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현 밤 님?][네. 언제 시간 되십니까? 한 번 만나죠.]이번에 돌아온 답장은 꽤 길었지만 그의 제안에 윤아는 미간을 찌푸렸다.만나자고?송금만 하면 되는 일인데 굳이 만나야 하나?[제가 그냥 계좌로 보내드리면 안될까요?][현금만 받습니다.][...][갚기 싫으시면 그래도 괜찮습니다.]이 말에 윤아는 사실 상대방도 돈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눈치챘다. 그저 이런 방식으로 윤아가 포기하게 만들려는 거겠지.하지만... 그녀는 그 돈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생각 끝에 윤아는 답장을 보냈다.[어디서 볼까요?]드디어 허락하는 윤아의 말에 수현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얇은 입술은 심통이 난 듯 가로로 길게 늘어졌다.그는 핸드폰을 거두고 더 말하지 않았다.앞에 있던 민재는 순간 오싹한 기운에 그를 바라봤다.“대표님. 무슨 일이세요?”“출발.”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수현의 차디찬 한마디였다.민재는 무슨 영문인진 모르지만 그의 말대로 차를 운전했다.한편, 윤아는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답장에 의아해 났지만 다그치지는 않았다. 장소가 정해지면 어련히 알아서 답장이 올테니.상대방이 급하지 않으면 윤아도 급할 일이 없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윤아는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또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창가로 향했다.그녀는 전에 검은 차가 세워져 있던 자리에 차가 없어진 걸 확인했다. 휑한 땅에 가로등 불빛 아래 길게 늘어진 나무의 그림자만 보일 뿐이다. 마치 방금 본 검은 차는 그녀의 환각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말이다.윤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커튼을 쳤다._이튿날.윤아가 세안을 마치고 방 밖으로 나가자 거실에는 선우가 와 있었다.윤아가 나오자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그녀를 보며 싱긋 웃었다.“윤아야, 일어났어?”오랜만에 보는 선우의 다정한 미소, 따뜻한 눈길이다.윤아는 선우를 발견하고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머리를 끄덕였다.“좋은 아침. 무슨 일이야?”“생각해 본다고 했잖아. 시간이 꽤 흘렀으니 지금쯤이면 생각을 마쳤을것
윤아가 바로 그 말을 꺼낼 줄은 몰랐던 선우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럼 오늘은 내가 데려다주게 해주면 안 될까?”윤아는 오늘 그와 제대로 얘기할 예정이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허락해 주는 건 괜찮을 것 같았다.“그래.”아이들이 학교로 가는 길에 윤아는 유독 말이 없었다. 반면 하윤, 서훈이는 가는 길 내내 재잘재잘 말이 끊이질 않았다.선우도 가만히 그들의 얘기를 들어줬다.학교에 도착해서는 심지어 직접 내려 두 아이를 배웅해 주기도 했다.윤아는 옆에서 그런 선우를 가만히 지켜보다 순간 어디선가 느껴지는 날카로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바라봤다.어제 봤던 그 검은 차.윤아는 멈칫했다. 어제 본 게 착각이었다면 오늘도 그럼 착각이란 말인가?윤아는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그녀는 곧바로 발걸음을 돌려 차를 향해 걸어갔다.“윤아야.”그러나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선우의 목소리에 윤아는 정신이 돌아왔다.“왜 그래?”윤아가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보고 따라온 것 같았다. 그는 윤아의 곁으로 와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검은 차를 발견한 그는 갑자기 행동을 멈추더니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다.“아무것도 아니야...”윤아는 그제야 현실을 자각하고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아직 그냥 직감일 뿐인 이 일을 경솔하게 선우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촉이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게다가 학교 문 앞에 주차된 차다. 그 말은 학교 측에서 막지 않았단 말이다. 달리 이상한 짓을 한 것도 아니니 그저 이 학교 학생의 학부모일 가능성도 크다.시선이 느껴졌던 건...윤아는 입술을 앙다물고 미간을 찌푸렸다.“회사 가봐야 하지 않아? 먼저 가. 난 회사가 여기서 멀지도 않으니까 걸어가면 금방이야.”“심윤아.”선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싫단 뜻이었다.윤아는 그래도 고집스레 그를 보며 말했다.“
