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아는 더 이상 고은희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서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하성이가 어디에 있어요? 단지 그게 궁금해요.”고은희가 도우미를 보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에게 안내하세요.”“네.”도우미는 윤성아를 데리고 강하성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마침 방에서 송아름이 다정하게 강하성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하성은 그림에 재능을 보였는데 머리를 푹 숙인 채 작은 손에 쥔 색연필로 스케치북에 여자와 남자가 손잡는 그림을 그렸다.비록 그림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림에서의 남자는 강하성이고 그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는 송아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올라오는 인기척에 송아름은 머리를 들어 온화한 웃음을 지었다.“아름 씨, 오셨어요?”“네.”그녀는 덤덤하게 대답하고는 강하성에게로 다가가 열심히 그리고 있는 그림을 지켜보았다. 그림을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송아름은 강하성의 목숨도 구해줬기에 하성이가 송아름과 손잡고 있는 그림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하성아, 엄마가 데리러 왔어.”윤성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윽하게 강하성을 바라보았다.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그림 다 그리고 나서 가자? 응?”강하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윤성아와의 신체 접촉을 꺼렸다.곧바로 차가운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저는 남자에요, 이제부터는 머리 만지지 말아주세요!” 윤성아는 움찔하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엄마가 이제는 만지지 않을게.”하지만...윤성아는 강하성의 태도가 유달리 쌀쌀맞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가까지 하는 것도 모자라 밀어내는 느낌을 받았다.그러면서 강하성은 싸늘한 말투를 이어갔다.“엄마 따라 가지 않을래요! 할머니 말이 맞았어요. 아름 이모가 최고예요! 아름 이모가 아빠랑도 더 잘 어울리고 저의 엄마도 되어줄 거고요!”윤성아는 큰 충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성아, 그게 무슨 말이야!”“말한 그대로예요!”송아름의 얼굴에는 약간은 뿌듯해하는 표정이
이때 고은희가 앞질러 말했다.“하성이가 이 여자가 싫다며 따라가지 않으려 했어!”“그런데 이 여자가 다짜고짜 아이를 빼앗았어!”고은희는 울며 보채는 강하성이 안쓰러운 나머지 강주환에게 제구실 못 한다며 잔소리했다.“잘 봐, 이게 바로 네가 반해서 기어코 결혼하겠다는 여자야!”“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본색을 드러냈어.”“벌써 내 손자 뜻을 무시하고 이렇게 울리는데 앞으로 집에 바람 잘 날이 있겠어?”강주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쪽 말만 들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는 윤성아에게 다시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윤성아를 바라보는 그의 새까만 눈동자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뭘 더 물어볼 게 있어?”고은희가 또 참견했다.“너는 하성이 겁에 질려서 서럽게 우는 게 안 보여? 하성이 울음소리가 안 들려?”윤성아 품에 안겨 있는 강하성은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채로 윤성아를 향해 마구 발길질하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물론 강하성의 울음소리도 들렸다.강주환은 미간이 더욱 찌푸려지고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그 자식을 나한테 줘!”“...”설마 이 남자도 내 아이를 빼앗으려는 건가? 그녀는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걱정 마, 빼앗지 않아.”강주환은 사랑 가득한 눈으로 윤성아를 보며 말했다.“이 자식 발길질에 당신이 다칠까 봐 그래!”아들도 중요하지만 그에게는 아내가 더 중요하다.윤성아는 그제야 강하성을 강주환에게 넘겨주면서 강하성의 이상한 행동과 반드시 병원에 검사 받으러 가야 한다는 것도 얘기했다.강주환이 알았다고 하자 강하성이 소리 질렀다.“난 병원에 안 갈 거야.”강주환은 자기 품에 안겨 있는 꼬맹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아빠한테 말해봐, 너 전에는 엄마를 무척 좋아하지 않았어?”“오늘 왜 그래? 왜 엄마랑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거야? 그리고 갑자기 엄마한테 쌀쌀맞게 굴고?”강하성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잠깐의 망설임과 갈등을 보였지만 그건 단지 한순간이었다. 그는 이내 눈빛이 차가워지며 말했다.
