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너희 아버지랑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의 혐의가 제일 크다는 거지.” 김서진은 읊조리며 분석했다. 이 일은 듣기에는 매우 이상한 것 같지만 사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진정기는 이미 그 연구실의 목표였고 그들은 주효영을 통해 진정기에게 독을 먹인 것은 그를 통제하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들의 첫 번째 단계의 목적은 실험 기지를 확보하여 중국의 거점으로 삼은 다음 이성을 잃은 실험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하지만 김서진은 그들이 진정기를 통제하려는 것은 결코 실험 기지를 차지하려는 것뿐이 아니고 그들의 음모는 분명 더욱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누가 아버지랑 만나기로 약속했는지 모르겠어요.”진가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모습을 보면 결코 가장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김서진은 여전히 매우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그렇다면 너는 왜 아버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숨기려 했어? 그리고…… 또 나까지 속이려고 한 거야?”‘만약 당황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일으킬까봐 걱정되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먼저 숨기기로 선택했다면 자신은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마치 진정기가 중독되었을 때 그녀는 스스로 짊어진 것처럼 말이다.’‘그런데 왜 자신한테도 숨기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진가연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죄송해요.”진가연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어제저녁에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무슨 전화?”“저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은 변성기 같은 것으로 아버지가 자기 손에 있다고 말했어요. 만약 아버지가 무사하기를 원한다면…….”잠시 멈추었다가 진가연은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질리도록 컵을 더욱 힘차에 쥐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아버지가 무사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이 비밀을 지켜야 하고
“왜냐하면…….”진가연은 머뭇거리며 김서진을 보았다. 여전히 약간 망설이는 것 같았다.지금 이 순간까지 그녀가 이렇게 망설이는 것을 보니, 마음이 매우 두렵고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김서진은 참을성 있게 말했다.“그들이 너한테 무슨 말을 했든 상관없어. 그런데 네가 생각해 봐, 지금 나는 이미 이 일을 알고 있고 너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그러니 네가 많이 말하든 적게 말하든 별 차이가 없어.”“그리고 너는 나를 믿지 못하겠어? 너의 소은 언니를 믿지 못하겠어?”그는 감정 카드를 꺼내어 진가연을 설득했다.진가연은 아직 김서진을 크게 신뢰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소은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김서진은 심지어 지금 여기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한소은이었다면 일이 쉽게 풀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진가연은 분명히 모든 것을 털어놓고 한소은의 도움을 구했을 것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한소은은 인간적인 매력에서 자신보다 더 강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막연한 신뢰와 의존감을 갖게 한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한소은은 아직 위험에 빠져 있어 김서진의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가라앉았다.“소은 언니…….”이 호칭을 듣고 진가연의 눈이 반짝였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더 이상 우물쭈물하지 않고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안에서 동영상 한 편을 찾아 김서진의 앞에 내밀었다.그것은 짧은 동영상이었고 그 안에는 두 눈을 가린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분명 진정기였다.비록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익숙하여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진정기는 의자에 묶어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눈을 가려서 깨어 있는지 잠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축 처진 머리를 보면 잠든 것 같았다.동영상은 매우 짧았고 내용도 제한적이어서 그 속의 사람이 진정기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두 번 반복해서 본 후, 김서진은 고개를 들어 진가연을 보았다.“그래서, 바로 이 동영상 때문이야?”“그 속의 사람은 아버지예요.
진가연은 비록 생각이 있고 용기가 있지만, 아무래도 아직 젊고 이런 일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여 동영상을 본 후 마음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게다가 진정기가 확실히 실종되어 소식이 없어서 진가연은 감히 말할 수 없었던 것 또한 정상이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녀의 경험으로는 대처하기에 부족했다.“괜찮을 거야.”김서진은 고개를 저으며 진가연에게 설명했다.“만약 그 사람들이 정말 너의 아버지에게 못된 짓을 할 거면 충분히 직접 손을 쓸 수 있었을 거야. 굳이 쓸데없이 너에게 이 동영상을 보내고, 너를 협박할 필요가 있겠어?”“그 사람들은 단지 너의 아버지의 시간을 차지하거나, 혹은 며칠의 시간을 벌어야 한 것뿐이야.”비록 그들의 말은 믿을 수 없었고, 3일 후에 정말로 진정기를 돌려보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3일 동안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진실을 알리지 못하게 한 것은 정말이었다.그렇다면, 그들은 분명 진정기가 실종된 일을 숨기려는 것일 것이다. 비록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 일은 분명했다.“그럼 저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합니까?”진가연은 아버지를 걱정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좀 안정되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겁에 질려 엉뚱한 생각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감히 말하지 못하고 혼자 마음속에 숨겨두었다.아무도 의논할 수 없었고, 아무도 아이디어를 낼 수 없어서 마음이 매우 혼란스러웠다.그런데 마침내 김서진이 찾아왔다.비록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지만 모든 것을 털어놓으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김서진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살살 두드리면 생각한 후 말했다.“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요?!”“생각해 봐. 만약 오늘 내가 오지 않았고, 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너는 무엇을 했을까?”이 한마디에 진가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사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김서진이 오기 전에 진가연은 겁에 질린 상태로 아버지가 가셨을지
