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진은 줄곧 무사했다. 아이는 단지 열이 내렸다 다시 올랐다 반복했을 뿐 다른 것은 없었다.김서진은 원철수에게 ‘독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아직 이해하지 못했고 게다가 조금만 더 기다리면 혹시 어르신께서 깨어나셔서 스스로 말씀하실지도 모르니 조급해하지 않았다.김서진은 아이를 다시 방에 있는 침대에 눕히고 옷을 벗어서 이불 속에 넣은 다음 다시 이불을 잘 덮었다. 그러고는 또 슬며시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아이의 팔을 자세히 살펴보았다.팔뿐만 아니라 가슴과 등, 심지어 안심할 수 없어서 곳곳을 모두 살펴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도 어르신의 팔에 나타난 그런 것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단지 예일뿐이고 아이가 그것에 걸리지 않기를 발했다. 하지만 김서진의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최근 이 기간 동안 아들과 많이 있지 못했고 원래 아들을 여기에 맡긴 것도 안전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의외의 일이 생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만약 아이에게 정말 무슨 일이 있다면, 김서진은……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이제서야 임상언의 그 말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만약 당신의 아들이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했을까요?”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실제로 경험하지 않는 한!이제 김서진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지금 누군가가 김서진에게 자신의 목숨으로 아들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기꺼이 바꿀 것이다.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김서진은 단지 아들이 빨리 낫기를 바랄 뿐이었고 그저 평범한 열일뿐 전염병이 아니고, 바이러스도 아니고, 독충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길 발했다!작은 손을 이불 속에 살며시 넣고 이불을 잘 덮어준 뒤 여전히 안심하지 않아서 다시 손등으로 온도를 재보니 미지근한 느낌이 들었다. 김서진은 그제야 베란다로 나갔다.이전에 한 방에 있던 베란다는 원철수가 발병하여 파괴해 버려서 그 후에 다시 수리하였다. 하여 지금은 모두 폐쇄식으로 베란다에 서있어도 바람을 느낄 수 없었다.햇빛이 좋을
“들을게!”수화기를 꽉 잡고 임상언은 정서를 자제하려고 노력했다.“내 사람들은 임남이 마지막으로 나타난 곳은 Y 국인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어.”임상언은 멍하니 말했다.“Y 국?!”그러나 짧은 망설임 끝에 바로 부정했다.“그럴 리 없어!”“내 사람들은 Y 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서 찾아봤어. Y 국엔 적지 않은 인맥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아들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어. 만약 소식이 있다면, 나는 곧 알게 될 것이야. 그러니 너의 소식이 틀렸어!”임상언은 매우 실망했다. 원래는 드디어 아들의 소식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듣기만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생각해 봐도 그렇다. 정말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자신은 벌써 찾았을 텐데,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그래?”김서진은 넥타이를 잡아당겨 숨을 좀 쉬었고 담담하게 먼 곳을 바라보았다. 창밖엔 매우 무성했고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어르신의 주택은 원래 이렇게 넓은 곳에 지어졌기 때문에 시야가 매우 넓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의 나무가 얼마나 심어져 있는지, 뒤에 약초가 얼마나 있는지, 어떻게 한눈에 다 볼 수 있겠는가?김서진은 눈을 감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Y 국 황궁에도 조사해 본 적이 있어?”“어디?!”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 후 임상언은 한순간 또 목소리를 낮추었다.“황궁!?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그럴 리가! 황…….”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은 분명 임상언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오직 황궁같이 경비가 삼엄하고 그런 금지구역에서만 자신의 사람이 전혀 잠입할 수 없었고, 전혀 손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아들을 찾지 못할 수 있으며 자신이 전혀 단서를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만약 정말 그쪽에 있다면, 그럼…… 자신이 어떻게든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한순간 말이 되는 것 같았다.“그쪽인지 어떻게 알았어?”목소리가 좀 떨렸고 임상언은 이미 좀 믿었다.그런데,