그는 엄마를 좋아하는 게 맞지만...“아가, 넌 지금 아픈 거야.”“엄마를 믿어. 네가 무슨 병을 앓든 엄마는 반드시 너를 낫게 할 거야. 예전의 너로 돌려놓을 거야.”...영주시의 어느 병원에서 깨어난 원이림, 머리가 너무 아프고 온 몸이 쑤신다.내가 다쳤나?빌어먹을! 어떤 놈이 나를 이 꼴로 만들었어?그리고 중요한 거래처를 접대하는 자리에서 자기가 만취 상태가 되자 여은진이 호텔 방을 잡아준 기억이 났다.이 여자가 환경을 바꿔 나랑...며칠간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았던 터라 그 역시 마음이 동했다.그는 호텔 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샤워했고 그 후 벨 소리가 울리고 룸서비스가 도착했다.원이림은 모든 것이 생각났다.그 후 윤성아가 호텔 방에 들어왔고 그는 이성을 잃고 윤성아를 덮쳤다.빌어먹을!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지?너무 후회됐다.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이제 무슨 낯으로 윤성아 앞에 나타나겠는가?원이림은 맥이 쭉 빠졌고 갑자기 삶의 희망과 모든 생명력을 잃은 사람처럼 넋을 잃고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었다.하루, 이틀, 어느새 사흗날 저녁이 됐다.“빌어먹을!”원이림은 낮은 소리로 욕했다.그는 무서울 정도로 음울한 눈빛을 하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뭔가 조사하라고 시켰다.얼마 후 전화가 걸려 왔고 조사 결과는 그의 추측과 맞아떨어졌다.화나서 미칠 지경이다.무서울 정도로 안색이 어두워진 원이림은 즉시 병상에서 몸을 일으켜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병원을 떠났다.그는 직접 여은진의 아파트 앞에 나타났다.벨을 누르자 여은진이 문을 열었다.아파트 문 앞에 나타난 남자를 본 그녀는 어리둥절해했다.“대표님, 무슨...”말이 끝나기도 전에 원이림은 여은진의 목을 졸랐고 눈이 새빨갛게 충혈됐다.“빌어먹을! 네가 감히 나를 모함해?”온몸이 살기와 분노로 가득 찬 그는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하마터면 여은진을 그대로 목 졸라 죽일 뻔했다.“대, 대표님.”여은진은 원이림의 큰 손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얼굴이 빨갛다
그 모습은 마치 이 큰 침대 위에서 여은진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는 것 같았다.“오지 마요.”“싫어요!”여은진은 놀라서 뒤로 물러갔다.“놓아주세요, 제발! 저는 정말 당신을 모함하지 않았어요.”이 순간 악마가 되어버린 남자를 겁먹은 눈으로 바라보며 그녀는 한없이 울었다.“당신을 좋아하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제발, 놓아주세요…”“복수도 도와줄 필요 없어요. 당신 곁에서 멀리 떠나갈게요. 살려만 주세요. 제발…”여은진은 이 순간 남자 손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원이림은 그녀의 발목을 힘껏 잡아당겨 침대에 쓸어 눕히고 우람진 몸뚱이로 그 위에 올라탔다.이 캄캄한 밤, 여은진은 마치 끝없는 나락과 지옥에 던져진 것 같았다.그녀는 까무러쳤다 깨어났다를 반복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어둠이 걷히고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오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는 어떤가? 지옥과 나락에 던져진 그녀는 언제 밝은 빛을 볼 수 있을까?배가 또 아파져 왔다. 너무너무 아프다. 늦어진 생리가 이제 오려는 건가?그녀는 모든 것을 견디며 영혼 없는 낡은 인형처럼 머릿속에서 잡생각을 하고 있었다.날이 점점 더 밝아오고 원이림이 끝내 행동을 멈췄다.그는 온몸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고 여은진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직접 아파트 위층으로 돌아갔다.…꽈르릉! 하늘을 찢을 듯한 번개와 함께 쩌렁쩌렁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여은진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려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녀는 창백한 얼굴과 공허한 눈빛을 한 채 먹구름에 덮여 당장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꽈르릉! 꽈르릉!연이어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콩알만 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여은진은 폭우가 쏟아지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배가 점점 더 아파져 왔고 밑이 빠질 것 같은 아픔과 뒤늦게 찾아온 생리 때문에 여은진은 더 이상 시체처럼 누워있을 수 없었다.그녀는 간신히 일어섰지만 이내 맥없이 다시 쓰러졌다.한참
