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의 예쁜 미간이 구겨졌다.“윤아야.”선우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숨결이 가볍게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은 건 네가 나를 동정하는 게 싫었을 뿐이야. 근데 결국 알게 됐네? 진 비서가 알려준 거야?”거리가 가깝긴 했지만 윤아는 선우의 체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선우는 마치 온도가 없는 사람 같았다.게다가 선우의 눈빛은 그가 우진에게 무슨 짓을 할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이런 생각에 윤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물어본 거지 우진 씨와는 아무런 상관없어.”이를 들은 선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윤아를 바라봤다.“윤아야, 넌 여전히 참 착해.”어릴 적 여자애들은 자주 뒤에서 선우에 대해 수군거렸고 선우는 사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윤아도 그저 모른 척 지나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그냥 지나가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윤아는 앞에 나서서 선우 편을 들어줬다. 이런 여자를 어떻게 놓아줄 수가 있단 말인가?윤아가 태양이라면 그는 음지에 있는 악마와도 같았다.음지에 너무 오래 있으면 누구든 빛을 갈망하게 된다.“이건 착한 거랑 아무 상관 없어.”윤아가 설명을 덧붙였다.“확실히 내가 물어본 게 맞거든. 게다가 너는 지금 나를 가둬놓고 있고. 알려주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있었겠어?”“응.”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좋은 핑계가 될 수 있지.”말은 그렇게 해도 윤아는 그가 이 말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우진 씨 어떡하지...일단 이 생각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 제일 시급한 건 선우의 마음의 병이었다.“그때...”윤아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만약 네가 필요하다면 친구로서 우리 모두가 너를 위로해 줄게. 이미 너무 오래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윤아야.”항상 온화하기만 하던 선우가 갑자기 그녀의 말을 잘랐다.“이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더는 꺼내지 말아 주라. 걱정하지 마. 앞으로 너랑 있으면서 이
이번에는 선우도 그녀의 질문을 마주했다.“윤아야, 우리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데 어떻게 안 봐?”“꼭 이래야겠어? 지금이라도 그만둬. 계속 이렇게 물고 뜯고 싸우다가 친구를 다 잃어야 그만할래?”“그건 아니야.”선우가 앞으로 다가가 윤아의 어깨를 잡으며 들릴까 말까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누가 뭐래도 넌 포기 못 해.”“...”윤아는 말문이 막혔다.순간 윤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선우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더니 성큼성큼 방으로 향했다.무슨 상황인지 알아챈 윤아가 발버둥 쳤지만 선우와의 힘 차이는 무시할 수가 없었고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안겨 방으로 향했다.선우가 향하는 곳이 침대라는 걸 알고 윤아의 눈빛과 목소리가 변했다.“뭐 하자는 거야? 이선우, 경고하는데 감히 나한테 손 대면 확 죽어버릴 거야.”이를 들은 선우가 움찔하더니 침대 옆에 멈춰 섰다.“이거 놔!”선우의 눈빛이 서글퍼졌다.“윤아야. 넌 나를 도대체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한다고 그래?”“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이미 방에 들어왔기에 선우도 더는 윤아를 힘으로 가둬두지 않았고 윤아는 그 틈을 타 얼른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쓰고 있던 외투도 덕분에 툭 바닥에 떨어졌다.선우는 고개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외투를 한참 바라보다가 허리를 숙여 이를 주었다.“네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나도 강박하지 않아.”옷을 주워 든 선우가 낮은 목소리로 해명했다.“그래? 그럼 지금 당장 나랑 하윤이, 서훈이 놓아주든지.”“그것만 빼고 다른 건 다 들어줄 수 있어. 얼른 쉬어.”선우가 나가고 방에는 윤아 혼자 남았다. 윤아는 아까 발버둥 치느라 숨결이 흐트러졌다.문이 닫히고 선우가 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윤아는 한시름 놓였다.만약 선우가 정말 윤아에게 무슨 짓을 하고 싶었던 거라면 그녀는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언제쯤 그녀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휴식이고 뭐고 자리에서 일어나
