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환은 원이림을 보고 웃는 강하성을 보자 속이 뒤집혔다. ‘이 자식 저쪽이 적군인 걸 모르나?’ 강주환은 큰 보폭으로 걸어가 강하성을 데리고 가고 싶었으나 어제저녁 하성이를 여기에 두기로 한 약속이 생각났다. 게다가 강주환은 지금 안진강의 집 안에 있었다. 안진강과 서연우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했다가는 더욱 자신을 곱게 보지 않을 것이다. 강주환은 표출할 수 없는 분노를 누르고 핸드폰을 꺼내 자신의 여자한테 고자질했다. 그러자 한연그룹 책상 위에 놓인 윤성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왜 아직도 안 와? 내가 얼마나 더 냉대를 받아야 와줄 거야?]핸드폰을 들어 강주환이 보낸 메시지를 발견한 윤성아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보냈다.[어쩔 수 없어요. 아마도 조금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아요.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어요.]사실 바쁘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집으로 가지 않은 건 안진강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강주환이 집으로 왔으니 윤성아 보고 집에 오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윤성아도 방법이 없었다. 강주환은 불쌍해 보이는 이모티콘을 보내왔고 그것을 본 윤성아는 강주환이 보낸 게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대단한 대표님께서 이런 이모티콘도 보내실 줄 알았던가? 보낸 사람을 확인하던 중 다른 문자가 하나 더 울렸다. [내가 안 씨 집안에서 무시당하고 냉대받는 건 그렇다 쳐. 하지만 원이림이 나한테서 당신을 뺏어가려고 하고 있어. 게다가 내 아들까지 구워삶아서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더 중요한 건 하성이가 그 사람을 보고 웃었다는 거야. 어제 당신과 한 약속만 아니면 정말 지금 당장이라도 하성이를 데리고 나가고 싶어.]두 사람은 연신 문자를 주고받았다. 강주환이 그래서 언제 올 거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윤성아가 보낸 문자메시지가 울렸다. [아마도 당신이 그 집에서 나온 다음에 들어갈 것 같아요.]강주환은 이해되지 않은 듯했지만 바로 문자를 보냈다. [내가 데리러 갈게.]강주환은 그 길로 안 씨 집 안에서 나와
두 사람은 서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달콤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런 달콤함 한도 초과한 연애 감정은 핸드폰 화면을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열흘이 지나갔다. 이날은 송아름이 퇴원하는 날이었다. 고은희는 송아름을 데리고 강주환의 본가로 가서 자신의 친딸처럼 보살펴주었다. “은희 이모, 주환씨는요? 요새 엄청 바쁜가 봐요. 며칠째 주환씨를 못 봤어요.”고은희는 자기 아들의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났다. “바쁘기는 무슨, 불여우한테 마음을 홀려서 영주와 운성을 왔다 갔다 하느라고 바쁜 거지. 게다가 하성이마저 불여우한테 주겠다고 나서니 나 원 참.”고은희는 연신 투덜댔고 송아름은 듣다가 중간중간 맞장구를 쳐주었다.“아름아, 혹시 우리 주환이가 보고 싶은 거니?”바로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져서 쑥스러워하는 송아름을 보고 고은희가 웃었다. “아이, 아름 이모.”“하하,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이따가 주환이한테 전화해서 오늘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하마.”그날 저녁, 본가로 온 강주환과 전에 없이 분위기가 좋았으나 고은희의 한마디에 또다시 냉랭해졌다. “주환아, 이제 아름이의 몸도 회복됐으니 다음 달 3일 너희 두 사람 약혼하는 건 어떻겠니?”“어머니,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성아 말고 다른 사람하고는 약혼을 하지 않을 거예요.”말을 마친 강주환은 바로 몸을 일으켜 밥을 채 먹지도 못하고 자리를 떴다.“너 어디를 가려고 그래?”“갈게요.”“거기 서!”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강주환을 보자 고은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 소리쳤다. “당장 서지 못해!”여전히 무시하는 강주환을 송아름이 달려가 붙잡았다.“주환씨, 은희 이모는 주환씨 어머니잖아요. 별일 아닌 거로 서로 마음 상하지 말아요. 이렇게 가면 이모 심장이 또다시 힘들어지실 거예요. 며칠 동안 잠을 잘 주무시지 못해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그 말을 들은 강주환은 잠시 멈칫했고 송아름은 계속 말을 이었다.“약혼하기 싫은 주환씨 마음 알아요. 저도 약혼 얘
송아름은 삼계탕을 들고 강주환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똑똑.”노크한 후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송아름은 강주환이 영상통화 화면을 꺼버리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얼굴에는 자상한 웃음을 띠고 애정 가득한 눈길로 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영상 통화한 사람은 당연히 그 여자겠지? 송아름은 씁쓸한 기분을 느꼈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최대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주환씨, 방금은 성아 씨랑 통화 중이셨어요?”“네.”