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릭이 손을 들어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임상언의 다리 상처를 의미심장하게 힐끗 보고는 그제야 앉았다.임상언은 냉기를 들이마셨다. 보아하니 정말 아팠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는 다리를 내리고 그 찢어진 붕대를 다시 묶으며 말했다.“릭, 당신 이게 무슨 뜻입니까? 설마, 제 상처가 가짜라고 생각합니까?”릭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는 입꼬리를 치켜세우고 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이 돌았다.“그런 뜻은 아닙니다. 단지 상대방이 어떤 무기를 사용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아주 어설픈 이유라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임상언은 콧바람을 내쉬며 말했다.“정말 무슨 무기를 사용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저에게 물어보면 되죠. 그리고 화제를 돌리지 마세요.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빨리 사장님을 찾는 것입니다!”잠시 멈추었다가 임상언은 계속 말했다.“위쪽에서 사장님이 실종된 것을 알고 있습니까?”이전에는 모두가 대충 넘어간 모습이었지만 “위쪽”이라는 말이 나오자 주효영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릭조차도 얼굴색이 변했다.오직 한소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도대체 어느 ‘위쪽’인지 알 수 없었고 상황은 대충 짐작이 가고 배후 주모자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무래도 직접 접촉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아직…… 모를 거야, 아마도.”주효영은 머뭇거리며 말했지만, 눈빛은 릭을 바라보았고 그다지 확실하지 않았다.그러자 릭이 말했다.“시간이 촉박하고 사건이 갑작스러워 아직 상부에 보고드리지 못하였습니다.”이것은 그들이 아직 감히 보고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보고하지 않아도 이 일은 오래 속일 수 없을 것이다.이 ‘사장’과 위쪽은 분명 그들만의 독특한 연락처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며칠마다 정기적으로 연락할 것이며, 더욱이 그는 실험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했다. 만약 위쪽에서 회신을 받지 못했다면 반드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위쪽’
한소은은 다소 조롱하며 웃기 시작했다.“그러니까 전혀 어떤 증거도 필요 없이 주효영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거지! 지금 사장님은 잠시 실종되었을 뿐인데, 너는 여기서 이래라저래라 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니! 왜, 사장님이 안 계시면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 이거야? 이렇게 말하면, 너의 혐의야말로 가장 크네!”한소은은 가볍게 두세 마디로 다시 화살을 돌려 주효영을 향했다.“난…….”한소은의 말에 잠깐 멍해지고 주효영은 바로 반박했다.“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주효영은 분노에 가득 차 가슴을 안고 말을 삼켰다. 옆에 있는 릭의 차가운 눈길은 주효영의 등을 얼러붙게 만들었다.주효영은 릭과 이번에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비록 빈도는 많지 않았지만, 릭은 자주 사장의 곁에서 발견되었고, 그의 말수는 적으면서도 손 한 번 휘두를 때는 어찌나 무자비하고 잔인한지 주효영은 알고 있었다.한 번은 주효영이 무심코 그가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은 설령 각종 실험과 피비린내 나는 것에 익숙하더라도 여전히 메스꺼움을 느끼게 했다.그 이후로 주효영은 릭에 대해 왠지 모르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모든 곳을 다 찾아보셨습니까?”릭은 다시 임상언에게 물었다. 임상언은 확실하여 고개를 끄덕였다.“다 찾아보았습니다. 카펫까지 다 뒤졌습니다. 이곳의 기관 밀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모든 곳을 다 찾았습니다.”릭은 침묵을 지키고 말을 하지 않았다.이때 줄곧 이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던 한소은이 말했다.“전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모든 사람들이 한소은을 쳐다보았고, 주효영의 첫 반응은 그녀를 비웃으려 했지만 말이 입가에 닿자 다시 삼켰다. 릭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을 하라고 표시했다.“당신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사장님에게 충성도 감정도 없습니다. 그가 실종됐든 안 됐든, 저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한소은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상관없는 모습을 보였다.“하지
“…….”릭은 그제야 한소은이 말한 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사장님을 찾을 때까지 저희 네 사람은 의견을 말하고 질의할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잠시 멈추자, 그의 눈빛은 점차 차갑고 음험하게 변했다.“만약 누구라도 배신자로 발견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회의가 끝난 후, 주효영은 한소은의 앞을 가로막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너 아니야?”“네가 보기에는?”주효영은 태연자약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소은은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다.“너는 정말 능력이 대단하구나, 사장님을 납치할 줄은 몰랐네. 그런데, 넌 흠잡을 데 없이 완전무결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마. 넌 사장님 뒤에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전혀 몰라!”주효영은 말하면서 눈빛에 어두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한소은은 가볍게 웃기 시작했다.“왜, 너도 무서운 게 있어? 난 너 같은 사이코패스는 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너…….”비웃음을 당하자 주효영은 기가 막혔다.“그리고! 네가 말한 것처럼 흠잡을 데 없이 완전무결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마. 주효영, 그 결과가 어떤지 너도 잘 알 거야.”주효영을 담담하게 힐끗 보고 한소은은 그녀를 비켜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주효영은 갑자기 몸을 돌려 목소리를 높였다.“너 더 이상 시치미 떼지 마! 네가 아니라면, 왜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데? 분명히 너잖아!”“나는 네가 무술을 할 줄 알고 솜씨가 좋다는 것을 알아. 그러니 분명히 네가 사장님께서 쉬시는 틈을 타서…….”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멱살이 잡히자, 주효영의 눈이 번쩍 떠지고 머리가 약간 멍해졌다.그녀는 한소은의 솜씨가 좋은 것을 알고 일부러 거리를 좀 벌려서 말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히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고 분명히 한소은이 거기에 서 있었는데, 그녀가 손을 쓴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자신은 이미 잡