처음엔 선우를 돕는 우진도 좋은 사람은 못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일을 그녀에게 말해주는 걸 보면 진심으로 선우를 도와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닌 것 같았고 비서로서 어쩔 수 없이 돕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집사가 다가왔다.“심윤아 씨, 혹시 배고프신가요? 뭘 도와드릴까요?”윤아는 바로 거절했다.“배고프지는 않아요.”“아.”집사는 아마 배고프지도 않으면서 왜 내려왔는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그냥 잠이 안 와서 여기저기 걷고 있어요.”이를 들은 집사가 얼른 대꾸했다.“그럼 동행할까요? 길도 안내해 드릴 겸요.”“아니요. 혼자 걸을게요.”윤아가 단칼에 거절했다.“하지만...”“왜요?”윤아의 말투가 급 차가워졌다.“설마 이 별장에서 걸어 다닐 권한도 없나요?”윤아는 이렇게 말하며 집사를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아니면 지금 밧줄이나 쇠사슬을 가져와 나를 방에 묶어두지 그래요? 앞으로 식사도 내려올 필요 없이 사람 시켜서 먹여주면 되겠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이 말에 집사는 어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심윤아 씨...”“가요. 얼른 가서 가져와요.”윤아가 그를 재촉했다.결국 집사는 윤아의 재촉에 두손 두발 다 들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아닙니다, 심윤아 씨. 돌아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돌아보세요. 하지만 날이 어두워져서 별장 주변에 가로등을 설치하긴 했지만 빛이 비치지 않는 곳도 있어요.”집사는 서랍에서 랜턴 하나를 찾아 윤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이거 챙겨가세요. 잘 안 보이면 랜턴으로 비추고요.”“...”윤아는 할말을 잃었다.아예 나가지 못하게 하더니 랜턴까지 준비해 준다?안 챙기는 게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윤아는 바로 랜턴을 받았다.“사람 붙여서 미행할 건 아니죠?”이 말에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마음껏 돌아보시면 됩니다. 사람을 붙이진 않을게요.”사실 윤아는 이 말 뒤에 숨겨진 속뜻을 알고 있었다. 돌아보고 싶으면 얼마든
고민에 잠긴 건 윤아뿐만이 아니었다.현아와 주한은 시간이 늦었기에 룸을 두 개 예약했지만 윤아 일로 잠이 오지 않았던 현아는 대충 씻고 주한을 찾아갔다.현아가 주한을 찾아갔을 때 주한은 금방 샤워하고 나와 하반신에 타올만 달랑 걸치고 있었다.주한이 입을 열려는데 현아가 막무가내로 비집고 들어왔고 딱히 뭐가 이상한지는 감지하지 못했다.들어오자마자 현아는 윤아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도대체 윤아를 어디로 숨긴 걸까요?”현아는 이렇게 말하며 안으로 들어갔다.“아쉽게도 지난 5년간 선우와 별로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만약 연락을 자주 했다면 선우 성격에 근거해서 윤아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맞춰볼 텐데.”주한은 아직도 문어구에 서서 점점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현아를 지켜봤다. 그녀는 아직도 주한이 윗통을 벗고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주한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현아를 힐끔 쳐다봤다.조심성이 없거나 그를 전혀 남자로 보지 않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이렇게 보고도 못 본척 할 리가 없었다.주한은 난감한 표정으로 문을 닫고는 현관 쪽에 위치한 옷장에서 가운을 꺼내 걸쳤다.이대로 있다가 현아가 정신을 차리고 웃통을 까고 있는 그를 보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변태라고 욕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가운을 걸친 주한은 띠를 묶고 가슴만 조금 드러냈다.저편에 앉아있던 현아는 그제야 본인이 한참을 떠들었는데 주한이 대꾸하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현아는 고개를 돌려 주한을 바라봤다. 주한이 이미 가운을 입은 뒤였기에 딱히 이상한 점은 보아내지 못했다.“대표님, 왜 아무 반응이 없어요?”주한은 현아 앞으로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추측만으로 안 돼요. 범위가 너무 커요.”이를 들은 현아는 금세 풀이 죽었다. 수도가 커도 너무 컸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추측만으로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다.현아가 가만히 있자 주한은 컵에 온수를 따라 한 모금 마셨다.“아직도 신고는 싫어요?”이를 들은 현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고 망설이기 시작했다. 윤아의 말을 듣고 신
