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은 수현에게 항상 대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만 보여줬지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화를 낸 건 처음이었다.소영은 어쩔 바를 몰라 얼른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수현 씨, 여긴 어쩐 일이야?”말을 채 하기도 전에 소영은 눈물을 흘리며 수현 쪽으로 냉큼 다가왔다.“나는 수현 씨가 다시 나 안보는 줄 알았어요.”수현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더니 그녀의 손목에 멈췄다.“왜 갑자기 이렇게 화를 내는 거야?”이에 소영은 얼른 해명했다.“나, 나는 수현 씨가 이제 나랑은 얘기도 안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기분이 잡쳐 있었어.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나영아, 너 괜찮아?”나영은 고개를 저었다. 마음속으로 나영을 가식적이라고 욕하면서도 자리를 피했다.“그럼 전 먼저 나가볼게요. 말씀 나누세요.”그렇게 나영은 병실에서 나가며 친절하게 병실 문까지 닫아주었다.소영은 지금이 몇 시인지 몰랐지만 늦은 밤인 것쯤은 알고 있었다. 수현이 이 시간에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수현 씨, 혹시 아직도 화났어?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다 해명할 수 있어. 밖에 돌아다니는 소문 절대 믿지 마. 나 하태훈이랑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이 말을 들은 수현의 입꼬리가 천천히 당겨졌지만 딱히 대꾸하지는 않았다. 그저 소영을 피해 안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수현이 차가워졌음을 느낀 소영은 불안해지기 시작해 얼른 그의 뒤를 졸졸 따랐다.“나 못 믿는 거야?”수현은 느긋하게 물을 한 잔 따르며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소영은 하는 수 없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어젯밤에는 어디 갔어?”소영은 이렇게 말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혹시 윤아 씨 찾으러 간 거야? 나도 알아. 수현 씨 아직 윤아 씨 못 잊었다는 거. 근데 5년 전에 수현 씨를 그렇게 모질게 대하던 사람이 지금 와서 수현 씨와 다시 이어진다 해도 결국 또 5년 전처럼 매정하게 버릴 거야. 하지만 나는 달라. 내 마음속엔 수현 씨밖에 없어. 나는 절대 수현 씨를 저버리지 않을뿐더러 수현 씨
소영은 수현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 그 자리에 선 채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한참 지나서야 소영은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설마 다른 사람의 공을 뺏은 걸 수현이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아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구조됐을 때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 게다가 윤아는 이 기억을 잃었기에 수현은 이 일을 알아낼 곳이 없었다. 윤아가 기억을 회복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돌아올 기억이었으면 진작 돌아오고도 남았지 지금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올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소영은 윤아가 진짜 기억을 회복했다면 지금까지 꾹 참고 찾아오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온 세상에 수현을 살린 건 사실 그녀였다고 떠들고 다녀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이렇게 생각한 소영은 조금 전 꾼 꿈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민감해진 것이라고 자신을 달랬다.수현이 지금 이걸 묻는 건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이 기회에 이미지를 조금 더 불쌍하게 만들면 수현이 그녀를 더욱 아껴줄 거라고 착각했다.그때가 되면 다시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를 꺼내면 된다.그래도 안 되면 목숨으로 위협할 계획이었다. 병원에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의료진이 제때 응급처치만 해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소영은 얼른 방향을 잡고 억울한 척을 조금 더 하기로 작정했다. 그녀가 처지를 불쌍하게 말하면 할수록 수현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은혜를 더 가슴에 새길 것이라 여겼다.수현이 이 일에 묶여만 있으면 언제든 자연스럽게 결혼하자고 해볼 생각이었다.이렇게 마음을 먹은 소영은 수현의 앞에서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그때 사실 힘이 거의 다 빠지긴 했는데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수현 씨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렬해서였어. 수현 씨와 같이 죽기는 싫었거든. 만약 그렇게 죽어버리면 우리는 아무 기회도 없는 거니까, 그런 일념으로 수현 씨를 물 밖으로 끌어낸 거야.”소영의 진술을 듣고도 수현은 전혀 감동하지 않은 듯 덤덤한 표정이었다.“그럼 너는 어떻
