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몸에는 은은한 레몬 향이 풍겨 매우 상쾌했다.그녀를 안았을 때 심윤아는 몸과 마음이 다 편안해져 힘껏 이선희를 안았다.여성 어른들은 늘 심윤아를 각별히 사랑했다.이선희도 이를 느끼고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심윤아의 코를 살짝 다쳤다.“엄마 보고 싶었어?”‘엄마’라는 호칭에 심윤아는 잠시 놀라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보고 싶었어요.”“우리도, 윤아야. 우리도 보고 싶었어.”말을 마친 이선희는 심윤아의 볼을 가볍게 쥐었다. 심윤아의 피부가 너무 좋고 부드러워 참을 수 없어서 또 두어 번 얼굴을 손으로 잡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진태범에게 말했다. “여보, 윤아에게 줄 선물 가지고 왔어요?”그 말을 듣고 진태범은 주머니에서 박스 두 개를 꺼냈다.“그럼요.”이선희는 돌아서서 선물을 가져와 심윤아에게 건넸다.“여기, 우리가 이번에 너를 위해 선물을 가져왔어.”사실 지금뿐만 아니라 예전에 그녀가 진수현과 결혼하기 전에도 진태범과 이선희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그녀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었다.만약 그녀가 받지 않는다면, 이선희는 그녀가 받을 때까지 계속 설득할 것이었다. 그래서 선물을 받은 심윤아는 입술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내밀어 받았다.“어머님, 아버님 고마워요.”“그래.”“그래도 양심은 있네. 선물도 챙기고.”김선월이 말했다.“물론이죠, 어머님. 윤아가 이렇게 최선을 다해 어머님을 보살폈고 윤아도 우리 며느리이니 당연히 윤아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어야죠.”화기애애한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는 심윤아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과 고민을 뒤로했다.그때 진수현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진태범과 이선희를 보고 그는 원래 냉랭했던 얼굴이 좀 누그러지긴 했지만 얼굴빛은 여전히 좋은 편이 아니었다.요즘 제대로 쉬지 못한 진수현은 어젯밤 잠까지 못 자 눈이 온통 빨갛고 눈가도 푸르스름했다. 지칠 정도로 피곤해 보였다.이선희는 한 번 보고 눈빛이 변했지만 나중에 김선월에게 부담이 갈까 봐 김선월 앞에서는 아무 말도
“어머니가 아버지를 쫓아다녔던 것처럼요?”이선희는 원래 기뻐하며 자기 아들에게 연애비법을 가르쳤는데 진수현이 갑자기 화제를 이선희 쪽으로 돌렸다. “무슨 소리야? 분명 네 아버지가 처음부터 나를 쫓아다녔기 때문에 오늘날 나와 그이가있는 거야, 알아?”진수현은 혀를 내두르며 더 이상 이선희와 논쟁하지 않았다.애초에 이선희가 진태범을 쫓아다녔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지났고 진태범은 이선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은 분명 진태범이 이선희를 쫓아다녔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수법을 그는 이미 많이 보았었다.“뭐가 쯧쯧이야? 너 못 믿어?”이선희는 불쾌한 듯 말했다. “못 믿겠으면 아버지 앞에 가서 물어볼까?”“됐어요.”진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타세요, 병원에 가서 검진 받아야 하잖아요.”말을 마치고 이선희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진수현은 바로 앞으로 걸어갔다.이선희는 그 자리에 서서 몹시 성이 났고 마침내 그가 왜 윤아와 사이가 틀어졌는지 알게 되었다.아들의 성격은 그의 아버지와 똑 닮았다. 무겁고 답답하며 다른 사람이 빙산처럼 차갑다면 진수현은 그야말로 나무 같았다.‘만약 윤아 성격이 나와 같지 않다면 두 사람...” 이선희는 속으로 탄식하며 따라 차에 올랐다.-차 한 대에 모든 사람이 탈 수 없자 김선월은 자기 아들과 며느리의 차를 타겠다고 했다.심윤아도 즉시 그녀를 따라 차에 올랐다.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선월이 심윤아에게 말했다.“윤아야, 수현이 차를 타거라.”그 말에 심윤아는 멍해졌고, 동시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할머님?”‘설마 할머님이 무엇을 알아챘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 왜 진수현의 차를 타라고 하는 거지?’김선월은 심윤아를 위로하듯 손을 잡았다.“난 내 며느리와 오랫동안 말을 못 했어.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여기까지 듣고서야 심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할머님,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곁에 있어 드릴게요.”“윤아야, 난 며느리와 다른 얘기 좀 해야겠
