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몸에서 전해지는 거부 반응만 아니라면 윤아는 가끔 선우와 한 쌍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아쉽게도…“왔어? 저녁에 네가 좋아하는 요리 몇 가지 했는데 먹어볼래?”그녀가 그쪽으로 걸어가자 선우는 얼른 친절하게 의자를 빼주고는 밥과 국을 퍼주며 그녀를 극진히 보살폈다.윤아는 그녀를 위해 분주히 돌아치는 선우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숟가락을 들어 먹기 시작했다.선우는 먹는데 급해하지 않고 그녀가 먹는 모습을 덤덤하게 지켜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진 비서가 상황 다 알려줬지? 이젠 내가 너를 그렇게 대하지 않을 거라는 거 믿어주는 거지?”윤아는 일단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태연한 표정으로 식사했다.선우는 그녀가 아무 말도 없자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진 비서가 아직 얘기 안 해줬어?”윤아는 그제야 선우를 바라봤다.“알려주면 뭐 해? 수현 씨 아직 네 손에 있는데. 언제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잖아.”“아직도 나를 못 믿는 거야?”선우는 순간 상처받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나를 못 믿겠다는 거냐고?”“그럼 수현 씨 보내줄 수 있어?”“당연하지. 그건 내가 약속한 거잖아.”“그럼 수현 씨 안전하게 보내고 나서 약속 지켰다고 말해.”윤아의 요구에 선우는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에 별로 손도 대지 않은 윤아를 본 선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윤아야, 좀만 더 먹어.”“안 넘어가.”이렇게 말한 윤아는 아예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선우는 그런 윤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끝내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윤아가 요새 음식을 너무 적게 먹는다는 것이었다.처음엔 몸이 다 낫기 전이라 입맛이 없어서 그러는 줄 알고 셰프에게 방법이란 방법은 다 동원해 맛있는 음식을 해오라고 했기에 지금 식탁에 올려진 메뉴도 윤아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하지만 윤아는 이를 먹으면서도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즐겨 먹는 음식을 보고도 입맛이 돌아오지 않는 것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도착했고 윤아는 그때 잠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의사가 온다는 말에 윤아는 순간 어리둥절해서 미간을 찌푸렸다.“왜요?”정윤이 고개를 저었다.“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건강 검사라고 들었습니다.”분명 그녀에겐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갑자기 건강 검사지?윤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를 거절했다.정윤이 윤아의 뜻을 전하자 선우가 직접 윤아의 방으로 찾아왔다.“윤아야, 그냥 일상적인 건강 검사와 질문 몇 개밖에 없어. 시간 좀 내주면 안 될까?”선우를 보는 윤아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아무 뜻도 없어. 그냥 네가 걱정돼서야. 퇴원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고 간단하게 검사 한 번 해보려고 그래.”퇴원 얘기를 꺼내자 윤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퇴원 후 다시 한번 진행하는 검사라면 별문제 없지만 이런 검사는 원래 병원에 가서 하는 거 아닌가?왜 의사를 집까지 부른 거지?윤아가 주저하자 선우가 말했다.“지금 날씨도 추워져서 밤에 이렇게 오시기 힘든 거 알잖아. 밖에서 꽤 오래 기다리셨어. 그냥 일반적인 건강 검사와 질문이야. 들어오라고 할까?”뒤에 덧붙인 말이 그래도 먹혔다.윤아는 한참 침묵을 지키더니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윤아는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의사일 줄 알았는데 들어온 사람은 아시안이었다. 그가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야 윤아는 같은 나라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외국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니 더 반가웠다.윤아는 윤정이 자기와 같은 도시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진찰이 필요했기에 윤아는 그저 옆을 지키고 있었다.의사는 먼저 윤아의 맥을 짚어보았고 이에 윤아가 놀라며 물었다.“외국에서 진료 볼 때도 진맥을 하시는 거예요?”이를 들은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한의학은 환자의 병세를 보고, 듣고, 묻고, 맥을 짚어 보는 것을 중요시하죠.”윤아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외국에서 자기 나라의 한의사를 만나게 될 줄