여은진은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증오에 찬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난 아직 너한테 복수할 능력이 없어.”“하지만 언제든지 할 거야.”여석진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누나.”그는 어릴 때부터 그녀를 이렇게 불러왔다.차분한 눈빛으로 여은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누나 어젯밤에 기절했어요. 내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임신했다고요!”“그 자식이 이렇게 괴롭힌 거에요?”내가 아끼는 누나를 누구도 괴롭혀서는 안 된다.그는 독기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 놈을 죽여버릴 거야.”여은진은 어리둥절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석진을 바라보았다.“뭐라고?”임신이라니! 그럴 수가? 분명 어제 밤 생리도 왔는데...하지만 그게 생리가 아니었다면?여은진은 어제 밤 배가 너무 아프고 출혈량도 생리가 왔을 때와 달리 엄청 많았던 것이 기억났다.설마 정말 임신이란 말인가? 그렇다면...그녀는 평평한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허허! 너무 멍청한 것이 아닌가?생리가 그렇게 늦어졌는데도 임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아이가 없어지다니.여은진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차라리 날 죽여줘.”그녀는 초점을 잃은 까만 눈동자로 여석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삶의 희망을 잃었고 복수고 뭐고, 그냥 죽고 싶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안 계시고 바보처럼 자기 아이까지 죽게 했다. 죽으면 아버지, 어머니조차 보지도 못한 채로 떠나보내야겠지?여석진은 한심한 듯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이가 아직 살아있으니, 누나도 죽을 필요 없어요.”초점을 잃었던 그녀의 눈동자에 금방 생기가 돌았다.“내 아이가 괜찮다고? 아직 살아있어?”“응.”“그때 많이 위험하긴 했지만 내가 제때에 병원에 데려온 덕분에 아이는 다행히 살아있어요.”여석진은 한 마디 더 보탰다.“이 아이가 누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어느 한순간 여은진만 무사하다면 그녀 배 속의 아이는 차라리 유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유산되면 여은진과 그 남자는 더
그는 양도서와 서약서, 그리고 사인펜을 여은진에게 건넸다.“사인해요.”여은진은 놀라운 듯 눈이 휘둥그레져서 앞에 있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네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손에 넣은 주식을 이렇게 쉽게 나한테 준다고?”“그럴 리 없을 것 같은데.”하지만 여은진은 그녀의 사인이 꼭 필요하다는 서약서를 보고는 이내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그녀가 여석진과 결혼해서 여석진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이다.게다가 그녀는 주식을 보유할 뿐 여신그룹의 관리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즉 여신그룹의 실제 권력자가 여석진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허허.”여은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여석진, 넌 진짜 계산에 밝구나.”“나랑 결혼하려고 주식을 주는 거였어. 게다가 여전히 네가 회사와 여씨 가문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어.”여은진이 이렇게 오해하자 여석진은 즉시 해명했다.“누나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우리를 결혼시키는 건 부모님의 마지막 소원이였고 두 분은 오래전부터 이 생각을 갖고 계셨어요.”“그리고 제가 계속 회사 관리에 참여하는 것은 누나가 너무 단순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여유롭게 대처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죠.”“주식은 다 누나 거야.”“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단지 너의 일꾼으로 살고 싶은데, 그것도 싫어요?”“꿈도 꾸지 마!”여은진은 차가운 눈초리로 여석진을 쳐다보며 말했다.“우리를 결혼시키는 것이 부모님의 마지막 소원이고 회사도 두 분이 너한테 줬지만, 그때는 두 분이 너의 정체를 몰랐어.”“두 분은 아마 죽을 때까지도 차 사고가 너랑 관련이 있다는 걸 모르셨을 거야.”미간을 찌푸리는 여석진, 그런 그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여은진은 말을 이었다.“게다가 난 널 사랑하지 않아.”“나에게 너는 이전에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동생이자 가족이었고 지금은 원수야.”“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너랑 결혼하지 않을 거야.”여석진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서 죽을 것 같았지만 얼굴빛은 하나도 변하지