심윤아는 그의 불온정한 정서에 비해 훨씬 차분했다.“빨리 운전해. 할머님 검진 지체하지 말고.”다른 사람이 없으니 심윤아는 더는 연기하지 않았는데 말투와 표정도 평소와 달랐다.말을 마치자 심윤아는 아무런 응대가 없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수려한 눈썹을 가볍게 찡그리기 시작했다. 원래 그녀는 이렇게 빨리 진수현과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았지만, 방금 그가 하는 말이 너무 화가 나서 참지 못했다. ‘할머님께서 오늘 검사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 막무가내로 화내지 말자.’생각을 마친 심윤아는 심호흡을 하고 돌아서서 진수현에게 뭐라고 말하려 할 때 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그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진수현을 쳐다보았다. 어두운 얼굴로 차를 운전하는 그의 몸에서 짙고 어두운 기운이 풍겼다.왠지 모르게 심윤아는 갑자기 코가 찡해지며 억울함이 가슴속에서 밀려왔다.‘뭐야... 분명...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내가 왜 이걸 감수해야 하는 거지? 너랑 강소영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나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결혼을 하자고 한 것도 진수현이었고, 이혼을 하자고 한 것도 진수현이었고, 아이를 없애라고 한 것도 진수현이었다. 분명히 그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데 지금 그는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지?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떨어지기 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본 심윤아는 몸을 뒤로 젖히고 고개를 들어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됐어, 그냥 이렇게 하자.’아마 결국 친구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그 누구도 그녀더러 수현을 좋아하라고 하지 않았다. 모두 그녀 자신이 원해서 한 일이었다.차가 아주 빠른 속도로 반쯤 운전한 후에야 진수현은 비로소 정상속도로 차를 몰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릴 때 진수현은 심윤아가 방금 울었던 것처럼 눈이 빨개진 것을 발견했다.붉게 물든 눈시울을 보고 나서야 마음속의 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심윤아가 병원으로 걸음을 옮기려 할 때 진수현이 손목을 잡아당겼다.
약 10분 정도 밖에서 기다리자 진태범의 차도 도착했다. 김선월이 차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 쪽의 운전기사는 매우 천천히 운전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진태범은 진수현을 흘겨보더니 쌀쌀맞게 말했다.“왜 그렇게 차를 빨리 몰아? 너 혼자면 그만이지 윤아도 네 차에 있는데.”아들을 질책한 후 진태범은 윤아에게 관심을 주었다.이선희는 휠체어에 탄 김선월을 천천히 밀며 걸어와 무심코 자기 아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진수현의 얼굴이 사색이 된 것을 보고 속으로 몇 마디 혀를 내두른 후 허탈하게 고개를 저었다.그에게 비법까지 전수해 주었는데, 이렇게 바보라니. 이 꼴을 보니 정말 쌤통이었다.휠체어에 앉아 있던 김선월 역시 뭔가를 눈치챘는지 참지 못하고 말했다.“저 둘, 요즘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말을 듣고 이선희는 멈칫하더니 빨리 김선월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젊은 사람들은 싸우기를 좋아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저도 젊었을 때 남편이랑 사흘에 한 번씩 싸우던 것이 생각나요. 그가 저에게 많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고 저에게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말이에요. 어쨌든 처음에 같이 있을 때는 성격을 맞춰야 점점 잘 맞아요.”“일리가 있는 말이야, 하지만...”김선월은 그래도 걱정이 되어 며느리에게 강소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이선희는 영리해서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만약 잘 해결된다면 그녀도 이 일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강소영...’강소영에 관해 김선월도 어쩔 바를 몰랐다. 강소영이 평범한 여자라면 몰라도 하필이면 진씨 가문에 은혜가 있는 사람이니 일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다.진수현더러 그녀를 무시하라고 하는 것도 도리에 맞지 않았다. 무시 할 수도 없고 냉대할 수도 없고 오히려 잘 대해줘야 한다. 이런 관계는 정말 어른인 그들을 난처하게 했다.김선월의 말을 들은 후 이선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어머님이 걱정하시는 게 이 일이었어요? 그렇다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수
