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야.”심윤아가 진수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난 그냥 네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뿐이야. 그러니까 네가 왜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웠는지 이해가 되더라고. 넌 소영 씨를 아끼니까 당연히 소영 씨를 이해할 수 있겠지.”심윤아가 이런 말을 할 때, 진수현은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그래서?”진수현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빛은 독기가 서려 있었다. “내 말은, 네가 소영 씨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심윤아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또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만약 내가 너라면 나도 그렇게 했을 거야.”심윤아는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건진 적이 없었고, 진수현이 겪었던 그런 절망도 겪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해 볼 수는 있었다. 비록 진수현 마음의 10분의 1 정도밖에 공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당장이라도 질식해 죽을 것 같은 그 순간, 누군가 당신에게 구원의 손을 뻗는다는 건 오랜 가뭄에 단비처럼, 어두운 밤에 비치는 한 줄기의 빛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진수현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렇게 할 거라고? 넌 이미 내가 너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심윤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위로 예쁘게 말려 올라간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중요한 건, 심윤아는 이미 어젯밤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사실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다. 만약 어제까지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면, 오늘부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 종일 쇼핑한 심윤아는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껴졌다. 지금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은 단 한 가지였다. 할머니가 수술을 마치면 진수현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래?”진수현이 입꼬리를 내리며 심윤아가 새로 산 옷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중요하지 않으면, 그만하자.”‘그만하자.’‘그만하지 않으면 또 어쩔 건데?”심
두 사람 사이는 굉장히 가까웠다. 진수현은 눈을 내리깔고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엔 심윤아의 하얀 피부와 부드러운 솜털, 그리고 연핑크의 입술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선 은은한, 과거의 진수현에겐 너무도 익숙한 향기가 풍겼다. 심윤아는 절대 향수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진수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건 심윤아가 사용하는 바디워시와 청량한 샴푸 향이었다. 심윤아의 향을 느끼며 진수현은 심윤아를 품에 안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전의 진수현이라면 그렇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막 손을 올리려는데, 심윤아가 물러서며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다 됐어.”그녀의 차갑고 냉담한 눈빛이 순간 진수현의 가슴을 쿡 찔렀다. 말랑해졌던 마음은 그 순간, 전부 사라졌다. 진수현이 입꼬리를 올려 냉소 지었다. “수고했어. 이렇게 실감 나게 연기하다니.”그 말을 들은 심윤아가 움찔하더니 곧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수고는.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그녀의 반응은 마치 솜방망이처럼 진수현에겐 전혀 타격이 없었다. 진수현은 차갑게 비웃으며 시선을 거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잠깐만.”심윤아가 그를 불러세웠다. 진수현이 걸음을 멈추었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그는 다만 냉담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그녀가 하는 말을 들을 생각이었다. 한참 후에야 심윤아는 생각을 정리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수현을 떠보았다. “할머니 요즘 어떠신지, 의사에게 연락 온 거 있어?”진수현은 처음엔 그저 할머니를 걱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뒤이은 질문에 심윤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는 비꼬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 “급해?”진수현에게 정곡을 찔렸어도 심윤아는 전혀 화내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급한 건 아냐. 하지만 할머님 건강 말이야. 너무 오래 미루면 더 안 좋아지실 것 같은데.”진수현이 몸을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심윤아를 쳐다보며 서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대체 미루다 할머니 건강이 악화할
심윤아는 아무런 감정 없이, 전혀 힘들이지 않고 진수현이 화를 내며 자리를 피하게 했다. 방을 나서는 진수현의 얼굴은 잔뜩 어두웠다. 그는 하늘이 울리도록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 어깨를 으쓱인 심윤아는 진수현이 나가자마자 손으로 자기 배를 살며시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아가, 무서워하지 마. 신경 쓰지도 말고. 나중에 크면 절대 저 인간 닮으면 안 돼. 성질이 정말 더럽거든.”배 속 아이에게 흉을 본 심윤아는 출근 준비를 했다. -막 주차장에 들어선 진수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심윤아 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다. 그는 침울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자 표시를 확인한 그의 얼굴이 점점 무표정하게 변해갔다. 표정을 싹 감춘 진수현이 전화를 받았다. “진 선생님.”김선월의 주치의인 진우빈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진수현 씨, 안녕하세요.”진우빈의 목소리는 본인만큼이나 부드러웠다. “저는 김선월 님 주치의인 진우빈입니다. 이런 시간에 죄송해요. 요즘 김선월 님 건강이 어떠신지 여쭤보고 싶어서 전화 드렸어요. 시간 되시면 요즘 병원으로 오셔서 검사 받으실 수 있을까요?”