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와.”진수현은 오히려 심윤아를 불러세우고 냉담하게 말했다. “같이 가서 얘기하자. 차에 타.”‘차에 타라고?’심윤아는 그의 조수석을 한 번 쳐다보았다. 솔직히 그 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다. 혼자 운전하는 편이 더 나았다.그녀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진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왜? 나랑 평화롭게 지내려던 거 아니었어? 그래도 내 차에 타지 않을 거야?”그 말에 심윤아는 정신을 차리고 살며시 미소 지었다.“아냐. 할머니께 언제 가서 말씀드릴지 생각 중이었어.”심윤아는 말하며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막 자리를 잡고 안전벨트를 하기도 전에 진수현이 차를 출발했다. 깜짝 놀란 심윤아가 고개를 돌리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운전하고 있는 진수현이 보였다. ‘됐어, 심윤아. 어차피 할머님 수술만 끝나면 넌 더 이상 여기 없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진수현이 성질을 부리든 말든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절대 침착해야 해. 일 만들지 마.’스스로를 달랜 심윤아는 그제야 올라오던 분노를 가라앉히며 안전벨트를 맸다. 안전벨트를 하자마자 진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오늘 왜 이렇게 입었어?”다른 질문이라면 심윤아는 평정심을 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심윤아의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그녀는 잘생긴 진수현의 옆모습을 힐끔 쳐다보았다. 심윤아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오늘 그저 조금의 변화만 줬을 뿐인데, 뜻밖에도 진수현은 한눈에 알아봤다. “내가 이렇게 입는 게 왜?”그녀는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너답지 않아.”진수현이 말했다. 심윤아는 조금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일부러 공격적으로 말했다. “뭐가 나답지 않아? 설마 난 한 가지 스타일로만 입어야 하는 거야?”“너 전엔 이런 스타일 안 입었잖아.”사실 진수현이 신경 쓰는 건, 그녀가 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갑자기 스타일을 바꿨냐는 것이었다. 뭘 입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은연중에 심윤아는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고, 자신은
각자 업무에 복귀한 후, 심윤아는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다.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 두 사람은 내일 할머니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기로 약속했다. 저녁에 퇴근해서 할머니한테 말씀드리기로 했는데 이혼에 대해서는 두 사람 모두 입도 뻥끗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난번, 화가 난 두 사람은 아침 일찍부터 법원에 갔었지만 할머니의 수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이혼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할머니가 수술을 마치고 회복이 잘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혼할 생각이었다.의외의 일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고 진수현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점심때가 되자, 심윤아는 여느 때처럼 죽을 사러 내려갔다. 오늘은 다른 야채 죽을 한번 먹어볼 생각이다. 근데 아래층으로 내려와 주문하려는 찰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확인해 보니 이선우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고 심윤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며칠 전에 알게 된 그 주차 공간을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낯익은 차 한 대가 마침 그 자리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녀가 고개가 돌리자 차창이 서서히 내리면서 이선우의 잘생긴 옆모습이 드러났다. 그가 핸드폰을 든 채 심윤아를 향해 손을 흔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그를 보게 되니 심윤아는 의외였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를 향해 걸어갔다. “여긴 웬일이야?”그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이 근처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이렇게 널 만날 줄은 몰랐네. 운이 좋은데.”“이런 우연이 다 있다고?”사실 심윤아는 그의 말에 의심을 품었다. 그가 이 부근에 볼일이 있어 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마침 이곳에 차를 주차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마침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전화를 걸 수 있겠는가?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선물한 넥타이핀을 하고 있는 그를 보고 심윤아는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이선우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안 믿어?”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을 뿐 인