물 반쯤 마시자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문 잠그지 않았어요.”한소은은 입을 열었고 일어나서 문을 열기가 귀찮았다. 사실 그녀가 계산한 시점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다.문이 열리자 역시나 임상언이 밖에 서있었고 들어올 때 문밖을 돌아본 후 문을 닫으려는 순간 한소은이 그를 불렀다.“닫지 마세요.”“???”“예전에 한 쌍의 눈이 당신과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지금은 적어도 네 다섯 쌍의 눈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문을 닫든 안 닫든 의미는 그리 크지 않고 단지 더 찔려 보일 뿐입니다.”한소은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나른하게 말했다.“지금은 이렇게 어수선하니 피할 것이 없습니다.”임상언은 잠시 생각한 후 아예 문을 크게 열었고 방안에 앉으면 바깥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한소은 초조해 보였고, 등 뒤에 쿠션을 깔고 나른하게 기대어 눈썹을 찡그린 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릭이 본 CCTV는…….”“당신 다리의 상처는…….”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말하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더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언제든 물어봐도 해결될 것이다.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어리석지 않을 것이다. 한소은이 자신에게 알리바이를 만들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임상언도 당연히 다른 사람이 그의 다리의 상처를 의심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상처는 가짜가 아니지만 칼자국이 아닌 이빨 자국인 것을 발견된다면, 릭의 예민한 성격으로 분명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그래서 임상은은 자신의 상처에 또 다른 상처를 더했다. 이것은 참으로 가혹한 수단이었다.“그 릭, 쉽지 않아요.”화제를 바꾸자 한소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당연하죠.”임상언은 다소 감개하며 말했다.“그 사람은 사장 곁에서 가장 오래 있었고 가장 신비한 사람입니다. 저도 사실 그 사람을 몇 번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매우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권력은 심지어 사장 위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사
“지금 사장이 실종되었는데 그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가요?”한소은은 유유히 말했다.“그것은 당연한 거죠. 우리는 결국 위쪽과 직접 접촉하지 않으니 위쪽에서 벌을 주고 압력을 가하더라도 모두 그 사람을 통해서…….”잠시 멈추자 임상언은 한소은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당신의 뜻은?”고개를 저으며 한소은이 말했다.“저는 단지 서한의 이번 무모한 행동이 완전히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우리가 예전에 위축되고 속수무책으로 사장한테 손을 쓰지 못했던 것은 우리가 모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서한은 그렇게 많은 것을 모르고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도 않았으며 그 사람의 생각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가장 간단한 생각과 방법이 마침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한소은의 말을 듣자 임상언은 생각에 잠겼다.그 말이 맞다. 임상언은 자신의 아들이 그들의 손에 있는 것을 두려워해 손을 대지 못했다.한소은은 뒤에 있는 주요 인물을 들춰내어 이 조직을 일괄적으로 손에 넣고 싶어서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서한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그는 단순히 실험 기지를 폭파하고, 설령 자신이 이곳과 함께 죽더라도 이 지옥 같은 곳을 파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지금은 사장이 실종되어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 이 혼란 속에서 또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적어도 이전까지는 릭과 거의 교제가 없었고 대화조차 한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마도 그가 덩굴을 따라 배후의 검은 손을 찾아내는 때가 온 것 같았다.“하지만 릭은 위쪽과 직접 접촉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임상언이 또 말했다.그 사람에 대해 임상언은 그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이 조직이 그렇게 은폐성이 좋은 이유는 겹겹이 쌓인 버클 때문이었다.그 사람들 중 임상언과 주효영,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사장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들 중에서도 몇 명만이 사장 뒤에 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아래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더