김서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임상언은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알겠다! 틀림없이 그들이 원철수한테 약을 썼을 거야.”중요한 곳을 듣자 김서진은 정신을 차렸다.“무슨 약?”“바로 바이러스야.”자신의 표현을 바로잡고 임상언은 심호흡을 한 후 목소리를 낮추어 천천히 말했다.“조직에는 바이러스가 많이 있어. 이건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종류가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그 원철수가 여기 있을 때, 그들은 그 사람의 몸에 약을 썼어. 바로 바이러스를 놨어. 그 사람의 몸은 계속 급속히 팽창하고 있었고 근육도 굉장히 발달되어 있어서 나는 그 사람이 금방 터져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김서진은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임상언이 말한 이 모든 것을 김서진은 당연히 알고 또 본 적이 있었다. 다만 그것들은 모두 표상일 뿐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그 사람은 버텨냈어. 나중에 나도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어. 어쨌든 그 사람은 이 일에 연루된 것이고 매우 무고한 사람이어서 장소를 옮길 때, 나는 기회를 찾아 그 사람을 풀어줬어.”임상언은 이어서 말했다.“나중에 너도 알겠지만 사실 내가 기회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조직이 일부러 준 허점 때문이야. 그런데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나는 정말 몰라.”“지금 생각해 보면, 만약 네가 말한 대로라면 그들이 아침 일찍 원철수의 몸에 놓은 것은 전염원이고 일부러 원철수를 도망가게 한 것도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건가?”물론 이 모든 것은 임상언의 추측일 뿐 결코 그다지 확신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김서진의 말을 통해 대략적인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상언이 한 말은 가능성이 아주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상언이 이 일과 무관하고 내막을 전혀 모른다는 뜻은 아니었다.임상언은 완전히 알면서도 지금 무고한 척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일단 응어리가 생기면 다시 예전처럼 전심전력으로
“우리는 집에 가야 하나요?”김준이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그러자 김서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집에 돌아가지 않을 거야. 아빠는 여기 남아서 너랑 같이 있을 거야.” “…….”아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입술을 오므리고 조용해 보였지만 아무래도 아이라서 눈에 근심을 숨길 수가 없었다.이렇게 어린 나이에 걱정거리가 무거운 모습을 보고 김서진은 매우 마음이 아파서 손을 들어 아들의 이불을 쑤셔주며 물었다.“왜 그래?”“할아버지께서 아파요.”아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좀 울 것 같았다.평소에 이 녀석은 어르신과 자주 다투고 가끔 어르신을 발을 동동 굴리고 성나게 했지만 사실 어르신과 녀석의 감정은 매우 좋았다. 어르신은 녀석을 각별히 총애하고 녀석의 마음속에도 정말 친할아버지로 대했다.김서진은 감개무량하여 조용히 대답했다.“맞아.”“할아버지께서 곧 죽나요?”녀석이 다시 물었고 이미 울음을 터뜨렸다.보아하니 이 말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것 같았다. 다만 나이가 너무 어려서 언급하기가 두렵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김서진은 직접 대답하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한 후에야 녀석에게 물었다.“너는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이렇게 어린데, 정말 생사의 의미를 알까?“죽는다는 것은 멀리 간다는 것이고 다시는 볼 수 없고 영원히 볼 수 없어요. 저는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어요.”녀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어휘로 최선을 다해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사실 죽음의 의미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지만, 아이의 관념에서는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이다.영원히라는 세 글자는 그들의 마음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여기까지 말하자 녀석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큼직한 눈물이 볼을 따라 뚝뚝 덜어졌다.김서진은 보고 마음이 아파서 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녀석의 눈물을 닦아주며 진지하게 말했다.“모든 사람은 다 죽게 돼. 다만 어떤 사람은 일찍 죽고 어떤 사람은 늦게 죽는 것뿐이야. 할아버지도 죽게 되지만 지금은 아닐 거야.”“