“엎드려요!”그와 동시에 수현이 차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민재도 빠르게 반응하고 엎드렸다.윤아는 창문 앞에 바싹 붙어서 차 안을 유심히 관찰했다.유난히 강렬한 햇빛 때문에 야외에 오래 서있었던 윤아는 눈이 침침했다. 덕분에 그녀는 차에 아무리 찰싹 붙어도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깜깜하네.’하지만 쉽게 포기할 윤아가 아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버티고 서있어 보기로 했다.차 안의 두 사람은 거의 눕다시피 있었다. 수현은 몸을 눕힌 채 눈동자만 옮겨 차창 옆에 기대어 있는 윤아를 바라보았다.반면 민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숨도 못 쉬고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그는 윤아의 경각심이 이렇게까지 높을 줄은 몰랐다.별로 한 일도 없는데 고작 두 번 이곳에 왔다고 바로 들키는 건가?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윤아는 더 보이는 게 없자 어쩔 수 없이 이쯤에서 포기했다.그녀가 떠나자 민재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대표님. 윤아 아가씨 진짜 무섭네요. 차 안에 사람이 있는 건 또 어떻게 아셨지?”둘은 윤아의 기습에 많이 놀란 듯 그대로 한참을 더 누워있었다. 언제 그녀가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섣불리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윤아가 정말 갔음을 확인한 후에야 둘은 몸을 일으켰다.표정이 안 좋은 수현.민재는 많이 놀랐는지 뛰는 가슴을 문지르며 말했다.“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대표님. 저희 이제 어쩌죠?”수현은 싸늘하게 민재 쪽을 한 눈 보고는 입술을 앙다물었다.잠시 후, 그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_하윤이는 오늘도 간식시간에 먹을, 먹거리들을 챙겨 왔다.하지만 학교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부터 배가 출출하기 시작한 하윤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서훈을 보며 말했다.“오빠, 나 먹고 싶어.”하윤이와 한날한시에 한배에서 태어난 서훈이 그녀의 생각을 모를 리가 없었다. 먹고 싶다는 하윤이의 말에 그는 단번에 뭘 말하는지 알아차렸다.“안 돼. 아침 먹은 지 얼마 안 됐잖아.”
수현을 본 훈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금 뒤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그에게 다가간 뒤 우물쭈물 말하는 서훈,“고독현 밤 아저씨.”“응.”수현이 머리를 끄덕이며 조금 울적하게 훈이를 바라보았다.확실히 윤이보다 경계심이 강한 훈이는 그가 신분을 밝혔는데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수현은 아무래도 이 녀석의 믿음을 얻고 의지하게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매일 학교로 찾아오다 보니 그의 목적이 너무 적나라했다.수현은 가자미눈을 하고 속으로 대책을 생각했다.“아저씨. 아저씨는 누구 아빠예요? 오늘은 만날 수 있어요?”하윤이 어제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다.수현은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좀 그렇고, 다음에?”“음, 그래요.”수현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동생 윤이를 노려보고 있는 훈이를 한 눈 보고는 더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두 번째인데 훈이는 어제보다 더 경계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만약 계속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이 녀석은 마음의 벽을 더 단단히 세울 거고 그때가 되면 그 벽을 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생각 끝에 수현은 몸을 일으켰다.“아저씨는 오늘 할 일이 있어서 왔다가 한 번 들른 거야. 별일 없으면 아저씬 이만 다시 일하러 가볼게.”윤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였다.“아저씨 저희 보려고 일부러 온 거 아니었어요? 그럼 이따가 저희랑 수다도 안 떨어요?”“미안해.”수현이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말했다.“아저씨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그러자 윤이는 데친 시금치처럼 풀이 죽어 버렸다.반면 옆에 있던 훈이는 그 말을 듣자, 경계가 풀린 듯 조금 마음을 놓았다.쯧.역시 아직 어린애긴 한가 보다.똘똘하긴 하지만 경험은 부족하다.수현은 더 머물지 않고 두 아이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떠났다._교장실.수현은 창틀에 걸터앉아 핸드폰으로 어젯밤 윤아가 보낸 문자를 다시 보고 있었다.아직은 만날 때가 아니다.하지만... 수현은 윤아가 다른 남자와 그를 대하