김서진은 하인을 시켜 진가연을 집으로 데려다주게 하였다.그리고 진가연에게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돌아가면 밥을 먹고 쉬어야 한다고 타일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시 소식을 보낸다면 바로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하였다.진가연은 비록 입으로 대답했지만, 여전히 근심에 싸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김서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위로의 말을 많이 해도 창백할 뿐이기 때문이다.사실 진가연의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닥쳤을 때 당사자들이 마음을 비우고 걱정하지 않으려 하는 건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마치 지금의 김서진처럼, 그는 어찌 한소은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한소은은 충분히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위로한다 해도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이제 한소은을 찾는 것 외에 또 진정기의 행방을 찾는 임무가 하나 더 추가되어, 일은 점점 더 복잡하게 뒤섞여진 것 같았다.한소은이 깨어났을 때 차체의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미 도착한 것 같았다.뇌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기절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자신은 릭과 함께 차에 오른 후 눈이 가려졌고, 그 후로는…… 아무것도 몰랐다.’‘정신을 잃기 전에 잔신은 미향을 맡았다. 아마도 미향의 작용일 것이다.’‘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 제성에 있는지, 심지어 아직 중국에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그리고 자신이 얼마 동안 쓰러졌는지, 또 어디에 도착한 것인지도 전혀 몰랐다. 눈앞엔 아직 천을 두르고 있어서 매우 캄캄했다.’‘다만 유일하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미향은 몸에 해롭지 않아서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아이…….’여기까지 생각하고 그녀는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자신의 두 손이 묶이지 않았고 너무 오래 기절 되어 약간 저린 것뿐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한소은은 이를 악물고 저린 느낌을 참으며 손에 힘을 주어 눈을
한소은은 아이가 뱃속에서 몸을 뒤척이며 심지어 기지개를 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뱃가죽은 눈에 띄게 부풀었다가 다시 가라앉았고 매우 안정적인 것을 보고 그녀는 마음이 놓였다.자신이 그동안 일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도 따라서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하여 그들이 안전하기만 하면 자신의 마음도 조금 편안할 수 있었다.한소은은 잠시 숨을 돌린 후 일어나서 방을 돌아다녔다. 방안에는 그녀 외에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CCTV가 있을 것이다.창문 앞에 다가가 커튼을 열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창문 밖은 가려져 있었고 바깥의 광경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창문은 단지 장식품일 뿐이었다.그리고 방은 매우 컸고 스위트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침실에서 나가면 밖에 거실이 있었고 소파, 티 테이블, 정수기 등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고급 호텔 스위트룸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렇다. 그냥 호텔 스위트룸인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호화로운 감옥이라 할 수 있다.한소은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도, 문을 열지 않았어도, 자신은 결코 쉽게 이 방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기왕 자신을 데려온 이상 절대 떠나지 못하게 하겠지.’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한소은은 문으로 다가가 문 손잡이를 잡고, 잠시 침묵을 지킨 후 힘껏 당겼다.방문은 쉽게 열 수 있었다. 하지만 밖에는 역시나 두 명의 싸움꾼이 서 있었고, 문이 열리는 순간 일제히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한소은은 발걸음을 멈추고, 눈썹을 치켜세우고 밖을 내다보았다. 역시나 호텔의 복도였지만 사방은 텅 비어 있었고 그녀와 두 싸움꾼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그들을 향해 웃고는 문을 다시 닫았다.한소은은 무리하게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분명 바보처럼 이 두 싸움꾼만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방으로 돌아가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나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개수는 많지 않았고 또 밖에 싸움꾼 두 명만 있는 것으로 보아 충분히 자신감
