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안은 목소리를 낮추고 그에게 비밀스레 속삭였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그랬는데, 엄마는 XC 사장님이고, 아빠는 Z그룹의 사장이어서, 엄마 아빠가 외모로나 재력으로나 너무 잘 어울린다고 했어요.”“외할머니가 그러셨는데, 엄마가 사실 아빠를 엄청나게 좋아한대요!”윤지안은 열심히 성대모사를 했다.그리고 또 그에게 속삭였다. “사실 외할아버지도 아빠를 엄청나게 신뢰해요! 그냥 지금 자존심 때문에, 그리고 예전에 엄마 일로 화풀이하는 거예요.”이것도 지안이가 할머니한테서 들은 말이었다. 그러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강주환에게 말했다. “아빠, 화이팅!”“외할아버지가 아빠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아빠도 엄마랑 결혼하게 되면...”윤지안은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말하기를 망설였다. 그리고 마치 별빛을 머금은 듯한 큰 눈동자로 그에게 말했다. “그때 가서 저랑 오빠가 비밀 하나를 아빠한테 말해줄게요!”강주환이 물었다. “무슨 비밀?”윤지안은 말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아직 아빠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엄마랑 결혼하지도 않아서 자기랑 오빠가 모두 아빠의 친자식이란 사실을 말하면 안 된다.더구나 오빠가 엄마의 친아들이란 사실도 말하면 안 된다.“하하.”윤지안은 갑자기 손으로 입을 막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모든 사람이 사실 오빠가 엄마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오직 아빠만 모르고 있는 게 너무 재밌고 웃음이 났다. “아빠는 진짜 바보야!”...강주환은 이날 안씨 가문에 오래 머물렀다. 그는 두 아이와 같이 별장 정원에서 게임도 하고 달리기도 했다. 윤성아도 하던 일을 마치고 나와 그들과 합세했다. “엄마!”“아빠!”윤지안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정원에 울려 퍼졌다.그리고 강주환에게 달려가기도 하고, 윤성아의 품에 안기기도 하면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잔디밭에 넘어져도 깔깔 웃음을 지었다. 강하성은 그에 비해 매우 점잖았다. 하지만 아빠, 엄마,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하니 기분이 좋았다!아무튼
강주환의 시커먼 눈동자는 당장에라도 비바람이 휘몰아칠 듯 매서웠다. 그리고 그녀에게 대답했다. “곧 나올 거야!”강주환 쪽의 사람들이 천우혁과 안효주의 신분을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에 신명훈도 같이 조급해 났다. 그는 재빨리 안효주에게 전화해서 물었다. “설마, 저 몰래 운성에 갔어요?”안효주는 부정했다. 하지만 신명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강주환 쪽에서 이미 송태성 씨와 서영은 씨의 신분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게 지금 저한테까지 왔고요!”안효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명훈이 안효주에게 경고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강주환과 윤성아한테서 손을 떼요! 그리고 두 사람은 지금 당장 이쪽으로 와요!”“만약 제 말을 듣지 않는다면...”신명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다가 불같은 화를 내며 그녀에게 말했다. “만약에 무슨 사고라도 생기거나 강주환한테 붙잡히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만약 당신이 운성에서 죽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절대로 도와주지 않을 거예요!”안효주는 탈주범이었고, 천우혁도 마찬가지다.그들은 이미 소송에 걸려있는 몸이라 일단 잡히면 무조건 감옥행이다!안효주는 신명훈과의 이 전화 때문에, 개도 급하면 담장을 뛰어넘는다고 급히 오토바이를 몰고 그들을 치어 죽이려고 했다!만약 성공하면, 게임은 바로 끝이다.안 씨네 집으로 돌아왔다. 윤성아는 즉시 김은우에게 당부했다. “예전에, 감옥에서 죽은 사람이 안효주가 맞는지 당장 조사해 보세요.”“네.”김은우는 재빨리 조사하러 갔다. 이날 오후, 윤성아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확인해 보니 강주혜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강주혜가 갑자기 울먹이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성아 언니...”윤성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강주혜의 울음소리에 재빨리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흑...”“흑흑...”강주혜는 흐느껴 울더니 겨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저 어쩌면 좋아요?”“우리 어머니는 분명 송아름이 칼로 찔러 돌아