고개를 끄덕인 후 임상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입구까지 걸어갔을 때 또 멈추고 몸을 돌려 한소은을 보았다.“???”말하고 싶었지만 다시 멈췄다. 그러나 임상언은 끝내 참지 못하고 말했다.“자신의 몸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알아요. 하지만 제가 겪어봐서 출산이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임남이 태어났을 때 임남의 어머니는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중에 저지른 많은 잘못 들을 저는 완전히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당신은 지금 임신 중이시고 또 이런 환경에 처해 있으니 모든 일에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무리하다는 말을 한소은은 매우 싫어했다. 이는 그녀로 하여금 자신이 억지로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게 했다.그러나 한소은도 임상언이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확실히 관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반박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임상언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는 일은 쉽지 않았다.그가 거짓말을 털어놓은 이후로 예전의 친구 사이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오늘 같은 날에도 그들은 손을 맞잡고 어려움에 맞서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 친구로 부를 수 없었다.한소은이 임상언에게 고마워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최소한 임상언을 그렇게까지 혐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임상언이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가려 하자, 한소은이 다시 그를 불렀다.“임남의 일은 반드시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 아이는 좋은 아이이니 반드시 무사히 돌아올 것입니다.”위로일 수도 있고, 정말 그런 신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임상언은 고마워했다.“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임상언은 웃으며 말했다.임상언이 엘리베이터 입구에 가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려 했을 때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눈썹을 찡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서더니 한소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방문은 닫히지 않았고, 그가 서있는 각도에서 마침 한소은의 위치를 볼 수 있었다
임상언은 깜짝 놀랐고 은근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한소은을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안색은 차분했고 여전히 게으르게 앉아 있었으며 심지어 위치를 조정한 것을 보았다.“릭 씨, 당신 이것은…… 나쁜 뜻을 가지고 오셨군요?”“오해하셨습니다!”릭이 차갑게 말했다.릭은 그제야 임상언의 어깨에 얹은 손을 놓았고, 방 안의 의자로 가서 앉았다가 다시 의자를 끌어내려 한소은의 맞은편에 앉았다.“제가 여기에 온 것은 두 분께 여쭤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입니다.”임상언의 어깨는 드디어 움직일 수 있었지만 릭의 말을 듣자 동작이 잠시 멈추었고 멍해졌다.한소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를 바라보았고 안색은 오히려 태연했다.“저는 회의실에서 할 말을 이미 다 한 줄 알았습니다.”그러나 릭은 차갑게 손을 들어 무언가를 누르자 아주 가벼운 ‘펑-’소리만 들렸고 마치 작은 폭파처럼 공기 중에 탄 냄새가 어렴풋이 풍겼다.임상언은 어리둥절해졌다.“당신 이건…….”“여기에 거치적거리는 물건이 너무 많아서 제가 망가뜨렸습니다.”그는 말을 마치고 손을 거두었다.“이제 저희의 대화를 방해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CCTV와 도청기를 망가뜨렸어요?”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제야 한소은의 안색이 변해다.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정하고 릭이 이어서 말했다.“당신들이 사장님을 숨긴 거 아닙니까?”갑작스러운 물음에 임상언은 하마터면 버티지 못할 뻔했다. 그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을 자신도 모르게 꽉 쥐었다. 심장은 이미 목구멍까지 들어 올렸고 자신도 모르게 한소은 쪽을 힐끗 보았다.‘이 릭, 무슨 뜻이지? 그는 일부러 떠보는 거야, 아니면…… 죄를 묻는 거야?’릭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속셈도 보이지 않았지만 임상언은 본능적으로 이미 전쟁을 맞이할 마음을 가졌다.‘만약 릭이 죄를 묻기 위해 왔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손을 쓸 생각이라면, 자신이 반격할 기회가 있고 한소은을 안전하게 보낼 승산이 있을까?’릭은 고개를 돌려 임상언의 방향을 힐끗
그것은 아마도 방금 CCTV를 파괴한 물건인 것 같았다.한소은은 은밀히 주변을 주의했다. 이곳의 CCTV는 이미 파괴되었고 CCTV의 불조차 켜지지 않았다.릭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왜 이렇게 한 걸까?“할 말을 제가 이미 다 한 것 같은데 당신이 어떤 진실을 듣고 싶은지 이해하지 못하겠네요.”한소은은 몸을 돌려 옆에 있는 물컵을 들어 한번 만져보았는데 좀 차가웠는지 몸을 움직여 따뜻한 물을 더 부으려 했다. 한소은의 의도를 알아차린 임상언은 다가와 뜨거운 물을 받아 건네주었다.한소은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물컵을 받아 물을 반쯤 마시고 목을 축였다.릭은 줄곧 말을 하지 않고 이렇게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한소은이 물을 마시고서야 계속 말했다.“당신 두 사람의 관계상 공범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한소은은 웃기 시작했다.“당신이 말씀하신 공범이 무엇을 가리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릭 씨는 중국에 오신지 지 얼마나 되셨죠?”한소은이 갑자기 물었다. 그러자 릭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죠?”“저는 당신이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고 어떤 때는 당신이 표현하고 싶은 그런 뜻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한소은이 말했다.“제 말이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씀이신가요?”릭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여기 앉아서 당신들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당신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들이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제가 규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탓하지 마세요!”“규칙?”한소은은 비웃으며 말했다.“규칙이란 당신들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어디서 나온 규칙입니까? 만약 당신의 사장님의 일로 우리를 죽이고 싶다면 손을 쓰세요. 당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둘 다 당신의 상대가 아닙니다.”“저를 자극한다고 해서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은 사장님을 도대체 어디에 숨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