한소은의 생각을 꿰뚫어 보았는지, 아니면 시간이 되었는지 방문이 밖에서 열렸고, 두 명의 싸움꾼은 거기에 서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푸드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푸드 카트를 미는 사람과 밖에서 지키고 있는 싸움꾼은 모두 외국인이었다.그 사람은 방으로 들어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푸드 카트를 테이블 옆에 세워 위의 뚜껑을 열고는 밖으로 음식을 꺼내기 시작했다.냄새가 너무 좋아 한소은은 일어나서 한 번 보았는데, 뜻밖에도 모두 중국 음식이었다.그리고 모두 한소은이 좋아하는 요리였다. 탕수갈비, 매채구육, 갈치구이…… 각양각색으로 매우 풍성했다.음식을 차리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후 그 사람은 한소은을 한 번 보고 다시 푸드 카트를 밀고 밖으로 나갔다.한소은은 앉아서 그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분명히 그들이 자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심지어 입맛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일 것이다.그 사람들이 한소은을 힘겹게 여기까지 데려온 이상, 분명 음식에 직접 독을 넣어 그녀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이 음식에 다른 수작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어쨌든 이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다양한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한소은은 비록 배가 고팠지만 급하게 젓가락을 들지 않았고, 먼저 머리를 내밀고 훑어본 다음 냄새를 맡았다.적어도 자신이 배운 약리학적으로 봤을 때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여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어디에 있든 한소은은 결코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반드시 자신을 잘 돌보고 뱃속의 아이를 잘 돌봐야만 살 길을 찾을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한소은은 혼자서 조용히 식사를 즐긴 후 젓가락을 내려놓고 만족스럽게 딸꾹질을 했다.거의 한소은이 젓가락을 내려놓는 동시에 방문이 다시 열렸고 방금 전의 그 사람이 들어와 여전히 말없이 접시를 치웠다.“언제 당신들의 주인을 만날 수 있습니까?”한소은은 그 사람을 보고 물었다. 하지만
‘이전까지 그 사람들은 줄곧 실험 진도를 재촉했고 시간이 늦었다고 강조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조급해하지 않다니.’‘지금 김서진 쪽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실험 기지는 어떻게 되었을까?’‘자신은 이미 끌려갔는데 임상언과 주효영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서한은 이미 떠났을까?’임상언은 김서진의 말을 듣고 실험 기지로 돌아갔다. 그는 릭이 한소은을 데려간 일에 당황하여 머리가 멍해지고, 돌아가는 길에 사장이 아직 밀실에 갇혀 있다는 것을 생각났다.기회를 봐서 사장을 옮기려고 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그의 생사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그러나 이것은 임상언에게 있어서 도박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임상언은 오히려 이 악랄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자신이 이미 조직에게 버림받은 것을 알고도 그렇게 날뛸 수 있을지, 두렵거나 분노하지 않는지, 그리고…… 임남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를 보고 싶었다.하지만 임상언이 도착했을 때, 밀실의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남자는 밀실에서 옮겨져 의자에 앉아 있었고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곧 죽을 것 같았다.의자 반대편에는 주효영이 앉아 있었다.주효영은 다리를 걸치고 느긋한 모습으로 뛰어들어오는 임상언을 흘겨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네가 아니라며.”“주효영?!”임상언은 멍해졌다. 이 광경을 보고 확실히 부인할 필요가 없었다.그는 냉소하며 말했다.“왜, 이 사람을 구하고 싶어?”“이 사람을 구한다고?”주효영은 고개를 돌려 의자 위의 사람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키가 너무 작아 큰 의자를 채울 수 없을 정도였다.그런데 바로 이 사람이, 그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조종했고,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으며 감히 노여워하지 못하게 했다.지금 그 사람은 이렇게 그곳에 비뚤어져 있었고 마치 한 발을 날리면 공으로 찰 수 있을 것 같았다.사실 배후의 권력과 배경이 없으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주효영은 웃으며 말했다.“임상언, 내가 이 사람을 구할지, 아니면 너를 구할지는 완전히 너에게
임상언은 감정이 격해진 주효영을 한 번 보고, 또 죽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장’을 한 번 보고 갑자기 긴장이 풀렸다.임상언은 오히려 주효영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듣고 싶어 했다.“그럼 말해봐, 어떻게 협력할 건데? 너나 나나 뭘 가지고 조직과 맞설 수 있는데?”임상언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고, 의자 하나를 끌고 앉아 천천히 주효영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주효영은 임상언을 보고 굳게 말했다.“내 손에는 아직 카드가 있어.”“뭐?”임상언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웃으며 말했다.“무슨 카드? 설마 조직이 너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있어?”“내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아?”주효영은 피식 웃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주효영의 미친 듯 또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임상언은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약간 의심하고 망설이게 되었다.‘설마 이 여자의 손에 정말 무엇을 쥐고 있단 말인가?’“무슨 카드야?”임상언이 다시 물었다.“무엇인 간에 넌 신경 쓸 필요 없어. 넌 그냥 우리한테 협상할 자격이 있다는 것만 알면 돼.”주효영이 말했다.“임상언, 나랑 협력할 거야?”마음을 다잡고, 임상언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생각을 진정시키고 주효영의 말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 했다.‘이 여자의 말솜씨는 매우 대단하고 또 심계가 깊고 계산적이어서 이 여자의 계략에 말려들게 될지도 모르니 절대 함정에 빠져서는 안 돼. 이 여자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누가 알겠어?’곰곰이 생각한 후, 고개를 들어 주효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손에 카드가 있는데 왜 나랑 협력하려는 거야? 너 혼자서 충분히 조직과 이야기할 수 있잖아.”임상언은 주효영의 눈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녀의 눈빛에 약간의 망설임과 주저함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그녀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러나 주효영은 매우 빠르게 대답했고,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네가 길을 열어줘야 해!”“내가 길을 열어?”임상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