“응? 안다고?”현아는 수현이 이를 알고 있다는 것에 살짝 의아했다. 윤아가 분명 수현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는데 말이다.“응.”“그럼... 구하러 간 거야?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수현이 곧바로 물었다.“너 지금 어디야? 그쪽으로 사람 보낼게.”현아가 대답 대신에 물었다.“설마 지금 카네베 수도에 있는 건 아니지?”“맞아.”“...”믿을 수 없는 남자라고 수현을 욕하던 현아는 할말을 잃었다.그를 함부로 판단한 것에 얼굴이 뜨거워졌다.수현을 허우대만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수현은 어느새 카네베 수도까지 와 있었다.현아는 주한과 시선을 주고받더니 말했다.“윤아가 떠나기 전에 묵었던 호텔에 있어.”현아는 일부러 어느 호텔인지 말하지 않았고 이로써 수현이 알고 있는지 떠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수현은 알겠다고 하더니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고 어느 호텔인지는 묻지 않았다.전화를 끊은 현아는 멍해서 핸드폰을 꼭 부여잡았다.옆에 있던 주한이 입꼬리를 당기며 말했다.“보아하니 우리보다 더 먼저 알고 있었던 거 같은데요.”“근데 윤아는 왜 연락이 안 된다고 했을까요?”“아마 그때 비행기에 있어서 연락이 안 됐을 수도 있죠.”제법 그럴싸했다. 윤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고 바로 쫓아갔고 비행기라 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윤아도 현아도 그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는?착륙하고 나서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은 걸까? 그러다 중요한 정보를 놓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생각할수록 마음에 걸린 현아는 이따 만나서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일단 정리하고 내려가요.”현아는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건을 정리하러 가기 전 그녀는 주한에게 몇 마디 당부했다.주한은 올 때도 갈 때도 아예 자기를 신경 쓰지 않는 현아의 모습에 입을 삐죽거리더니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을 정리했다.십여 분 뒤.수현이 보낸 사람이 둘을
수현의 성격대로라면 아마 5년 전처럼 차가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그래서 뭐?”비록 현아는 수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5년 전의 수현이었다면 아마 이런 성격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런 그가 지금 현아에게 사과한 것이다.예고 없이 들이닥친 사과에 현아는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고 한참 후에야 손을 흔들며 그냥 넘어갔다.“우리가 호텔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아무도 없었어. 호텔 직원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사람을 찾겠다고 방을 아수라장을 만들고 갔다고 했는데 너였어?”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윤아가 쓰던 물건 좀 찾았어.”“그게 뭔데?”윤아가 두고 간 치마는 부피가 커서 지니고 다니기 어려워 서랍에 남겨둔 피어싱만 챙겼다.윤아는 총명했다. 눈에 띄는 곳에도 물건을 남기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도 작은 물건을 숨겼다.이런 물건은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었다.“이거 윤아 피어싱 맞아. 내가 선물한 거거든.”현아는 그 피어싱을 보자마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방에서 찾았다고?”“응.”“그럼 지금 윤아가 어디 있는지... 너도 모르는 거야?”이렇게 생각한 현아는 그 피어싱을 꼭 움켜쥐고 눈시울을 붉히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윤아가 신고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진짜 안 해도 괜찮은 거야? 근데... 신고했다가 무슨 일 나면 혹시나 나를 원망할까 봐...”“아니면 신고할까?”현아의 말에 수현이 뭔가를 눈치챈 듯 실눈을 뜨고 말했다.“윤아가 그렇게 얘기했다고?”현아는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앞에 있는 남자는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와 선우는 연적이다. 만약 윤아가 신고하지 말라고 했다는 걸 알면...이렇게 생각한 현아가 얼른 덧붙였다.“윤아가 그렇게 말한 건 맞지만 내 제안이기도 해. 지난 5년간 선우가 윤아를 보살폈는데 이런 짓을 저지른 것도 그냥 잠깐 생각을 잘못해서 그런 걸 거야. 윤아를 해치지도 않았는데 신고했다가 선우 잘못되기라도 하면 선우 얼굴을 윤아가 어떻게 보겠