뜬금없는 검사에 윤아는 어리둥절했지만 의사가 온화하고 태도가 좋았기에 윤아도 검사 내내 잘 협조해 주었다.과정에 의사는 시답잖은 문제를 많이 물어봤다. 윤아는 이 의사가 도대체 상태를 확인하러 온 것인지 잡담하러 온 것인지 헷갈렸다.중간에 윤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선우를 바라봤다. 선우도 이런 의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하지만 아니었다. 윤아가 보낸 눈길에 선우는 그저 부드럽게 웃을 뿐 시종일관 의사의 진찰 방식에 어떠한 질책도 없었다.진찰이 끝난 건 반 시간쯤 뒤의 일이었다.사람들이 나가고 윤아만 홀로 방에 남았다.방에서 나오자마자 선우가 물었다.“윤아 상황 어때요?”의사가 잠깐 침묵하더니 물었다.“환자에게 마음의 병이 있는 것 같은데요?”의사는 환자라는 단어를 썼다.이 말을 들은 선우가 살짝 넋을 잃었다.“마음의 병이라고요?”“몸 상태로 봤을 때는 별문제 없습니다. 문제는 일상생활에 숨어 있어요. 예를 든다면 환자분의 수면과 음식 섭취에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선우는 반박하지 않았다.수면은 어떤지 잘 몰라도 음식 섭취는 그도 봐서 잘 알고 있었다.“혹시나 거부감이 들까 봐 오늘 윤아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습니다.”의사는 선우에게 몇 가지 더 당부했고 선우도 무슨 뜻인지 대략 알아차렸다. 의사는 입맛을 돋게 하고 수면에 도움이 되는 약을 처방해 주고는 자리를 떠났다.선우는 사람을 보내 의사를 배웅하라고 하고는 약을 든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마음의 병?분명 기억을 잃었는데 어떻게 아직도 마음의 병이 있는 거지?마음의 병이 있다면 무엇일까? 잃어버린 기억일까, 아니면 병상에 누워 꼼짝도 못 하는 수현일까?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수현을 생각하니 선우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윤아만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전에 친구로 지낼 때 수현이 선우에게 꽤 잘해줬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수현과 계속 친구로 지내면 선우는 윤아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윤아를 가지려면
선우의 말에 윤아도 자신을 되돌아봤고 확실히 밥을 너무 적게 먹는다는 걸 발견했다.약을 먹으라는 선우의 요구도 근거가 있었다.하지만 윤아는 선우 손바닥에 놓인 알약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결국 고개를 저었다.“안 먹을래.”“윤아야, 말 듣자.”선우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이 어딘가 난감해 보였다.“약이 너무 써서 그러는 거라면 도우미한테 캔디 좀 가져다 달라고 할게.”“그런 거 아니야.”윤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이 써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고작 알약 몇 개를 단번에 삼켜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데 왜 굳이 약을 먹으라고 하는지 의문이었다.“넘기기에 크기가 너무 큰가? 절반으로 으깨줄까?”“…”윤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옆에 선 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여러 가지 건의를 주는 선우를 보며 오늘밤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먹을 때까지 설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됐어, 그냥 먹을게.”윤아는 선우의 손에서 약을 받아 온수와 함께 꿀꺽 삼켰다.“이제 만족해? 나 자도 되지?”선우는 그런 윤아의 모습에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푹 쉬어.”“잘 자, 윤아야.”…이튿날.아침을 먹으면서 윤아는 선우에게 물었다.“수현 씨 언제 보내줄 예정이야?”“곧.”선우가 대답했다.“아마 요 며칠일 거야.”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었다.선우는 그런 윤아를 예의 주시했다. 윤아는 식사량이 커지기는커녕 더 적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선우는 입술을 앙다문 채 자꾸만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을 꾹꾹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윤아를 불러세워 미리 준비한 약을 건넸다.“오늘 먹을 약이야.”윤아는 그가 건넨 약이 어젯밤보다 한 알 적어진 걸 발견했다. 낮이라 아마 수면에 유리한 약을 뺀 것 같았다.선우는 그렇게 조용히 윤아를 바라봤다.어제 약을 먹었는데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건 약에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 이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선우가 허락할 리가 없어요. 수현이 떠나는 일정을 갑자기 앞당기라고 한 것도 아마 다 계산이 있어서 그런 걸 거예요.”