송아름을 쳐다보며 대답하는 얼굴에는 방금까지 자상하고 애정 가득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강주환은 침대에서 내려오며 송아름과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따뜻함이 있었지만 아까랑은 차원이 달랐다. 어떠한 애정도 없었고 송아름이 그토록 원하는 끈적하고 깊은 사랑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밤에 무슨 일이에요?”“저녁을 제대로 못 드셨다고 은희 이모가 특별히 삼계탕을 우려줬어요. 저한테 전해주라고 하셔서요.”송아름은 웃으면서 강주환을 쳐다보았다.“은희 이모 마음이에요. 주환씨, 아무리 두 분이 싸우셔도 은희 이모도 어쩔 수 없는 엄마예요. 마음속에는 항상 주환씨를 생각하고 계세요.”“알고 있어요.”방안은 강주환의 남자 피부 냄새로 가득했다. 어스름한 방안 불빛에 비친 강주환의 체격은 키가 크고 날렵했다. 선이 굵은 이목구비가 시선을 끌었고 정장 바지와 단추를 두게 정도 풀어놓은 하얀 셔츠 속으로 얼핏 보이는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는 송아름이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강주환의 냄새로 가득한 방안에서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잠시 후에 일어날 일이 생각나서 송아름은 심장박동이 빨라짐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주세요.”강주환이 걸어와서 손에 있는 탕을 가져가려고 하자 송아름의 시선은 강주환의 단단한 팔뚝에 향했다. 살짝 접어놓은 셔츠 소매가 강주환이 움직이자 팔꿈치까지 올라가며 그 밑으로 굵은 전완근이 드러났다. 송아름은 심장이 북을 치는 것처럼 둥둥 울렸다. 게다가 탕을 가져가려고 할 때 슬쩍 닿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간 강주환의 주변은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머니, 어머니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에요. 어릴 적부터 저랑 주혜를 힘들게 키우신 거 알아요. 하지만 이번 일에서만큼은 저도 물러나지 않을 거예요. 아까 그 탕약은 어머니가 꾸민 일이 아니라 저에 대한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요.”“주환아, 엄마 말 들어.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아름이랑 잘되기만 하면 엄마가 뭐든 네 말을 들어줄게.”“그럴 수 없어요.”방문은 잠겼고 강주환과 송아름은 나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아까 그 탕약은 너무도 효과가 좋았다. 인삼, 녹용은 물론 정력에 좋다는 온갖 귀한 약재들이 들어갔다. 강주환은 온몸이 불타올랐고 이마 우에 핏줄마저 튀어나왔다. 송아름이 부끄러운 듯 발그스름한 얼굴을 하고 걸어와서 말했다.“주환씨, 아름 이모 말을 들어주세요. 이모는 정말 주환씨를 위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아름 이모가 말씀하시길 성아 씨가 운이 좋지 않다고 들었어요. 전에 그렇게 주환씨를 망쳐놓고 지금은 또 모자 사이를 갈라놓잖아요. 게다가 제가 주환씨를 좋아해요.”마음을 고백한 송아름은 이를 악물고 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면 소재의 원피스 하나를 입고 있던 송아름의 옷은 살짝만 잡아당기면 바로 벗겨질 수 있었다. 강주환은 미간이 좁혀졌다. 몸은 버티기 힘들었고 몸속의 열기가 날뛰었지만 보이는 표정은 더없이 냉랭했다. “지금 뭐 하는 것에요? 빨리 옷 입어요.”송아름은 모든 걸 내던진 듯 계속해서 옷을 벗었다. “주환씨, 저를 봐주세요. 정말로 저를 좋아하는 마음은 없나요?”계속 쳐다볼 수 없어 눈을 감아버린 강주환은 천천히 침대 옆으로 걸어가서 침대 위의 얇은 이불을 챙겨 송아름 몸에 던져주었다. “저는 송아름 씨가 선을 지킬 줄 아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친구가 되겠다 한 거예요. 하지만 오늘의 이 모습은 너무도 실망스럽네요.”강주환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당당했던 송아름이었지만 송아름도 지금의 자기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그러
송아름은 중심을 못 잡고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바닥에 앉아서 강주환이 잡아주지 않는 바람에 접질리게 된 발목을 붙잡고 원망 섞인 얼굴로 강주환을 올려다보았다.“저를 잡아주실 생각은 없으세요?”강주환은 차가운 얼굴로 내려다보며 일으켜 세워줄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갔다. “주환씨!”바닥에 앉은 채로 강주환을 불러세운 송아름은 얼굴을 들어 자신을 이렇게 만든 남자를 쳐다보았다.“그날 밤 일은 저도 정말 몰랐어요. 은희 이모가 하신 일이에요. 저는 정말로 주환씨를 좋아해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강주환은 여전히 냉랭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아름 씨는 잘못 없어요. 그저 제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에요.”차가운 눈동자가 송아름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는 회사예요. 부사장님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옷은 앞으로 주의해주세요.”이렇게 입은 것도 다 강주환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인데 그렇게 말하니 괜히 억울했다. 강주환이 마음을 접고 더는 윤성아 그 여자한테 휘둘리거나 정신을 팔게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 말했잖아요. 저한테 시간과 정성을 들일 필요 없다고. 당신이 옷을 다 벗고 있어도 저는 아무런 마음도 생기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옷을 어떻게 입었든 저한테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강주환은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리며 망설이는 기색이 없이 말했다. 송아름은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몰랐다. 강주환이 이렇게 자신을 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환씨, 정말 저를 이렇게 대하실 거에요? 우리 친구잖아요. 술도 같이 마시고 속마음도 털어놓고 했잖아요. 아니에요?”“제가 사람 잘못 봤어요. 당신이 눈치 있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같은 행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냉담하게 말하고는 강주환은 몸을 돌려 문으로 가서 밖에 있는 진하상을 불렀다. “송아름 씨를 병원에 모셔다드려.”“네.”진하상은 앞으로 걸어가 송아름을 일으켜 세우고 병원으로 향했다.강주환을 꾀는 일이 번번이 실패로
