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는?”태범이 조심스레 물었다.그 말에 민재는 면목이 없었다.“윤아 님은... 못 돌아오셨어요.”“?”태범이 민재를 쳐다보며 물었다.“못 돌아오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그의 눈빛에 민재는 압도당하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그가 쳐다볼 때면 심지어 벼락에 맞은 듯 몸을 굳어버리기까지 했다.“그게... 윤아 님은 아직 해외에 계십니다.”이렇게 된 이상 더 감출 것도 없었다. 민재는 그동안 윤아에게 있었던 일을 그에게 전부 말해주었다. 태범은 수현의 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윤아의 일까지 들으니 심장이 철렁했다.둘이 같이 있을 줄 알았다. 얼마나 다쳤든 이제 병원에 왔으니 치료를 받으면 모두 다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그런데 지금 돌아온 사람은 수현 한 명뿐이고이고 윤아는 돌아오지 못했다는 거 아닌가?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태범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애써 진정했다. 아직 몸이 멀쩡해서 다행이지, 지금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면 아마 쇼크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회장님. 진정하세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지금 흥분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한시라도 빨리 해결 방법부터 찾아봐요.”그 말에 태범이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무슨 방법이라도 있나?”민재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아직 생각 중입니다.”그러나 돌아오는 건 태범의 냉소였다.“해결 방안도 없이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거군.”“...”‘됐어, 그냥 혼나지 뭐.’“네, 다 제 잘못입니다. 이제 어떡하면 좋죠?”태범은 아직 혼수상태인 수현을 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다친 거지? 두 쪽 다 사람을 썼을 텐데. 게다가 수현이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좀 했어서 어디 가서 이렇게까지 다치진 않는 아이였는데 말이야.”민재는 고개를 저었다.“저도 그 현장에 없었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그쪽 꼼수에 넘어간 것 같습니다.”그 말에 태범은 입을 다물었다.그의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의 비상한 머리 못지않게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선우는 윤아와 수현의 곁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태범도 점점 그 아이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어릴 때 함께 놀던 친구도 어른이 되어서는 각자 일이 바빠 자연스레 멀어지기 마련이다. 모두 다른 걱정거리를 짊어지고 사는 어른들에게 소년 시절의 그 천진난만함은 없으니까.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흐릿해지는 그런 관계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일로 흘러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여기까지 생각한 태범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그때의 그 관계가 이런 비극으로 끝을 보게 되다니.태범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이 일은 내가 생각해 보지. 윤아와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지?”민재는 그날 공항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얘기했다. 얼추 상황을 전해 들은 태범은 마음속에 판단이 섰다.그의 표정을 본 민재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참, 말씀드릴 일이 하나 더 있는데요.”“말해봐.”“그 거래를 할 때 윤아 님이 신고는 하지 말자고 하셨어요.”“...”“그래서 대표님도 경찰엔 알리지 않고 사적으로 해결하시려 한 거였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멍청한 것.”태범이 이를 악물었다.“이 멍청한 것들!”“저도 윤아 님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이선우 대표가 저희 대표님께는 안 그래도 윤아 님한테만은 지극정성이었거든요. 도움도 많이 주던 사람이라 측은지심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요.”하지만 태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장사꾼이다. 장사꾼들에게는 이익을 제외하고는 오직 가족뿐이다.지금은 가족이 다쳤으니 더더욱 두고 볼 수만은 없때문에 민재가 그런 말을 말을 할 때도 태범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민재도 그의 낌새를 눈치채고 조심스레 물었다.