윤아는 그냥 무의식적으로 선우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옆에서 이를 듣고 있는 우진은 대꾸하지 않았다.이틀 뒤, 수현이 안전하게 떠났다는 소식이 윤아의 귀에 들어왔다.이 소식은 우진이 들려준 것이었다.소식을 접한 윤아는 그제야 마음에서 우러난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떠난 거예요? 그쪽에 인수인계 한 건가?”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인수인계 했습니다. 이미 안전하게 떠나셨습니다.”“아직 깨어나진 못한 거죠?”“네, 아직 혼수상태입니다. 깨시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윤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아직도 깨지 못했다니,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거 맞죠?”“걱정 마세요, 윤아님. 별문제 없을 거예요.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쪽에서 인계받았으니 해결할 겁니다.”하긴 이미 그쪽에서 데려갔는데 제일 좋은 자원을 마련해줄 것이다.“앞으로 소식을 들을 방법이 있을까요?”이미 떠난지라 소식을 더 알아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윤아의 질문에 우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거리상으로 많이 떨어져 있기도 하고 양측이 평화로운 관계도 아니니 계속 소식을 알아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게다가 소식을 알아낼 방법이 있다고 해도 선우는 윤아의 세계에 수현이 나타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앞으로 선우는 윤아의 생명에서 수현과 두 아이를 영원히 지워버리려 할 것이다.생각만 해도 윤아가 불쌍한 우진이었다.…윤아가 수현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는 말을 들은 선우는 마음이 씁쓸했지만 이로써 그녀의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으면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하여 지금은 주방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윤아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윤아는 약을 계속 먹고 있긴 하지만 요 며칠은 효과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의 병이 낫고 나면 윤아의 입맛도 점점 좋
윤아가 요 며칠 계속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말에 선우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졌다.“진 비서님 왔다 가지 않았나요?”선우가 물었다.“왔다 갔어요.”정윤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더니 뭔가 생각난 듯 의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봤다.“하지만 대표님, 이 일이 윤아님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죠?”정윤은 선우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윤아를 많이 좋아하는 거 아닌가? 지금 제일 중요한 문제는 윤아가 요새 밥을 통 먹지 않는다는 일인데 왜 갑자기 우진을 물어보는 거지?우진이 다녀갔다면 수현이 안전하게 떠났다는 사실을 알 텐데 왜…선우는 입술을 앙다문 채 이렇게 말했다.“좀 들어가 봐야겠어요.”“네.”정윤은 선우가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주었다.방안.베란다에 달린 커튼이 모두 닫혀있어 방안은 매우 깜깜한 상태였고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전부였다.그 빛으로 선우는 방안을 쭉 살폈다.방안은 매우 조용했고 윤아는 이불속에 웅크리고 누운 채 까만 뒤통수만 살짝 내놓고 있었다.선우는 그쪽으로 걸어가 옆에 놓인 랜턴을 켜려다 혹시나 그녀가 놀랄까 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봤다.깊은 잠이 든 것처럼 보였지만 호흡은 고르지 않았다. 의사가 말한 것처럼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아 계속 꿈을 꾸는 듯했고 가끔 놀랄 때면 눈까풀과 속눈썹마저 같이 떨렸다.그러다 심지어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선우가 10여 분 정도 서 있는 동안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으로 가득했다.이를 지켜보는 선우는 가슴이 칼로 후벼파는 것처럼 아팠다.양옆으로 축 늘어트린 손도 어느새 불끈 주먹을 쥐고 있었다.왜 이런 걸까?윤아는 분명 수현이 안전하게 떠났다는 걸 알고 있는데 말이다.설마 마음의 병이 그것뿐만은 아닌 건가?선우는 터질 것 같은 생각을 꾹꾹 눌렀다. 결국 그는 윤아를 깨우지 않고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갔다.정윤은 한참을 밖에서 기다리다가 선우가 나오자 얼른 다가가 물었다.“대표님, 윤아님 어때요? 뭐 좀 드