강주혜는 다시 남자에게 안경을 고쳐 씌워줬다.그리고 그를 보며 말했다. “네가 있는 곳에 갈래.”강주혜는 더는 남궁성우와 송아름 사이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냥 이 순간 만큼은 이 남자와 같이 있고 싶었다. “그래.”남궁성우는 강주혜를 데리고 그가 사는 아파트에 갔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원래는 고분고분하고 침착하고, 심지어 차 안에서 잠깐 잠까지 들었던 강주혜가 갑자기 남궁성우를 문 쪽으로 밀었다. “불 켤 필요 없어.”그리고 까치발을 들었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는 렌즈에 가려진 남자의 눈을 바라봤지만, 여전히 맑아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나 좋아해?”“응.”강주혜가 웃었다. 그녀는 까치발을 더 들어 다시 한번 남자의 코끝에 걸쳐진 안경을 벗기고 입맞춤했다.아직 입맞춤이 서툴지만 열정적이었다! 지금 그녀는 타오르는 불덩이와 같아 가까이에 있는 모든 걸 다 태워버릴 것 같았다. 당연히 남궁성우도 그중에 포함되었다!“좋아해.”“성우야, 내가 많이 사랑해!”여자는 아무런 숨김도 없이 그에게 사랑 고백했다. 그리고 서툴게 남자의 단추를 풀더니 발그스레한 얼굴로 다급하게 그의 목젖을 살짝 물었다. “오늘 밤, 네게 내 전부를 맡길게!”남궁성우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가만히 그녀의 행동을 즐기고 있다가 단번에 강주혜의 손목을 낚아챘다. “왜?”강주혜가 안개가 서린 듯, 촉촉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날 가지기 싫어?”“아니.”사실 남궁성우도 진작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몸 안의 모든 세포가 들끓는 것 같았다. 그는 침을 한번 삼켰다.남궁성우는 강주혜에 대한 욕망을 애써 억누르며, 불같이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난 제일 소중한 순간을 우리 결혼하는 그날 밤까지 아껴 두고 싶어.”“하지만 난 기다리기 싫어!”강주혜는 고집을 부렸다.예전에 남궁성우가 했던 이 말이 그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그들은 오랜 시간을 연
10분 뒤.강주혜는 긴 생머리를 축 늘어뜨리며 욕실에서 나왔다.그녀는 이미 옷을 다 갈아입은 남궁성우를 보며 말했다.“우리 오빠가 당장 너를 데리고 집으로 오래!”강주혜는 주눅이 들어 남궁성우에게 물었다. “우리 오빠가 설마 나를 때리진 않겠지?”“아닐 거야!”남궁성우는 순수한 눈동자로 여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주환 씨가 때려도 나를 때리겠지.”“그건 안되지!”강주혜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내가 어떻게 우리 오빠가 너를 때리는 걸 보고만 있어, 차라리 내가 맞는 게 낫지!”남궁성우는 웃음이 났다.그의 맑고 깨끗한 눈동자에서는 공부 잘할 것 같은 깔끔한 이미지가 보였다.그런데 이렇듯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그 모습을 본 강주혜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남궁성우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착하지, 우선 방에 가서 옷 갈아입고, 세수도 하고, 우리 같이 주환 씨 만나러 가자.”“응.”이곳에는 강주혜의 방도 있었다.바로 옆방이었다.강주혜는 옆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세수도 하고는 남궁성우와 함께 나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빠르게 강주환이 있는 곳으로 왔다.강주환은 거실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어두운 안색으로 긴 다리를 꼬고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아이가오기를 기다렸다가 훈육하려는 학부모의 모습과도 같았다!강주혜는 더욱 주눅이 들었다.그녀는 윤성아에게로 몇 발짝 달려갔다.“성아언니...”윤성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이번일 은 윤성아도 강주혜를 도와줄 수 없었다. “하지만...”강주혜는 윤성아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내가 언니를 제일 좋아하잖아요, 나의 새 언니잖아요! 오빠는 언니 말만 듣잖아요.”“성아 언니, 한번만 도와줘요. 딱 하나만요, 어젯밤 모든 일은 다 제가 잘못했으니까, 오빠가 성우를 때리지만 않게 해줘요.”윤성아는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는 이내 강주혜에게 물었다. “대체 얼만큼 잘못한거야?”