아이가 울지 않는 것을 보고 김서진의 마음도 좀 좋아졌다. 그리고 아이의 이마를 만져보니 이미 뜨겁지 않았다.김서진은 일어나서 온도계를 가지고 다시 체온을 재면서 물었다.“불편한 대 없어?”녀석은 고개를 살며시 흔들고 입술을 움직여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배가 좀 고파요.”“아빠가 먹을 것 좀 구해 줄게.”김서진은 웃었다.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먹고 싶고, 입맛이 있어야 체력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몇 분을 기다렸다가 온도계상 표시된 온도가 정상인 것을 보고 잠시 상황이 안정된 것 같아서 아들에게 말했다.“좀 누워 있어, 아빠가 가서 먹을 것 좀 만들어 올 게. 침대에서 내려서 함부로 뛰어다니면 안 돼, 알겠지?”김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를 뵈러 가도 돼요?”김준의 눈앞에서 집게손가락을 겨누며 김서진이 엄숙하게 말했다.“안 돼!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편찮으셔서 쉬어야 해. 할아버지께서 좋아지시면 보러 갈 수 있어, 알았지?”현재 어르신의 상태는 불분명했고 전염성이 얼마나 강한지 잘 모름다. 하여 최대한 접촉을 적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네.”녀석은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철이 들었다.김서진이 일어나 방을 나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원철수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앞에는 의서들이 널려 있었고, 땅바닥까지 널려 있었다.원철수는 그 안에 몸을 파묻고 열심히 살폈지만 두서가 없어 보였다. 다만 이것저것 뒤적거리며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부엌에 먹을 것이 있나요?”김서진은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김서진의 평범한 말 한마디가 갑자기 원철수를 현실로 끌어당긴 것 같았다. 원철수는 갑자기 일어서서 김서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빛은 빤히 쳐다보기만 했고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 마치 뇌가 텅 빈 것 같았다.김서진은 원철수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을 알았다. 하여 어깨를 으쓱거리고 아예 반복하지 않고 주방 쪽으로 돌아섰다.“아, 먹을 거, 먹을 거……
직접 비서한테 전화를 걸어 쌀 국수 등 먹을 것과 생활용품을 잔뜩 사서 꼭 문 앞에 가져다 놓으면 나중에 누군가가 찾으러 갈 것이라도 분부했다.분부를 마치고 그들이 다 준비하여 가져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아들은 그동안 굶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두 손을 허리에 짚고 돌아서서 부엌에 있는 물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솜씨 좋은 부인도 쌀이 없으면 밥을 짓기 어렵다는 옛말이 있듯이 김서진은 솜씨 좋은 부인도 아니면서 쌀이 없는 곤경에 처해 있으니 정말 더 어려웠다.“제가 할게요.”다리를 주무르던 원철수는 부엌 문 앞에 나타나 이런 큰 사장이 분명히 직접 밥을 짓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김서진은 돌아서서 눈썹을 치켜올리며 눈에는 의심을 감추지 않았다.“당신???”원철수는 다리가 저려서 이를 악물었지만, 김서진의 태도엔 매우 불만족스러웠다.“저를 얕보지 마세요!”‘이 두 부부는 정말, 하나는 자신의 의술을 얕보고, 하나는 자신의 요리 솜씨를 얕보다니. 그 원철수도 여러 해 동안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온 셈인데 어떻게 그들 두 사람의 눈에는 이렇게 쓸모없게 보일 수 있는가?’원철수는 냉장고 문을 열고 안에서 계란 몇 개와 캔 몇 개를 꺼내고 이어서 그릇 두 개를 꺼냈다.그러고는 계란을 그릇에 흩뜨리고 휘저으면서 말했다.“비록 이곳의 물건은 당신 같은 큰 사장님의 집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가정식이라고 할 수 있어서 삼킬 수 없을 정도는 아닙니다.”말하면서 불을 켜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아이…….”일깨워주기도 전에 원철수는 코를 찌르는 쉰 냄새에 그을렸다.“아이씨!”원철수는 욕을 내뱉고으며 두 걸음 뒤로 물러섰고 이어서 ‘콜록콜록’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이 냄새가 이렇게 코를 찌를 줄은 몰랐고 무엇보다 냄비 안에 뭐가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당신의 냄비는…… 며칠 동안 씻지 않았습니까?”김서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음식의 맛이 좋고 나쁨은 그다음이고 중요한 것은 음식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다.바