한편, 원이림은 하루가 지나도록 출근하지 않은 그 여자가 궁금해졌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휴가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어젯밤 애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기를 놓아달라고했다. 비록 그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안 그러겠다고, 복수를 도와줄 필요도 없고 멀리 떠나겠다고 했다.“빌어먹을!”원이림은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나를 모함했는데 어떻게 가만둘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죽을 만큼 힘든 벌을 내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허허, 내가 말했잖아? 네가 나한테 빚진 거라고. 내가 끝났다고 말하기 전까지 너는 영원히 나의 노리개로 살 수밖에 없다고.원이림은 딴사람이 돼버렸다. 지금의 그는 온몸에 독기가 가득하다.그는 퇴근 시간이 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 외투를 들고 나갔다. 급히 차에 오른 그는 가속 페달을 밟아 곧바로 아파트로 향했다.그는 큰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탄 후 여은진이 사는 층수를 눌렀고 조금 뒤 그의 훤칠한 모습이 여은진의 아파트 문 앞에 나타났다.벨을 누르려는 순간 출입문이 약간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문을 잠그지 않다니, 원이림은 문을 열고 들어가 직접 침실로 향했다.침실의 큰 침대 위는 깨끗이 정리할 틈이 없었는지 난잡하게 어질러진 상태였고 침대 위와 바닥에 말라버린 피가 섬뜩하게 남아있었다.원이림은 머릿속이 쿵 하고 울렸다.어떻게 된 거지?설마 그 여자가 다친 건가? 아니면...내가 어젯밤에 너무 험하게 굴어서 그 여자가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건 아니겠지?그 가능성을 생각하자 원이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조금 무서워졌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슴속부터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지면서 다리 힘이 쫙 풀렸다.“누구세요?”차가운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려보니 훤칠한 키의 여석진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허! 원 대표님, 뭘 보고 있어요?”원이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쌀쌀맞게 말했다.“여긴 뭐 하러 왔어?”여석진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살기등등해서 다가오더
여석진은 원이림에 대한 여은진의 짝사랑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원이림은 듣고 나서 미간을 찌푸렸다. 자기를 향한 여은진의 사랑이 이렇게 깊은 줄을 전혀 몰랐다.19살 때부터 나를 좋아하고 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노력을 했다고? 줄곧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다고?하지만 그러면 뭘 해? 나에 대한 사랑이 깊다고 나를 모함해도 되는 건 아니다.이때 여석진이 차분한 눈으로 원이림을 보며 갑자기 질문했다.“우리 양부모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요?”“...”그가 입을 열기 전에 여석진이 말을 이었다.“부모님은 누나에게 마음속에 담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어요.”“그리고 그 남자가 당신이고 당신은 누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게다가 좋아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왜 상처는 줬어?”“좋아하지 않는데 왜 관계는 가져서 누나의 순결을 빼앗았어요?”“부모님이 모든 걸 알게 되고 당신을 찾아가 결판을 내려 했어요. 남의 귀한 따님을 어떻게 할 건지 따지려 한 거지.”“하지만...”여은진의 부모는 결판을 내려고 원이림을 찾아가는 길에 차 사고가 났다.부모님은 눈을 감을 때까지 그녀가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불행하지 않을까, 오로지 딸 걱정뿐이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여신그룹과 여씨 가문의 모든 것, 그리고 소중한 딸까지 여석진에게 부탁했다.“누나는 아직 이 사실을 몰라. 알게 되면 받아들일 수 없을 거야.”“부모님이 자기와 당신 사이 일을 알고 당신을 찾아가 따지려다가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면, 자기 자신과 당신을 죽도록 미워하게 될 거야. 심지어 평생 자신의 불효를 용서하지 못하겠지.”생각 밖의 진실에 원이림은 충격을 받았다.여석진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그런 그를 차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원이림, 당신이 누나에게 준 것은 고통과 재난과 상처뿐이야.”“끝나게 돼서 다행이고, 오늘부터 당신은 우리 누나와 아무 관계도 없어.”여석진은 사직서를 꺼내 원이림에게 넘겨주었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