수현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소영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소영은 수현이 이 일을 물은 이유가 그냥 과정을 듣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그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 소영은 자신이 어떤 비참한 결과를 맞을지 눈에 선했다. 당황한 소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말도 더듬거렸다.“수현 씨, 당신을 구한 건 내가 맞아. 다른 사람이 하는 소리 듣지 마. 다 수현 씨를 현혹하기 위한 수작일 뿐이야. 우리가 헤어졌으면 해서 이간질 하는 거라고.”수현은 소영의 말에서 끝내 듣고 싶었던 관건 정보를 얻어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나 누구라고 말한 적 없는데.”소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때 강가에 있었던 사람은 나와 너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었을 텐데 넌 왜 하필 윤아가 말한 거라고 단정 짓는 거야? 만약 윤아가 현장에 없었다면 무슨 말을 하든 뭐가 중요해?”수현은 다소 매서워진 말투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아니면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우리 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있었다든지.”“아, 아니야!”소영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지만 수현의 시선은 피했다.“난 수현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그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정말 수현 씨랑 나뿐이야. 수현 씨를 살린 것도 나고.”“내가 윤아 씨를 꺼낸 건 어젯밤에 찾으러 갔다길래... 아, 맞다. 어젯밤에 만나러 간 거지? 그래서 오늘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변한 거네. 수현 씨, 어젯밤에는 내가 비굴하게 수현 씨 컵에 약을 탄 건 맞아. 하지만 그것도 수현 씨를 윤아 씨한테 뺏길까 봐 잠시 이성을 잃어서 한 짓이야. 그 행동 하나로 내가 수현 씨를 살린 것까지 부정하지 말아줘.”“수현 씨, 더는 윤아 씨한테 속지 마. 무조건 당신을 속이고 있는 거야. 어젯밤 있었던 일 때문에 일부러 이야기를 지어내서 나를 해치려 드는 거라고.”소영은 미친 사람처럼 수현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소영은
소영은 당황했지만 금방 다시 정신을 차렸다.진수현은 오늘 밤 그녀를 떠보기 위해 온 게 분명하다.하지만 소영이 끝까지 잡아떼면 그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생각이 정리된 소영은 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냥 수현 씨가 은혜도 잊고 나한테서 증거 빼내려고 떠보러 온 거잖아. 그래야 윤아 씨한테 돌아가서 얘기해줄 수 있으니까. 수현 씨, 잘 들어. 난 수현 씨가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 없어. 물에 빠진 수현 씨를 구해줬던 날, 난 하마터면 같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했어. 윤아 씨가 뭐 어떻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그런데 내가 힘들게 얻은 것들까지 뺏어갈 생각은 하지 마. 네가 구해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나한테서 증거 따위를 빼내려는 생각이라면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야.”소영이 벌써 눈치채버릴 줄이야.수현은 조소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는 사람이다.그는 긴 다리를 뻗더니 소영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강소영. 증거 없으면 내가 널 어떻게 못할까 봐?”증거도 없는데 뭘 할 수 있겠는가.소영은 고개를 들어 수현과 눈을 맞췄다.“내가 그날 수현 씨 목숨을 구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증거 찾을 때까진 내가 네 생명의 은인이야. 윤아 씨가 날 어떻게 비방하든 난 받아들일 수 없어.”“그래도 그 여자 말을 믿고 싶다면 그렇게 해. 대신 진씨 집안은 의리를 저버린 집안이 되겠지.”그 말에 수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음산하고 냉기가 가득해 마치 칼바람처럼 소영의 마음을 후벼파며 소름 돋게 했다.“넌 내가 애초에 널 믿었던 게 고작 진씨 집안 체면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 시선을 의식해서?”소영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깊은 바다 같은 수현의 눈빛은 잔잔하고 평온했다. 그러나 바다는 원래 차갑고 매정한 법이기도 하다.소영은 불현듯 수현도 그런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진씨 집안의 명성을 신경 쓸 리