강주환은 윤성아가 불필요한 오해를 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송아름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송아름은 호진 그룹의 부사장이 맞긴 하니까. 강주환은 다시 송아름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가봐.""네." 밖으로 나갈 때, 송아름은 윤성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강주환, 회사 부사장이라며? 내가 듣기론 여자 목소리인데? 게다가 뭔가 익숙했어." Comment by 玄智敏: 语境不对,女主对男主应该说敬语강주환 웃는 얼굴로 윤성아를 달래며 말했다. "역시 우리 여보, 총명하다니까!" 빳빳한 슈트를 입고 있는 두 사람, 영주 호진 그룹 대표와 운성 한연 그룹 대표, 그들은 비즈니스에서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였다.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똑같이 살벌하기도 해서 그런지 점점 더 부부 같아 보였다. 하지만 둘만 있을 때는 모든 신분을 버리고, 단지 상대방을 애인으로서 사랑할 뿐이었다. Comment by 玄智敏: 자격,지위 뒤에는 -로서를 붙여서 사용한편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송아름의 머릿속에는 강주환이 윤성아와 영상 통화를 할 때의 따듯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맴돌았다. 평소의 싸늘하고 차가운 강주환과는 다른 사람 같았다. 송아름은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분노 때문에 책상 앞에 있는 모든 물건을 내던지는 것으로 화를 풀고 싶었지만 참았다. 송아름은 오랫동안 자신의 기분을 조절했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던 순간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워졌다. "이모, 하성이 일은 제가 이미 주환 씨한테 말했어요." "주환이가 안된다고 했어.""그러면 하성이는 아름 씨의 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송아름도 어쩔 수 없었다. 강주환의 의지가 이 정도로 강하지 않았으면, 자신이 좀 더 쉽게 행동할 수만 있었으면, 아이한테까지 손을 댈 일은 없었다. "빌어먹을! 내 손자가 그 천한 여자와 같이 사는걸 내가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안씨 가문에 사람을 보내서 아이를 데려오고 말겠어!” 이렇게 말하고 고은희는 전화를 끊었다. 강주환이야말로 강
서연우는 강주환이 아이를 데려갔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나 즉시 윤성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아야, 강주환 정말 너무한 거 아니니? 사람을 보내서 아이를 데려갔어!" "금방 지안이를 데려갔어!"윤성아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강주환이 내가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걸까? 지안이도 그의 아이라는 것을 아는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흥! 우리 별장 가의 보안도 눈치채지 못하게 순조롭게 아이를 데려가는 짓은 강주환밖에 할 사람이 없어! 강주환은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니? 지안이가 놀라거나 상처받으면 어떡해?" 서연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 우선 조급해하지 마세요. 만약 지안이를 데려간 사람이 정말 강주환이라면 지안이는 안전할거예요! 그런데..."윤성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당장 전화해서 물어볼게요.” 윤성아는 다시 한번 서연우를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강주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강하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강주환은 누군가가 그를 사칭하여 윤지안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역시 강하성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윤성아의 전화를 받으면서 말했다."지안이를 데려간 일은 내가 시킨 게 아니야. 하지만 무서워하진 마, 내가 당장 조사해 볼게. 지안이에게 아무 일도 없도록 할 거야." 경호원들은 윤지안을 강씨 가문의 별장으로 데려갔다. 아이를 데려왔다는 것을 듣고 고은희와 송아름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반가운 표정으로 강하성을 맞이하려 했다.하지만 그 아이는 강하성이 아니었다. "이 아이는 누구야?"고은희는 길고 검은 머리에 동그랗고 큰 눈을 가진 윤지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누구의 아이를 데려온거야?" "...” 경호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우리가 별장에 들어갔을 때 이 아이를 보고 강씨 가문의 아이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어요!""하지만 안씨 가문에는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는데...""멍청한 것들!" 고은희는 정말 화가 났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이것도 헷갈릴 수
