 확실히 알아내지 못한다면, 괜히 온 것이 아니겠는가.“서진 오빠…….”망설이고 긴장하여 진가연의 목소리는 약간 찢어졌고 김서진의 뒤를 쫓아갔다.“하지 마세요…….”“가연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버지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김서진은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엄숙하게 물었다.“나한테 뭐 숨길 게 있어?!”“아니에요…….”진가연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김서진은 그녀를 깊이 한 번 보고 갑자기 위층으로 달려갔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진가연은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서진 오빠…….”진가연은 소리를 지르며 바삐 쫓아갔지만 이미 늦어서 그의 뒤를 바짝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김서진은 곧장 진정기의 침실로 향했다.침실 문이 닫혀 있어서 김서진은 예의든 프라이버시든 그렇게 많은 것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방문은 쉽게 열렸고 안에는 텅 비어 아무도 없었다.김서진은 멍해져서 뒤에서 쫓아온 진가연을 보았다.“아버지는?”“…….”진가연을 상관하지 않고 김서진은 스스로 답을 찾으러 방을 뒤졌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침대도 깨끗했다. 분명히 잤던 것 같지 않았다.그의 모습을 보고 진가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서진 오빠, 찾지 마세요. 아버지 안 계셔요.”“안 계신다고? 어디 가셨는데?”김서진은 자신의 핸드폰을 흔들며 다시 말했다.“내가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으셨어. 지금 어디에 계시는데? 사고 나셨어?”“아니, 아니요.”진가연은 당황한 듯 대답했지만 여전히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었다.“진가연!”김서진은 이렇게 성을 붙여서 진가연을 부른 적은 매우 드물었다. 평소에 예의를 차릴 때는 “가연 씨”라고 불렀고, 사적으로는 직접 이름을 불렀다.김서진은 진가연을 늘 여동생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정말 화가 났다.최근에 그들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었고 특히
“저…….”김서진은 진가연이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고개를 들어 방안을 바라보았다.‘설마 여기까지 CCTV를 설치하지는 않았겠지.’하지만 경험으로 봤을 때 분명 설치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진가연의 반응은 너무 이상했다.눈살을 찌푸리며 그는 가볍게 방문을 잡아당겼다.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는 말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만약 여기가 불편하다면 장소를 바꿔서 말해도 돼. 어떻게 된 일인지 똑똑히 얘기해야 해.”잠시 멈추었다가 김서진은 다시 말했다.“넌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입을 삐죽거리고 진가연은 큰소리로 울고 싶었지만 그래도 참았다.진가연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말했다.“서진 오빠, 우리 장소를 바꿔서 이야기해요.”“그래, 너도 아직 아무것도 못 먹었지. 나도 안 먹었어. 우리 가서 뭐 좀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김서진은 말하면서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진가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진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걱정이 많은 듯 침묵을 지켰다. 김서진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그녀에게 조정의 공간을 주었다.다만, 지금 상황을 봤을 때 확실히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다.‘진정기가 어떻게 실종되었을까? 그리고 만약 정말 실종되었다면, 왜 자신에게 바로 알리지 않고 숨기고 있었을까?’고개를 돌려 진가연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녀는 단지 머리를 창문에 기대고 조용히 밖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서진은 근처의 식당을 선택했다. 여기는 음식이 비교적 독특했다.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이곳은 조용하고 은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에 가장 적합했다. 게다가 이곳은 그의 회사 명의로 되어 있었다.룸을 골라 요리를 내오게 한 후 진가연에게 말하도록 재촉하지 않고 먼저 음식을 좀 먹으라고 하였다.항상 먹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지만 진가연은 지금 확실히 입맛이 조금도 없었다. 진가연은 그냥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고,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망설임 끝에 비
“그러니까, 너희 아버지랑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의 혐의가 제일 크다는 거지.” 김서진은 읊조리며 분석했다. 이 일은 듣기에는 매우 이상한 것 같지만 사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진정기는 이미 그 연구실의 목표였고 그들은 주효영을 통해 진정기에게 독을 먹인 것은 그를 통제하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들의 첫 번째 단계의 목적은 실험 기지를 확보하여 중국의 거점으로 삼은 다음 이성을 잃은 실험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하지만 김서진은 그들이 진정기를 통제하려는 것은 결코 실험 기지를 차지하려는 것뿐이 아니고 그들의 음모는 분명 더욱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누가 아버지랑 만나기로 약속했는지 모르겠어요.”진가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모습을 보면 결코 가장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김서진은 여전히 매우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그렇다면 너는 왜 아버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숨기려 했어? 그리고…… 또 나까지 속이려고 한 거야?”‘만약 당황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일으킬까봐 걱정되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먼저 숨기기로 선택했다면 자신은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마치 진정기가 중독되었을 때 그녀는 스스로 짊어진 것처럼 말이다.’‘그런데 왜 자신한테도 숨기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진가연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죄송해요.”진가연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어제저녁에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무슨 전화?”“저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은 변성기 같은 것으로 아버지가 자기 손에 있다고 말했어요. 만약 아버지가 무사하기를 원한다면…….”잠시 멈추었다가 진가연은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질리도록 컵을 더욱 힘차에 쥐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아버지가 무사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이 비밀을 지켜야 하고
“왜냐하면…….”진가연은 머뭇거리며 김서진을 보았다. 여전히 약간 망설이는 것 같았다.지금 이 순간까지 그녀가 이렇게 망설이는 것을 보니, 마음이 매우 두렵고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김서진은 참을성 있게 말했다.“그들이 너한테 무슨 말을 했든 상관없어. 그런데 네가 생각해 봐, 지금 나는 이미 이 일을 알고 있고 너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그러니 네가 많이 말하든 적게 말하든 별 차이가 없어.”“그리고 너는 나를 믿지 못하겠어? 너의 소은 언니를 믿지 못하겠어?”그는 감정 카드를 꺼내어 진가연을 설득했다.진가연은 아직 김서진을 크게 신뢰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소은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김서진은 심지어 지금 여기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한소은이었다면 일이 쉽게 풀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진가연은 분명히 모든 것을 털어놓고 한소은의 도움을 구했을 것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한소은은 인간적인 매력에서 자신보다 더 강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막연한 신뢰와 의존감을 갖게 한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한소은은 아직 위험에 빠져 있어 김서진의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가라앉았다.“소은 언니…….”이 호칭을 듣고 진가연의 눈이 반짝였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더 이상 우물쭈물하지 않고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안에서 동영상 한 편을 찾아 김서진의 앞에 내밀었다.그것은 짧은 동영상이었고 그 안에는 두 눈을 가린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분명 진정기였다.비록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익숙하여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진정기는 의자에 묶어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눈을 가려서 깨어 있는지 잠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축 처진 머리를 보면 잠든 것 같았다.동영상은 매우 짧았고 내용도 제한적이어서 그 속의 사람이 진정기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두 번 반복해서 본 후, 김서진은 고개를 들어 진가연을 보았다.“그래서, 바로 이 동영상 때문이야?”“그 속의 사람은 아버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