“그러니 신고는 안 하는 게 좋겠죠?”“흥.”말도 안 된다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그를 쳐다봤다.“일이 다 너희 뜻대로 흘러갈 줄 알았겠지? 그랬다면 지금 이 지경이 됐을까?”민재는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뭐라도 얘기하고 싶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범은 선희의 전화를 받았다.“어떻게 됐어요? 간 지 꽤 오래됐는데 이 비서는 찾았어요? 뭐 좀 알아냈어요?”태범은 말이 없었다.그 순간 차에서 민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일을 알게 된 후에 그녀에게 말할 수 있겠냐던.그때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그리고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자 그는 정말 그녀에게 이 일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너무 큰 일이라 괜히 말했다가 마음 졸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기 싫었다.생각만 해도 너무 마음이 아프지 않은가.태범은 수현과 민재가 입 다물고 있었던 이유도 조금 짐작이 가는듯했다.‘어휴.’여기까지 생각한 태범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는 고심 끝에 이 일을 선희에게 얘기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전부 말하는 대신 조금만 덜어내기로 했다.“일이 좀 생겨서 내가 가서 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 나 없는 동안... 몸조심하고요.”그러나 선희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무슨 일이길래 당신이 직접 며칠씩이나 시간을 내서 처리한다는 거예요? 무슨 일인데요?”어느새 그녀의 말투에 조급함이 묻어났다.“여보, 일단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요. 일이 좀 까다롭긴 하지만 내가 잘 처리할 수 있으니 해결되면 그때 얘기해줄게요. 네?”그러나 선희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도대체 무슨 일인데 못 알려주는 거예요? 많이 심각한거예요?”“지금 당장 가서 처리해야 해서 당신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이 대답은 오히려 받아들일 수 있었다.정말 급한 일이라면 그 일을 처리하느라 자기에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좋아요. 먼저 가서 처리하고 와요. 하지만 약속해요.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면 나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준다고. 나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봐야겠어요.”“그래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전화를 끊은 후 태범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침내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했다. 당시 이민재 그 녀석이 전화를 끊
선희는 일어나 두 녀석의 방으로 향했다.두 꼬마가 자신의 작은 이불을 끌어안고 쿨쿨 자고, 심지어 자리까지 바꾸는 것을 보고 하루 종일 애를 태우던 선희는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다.‘정말 귀엽네. 이 녀석들.’그녀는 새삼 윤아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두 명의 아이가 이렇게 잘 자랄 수 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이 두 아이를 혼자 5년 동안 키우며 힘든 상황이 분명 많았을 텐데 그래도 아이들을 이렇게 잘 가르쳤다니.선희는 두 아이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서훈의 눈매는 또렷하고 화려한 게 마치마치 어린 시절의 진야가 보이는 것 같았다정말 너무 닮아서 한 틀에 새겨진 것 같았다.수현이 어렸을 때 그녀의 어머니도 수현이 귀엽게 생겼다며 자주 안아주던 것을 떠올렸다.그때의 수현과 똑 닮은 서훈을 보고도 좋아하실지 모르겠다.그런 생각을 하면서 선희는 자신과 어머니도 오래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들과 함께 살지 않았고 심지어 이 도시에도 살지 않았다. 두 부부는 은퇴 후 도시 오염이 심각하다고 싫어했고 시골에 정원과 마당이 있는 넓은 층을 사서 노후를 보냈다. 마당에서는 각종 화초와 나무를 기르고 한쪽 구석에 야채와 과일, 참외를 조금 심었다. 부부는 해가 진 어느 날의 밤처럼 그렇게 평온하게 지낸다.선희는 일찍이 부모님을 한 번 뵈러 갔다가 두 사람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굳이 더 찾아가 방해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부부는 수현의 결혼에 관해 자주 물어댔고 그가 이혼한 후에는 오랫동안 그 일로 한숨을 쉬기도 했다.그 후 선희는 집에는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그러다 오늘 갑자기 두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그들을 찾아가고 싶어진 것이다. 어쨌든 윤아와 수현도 당분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그녀는 잠시 학교에 휴가를 내고 가서 일주일 동안 놀고 오면 좋겠다 싶었다.마음을 굳힌 후 선희는 기운차게 일어나 옷을 챙겼다.다음날, 훈이와 윤이가 막 일어나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선희가 그들에게 옷을 입히고