고은희는 계속해서 안 좋은 말을 해댔다. "어머니!" "이렇게 입만 열면 욕을 하는 것이 강씨 가문의 며느리로서 마땅한 모습인가요?" "어머니께서 사람을 보내서 남의 집 아이를 뺏어온 거예요? 아이를 빼앗는 행위는 불법이라는 걸 모르나요?”"안씨 가문에서는 이 일을 얼마든지 신고할 수 있어요. 안씨 가문에서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이 지금 어머니를 당장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할 수도 있다고요.” "…" 고은희가 막 무슨 말을 하려던 참에 송아름이 그녀를 한 번 잡아당기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모, 다른 사람의 아이를 뺏어온 건 확실히 우리가 잘못했어요. 주환 씨가 말한 것도 다 사실이에요." "…" 그녀의 기를 죽이고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단지 하성이를 집으로 데려오라고 했을 뿐인데, 그들이 그렇게 쓸모없을 줄 누가 알았겠어. 얘들이 사람을 잘못 데려온 거야."송아름도 나서서 고은희의 편을 들었다. 그녀는 온화하고 순수한 눈빛으로 강주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모는 하성이가 너무 그리워서 그런 거예요. 하성이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지 다른 악의는 없어요. 이모도 아이를 잘못 데리고 올 줄은 몰랐을 거예요. 이제 안씨 가문에게 잘 설명해서 아이를 돌려보내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하성이는 결국 강씨 가문의 아이잖아요!" "하성이도 운성시에 오래 있었으니 이젠 데려와서 이모랑 함께 지내도록 해야 하지 않겠어요?" 송아름은 강주환과 상의를 하려고 했다. "먼저 하성이를 데려오고 이제 운성시로 돌려보내고 싶을 때 다시 보내면 안 돼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강주환을 보면서 고은희는 화를 내며 말했다. "우리 강씨 가문의 아이는 당연히 강씨 가문으로 돌아와야지! 왜 운성시로 돌려보내?” 고은희의 눌렀던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강주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도대체 언제 하성이를 집으로 데려올 생각이냐? 나는 내 손자가 보고 싶어!”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강주환은 건성으로 대답했다."언제까지 기다려?”
남서훈은 싱긋 웃었다.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으로 정확히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느낌은...“아마 남동생일 거야.”“아... 남동생...”양나나는 눈을 굴리더니 남서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남동생도 좋은 것 같아요. 동생 태어나면 저랑 엄마가 동생한테 의술도 가르쳐주고 아빠랑 사업하는 것도 배우고요. 그리고 남자애는 너무 응석 받아줄 필요도 없고 내가 맘껏 부려 먹을 수 있잖아요.”자기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양나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어떻게 생긴 남동생이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날까, 양나나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그러나 남서훈이 임신 다섯 달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양나나는 실종됐다.양준회와 남서훈은 매일 안절부절못하여 속이 타들어 갔다.둘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 전 세계 각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양나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양나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때 양나나는 이미 8살이었다.남서훈은 딸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갔다.그걸 보는 양준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나는 똑똑한 아이야. 당신이 의술과 독 쓰는 법도 잘 가르쳐줬으니까 별일 없을 거야. 나나는 너와 내가 낳은 딸이야. 전에 풍운파에 혼자 몰래 들어가서도 그 안을 마구 헤집고 다녔잖아.”아무튼 그는 양나나가 어디에 가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던 자신을 잘 보호할 거라고,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남서훈을 위로했다.남서훈도 굳게 믿고 있었다. 양나나의 시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의 딸은 세상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거라고.그 후 넉 달이 지났다. 9달이 된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다.양나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다 남서훈은 아들을 낳았다. 강보에 싸여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며 남서훈은 양나나를 그리워했다.“나나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 뒤꽁무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양준회와 남서훈, 그리고 백나연과 성진훤, 이렇게 네 사람은 백무산을 찾아갔다.