그 말에 진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꽉 움켜쥐었다. “오늘요?”“네.”“그러죠.”전화를 끊고 진수현이 운전석에 앉았다. 어찌나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던 건지 그의 얇은 입술이 더 얇아져 보였다. 할머니가 조금 더 요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진우빈에게서 이렇게 빨리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 ‘하늘의 뜻인가?’방금 내려오기 전에 심윤아도 물었었는데, 바로 진우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하늘도 이렇게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생각하던 중, 진수현은 백미러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심윤아를 발견했다. 추운 날씨라 심윤아는 조금 큰 사이즈의 하늘색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안엔 캐주얼한 베이지색 니트와 연한 컬러의 바지를 매치했다. 신발은 베이지색의 스니커즈였다. 언제부터인지 심윤아의 코디 스타일이 크게 바뀌었다. 심윤아가 스쳐
“이리 와.”진수현은 오히려 심윤아를 불러세우고 냉담하게 말했다. “같이 가서 얘기하자. 차에 타.”‘차에 타라고?’심윤아는 그의 조수석을 한 번 쳐다보았다. 솔직히 그 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다. 혼자 운전하는 편이 더 나았다.그녀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진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왜? 나랑 평화롭게 지내려던 거 아니었어? 그래도 내 차에 타지 않을 거야?”그 말에 심윤아는 정신을 차리고 살며시 미소 지었다.“아냐. 할머니께 언제 가서 말씀드릴지 생각 중이었어.”심윤아는 말하며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막 자리를 잡고 안전벨트를 하기도 전에 진수현이 차를 출발했다. 깜짝 놀란 심윤아가 고개를 돌리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운전하고 있는 진수현이 보였다. ‘됐어, 심윤아. 어차피 할머님 수술만 끝나면 넌 더 이상 여기 없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진수현이 성질을 부리든 말든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절대 침착해야 해. 일 만들지 마.’스스로를 달랜 심윤아는 그제야 올라오던 분노를 가라앉히며 안전벨트를 맸다. 안전벨트를 하자마자 진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오늘 왜 이렇게 입었어?”다른 질문이라면 심윤아는 평정심을 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심윤아의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그녀는 잘생긴 진수현의 옆모습을 힐끔 쳐다보았다. 심윤아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오늘 그저 조금의 변화만 줬을 뿐인데, 뜻밖에도 진수현은 한눈에 알아봤다. “내가 이렇게 입는 게 왜?”그녀는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너답지 않아.”진수현이 말했다. 심윤아는 조금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일부러 공격적으로 말했다. “뭐가 나답지 않아? 설마 난 한 가지 스타일로만 입어야 하는 거야?”“너 전엔 이런 스타일 안 입었잖아.”사실 진수현이 신경 쓰는 건, 그녀가 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갑자기 스타일을 바꿨냐는 것이었다. 뭘 입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은연중에 심윤아는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고, 자신은
각자 업무에 복귀한 후, 심윤아는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다.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 두 사람은 내일 할머니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기로 약속했다. 저녁에 퇴근해서 할머니한테 말씀드리기로 했는데 이혼에 대해서는 두 사람 모두 입도 뻥끗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난번, 화가 난 두 사람은 아침 일찍부터 법원에 갔었지만 할머니의 수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이혼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할머니가 수술을 마치고 회복이 잘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혼할 생각이었다.의외의 일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고 진수현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점심때가 되자, 심윤아는 여느 때처럼 죽을 사러 내려갔다. 오늘은 다른 야채 죽을 한번 먹어볼 생각이다. 근데 아래층으로 내려와 주문하려는 찰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확인해 보니 이선우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고 심윤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며칠 전에 알게 된 그 주차 공간을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낯익은 차 한 대가 마침 그 자리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녀가 고개가 돌리자 차창이 서서히 내리면서 이선우의 잘생긴 옆모습이 드러났다. 그가 핸드폰을 든 채 심윤아를 향해 손을 흔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그를 보게 되니 심윤아는 의외였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를 향해 걸어갔다. “여긴 웬일이야?”그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이 근처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이렇게 널 만날 줄은 몰랐네. 운이 좋은데.”“이런 우연이 다 있다고?”사실 심윤아는 그의 말에 의심을 품었다. 그가 이 부근에 볼일이 있어 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마침 이곳에 차를 주차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마침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전화를 걸 수 있겠는가?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선물한 넥타이핀을 하고 있는 그를 보고 심윤아는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이선우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안 믿어?”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을 뿐 인