너무 아파!안진강은 너무 아픈 나머지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미간을 찌푸렸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윤지안이 걱정스레 물었다.“할아버지, 많이 아프죠?”안진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아파.”“할아버지 거짓말쟁이, 할아버지 눈썹이 송충이처럼 변했는데, 무조건 아프죠!”윤지안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진강의 다친 발 쪽으로 향했다.“호...”윤지안은 입으로 ‘호’하며 불어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안진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지안이가 ‘호’해주면 많이 아프지 않죠?”안진강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안이가 호 해주면 그 어떤 약보다도 안 아프지!”한편에서 가족 모두가 안진강을 둘러싸고는 화기애애했다.반면, 안효주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 이 모든 장면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원망과 독기로 가득 차, 마음속으로는 이미 모든 것을 박살 내고 싶은 욕망뿐이었다. 젠장!아빠, 엄마, 나야말로 당신들이 키운 딸이라고!어려서부터 지금까지, 20여 년은 내가 당신들을 아빠, 엄마라고 불렀는데, 결국엔 당신들이 먼저 내가 싫어졌다고 나를 버렸지! 어떻게 나를 감옥에다 버리고, 내가 죽는 걸 지켜볼 수가 있는 거지. 안효주는 들어오면서부터 이미 자세히 관찰했다. 이 집안의 모든 건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그녀가 성장하면서 봐 온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곳은 더 이상 그녀의 집이 아니었다.이곳의 모든 건 이젠 윤성아 그 나쁜x의 것이었다!뿐만아니라 안진강과 서연우는 윤성아 그 나쁜x년을 너무도 잘 챙겨주고 있었다. 한연 그룹도 손쉽게 윤성아에게 넘겨주고! 더욱이 윤성아가 낳은 자식새끼들까지도 이렇듯 잘해주다니.허허.안효주는 속으로 비웃었다. 나는 이렇듯 잘 못 지내는데, 당신들이 행복할 자격이 있어?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사람들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구석진 곳에 놓아두었다. 그러고는 다시 아무 일 없듯이 돌아와 앉았다. 잠시 후, 문복아저씨가 안진
서연우는 그 자리에 서서 그녀에게 딱 걸린 안진강을 쳐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당신, 금연에 성공했다는 게 고작 이런 거에요?”안진강은 난처해 났다.그러나 그는 지금 정말로 담배 생각이 시급했다. “허허.”그는 웃으며 아내를 달래듯 말했다.“딱 한대만! 내가 장담하는데 이번이 진짜 마지막 한대야! 내가 마지막 한대를 태우고 나서, 이 모든 걸 다 없애버릴게, 그러면 되지? 그러니까 이번 일은 지안에게 얘기하지 말아줘, 응?”서연우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안진강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안진강의 손에 든 담배를 끊어버리려던 그때.펑!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과 몇 미터 떨어진 거실에 있던 큰 식물에서 갑자기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격렬한 폭발음이 울림과 동시에, 별장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식물을 담은 큰 화분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거실의 소파며, 술 저장고 등 주변의 모든 물건에 날아가 꽂혔다!자욱한 연기가 하늘을 뒤덮은 황사처럼 집안 전체를 감쌌다. 붉은색의 불꽃들이 사방에 튀어 타올랐다. 끼익, 탕!거실 한가운데에 걸려있던 크리스탈등이 곧장 아래로 떨어졌다.거센 폭발은 비록 별장의 메인을 파괴하지 못해 집 전체를 무너뜨리진 못했지만, 장식용 석고판이며, 벽에 있던 시멘트들이 비처럼 서서히 녹아내렸다.순식간에 일어 난 폭발에도 안진강은 빠르게 서연우를 보호하며 말했다.“나가자!”안진강은 서연우의 손을 잡고 인츰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폭발과 함께 날아 온 유리 조각들은 안진강과 서연우의 몸에도 상처를 입혔다. 그들도 이젠 나이가 있기에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했다.두 사람이 겨우 몇 걸음 뛰쳐나가기도 전에 불길은 더욱 거세지며 그들을 향해 덮쳤다.그리고 폭발하면서 조각났던 술 저장고가 그대로 그들에게로 넘어졌다. 한편 별장 밖.폭발이 일어나면서 천우혁은 혼란을 틈타 그 속에서 빠져나왔다.안효주는 폭발음을 들었다. 차 문이 열리며 차에 앉은 천우혁을 본 그녀는 인츰 물었다.“어땠어?”천우혁은 그가 본