그를 만나자마자 양준회와 성진훤은 백무산한테 사과부터 했다.어리둥절한 백무산은 그들이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후 양준회는 남서훈의 어깨를 와락 감싸안았고 성진훤도 보란 듯이 백나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성진훤은 원래 양준회처럼 백나연을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미래 장인어른이 될 사람 앞이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만 잡았다.백무산은 더 혼란스럽고 얼떨떨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눈알이 튀어져 나올 듯하게 그들 넷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때 양준회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우리 서훈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남씨 집안의 특수한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남장을 했던 것이고, 백나연 씨와의 혼약도 그저 소동극이었습니다. 이 일은 서훈이한테 책임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노여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푸세요.”그 말에 백무산은 눈살을 찌푸렸다.남서훈이 여자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여자가 그의 딸과 약혼했다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백무산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러자 백나연이 나섰다.“아빠, 이 일은 서훈이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제가 꼭 도와달라고 했어요.”“뭐야? 널 도와줘?”“네.”백나연이 설명했다,“아빠랑 오빠가 자꾸 소개팅 주선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골치 아파서 서훈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나랑 약혼하자고. 그럼 아빠랑 오빠가 나한테 선 자리를 더는 강요 안 할 거 아니에요. 서훈이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억지 써서 해주기로 한 거예요.”백나연은 자기 잘못이라고 매우 강조했다.그녀의 눈빛에 아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전 그때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랑 서훈이는 서로 약속했어요. 누가 먼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든, 그때 되면 파혼하기로요. 절대 서로의 앞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그 순간 용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쏟아졌다.이게 얼마 만인가.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오늘 끝내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팔을 뻗어 그녀를 껴안고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용준은 또 한참을 울었다.예서는 그가 평생 사랑한 유일한 여자였다.그는 품속에 있는 그녀를 부드럽고 진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네가 고마워. 넌 너무 용감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해.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넌 이것만 기억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 네가 있으니까 내가 괴물로 변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난 모든 걸 다 망가뜨렸을 거야. 스스로도 혐오하는 그런 나쁜 인간으로 돼버렸을 거야.”예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이날, 둘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예서는 더는 용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용준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그렇게 예서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을 때. 남서훈과 양나나는 한 번 나가 돌아다니기로 했다.한 거리의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자애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와 양나나를 에워쌌다.그들은 매우 들뜬 소리로 말했다.“대장! 살아 있었어요?”“너무 잘 됐어요!”“대장, 대장을 그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우린 계속 대장의 소식을 기다렸어요. 대장도 그 애들처럼 상처투성이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고요.”“지금은 어떤 상황이에요? 대장이 후계자가 된 거예요?”양나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한테 말했다.“난 후계자 되는 것에 관심 없어. 풍운파에 지금 남아있는 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야.”양나나는 시선을 남서훈한테 향하며 그들한테 남서훈을 소개했다.“이분이 내 스승님이야, 우리 스승님 엄청 대단해!”그날, 양나나는 그