검진은 김선월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문 밖에서 지켜야 했다.진수현은 창가에 기대어 자신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다가 담배를 피우지 않은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당황하면 담배를 피우려던 버릇이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다.사실 예전에는 담배를 많이 피우지 않았지만 완전히 끊은 것은 1년 전이었다.바로 두 사람이 실수로 잠자리를 가진 후부터였다.진수현은 그녀의 몸과 냄새에 중독된 것처럼 멈출 수 없었다.그는 처음에 그녀에게 틈만 나면 키스했다. 다양한 시간, 다양한 장소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한 번은 그가 몇 시간 동안 회의를 했는데 그날 회의 내용이 진수현의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어 그는 회의실로 돌아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담배를 들이 마신 지 얼마 안 가 심윤아가 자료를 들고 들어오더니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관심하며 물었다.“왜 지금 담배를 피우는 거야? 기분이 안 좋아?”그는 대답하지 않고 검은 눈동자만이 깊게 그녀를 주시했다.그때만 해도 심윤아와 그의 관계는 여전히 좋았다. 그가 냉담한 표정을 짓고 화를 내도 심윤아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직접 손을 뻗어 그의 손에 있는 담배를 빼앗으려고 했다.결국 담배를 빼앗지 못했고 오히려 그의 품으로 끌려가 그의 다리에 앉았다.다리에 앉자 심윤아는 아예 두 손을 그의 어깨 위로 올려놓았다.“화내지 마, 방금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이젠 다 지나갔어.”말을 할 때, 그녀의 작은 입술이 앞에서 쉴 새 없이 재잘거렸고 움직일 때마다 매혹적인 광채를 띠었다.진수현의 눈빛도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어두워지더니 손을 들어 심윤아의 턱을 쥐며 입을 맞췄다.품 안의 심윤아는 잠시 멍해 있다가 다시 그에게 키스했다.두 사람은 이렇게 사무실에서 뜨거운 숨결을 나눴다.끝날 무렵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느낌이 좋지 않아.”“무슨 느낌?”진수현의 목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허스키했고 그 말을 들은 첫 반응은 자신이 오늘 있는 힘껏 하지 않아 그녀가
휴대폰이 울린 지 몇 초 후 진수현은 전화를 끊었다.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고 진수현은 곧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했다.이선희는 아들의 반응을 보고 곧바로 알아챘다. 만약 중요한 전화라면 그는 틀림없이 받을 것이다. 그런데 스크린을 보자마자 의식적으로 심윤아를 쳐다보고는 전화를 안 받는다는 것은전화를 건 사람이... 아마도 강소영일 것이다.이선희는 못난 아들을 보다가 다시 심윤아를 보았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을 보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강소영의 전화를 끊자 심윤아는 멍하니 믿을 수 없었다.이건... 진수현이 처음으로 그녀의 전화를 끊었다.왜?설마 그녀의 얼굴이 망가져서 진수현의 마음이 변한 건가?하지만 강소영은 그의 은인이 아닌가? 그녀가 정말 얼굴이 망가진다고 해도 그는 자신에게 이러면 안 되었다. 예전같으면 그는 그녀의 전화를 제일 먼저 받았었다.강소영의 안색이 좋지 않자 옆에 있던 황주연은 즉시 욕을 했다. “분명 심윤아 이 천한 년이 진수현을 꼬신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진수현이 어떻게 네 전화도 안 받을 수 있겠어.”강소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그만해.”“소영아, 왜 말을 안 해? 심윤아가 너랑 약속한 거 아니었어? 결국 이렇게 됐잖아, 심윤아는 말도 신용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었어. 네가 분명 심윤아를 도와줬는데 결국 네 남자를 뺏어갔잖아. 왜 심윤아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 생각해?”강소영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휴대전화를 움켜쥐며 말을 하지 않았다.“소영아, 너 더 이상 마음 약하게 굴지 마. 지금 제일 무서운 건 심윤아 뱃속에 애가 있을 수 있다는 거야. 진수현 할머니가 수술이 끝나면 이혼한다고? 그럼 넌 왜 갑자기 어르신의 수술이 연기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 없어? 왜 전에는 마음가짐이 좋았는데 갑자기 나빠졌는지? 이 과정에서 심윤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심윤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진수현의 아내자리를 지켰는데, 정말 그렇게 기꺼이 자리를 양보할 수