“당신…… 뭘 봐요?”김서진이 아래위로 훑어보자 온몸이 불편하여 원철수는 머리를 돌리고 싱크대에 버려진 냄비를 보았다.“저는 그 안에 아직도 국이 있는지 정말 몰랐어요. 진짜 장담합니다. 요 며칠 아드님한테 안에 있는 음식을 먹여준 적이 없었어요.”잠시 멈춘 후 원철수는 김서진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또 마음이 켕겨서 한마디 덧붙였다.“라면을 먹여준 적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하지만 라면이라고 별거 아니잖아. 자기도 예전에 적지 않게 먹었는데 큰 해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게다가, 자신도 매일 라면을 먹고 싶지 않았는데 상황이 특수해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그러나 김서진은 원철수의 설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 원철수의 팔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원철수는 한바탕 당황했다.“당신 뭐 합니까, 당신…….”“쫙-”갑자기 원철수의 소매를 잡아당겨 위로 훑어 올리자 태반의 팔이 드러났다.“당신, 어???”원철수는 멍해졌고 무슨 뜻인지 몰랐다.원철수의 소매를 올리자 하얀 팔이 보였다. 그 피부는 정말 하얗고 많은 여자들보다 더 하얗다.하지만 예전의 근육이 팽창한 것과는 달리 지금 보면 약간의 근육도 보이지 않았고 팔은 가늘고 길며 심지어 약간 여위고 허약한 느낌도 있었다.만약 며칠 전에 직접 보지 않았다면 김서진은 같은 사람인지 아니면 단지 똑같이 생긴 것인지 의심했을 것이다.팔을 돌려서 자세히 찾아봤지만 어르신의 팔뚝에 있는 그런 자국은 하나도 없었고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피부밑의 혈관도 보일 듯 말 듯했고 아주 정상적인 색이었다.“저는 괜찮아졌어요. 독소는 이미 다 배출했어요.”김서진이 자신의 몸을 검사하고 있는 줄 알고 원철수는 긴장을 풀고 말했다.“제 스스로 맥을 짚어 봤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둘째 할아버지와 집안의 다른 하인들은…….”원철수는 이해하지 못했고 김서진은 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보아하니 이 모든 것을 알아내려면 어르신이 직접 설명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너무 바빠서 땀을 뻘뻘 흘리고 원철수는 침대 옆에 서서 혼비백산하여 말했다.김서진은 아무 말 없이 허리를 굽혀 어르신의 한쪽 팔을 이불에서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전에 김서진이 어르신의 팔뚝에서 보았던 그 붉은 자국과 볼록한 금은 모두 사라졌다.빼빼 마른 팔뚝, 차가운 촉감, 그러나 이전의 자국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환각이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다.김서진의 동작을 보고 원철수는 어리둥절해졌다.‘방금 김서진은 자신에게도 이랬고 지금은 또 둘째 할아버지께 이러는데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아니면 무슨 설이 있는 걸까?’“무엇을 찾고 있습니까?”머리를 가까이하고 원철수는 조금 궁금해서 물었다.갑자기 옆에 한 사람이 더 나타나자 김서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원철수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서진이 줄곧 말을 하지 않자 원철수는 더 이상 진정할 수 없었다.“저기요,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방금 이렇게 저를 조사하시고는 지금은 또 둘째 할아버지를 조사하시고,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 건가요? 제가 알 수 없는 것이에요?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잠시 멈추고 원철수는 물었다.“한소은이 당신한테 뭐라고 했어요?”김서진은 의술에 의학상의 이론을 잘 모른다는 것을 원철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서진의 이런 표정과 기색이 이렇게 진지한 것이 어쩌면 단서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믿을 수 없었다.만약 그렇다면 한소은이 김서진에게 무엇을 찾으라고 분부한 것이 아닐까?“아닙니다.”이 한 마디가 튀어나오자 김서진은 또 이불을 젖히고 어르신의 다른 한쪽의 팔에서 찾기 시작했다.김서진은 자신이 잘 못 기억하지 않았고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3시간 전, 어르신은 분명히 팔에 있는 끔찍한 자국을 보여주셨고 그것이 독충이라고 말씀하셨어. 그 후로는 더 이상 유용한 정보를 말씀하지 않으셨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