지난 날에 발생한 그 끔찍한 과거를 스스로 입에 올리는 용준은 피가 흘러나올 듯이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감정이 폭발할 한계치까지 다다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몇 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할 놈들이에요. 예서가 이쁘니까, 내 앞에서 예서를... 그때 예서는 이미 내 아이를 임신했는데...”용준의 온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주먹으로 나무를 세게 한 방 내리쳤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그 큰 나무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손마디도 살이 찢겨나가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상처에 무덤덤했다. 아마도 손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터였다.용준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예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 텅 빈 눈으로 누더기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서 누워있던 참혹한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그놈들을 무참하게 도륙을 내고 싶었다.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였다.풍운파의 보스가 된 후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예서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놈들의 범죄증거를 전부 찾아내 한 명도 빠짐없이 직접 처단했다.그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다. 막다른 길에 몰려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때, 그들은 찌질이같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정작 그들은 용준이나 예서한테 그런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데 말이다.용준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그것들이 나와 예서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날 시궁창에 몰아넣었죠. 여전히 난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생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해요!”그러나 그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니었다.용준은 피로 물든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들은 예서가 그들이 한
용준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금호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그는 어둠이 없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부 국제조직에서는 용준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심지어 그가 의심되어 오랫동안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다.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는 범죄자 취급을 당했고, 그리하여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건, 그 당시 그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여자친구마저 누구한테 몹쓸 짓을 당하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용준이 점점 나쁘게 변하여 나중에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되었던, 모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풍운파는 용준의 관리하에 동남아에서 제일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하였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나 다 저지르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노약자와 여자,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였다.의리도 지켰다.하지만...“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남서훈이 말했다.“이 세상은 원래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니깐요. 동남아는 원래 상황이 어수선하잖아요. 무장세력과 폭력조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바꿀 수도 없어요. 오히려 풍운파와 같은 조직이 있다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양준회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측면으로 보면 용준은 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둘은 원수지간이다. 양준회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록 지금까지는 아무 짓을 안 했어도, 또 그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풍운파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다스린 용준이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리하여 양준회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남서훈과 같이 풍운파를 즉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나나도 여기 있어요.”남서훈이 예상치도 못한 폭탄을 터트렸다. 양준회는 깜짝 놀랐다.양나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는 바로 말했다.“그럼 나나도 같이 떠나면 돼.”갇힌 두 달