눈앞의 이 여자가 만약 임신했다고 해도 그저 천한 아이일 뿐이야!나엽의 아이는 그녀만이 가질 자격이 있었다!이렇게 생각한 임설영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그녀가 들고 있던 가방으로 향했다.그녀는 마치 자신이 나엽의 아이를 임신이라도 한 듯, 성공적으로 아들, 딸 각각 한 명씩 낳아, 그녀와 나엽이 아이들을 안고 함께 결혼의 전당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남숙자와 여자는 이미 병원 밖으로 나왔고 임설영은 아름다운 장면들을 상상하느라 그들과 한참이나 뒤처져있었다.그녀는 흐뭇하게 웃으며 병원 밖으로 나왔다.그런데...그때, 그녀는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 들어오는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임설영은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넘어지는 순간에, 그녀는 손목과 몸의 중량으로 가방을 그대로 짓눌러 버렸다. 임설영은 당황해서 이내 가방을 열어 확인했다.그녀의 가방에 들어있던 유리 시험관은 이미 깨져있었고, 시험관 안에 들어있던 액체는...망했다!그녀가 방금까지 꾸고 있던 아름다운 꿈은, 그렇게 깨져버렸다. 임설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그녀는 빨개진 눈시울로 그녀와 부딪힌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임설영과 부딪힌 사람은 다름 아닌 윤지안이었다.아이는 일찌감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러 가겠다고 난리를 쳤다.차가 멈추고, 김은우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들어가던 그때, 병원문을 넘자마자 윤지안은 김은우의 손을 놓고는 앞으로 내달렸다.윤지안은 달려가면서도 잊지 않고 고개를 돌려 김은우를 향해 말했다. “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8층 병실에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또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요.”아이가 너무 빨리 달린 탓에 주의하지 않아 그만 고개를 숙이고 웃고 있던 임설영과 부딪혔다. 그 순간, 윤지안은 자신이 사고 쳤음을 눈치챘다. 또한 임설영이 크게 화를 내자, 윤지안은 빨개진 눈으로 연신 사과했다.“미안해요, 이모. 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일부
역시 그런 거였어!김은우의 전화 한 통으로 윤성아의 의심은 더욱 확실해졌다. 그녀는 거의 단정할 수 있었다. 별장에 폭탄을 설치해 안씨 가문의 모든 사람을 해치려던 주범은 분명 안효주라는 것을!그러나...그녀는 빠르게 안씨 가문 별장의 감시카메라를 확보했다. 윤성아는 안진강을 부축하여 별장으로 들어오는 안효주의 모습을 보고는 이내 물었다. “저 여자는 누구예요? 어떻게 별장으로 들어오게 된 건가요?”문복아저씨는 얼른 안진강이 달리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안효주가 안진강을 모시고 별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얘기해 주었다.감시카메라에는 영상이 제대로 촬영되어 있었다. 안효주가 안진강을 부축하여 별장으로 들어오면서 그녀가 분명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별장을 나갈 때에는 가방이 사라져 버렸다.윤성아는 사라진 가방 안에는 분명 폭발물이 들어있을 거라 예상했다!또한 영상에는 간밤에 천우혁이 안씨 가문으로 잠입하는 모습도 찍혀 있었다. 그러나 천우혁이던, 안효주던! 그 둘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났기에 윤성아는 강주환이 밖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그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강주환은 화면에 나타난 안효주와 천우혁을 보더니 한눈에 알아보고는 말했다. “저 사람들은!”윤성아가 물었다.“저 사람들을 알아요?”강주환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 그는 윤성아를 보며 말했다. “며칠 전, 밤중에 우리를 미행했던 차 기억나? 그때 우리 뒤를 미행하던 사람들이 바로 저 사람들이야! 한 사람은 송태성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신영은이었어. 신분이 깨끗하고 이제 막 귀국한 커플이라던데. 저들은 우리와 가는 길이 같을 뿐, 미행하는 게 아니라고 했어. 하지만 나는 그런 우연을 믿지 않지!”강주환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사람을 시켜 저들을 조사해 보라고 했는데, 두 사람 모두 신명훈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강주환과 윤성아는 거의 동시에 단정 지으며 말했다. “신영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