“어떻게 된 거니?”나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일을 간단히 털어놓았다.“뭐? 진수현이 왔다고?”지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소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소영아, 수현이 왔단 걸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너 보러 온 거지?”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영은 마치 전쟁에서 참패를 당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참담한 기색을 띤 채 그녀의 부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소영아? 뭐라고 말 좀 해봐!”지혜는 그런 소영이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소영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엄마. 수현 씨가 알았어요. 다 알았다고요. 이제 나도, 강씨 집안도 가만 두지 않을 거예요.”그 말에 지혜는 미간을 찌푸렸다.“뭘 알았다는 거니? 말 좀 똑바로 해봐.”“심윤아. 심윤아 그 여자 기억이 돌아왔다고요. 수현 씨한테 다 말해버렸나 봐요. 그날 수현 씨를 구한 게 내가 아니란걸 알아버렸으니 나한테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은 우리겠죠. 엄마, 우리 어떡해요?”또렷하지 않은 발음으로 횡설수설 했지만 그래도 차분히 정리해 보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소영의 말을 모두 이해한 지혜는 사색이 되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소영아, 그게 무슨 말이야. 자기를 구해준 사람이 네가 아니란 걸 알았다니? 그때 네가 강물에 뛰어들어 진수현을 구한 거 아니었니?”소영은 이 비밀을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간직해왔다.덕분에 그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심지어는 가족들까지도 그녀가 사실 윤아의 공을 가로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그리고 이 비밀은 수현만 모른다면 한평생 밝히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이제 수현이 다 알아버렸으니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칼 같은 그의 성격에 이 일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는걸 아는 소영은 이제라도 빨리 가족들에게 알려 함께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판단했다.“엄마, 지금 당장 재산을 옮겨야 해요. 아니면 우리 집은 끝장이라고요.”강씨 집안이 망하면 소영의 인생도
지혜가 그렇게 떠난 후, 소영은 침대에 머리를 박고 두 손으로 얼얼해진 얼굴을 감싼 채 고통스럽게 울었다.엄마에게 맞은 게 아파서는 아니다. 그녀조차도 자기 자신을 한 대 때리고 싶어졌으니까.소영은 이제야 진작에 모든 걸 멈췄어야 했다는 걸 인지했다.하지만 이제 엎질러진 물이었다.이제 와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할까?‘누가... 도와주기나 할까?’그 순간, 누군가가 문득 떠오른 소영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나영아, 택시 좀 잡아줘. 빨리.”그녀에게 오늘밤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고즈넉한 테라스.진우진이 선우의 찻잔에 따뜻한 차를 부어주고 있다. 뜨거운 차는 차가운 공기와 만나며 모락모락 김을 풍겼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소영이 나영의 부축을 받으며 서있다.그렇게 서 있은 지 한참이 되었는데 선우는 지금까지도 앉으란 말 한마디 없었다.그의 옆에 있는 진우진이라는 비서도 마찬가지로 말 한마디 없이 차만 따르고 있었다.다급히 환자복 그대로 나온 소영의 손목엔 죽으려는 척 하기 위해 만들어낸 상처도 아직 그대로였다. 유일하게 몸을 덥힐 수 있는 외투도 나영의 것을 뺏어온 거였다.그러나 외투 하나로는 밤바람의 추위를 이겨낼 수 없었는지 수영은 저도 모르게 몸이 달달 떨려왔다.추위에 시달리다 보니 눈앞의 저 차 한 잔이 너무 간절해졌다.‘따뜻한 차 한 잔이면 몸속의 한기도 다 빠져나갈 텐데.’하지만 소영이 아무리 찻잔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어도 선우의 얼굴에는 아무런 온기도 없었다. 무뚝뚝한 표정이 예전의 그 따뜻하고 자상하던 때와는 완전히 딴 사람 같았다.그래도 차를 마시는 동작에는 예전의 그 부드럽던 모습이 얼핏 보였다. 그는 여유롭게 찻잔을 들어 올리더니 후후 불고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찬바람은 여전히 매정하게 불어댔고 소영과 나영의 몸은 더욱 움츠러들었다.수영은 추위에 몸을 떨다 더는 못 참겠는지 입을 뗐다.“선우야... 내가 한 말 생각해 봤어?”소영이 말을 건네자 선우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끔 보고