황주연은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최준태가 아직도 아래층에 있어? 내가 내쫓을게, 최준태 같은 놈은 꿈도 꾸지 말아야지.”그녀가 막 나가려 할 때 강소영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소영아?”“준태 올라오게 해.”그 누구도 강소영이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그 말에 병실 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소영아?”“너 최준태가 예전에 어떻게 너한테 대했는지 잊었어? 최준태는 건달이야, 만약 그를 올라오게 한다면, 너는...”“주연아.”강소영의 목소리가 매우 부드럽게 들렸다.“준태가 이전에 나에게 어떻게 대했든 간에 나는 지금 다쳤고 그가 병실을 알아내고 병원에 와 나를 보러 온 건 준태가 나를 걱정한다는 거야. 이런 마음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감동받지 않겠어. 내가 어떻게 그를 보낼 수 있겠어?”병실의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찬성하지 않았다.“소영아, 최준태가 널 걱정하는 게 아니야, 너한테 관심이 있어서야. 네가 그를 상대하면 그는 더 기뻐할 수 있어. 우리 그냥 상대하지 말자.”“그래, 네가 착하다는 건 알아. 너를 보러 온 건 너한테 마음이 있어서지 그가 목적이 없다면 어떻게 널 찾아왔겠어?”“마음 약하게 굴지 마, 만일 그가 너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하지만 강소영은 이날 엉뚱한 고집을 부리며 미소를 지었다.“준태는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야. 난 너희들이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란 거 알아, 하지만 준태도 진심으로 나를 생각하는 거니까 올라오라고 해.”사람들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강소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됐어, 너희들 그만 설득해, 이렇게 하자.”모두들 정말 그녀를 설득할 수 없게 되자 밖에 나가 사람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밖으로 나갈 때 사람들은 정말 이상함을 참지 못했다.“소영이가 웬일이지? 소영이는 예전부터 최준태를 싫어하지 않았어? 이번에 뜻밖에도 최준태를 올라오게 허락하다니?”“아마 이번에 많이 다쳐서 예전과 생각
“소영아, 몸은 좀 어때? 다친 데는 괜찮아? 내... 내가 꽃 사 왔는데 네가 좋아할지 모르겠어. 과일도 좀 살까 고민했는데 또 네가 어떤 과일 좋아할지 몰라서 그만뒀어.”준태는 조심스럽게 소영에게 말을 걸었다.소영의 귀엔 준태의 거친 목소리와 또 자신 하나 없이 잔뜩 움츠러진 말투가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아무리 불쾌해도 소영은 후회되는 마음을 꾹 눌러 참으며 웃음을 지었다.“아직 다 낫지는 않았어. 그리고 뭘 이렇게 많이 사 오고 그래. 네가 그냥 날 보러 와주는 것만으로도 족해.”“나도 염치가 있는데 빈손으로 어떻게 와.”병실이 있던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멸 가득한 표정이 자리 잡았다.“빈손으로 오라는 게 아니잖아. 뭘 사 오더라도 좋은 거 사면 안 돼? 어? 네가 사 온 꽃 좀 봐봐. 어우, 촌스럽고 못생겼다, 진짜. 설마 길에서 주운 거니?”“아, 그러게. 이런 걸 들고 소영이 병문안에 온 거야? 넌 창피하지도 않아?”자신을 깔보면서 업신여기는 말들을 듣자, 준태의 얼굴엔 음흉한 기색이 스쳤고 꽃을 들고 있는 손에마저 힘이 들어갔다.이 작은 동작을 본 소영은 입술을 꾹 닫았다가 시험해 보듯 다시 말했다.“그렇게 말하지 마! 준태가 날 보러와 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데. 그것도 준태 정성이잖아.”“준태야, 다음번엔 그냥 빈손으로 와도 돼. 특별히 다른 물건을 사 올 필요 없어.”아니나 다를까, 소영이 입을 열자마자 준태의 음흉한 기색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심지어 그녀가 말을 마치자 준태의 굳은 표정은 이미 얼음이 녹듯 사르르 풀어졌다.“응, 그럴게.”“소영아!”소영의 친구들은 못마땅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소영은 그저 웃으며 준태의 편을 들어주었다.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준태는 속으로 자신의 안목에 큰 박수갈채를 보냈다. 여자 보는 눈이 참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전혀 자신을 얕보지 않는 마음씨 고운 여자를 말이다.다른 여자들은 원...친구들은 오늘의 소영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