“그럼 일어나서 양치질하고 아침 먹고 할머니랑 같이 가자.”힘없이 있던 하윤은 기운이 다 나서 욕실로 가 이를 닦았다.서훈도 하윤의 뒤를 따라갔다.화장실에는 선희가 미리 준비해 둔 칫솔과 칫솔 컵이 있었고 치약까지 이미 짜놓았다.그러자 하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훈과 눈을 마주쳤고 들어오는 선희를 향해고개를 젖혔다.“할머니, 엄마가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앞으로 양치질하고 세수할 때 치약 짜주는 거 안 도와줘도 돼요.”선희는 고사리 같은 두 아이의 손을 보고 조금이나마 더 잘해주고 싶어서 치약을 짜준 거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보게 된 아이들인데 애지중지할 만도 하지.그런 생각을 할 줄은...“할머니가 잘못했네. 역시 너희 엄마 말이 맞아,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지.”“그래도 오늘은 도와준 거 감사해요.”서훈은 또 말을 바꿨다.그러자 하윤도 말했다.“할머니 감사합니다!”선희는 이 두 녀석이 너무 귀여워 심장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세수를 마치고 두 사람을 데리고 아침 식사를 한 뒤 선희는 하인에게서 차가 준비돼 있고 필요한 물건도 다 옮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두 녀석을 데리고 떠났다.그녀는 아주 빠르게 떠났고 그들이 간 후에 하인들은 집에 남아 멀어져 가는 차를 보고 있었다.“다들 나갔으니 좀 쉬엄쉬엄 일할 수 있겠네요?”“쉿! 이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사모님이 우리에게 주는 월급이 얼만데. 받는 만큼 일을 해야지. 네가 다른 곳에 가서 이것보다 몇 배 더 한다고 해도 월급의 절반도 못 받을 거야.”집주인이 다 떠나면 조금 게으름을 피우려던 하인은 그 말을 듣고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는 게으른 꾀를 부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차가 큰길에 올라서서 나갔을 때 맞은편에서 검은색 대형 승합차 한 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나 선희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렇게 두 차는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한편, 선희는 차에 앉아 자신이 특별히 가지고 온 사탕을 펼쳤다.“오늘 시골에 가야 하는데 조금
다리가 떨려오는 선희를 두 녀석이 부축해 차에서 내리려 했으나 키 때문에 전혀 도울 수 없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서둘러 그녀의 다리를 누르고 말했다.“할머니. 편찮으시면 차에서 좀 쉬세요. 우리 이따가 내려갈게요.”선희는 자기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앉아 쉬면서 서훈이 건넨 음료를 마셨다. 새콤달콤한 음료를 마시니 메스꺼움이 좀 가시는 것 같았다.그녀는 술을 마시면서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이 길이 아직까지도 그대로인게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돌아가면 아버지께 돈을 좀 드려 이 길을 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할머니, 좀 편해졌어요?”선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응, 훨씬 편해졌어. 인제 그만 가자. 이제부터는 차가 들어갈 수 없으니 할머니가 너희들을 데리고 들어갈게.”방해가 될까 봐 따라온 사람도 기사 한 명뿐이었고 차에서 내려서는 기사 혼자 짐 꾸러미를 들고 뒤따랐다.마을 길이 좁고 굽이굽이 돌아 차가 들어가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때문에 마주 오는 승용차를 만나거나 뒤에 차가 있으면 쉽게 막힐 수 있었다.예전에 선희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그런 상황을 겪었는데 지금은 이곳 마을 어귀에 차를 세우고 나서 걸어 들어가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두 녀석은 이런 곳은 처음인 데다 타고난 호기심까지 겹쳐 길을 가다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길을 따라가는 길에 농촌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낯선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자 모두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이며 그들을 훑어보았다.훈이와 윤이는 이곳 아이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하윤은 상대의 꽃무늬 천 치마를 보고 자신이 입고 있는 고급 치마를 내려다보며 물었다.“할머니, 저 애들이 입고 있는 저런 치마는 입어본 적이 없는데 저도 나중에 저런 치마를 살 수 있어요?”그 말에 선희도 반대편 아이를 봤는데 하윤과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파란색 꽃무늬 치마를 입고 있었다. 옷감이 좀 낡아 보였지만 깨끗하게 빨아져 있었고 그 소녀의 귀여운 용모와 어우