“그래요?”선우의 말투는 차가웠다.“마음의 병이 나았다면 왜 아직도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는 거죠?”우진은 요즘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기에 오늘 아침 선우가 윤아에게 음식들을 준비해 보냈지만 윤아가 입맛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처음엔 우진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윤아가 적게 먹는다고, 그래서 몸매가 날씬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식사량이 이 정도로 적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최근에 우진도 이상한 구석을 발견했다.윤아는 식사량이 적은 게 아니라 아예 입맛이 없는 것이었다. 우진도 눈치챘으니 선우도 당연히 눈치챘을 것이다.그러니 우진이 신경 쓸 건 없었다.하지만 지금 선우도 방법이 없어 보였다.의사가 말한 건가?우진이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윤아님이 아직 음식을 드시려 하지 않는다면 아마 다른 걱정을 품고 있는 거 아닐까요?”“그래요? 그렇다면 진 비서님은 그 다른 걱정이 뭐라고 생각해요?”선우의 질문에 우진은 아예 입을 닫아버렸고 둘은 더 이상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이 지나 우진은 죽을 각오를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 윤아님이 제일 걱정하고 있는 게 뭔지 대표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으니 윤아님이 뭘 원하는지 뭘 원하지 않는지 대표님보다 잘 헤아릴 사람이 없어요.”“진 비서님, 지금 나를 훈계하는 건가요?”우진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아니요.”“나가서 계속 윤아 지키기나 해요.”아마 우진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더는 듣고 싶지 않은지 선우는 우진에게 나가라고 했다.우진은 바로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채 주저하고 있었다.“윤아님 상태가 그나마 괜찮을 때 그만두시는 게 어떨까요?”선우는 고개를 들고 선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대표님, 지금 윤아님 상태를 봐서는 대표님이 앞으로 후회할까 봐 걱정입니다.”“뭐라고요?”선우는 눈을 찌푸리며 위험한 눈빛으로 우진을 노려봤다.“저주도 아니고 장난 치는 것도 아닙니다. 윤아님 몸 상태로 이렇게
선우가 정윤과 함께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아까 대표님은 왜 그렇게 화가 나신 거래요?”“원인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진 비서님이 서재에서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들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대요. 처음엔 다들 물건이 떨어진 줄 알고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나가라고 호통치셔서 그제야 대표님이 화나 있음을 발견한 거래요.”“대표님처럼 온화한 분이 화를 내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그래서 사람은 겉만 봐서는 안 되나 봐요.”“근데 아까 윤아님에 관한 얘기를 들으시고는 바로 원래 모습대로 돌아오지 않았어요?”…잠에서 깬 윤아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푹 젖었음을 발견했다.하지만 윤아는 이제 꿈에서 뭘 봤는지 기억나지 않았다.윤아는 침대에 기대 멍해 있다가 수현이 안전하게 떠났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입꼬리가 올라갔다.사람의 몸은 참 신기했다. 비록 머릿속에 예전 기억은 없지만 어떤 무의식과 감각은 이미 그녀의 뼈에 새겨진 것만 같았다.그에게 생명의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 그녀는 긴장했고 그런 그를 걱정했다.그가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걸 알고 나서야 몸과 마음에 긴장이 풀렸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임무의 절반을 완성한 셈이다.하지만 그녀는 아직 다른 감정에 둘러싸여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예를 들면 수현은 무사히 빠져나갔지만 그녀는 아직 이곳에 갇혀 있다.신고할까도 생각해 봤다.하지만 자신을 챙겨주는 선우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그녀에게 선우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주고 있었다.윤아는 이런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사색에 잠겨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선우가 빠른 걸음으로 방에 들어왔다. 잠에서 깬 그녀를 보고는 바로 침대맡으로 다가가 앉았다.“윤아야, 깼어?”윤아는 선우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응.”“나 왜 찾아? 무슨 용건 있어?”수현은 이미 무사히 떠났다. 비록 윤아가 여기에 남는 걸 선택했지만 윤아는 선우와 말을 섞기도, 얼굴을 보기도 싫었다.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