강하영이 부케를 내던지는 일순간 우양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부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부케를 잽싸게 낚아채는 그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부케를 손에 쥔 그다음 순간, 그는 부케와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모두가 경악했다.강하영은 크루즈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를 보며 입을 떡 벌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선원들이 즉시 튜브를 던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뛰어내려 구조하려 했지만 강주환이 그들을 말렸다.왜 구하지 말라는 건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성아는 강주환을 쳐다봤다.그러다 팔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우양주가 크루즈 위에 있는 강하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듣고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았다.“여보, 어쨌든 내가 부케 받았으니까 당신 나랑 결혼식 치러야 돼요! 안 그러면...”그 뒤엔 위협적인 말이 따라야 하는데 우양주도 무엇으로 강하영을 협박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남은 건 자신의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안 그러면 나 안 올라갈 거야. 여기 바다에 계속 있을 거야, 결혼식도 못 하는데 그냥 빠져 죽지 뭐.”강하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바다에 빠진 남자를 까만 눈동자로 차분하게 내려다보며 끝내 입을 열었다.“빠져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안 말려요.”“...”우양주는 서럽게 그녀를 쳐다봤다.역시나 아내는 매정했고 자신에 대해 애정이 없었다.그러나 그때 윤성아 곁에 서있는 강주환이 무덤덤하게 한마디 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바다에 상어가 출몰한다고 했어요. 식인 상어.”강주환은 고개를 돌려 강하영한테 말했다. “지금 아직 상어가 오지 않아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하면 한꺼번에 열 몇 마리씩 무리 지어서 나올 거예요. 그게 게네들 습성이라. 이야... 쟨 아마 그러면 뼛조각도 남지 않겠네.”“...”그 말에 강하영이 급해 났다. 말투도 전처럼 차분하고 담담하지 않았다.난간에 기대어 우양주를 향해 내리 소리 질렀다.“뭐
미리 준비한 축사를 울먹이며 끝까지 다 읽고는 원이림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너 이 놈 자식,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결혼하는 걸 못 보는 줄 알았다. 아이고...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너도 이제 가정이 생겼어.”“너 똑바로 들어. 은진이한테 평생 잘 해줘야 돼, 아내한테 잘 하는 건 우리 집안 내력이야. 나도 네 엄마 말을 엄청 잘 들었어. 너도 똑같아, 알겠니? 오늘부터는 은진이한테 더 잘해야 돼, 말도 잘 듣고, 은진이부터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은진이가 조금이라도 맘고생을 하게 되는 날엔 내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원이림은 새카만 눈동자로 여은진을 깊게, 애틋하게 들여다보며 그녀와 깍지를 낀 두 손에 힘을 더 주었다.“걱정 마세요. 난 평생 우리 여보 맘고생 안 시킬 거예요.”여보라는 호칭이 지금 이 시각부터 명실상부하게 되었다.원이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크루즈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데이지 꽃을 바다로 뿌렸다. 하얀 꽃잎들이 파도에 실려 멀리 떠내려갔다.둘은 거기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며 말했다.“어머니, 아버지. 저 너무 행복해요. 우리 너무 행복해요.”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부케 토스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강주환과 윤성아, 그리고 나엽과 안효연은 모두 기혼자로서 나가지 않고 구경만 했다. 하객 중에 미혼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우양주도 강하영의 손을 잡고 그리로 향했다.강하영은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다.“우린 결혼했는데 왜 부케를 받으러 가요? 다른 사람한테 갈 좋은 축복을 왜 우리끼리 받겠다고 달려들어요, 쓸데없이. 그렇게 할 일 없고 힘이 남아돌면 내가 다른 일 하게 해 줄게요.”“무슨 일?”강하영은 푸른 바다를 향해 눈을 힐끔 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수영 좋아하잖아요. 내가 엉덩이 확 걷어찰 테니까 바다로 들어가서 수영이나 할래요?”“...”저번에 강하영과 같이 수영하면서 그녀가 자신한테 새빨간 수영팬티를 사줘 창피를 당하고 나서부터 우양주는 수영하는