그들이 가자마자 이선우는 심윤아에게 차 문을 열어줬다.“타, 땅꼬맹이.”그 말에 그녀는 차에 타지 않고 이선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더 이상 그렇게 안 부르기로 했잖아.”예전에는 나이가 어렸고 친구로서 이선우가 그렇게 불러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나이에 그런 소리를 들으니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럼 공주?”심윤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것도 안 돼.”“왜? 공주라고 부르면 그 사람이 생각나는 거야?”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더 들어야지.”그녀가 계속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이선우는 그녀의 이마를 살짝 두드렸다.“안 타고 뭐 해? 타라고 할 때까지 기다릴 거야?”그제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오른 뒤, 심윤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진짜 나 그렇게 부르지 마. 지금 내 신분에는 맞지 않는 거야.”“지금 네 신분이 뭔데?”이선우는 차에 시동을 걸며 담담하게 웃었다.“송별회 때, 다들 너랑 진수현 가짜 결혼이라고 떠벌리고 있었어.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네가 진수현의 와이프 자리를 탐내서 차지하고 있다고 하던데.”정곡을 찌른 그의 말에 심윤아는 반박조차 하지 못하였고 그저 입술만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이선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화났어?”“아니, 네 말이 사실이야.”“화나지 않았으면 됐어. 지금 네 상황은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쉽게 곤경에 빠지게 될 거니까.”“알아.”사실 그녀는 전에 하마터면 곤경에 빠질 뻔했었다. 다행히 워낙 낙관적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차는 회사 입구를 떠나 차들이 빽빽이 늘어선 거리로 들어섰다. 이선우는 거리의 상황을 살피며 물었다.“소영이의 상처는 어떻게 됐어? 그날 심하게 부딪힌 것 같던데. 흉터라도 남는 거 아니야?”“그럴 거야.”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그럼 진수현은? 요 며칠 계속 병원에서 소영이를 돌보
차 안에서는 침묵이 흘렀고 이선우의 시선은 주위를 훑었지만 전에 화제를 이어가지 않았고 그녀에게 뭘 먹고 싶은지 물었다.심윤아는 고기가 별로 댕기지 않아 점심엔 죽만 먹고 싶었다.하지만 그날 밤 이미 이선우더러 자신과 함께 죽을 먹게 했다 때문에 오늘도 또 죽을 먹자고 제안하는 건 적합하지 않은 듯했다.결국 그녀가 말했다.“네가 정해.”이선우는 그녀의 결정에 의아한 듯 멈칫했다.“확실해? 난 너무 오래 동안 해외에 있었어.”심윤아는 침착하게 대답했다.“괜찮아.”어쨌든 그녀는 많이 먹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었다.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한 마디 보탰다.“네가 뭘 먹든 내가 살게.”“그래?”이선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럼 잘 선택해야겠네.”결국 이선우는 한 중식당을 선택했다.심윤아는 차에서 내릴 때 특별히 식당의 인테리어를 눈여겨봤는데 아주 고급스러웠다.심씨 가문이 파산하기 전에 그녀는 친구들과 이런 식당에 자주 와서 식사했었다. 그러나 심씨 가문이 파산한 후… 친구들은 더 이상 모이지 않았다.그녀의 곁에 남은 사람은 주현아밖에 없었다.예전에는 심윤아가 주현아를 데리고 음식점에 다녔었는데 파산 후에는 주현아가 심윤아를 데리고 레스토랑이나 비교적 싼 가격의 음식점에 다녔다.처음 갔을 때 주현아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심윤아, 비록 내가 지금은 너를 데리고 이런 식당밖에 올 수 없지만 걱정 마, 내가 이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제일 먼저 너한테 거하게 한턱 쏠게.”옛 기억을 떠올리자 심윤아는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비록 나중에 그녀는 다시는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다니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예전보다 더 따뜻했다.그리고 사람은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모든 것을 더 정확히 보는 법이다.이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무슨 생각해?”이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심윤아는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별 거 아니야. 그냥 재밌는 일이 생각났어.”그 말을 듣고 이선
“여기 과일 주스 먼저 올려 주세요.”“네, 알겠습니다, 손님.”그 말을 듣고 심운은 멈칫했다.“어떻게 알았어?”“잊었어? 환송회 날 저녁 너 혼자 과일 주스 두 잔이나 마셨잖아. 그런데 오늘은 많이 주문 안 하고 한 잔이면 충분하지?”심윤아는 원래 주스를 주문할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메뉴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는데 이선우가 신경 써 줄 줄은 몰랐다.“고마워.”“고맙긴. 네가 계산할 건데 뭐.”“…”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오늘은 심윤아가 그에게 밥 한 끼를 사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런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먹는 한 끼는 아마 적지 않은 돈을 써야 할 것이다.예전의 심윤아에게 그 정도의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그녀의 월급으로 이 정도 식당에서 한 끼쯤이야 당연히 살 수 있지만... 그녀가 이제 아기를 낳으면 돈을 써야 할 일이 많다.의식주행, 그리고 나중에 공부할 때 드는 돈까지 하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녀는 미리 돈을 모아야 했다.생각만 해도 심윤아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재혼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만약 아이에게 좋은 생활과 학습 조건을 주려면 지금 하는 일로는 부족할 것이다.“왜? 이렇게 비싼 식당에 와서 후회 돼?”그녀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이선우가 물었다.심윤아는 정신 차리고 고개를 들자 이선우의 웃는 듯 마는 듯한 눈과 마주쳤다.“진씨 그룹의 월급을 받으면서 나한테 점심 한 끼 사주는 걸로 그렇게 고민되지는 않을 텐데.”심윤아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그럴 리가?”이선우는 테이블 위의 찻잔을 들어 입에 갖다 대고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우리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정을 봐서, 만약 진씨 그룹에서 주는 월급이 너무 적으면 우리 회사로 와도 돼.”“지금 인재를 빼앗으려는 거야?”“빼앗다니?”그 말에 이선우는 당황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것 때문에 부정하지도 않았다.그는 확실히 인재를 자기 회사로 데려갈 생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