선희는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그들을 위해 일반인들이 쉽게 열 수 없는 초대형 자물쇠를 하나 샀다.문이 잠기지 않은 걸 보니 모두 집에 있는 모양이다. 선희는 출입문 옆의 초인종을 누르고 아이들과 함께 문 앞에서 기다렸다.안에서 작은 발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누구요?”두 아이는 노인의 목소리를 듣고 매우 감격하여 고개를 들어 말했다.“할머니, 증외할머니의 목소리예요?”선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나야.”익숙한 소리에 안에서 발소리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다급해진 걸음으로 다가오는 듯했다.듣고 있던 선희가 말했다.“엄마, 천천히 와요.”현관문이 열리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과 캐주얼한 중국식 실내복을 입은 우아한 노인이 세 사람 앞에 나타났다.서훈과 하윤은 어릴 때부터 예의 바르게 인사해야 한다는 윤아의 가르침에 따라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증조할머니, 안녕하세요.”선희의 어머니 이명인은 오랜만에 만난 딸에 깜짝 놀랐다. 자식 걱정은 늘 있지만 혹시나 방해할까 봐 전화도 안 했는데 이렇게 딸이 찾아왔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녀는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문을 열자 보인 딸의 얼굴에 놀라기도 잠시, 곧이어 귀여운 목소리로 인사를 해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잠시 멈칫했다.‘증조할머니?’‘누굴 부르는 거지? 내가 나이가 들어 환청을 듣나?’그녀가 소리를 따라 고개를 숙여 보니 귀여운 녀석 둘이 거기에 서서 일제히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런데 놀랍게도 이 두 녀석은 손자 수현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명인은 놀란 눈으로 두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딸 선희를 바라보았다.선희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마치 그녀에게 보여주려고 작은 증조 외손자를 데리고 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이게...”명인은 한참 후에야 어떻게 된 일인지 가늠이 되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두 꼬마가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가
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선희는 불안한 듯 입술을 오므렸다.그러나 걱정과는 달라 명인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어서 들어와. 증조할머니가 맛있는 음식 해줄게.”그녀는 옆으로 물러나 자리를 비켜주고 사람들을 불러들였다.뒤이어 들어온 운전기사가 짐을 내려놓으며 선희에게 말했다.“그럼 사모님. 전 이만 돌아가 보고 때 되면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운전기사는 나가며 마당 문을 닫고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두 녀석은 따라 들어온 후에야 비로소 마당 안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뜰에 아주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이 날씨에 위쪽의 잎은 이미 다 떨어져 벌거벗은 모습이었다.두 아이는 호기심에 달려가 살펴보았다.명인은 두 꼬마가 달려가는 것을 보고 그들과 거리가 좀 멀어지자 자신의 딸 선희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너희 셋만 왔어?”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아이의 엄마 아빠는? 왜 같이 안 왔어?”“일이 있어서 당분간은 올 시간이 없을 거예요.”선희는 나이도 있으신 분들에게 괜히 충격을 드리고 싶지 않아 그들의 사고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젊은이들은 바쁘게 돌아치느라 몸을 잘 돌보지 않는다니까. 너 돌아가면 아이들한테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말라고 전해라. 그게 다 만병의 근원이 되는 거야. 나중에 늙으면 어쩌려고?”“네. 돌아가면 그렇게 말해줄게요. 그리고 애들 데리고 한번 찾아뵈라고도 할게요.”“그런데...”명인은 살짝 감격한 듯 말했다.“그 둘은 이미 이혼하지 않았더냐? 어떻게 이렇게 큰아이가 있지? 설마...”명인의 마음속에 어렴풋한 추측이 하나 있었다.그녀의 추측에 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짐작했지만 막상 확인해 보니 또 다른 심정이다. 이혼 후에도 혼자 두 아이를 낳을 줄이야. 이제 명인은 두 아이 모두 왜 심 씨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엄마. 두 아이 모두 윤아가 직접 키웠어요. 성씨 얘기라면 전 뭐라 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