무슨 말을 할지는...수현은 곧바로 답장했다.[안 됩니다. 저도 내일 일 있습니다. 지금 급전이 필요하니 시간 조정해 주시죠.]수현의 문자를 본 윤아는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그의 말 하나하나가 모두 완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어젯밤과 마찬가지다. 그의 돈을 돌려주는 거니 그에게 맞춰야지.윤아는 뭔가 자기의 도덕적 양심에 묶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충분히 선우에게 곧장 전화를 걸어 차 고르러 같이 못 간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어차피 하려던 말은 그 뒤에 있으니까.하지만 지금 상대방이 너무 강하게 나오는 바람에 윤아는 반감이 들었다. 그녀의 직감이 그녀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고 얘기하고 있었다.그런데 급전이 필요하다고 하니...윤아가 생각 끝에 답장했다.[정말 돈이 급하시면 그냥 계좌이체 해드릴게요. 큰돈을 현금으로 들고 다니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기도 하잖아요.]말을 마친 윤아는 생각하면 할수록 상대방의 요구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마침 현아가 한가로우니 윤아는 그녀에게 이 일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줬다.윤아의 말을 들은 현아는 곧바로 그녀에게 연락했다.“이거 그린 라이트 아냐? 그 사람 혹시 널 만나고 싶은데 핑곗거리가 필요한 거 아냐?”윤아:“?”뭐라고?“그게 아니면 뭐겠어? 계좌이체면 될 일을 뭐 하러 굳이 현금으로 받는다는 건데? 그리고 전에 네가 그랬잖아, 선물만 보내고 말은 안 한다며? 돈 돌려받지도 않는다고 그러고.”“응. 그랬지.”“그럼 맞네. 그렇게 오랫동안 선물 공세를 했는데 돈이 모자라겠어? 그리고 국내에 요즘 공금을 인터넷 방송에 쓴다는 뉴스는 없었어.”공금 얘기에 윤아가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걸 수도 있지. 정말 공금을 쓴 건데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지도.”“그럴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작지. 그 사람이 인터넷 방송에 쓴 금액이 어디 평범한 법인카드로 긁을 수 있는 금액이니? 그 큰돈을 막 쓰는 게 작은 일도 아니고.”“그렇긴 하지.”“그러니까 그 사람은 널 만나고 싶어 하는 거
윤아는 현아의 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넌 어떻게 하루 종일 내 걱정만 해?”“내가 친구가 너밖에 더 있냐. 그리고 내가 네 걱정 안 해주면 누가 해줘. 으휴, 이것도 다 네 미래의 행복이 달린 일인데 내가 당연히 신경 써야지.”가만히 듣던 윤아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내 걱정 할 시간에 네 걱정이나 해. 몇 년 동안 어떻게 남자 친구 하나 없어.”“말 돌리지 마. 내 쪽으로 화제 돌릴 생각 하지 말라고. 나 지금 진지하거든?”윤아는 현아에게 뭐라 더 하고 싶었으나 마침 고독현 밤이 두 번째 문자를 보내는 바람에 얘기를 더 이어가지 못했다.“빨리 약속해. 내가 말한 대로 한다고.”윤아:“...”“빨리 윤아야. 이 좋은 기회를 날릴 셈이야? 그 사람 돈도 많고 괜찮아 보이는데.”“나 오후에 선우랑 약속 있다니까.”곧바로 말을 잇는 현아:“취소해.”“하지만...”“뭐가 하지만이야, 어차피 넌 안 좋아한다며. 실망은 시키겠지만 어쩔 수 없지. 둘 다 가질 순 없잖아. 이선우 씨가 너한테 잘해주는 것도 맞고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던 것도 맞지만 감정이란 게 강요한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 실망도 여러 번 하다 보면 마음 접겠지.”윤아는 더 말하지 않았지만, 현아의 말들을 새겨들었다.실망이 반복되면 정말 마음을 접을까?“근데 이선우 씨는 실망을 좀 많이 해야겠던데. 5년 내내 그렇게 까이고도 아직도 마음을 접지 않았잖아. 너도 좀 단호해질 필요가 있어. 진짜 아니면 아예 관계를 끊어버려. 그래야 이선우 씨한테도 피해가 안 가잖아.”“응. 알았어.”전화를 끊은 윤아는 꺼진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선우와 인연을 끊으라고?솔직히 윤아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잘못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그와 연을 끊는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하지만... 현아 말대로 그는 5년 동안 그렇게 거절을 당했는데도 단 한 번도 포기를 하지 않았다.그 정도 마음이라면...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정말 그에게 몹쓸 짓을 하는거겠지