여은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쁘게 미소 지었다.“나 다 알아요.”지난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해왔는지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의 맹세와 언약 같은 건 필요 없었다.“응!”여은진을 안은 채로 원이림은 그녀의 여린 입술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했다.장내의 플래시 세례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아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한테 당찬 목소리로 선포했다.“오늘 저의 이 행복한 순간을 지켜본 여기 계신 모든 증인 분들한테 제가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희 베린 그룹에 가셔서 선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달 20일에 저와 은진이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께서 모두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여은진을 안고 시상대를 내려가려 했다.여은진이 내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게 안은 채로 시상식장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다.럭셔리한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내달리고 있었다.여은진은 아직도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있었다.“이번 달 20일에 결혼한다고요? 그럼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지 않아요?”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며 물었다.“아니, 전혀.”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떨구며 원이림이 말했다.“시간이 모자라지만 않았으면 내일에라도 당장 결혼식 치르고 싶어.”반년이 넘는 동안, 그는 매일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결혼반지, 웨딩드레스, 그리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디테일한 사항들을 전부 준비하고 체크했다. 그녀가 결혼을 동의하는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끝내 다가왔다.웨딩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크게 시간을 들일 일도 없었다.다만 여은진이 임신했기 때문에 너무 빠듯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결혼식에 참석할 하객을 초대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10일이면 충분했다.촉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여보, 우리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원이림은 한시라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사한테 얘기하여 구청으로 가자
원이림은 금방 샤워를 마친 여은진한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침대로 향했다.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순을 밟아갔다.한창 격렬해지려던 찰나, 원이림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크게 지르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은진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살에 푹 찔린 그 가는 물건을 빼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빨리 반응했다.하지만 역시 늦었다.여은진이 몸을 일으켜 스탠드를 켰고, 어두웠던 방안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이어 급히 그를 살피던 여은진은 원이림의 엉덩이에 바늘이 하나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짧고 가는 옷을 꿰맬 때 쓰는 그런 바늘이었다.여은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바늘에 찔릴 수 있어요? 침대에 왜 바늘이...”“...”꽂힌 바늘을 빼며 원이림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괜찮아, 그냥 바늘인데 뭐. 별로 아프지도 않아.”그러고는 또 다짜고짜 몸을 뒤집으며 여은진을 몸 아래로 깔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스탠드를 끄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잠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진행 중이었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였다.하지만 여은진은 그의 키스를 받아내면서도 오후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난데없이 침대에 나타난 바늘을 함께 떠올렸다.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지금의 행동도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잠깐만.”여은진은 원이림을 밀어내고 다시 한번 스탠드를 켰다.의심이 부풀어 오른 눈으로 빤히 그를 노려봤다. “똑바로 말해요. 아까 그 바늘로 수작 부린 거 맞죠? 말해요, 몇 개나 찔렀어요?”“...”끝내는 발각되었다. 원이림은 이실직고했다. 강주환이 원흉이라고, 그가 시켜서 했다고 불었다.“여보, 나 며칠 전에 운봉 비즈니스 회담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강주환을 만났어. 그 자식이 날 비웃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하라고 아이디어를 내줬어. 바늘로 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