얼마 후 현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다시 수현에게 물었다.“이렇게 태연한 걸 보니 방법이 있나 보네?”“찾아야지.”수현의 대답이 너무 심플했다.“...”현아는 말문이 막혔다.찾아야지?찾아야 하는 건 현아도 알고 있다. 문제는 어디 가서 찾느냐다.“수도가 이렇게 큰데 여기서 사람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지.”수현은 도도한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울화가 치밀어 오른 현아가 뭔가 말하려는데 주한이 말렸다.현아는 한참을 주한과 마주 보며 눈만 대굴대굴 굴리다가 핸드폰을 꺼내 주한이 보는 앞에서 문자를 적었다.[대표님, 뭐 하는 거예요?]주한은 현아의 핸드폰을 가져와 그 아래에 답장을 적었다.[현아 씨가 급하겠어요, 진수현 씨가 더 급하겠어요? 현아 씨 말처럼 애도 진수현 씨 애인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앉아 있을 사람으로는 안 보여요.]주한의 분석을 들어보니 그럴듯했다. 급해도 수현이 현아보다 더 급할 것이다.윤아 걱정은 안 해도 자기 자식 걱정은 할 것이다.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 모습을 보니 현아도 마음이 놓였다.수현은 둘을 다른 곳에 정착하게 하고 이내 어디론가 떠났다.현아는 우진도 만났다. 우진은 무슨 수요가 있으면 자기를 찾으면 된다며 안심하고 여기 있으라고 했다.현아는 우진에게 물었다.“진 대표님 윤아 어디 있는지 아는 거 아니에요?”현아가 윤아의 좋은 친구라는 걸 알고 있기에 우진도 숨김없이 말했다.“자세한 건 모르지만 대략 어디 있는지는 알아요. 아직 찾는 중이고요.”“대략이라고요?”현아는 역시 주한의 말이 맞음에 감탄했다. 수현이 그렇게 늠름했던 이유는 이미 그녀의 위치를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근데 왜 그녀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거지?“네, 하지만 자세한 위치를 알아내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해요.”우진이 사실대로 말했다.“그럼 얼마나 더 걸려요?”수현이 확신이 있다고 해도 윤아 친구로서 현아는 조급해 날 수밖에 없었다.이 질문에 우진은 대답할 수가 없어 한참을 망설
주방.선우가 웃으며 맞은편에 앉아 윤아와 아이들을 맞이했다.“안녕.”하윤과 서훈은 이상한 분위기 탓인지 선우가 먼저 인사해도 눈빛을 피하며 대꾸하지 않았다.하지만 선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의자를 빼주었다.하윤과 서훈은 윤아를 올려다보며 눈빛으로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윤아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여서야 둘은 자리에 앉았다.윤아는 아이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 요 며칠 너무 마음이 급해서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더니 오늘은 조금 배가 고팠고 좋아하는 몇 가지를 직접 골라 먹었다.선우는 윤아가 음식을 집어 먹자 약간은 놀란 듯 보였다.윤아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그녀가 갇혀 있으면서 단식 투쟁을 하지 않은 것을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사실 선우와는 단식으로 투쟁을 해도 된다. 진짜 그녀를 위한다면 그녀가 밥을 먹지 않고 버티는 걸 마음 아파할 테니까.하지만 이는 윤아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아이도 둘이나 있는데 윤아가 단식하면 애들은 어떡할까.그렇다고 같이 단식할 수는 없었다.아이들을 이 세상에 데려왔으니 온 힘을 다해 그들을 지켜내야 했다. 그러자면 일단 잘 먹고 잘 자는 게 중요하다.윤아는 밥을 먹으면서 맛있는 것들을 두 아이에게 집어주며 당부했다.“많이 먹어.”두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치 마지막 만찬인 것처럼 허겁지겁 먹었다.“천천히 먹어.”선우는 그러다 아이들이 체하기라도 할까 봐 이렇게 귀띔했다.하지만 셋은 그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불티나게 테이블에 놓인 음식들을 해치우고 티슈로 입을 닦았다.“가자.”윤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잽싸게 나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선우와 집사 둘 다 말이 없었다.어색한 분위기가 한참 지속되자 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집사가 말끝을 맺기도 전에 선우가 이를 끊어버렸다.“식사할 땐 말을 하지 않는 게 예절이죠.”집사는 어쩔 수 없이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키고는 더는 말할 엄두를 못 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