“바로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쪽에서 아이를 이곳에 보내 학교에 다니게 하는 걸 받아들일 진 모르겠지만요.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라 동의 안 하실 수도 있겠어요.”수현이 민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냉랭하게 말했다.“무슨 수를 쓰든 동의 받아내요.”“알겠습니다.”_조우림과 그의 아내 서가영은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둘은 같은 회사에서 근무 중이라 늘 퇴근 후 함께 집에 간다. 점심엔 두 시간 동안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집과 회사가 가까워 집까지 충분히 걸어갈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반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휴식을 취한 뒤 함께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매일이 그렇게 평화롭다.조우림은 이런 일상에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이대로 쭉 별일 없이 살다가 죽어도 괜찮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그의 아내도 생각이 같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그의 아내는 종종 그에게 쓸모가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다른 남자들은 돈도 많고 승진도 잘하는데 그는 회사에서 몇 년을 다녔는데도 여전히 제자리니 말이다.그녀의 불만은 그렇게 조우림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응어리가 졌다.하지만 그 정도 마음의 돌은 둘의 결혼 생활에 크게 해를 끼치진 않았다. 우림은 늘 불쾌한 마음도 자신의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두고 살았다. 최근엔 그도 승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심지어 이직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마땅히 들어갈 만한 회사도 자리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여보, 점심은 비빔면 어때. 오늘 좀 피곤해서 요리하기가 싫네.”가영의 말에 우림이 미간을 찌푸렸다.“어제도 비빔면 먹었잖아, 또?”“오늘 또 먹으면 어때서? 비빔면이 만들기 간단하니까 그러지. 싫으면 당신이 혼자 차려 먹든가.”“난 일하기도 바쁜데 어떻게 밥까지 해?”“너만 일하니? 난 놀고먹어? 근데 매일 나만 밥 하잖아. 먹기 싫으면 배달시키든지 알아서 해. 아님 주방 아줌마 한 명 쓰든가.”“배달? 주방 아줌마? 그건 돈 안 드는
우림은 이민재가 누군진 몰라도 진 씨 그룹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수현이란 이름도 그의 회사에서 꽤 유명한 이름이었다.옆에 있던 서가영도 그걸 아는지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었다.“저희를 찾아오셨어요?”부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민재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는 모습을 보았다. 곧이어 민재는 두 사람의 이름을 거듭 확인하며 말했다.“조우림 씨, 서가영 씨. 본인 맞으시죠? 여기 사진도 맞으시고?”우림과 가영은 고개를 들이밀고 서류를 확인했다. 그곳엔 그들의 개인정보와 사진이 틀림없이 박혀있었다.“네, 저희 맞는데요. 근데 무슨 일로?”“여기선 좀 그렇고, 들어가서 얘기할까요?”부부는 곧바로 민재를 집으로 들였다.민재는 집에 발을 들인 후 빠르게 집 안을 훑었다. 역시 조사한 대로 두 사람의 형편은 그냥 그래 보였다. 아무리 여기저기서 돈을 벌어 모은대도 매달 나가는 생활비에 부동산 대출까지 내야 하니 넉넉하진 않을 거다. 게다가 아이까지 있으니, 학비도 부담될 테고. 그러다 보니 집 안을 세심히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거지.가영은 민재를 위해 차를 한 잔 내왔다.하지만 민재는 차는 입에도 대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두 분 오후에 또 회사 나가보셔야 하죠? 시간 너무 뺏지 않고 바로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민재는 찾아온 목적을 얘기했다.둘은 민재의 말을 들은 후 얼이 빠진 듯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이 들었다.“자,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정말이에요?”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 진수현 대표님께서 두 분 자녀분을 후원하실 겁니다.”“하, 하지만... 왜요?”서가영은 이해가 안 되는 듯 물었다.“그런 건 보통 빈곤가정이나 시골에 사는 아이들한테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집 형편이 그렇게까지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요?”“그렇긴 하죠. 만약 후원이 목적이면 그런 아이들을 찾았겠죠. 하지만 저희 대표님은 다른 이유가 있으십니다. 두 분 형편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두 분 조상님이 저희 대표님과 아주 조금의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