평소라면 그대로 뒤돌아 갔을 것이다.하지만 이제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소영은 이를 꽉 깨물고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사람 마음을 갖고 논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설마 네 마음이 진짜라고 생각해? 정말 그 여자가 다른 남자 품에 안겨도 상관없다는 거야?”그러나 선우는 소영을 상대하지 않고 옆에 있던 진 비서에게 말했다.“내보내.”“선우야, 윤아 씨는 곧 수현 씨와 결혼할 거야. 그 두 사람이 함께 떠나도 정말 괜찮다고? 네가 지난 5년 동안 윤아 씨 곁에 있었단 거 알아. 5년이란 시간을 통째로 바친 여자랑 영원히 함께하고 싶지 않아? 정말 다른 사람한테 뺏겨도 상관없어?”소영은 미친 여자처럼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잔뜩 흥분한 그녀와 달리 선우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말 다 했어?”싸늘한 한마디에 소영은 그대로 굳어버렸다.‘무슨 뜻이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고?’‘아니, 말도 안 되지. 윤아 씨 곁을 몇 년이나 맴돌았는데 좋아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선우가 윤아 곁에 버티고 있어 준 덕에 소영은 그동안 마음 놓고 그쪽에 사람을 붙이지 않은 거였다. 두 사람이 언젠간 감정이 생길 거라 생각했으니까.선우처럼 오랫동안 기다려주면서 맹렬한 애정 공세를 하는 남자를 어떤 여자가 마다하겠는가. 대부분 여자는 마음이 약해져 결국 그 남자를 받아주게 되어있다.그러나 윤아는 그녀의 예상보다 더 독했고 선우도 그녀의 예상보다 더 끈질겼다.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아직까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강소영 아가씨, 가시죠.”소영이 멍하니 서있을 동안 우진이 다가와 무정하게 그녀를 내쫓았다.선우도 더 이상 그녀와 얘기하고 싶어 보이지 않았다.소영은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나가려다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더 보탰다.“난 이해할 수 없어. 정말 나와 거래할 생각이 없다면 왜 날 만나준 건데?”정말 사용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만남을 거절했어도 됐을 텐데 말이다.한참을
이른 아침, 어수선하던 모든 게 순식간에 물밑으로 가라앉은 듯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러웠다.윤아는 산뜻한 바람을 한껏 만끽한 후에야 창문을 닫고 아침을 준비하러 갔다.어젯밤 수현이 떠난 뒤, 윤아는 옛 생각에 밤새 뒤척일 줄 알았으나 예상외로 아주 깊은 잠을 잤다.누워서 한참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그 뒤론 언제 잠든 건지 기억이 없었다.윤아가 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있는데 때마침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이 시간에 누구지?’감시 카메라를 확인해 보니 문 앞에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누군지 확인한 윤아는 곧바로 현관문을 열어주었다.“선우야, 무슨 일이야?”문 앞에 서있던 선우는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오랜만에 보는 건데 별로 안 반가워?”“그럴 리가...”윤아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고 몸을 돌려 선우를 집안으로 들였다.집에 들어선 선우는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곧 예전과 같이 신발장을 열어 실내화로 갈아신었다.“오늘 주말이니까 다들 약속 없지?”“주말이야?”윤아는 오늘이 주말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윤아와 아이들 모두 주말이어도 늦잠을 자지 않고 제시간에 일어나는 습관이 있어 별문제는 없었다.윤아의 반응에 선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한참 후에야 신발을 갈아신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일이 많이 바쁜가봐... 오늘이 주말인지도 몰랐어?”윤아는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지난번에 선우한테 모진 말을 내뱉은 이후로 윤아는 선우와 함께 있는 게 어색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을 거절하기 위해 싫은 소리만 가득 퍼부었으니 어쩌면 어색한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그 일 이후로 윤아는 당연히 선우가 다시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생각했다.선우도 당황스러워하는 윤아의 낌새를 눈치챈 듯 몸을 일으킨 후 대뜸 물었다.“연인은 못해도 친구는 할 수 있지?”윤아는 그제야 반응이 돌아온 듯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당연하지. 너만 괜찮다면 우린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