그들이 가자마자 이선우는 심윤아에게 차 문을 열어줬다.“타, 땅꼬맹이.”그 말에 그녀는 차에 타지 않고 이선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더 이상 그렇게 안 부르기로 했잖아.”예전에는 나이가 어렸고 친구로서 이선우가 그렇게 불러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나이에 그런 소리를 들으니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럼 공주?”심윤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것도 안 돼.”“왜? 공주라고 부르면 그 사람이 생각나는 거야?”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더 들어야지.”그녀가 계속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이선우는 그녀의 이마를 살짝 두드렸다.“안 타고 뭐 해? 타라고 할 때까지 기다릴 거야?”그제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오른 뒤, 심윤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진짜 나 그렇게 부르지 마. 지금 내 신분에는 맞지 않는 거야.”“지금 네 신분이 뭔데?”이선우는 차에 시동을 걸며 담담하게 웃었다.“송별회 때, 다들 너랑 진수현 가짜 결혼이라고 떠벌리고 있었어.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네가 진수현의 와이프 자리를 탐내서 차지하고 있다고 하던데.”정곡을 찌른 그의 말에 심윤아는 반박조차 하지 못하였고 그저 입술만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이선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화났어?”“아니, 네 말이 사실이야.”“화나지 않았으면 됐어. 지금 네 상황은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쉽게 곤경에 빠지게 될 거니까.”“알아.”사실 그녀는 전에 하마터면 곤경에 빠질 뻔했었다. 다행히 워낙 낙관적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차는 회사 입구를 떠나 차들이 빽빽이 늘어선 거리로 들어섰다. 이선우는 거리의 상황을 살피며 물었다.“소영이의 상처는 어떻게 됐어? 그날 심하게 부딪힌 것 같던데. 흉터라도 남는 거 아니야?”“그럴 거야.”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그럼 진수현은? 요 며칠 계속 병원에서 소영이를 돌보
차 안에서는 침묵이 흘렀고 이선우의 시선은 주위를 훑었지만 전에 화제를 이어가지 않았고 그녀에게 뭘 먹고 싶은지 물었다.심윤아는 고기가 별로 댕기지 않아 점심엔 죽만 먹고 싶었다.하지만 그날 밤 이미 이선우더러 자신과 함께 죽을 먹게 했다 때문에 오늘도 또 죽을 먹자고 제안하는 건 적합하지 않은 듯했다.결국 그녀가 말했다.“네가 정해.”이선우는 그녀의 결정에 의아한 듯 멈칫했다.“확실해? 난 너무 오래 동안 해외에 있었어.”심윤아는 침착하게 대답했다.“괜찮아.”어쨌든 그녀는 많이 먹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었다.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한 마디 보탰다.“네가 뭘 먹든 내가 살게.”“그래?”이선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럼 잘 선택해야겠네.”결국 이선우는 한 중식당을 선택했다.심윤아는 차에서 내릴 때 특별히 식당의 인테리어를 눈여겨봤는데 아주 고급스러웠다.심씨 가문이 파산하기 전에 그녀는 친구들과 이런 식당에 자주 와서 식사했었다. 그러나 심씨 가문이 파산한 후… 친구들은 더 이상 모이지 않았다.그녀의 곁에 남은 사람은 주현아밖에 없었다.예전에는 심윤아가 주현아를 데리고 음식점에 다녔었는데 파산 후에는 주현아가 심윤아를 데리고 레스토랑이나 비교적 싼 가격의 음식점에 다녔다.처음 갔을 때 주현아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심윤아, 비록 내가 지금은 너를 데리고 이런 식당밖에 올 수 없지만 걱정 마, 내가 이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제일 먼저 너한테 거하게 한턱 쏠게.”옛 기억을 떠올리자 심윤아는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비록 나중에 그녀는 다시는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다니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예전보다 더 따뜻했다.그리고 사람은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모든 것을 더 정확히 보는 법이다.이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무슨 생각해?”이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심윤아는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별 거 아니야. 그냥 재밌는 일이 생각났어.”그 말을 듣고 이선
“여기 과일 주스 먼저 올려 주세요.”“네, 알겠습니다, 손님.”그 말을 듣고 심운은 멈칫했다.“어떻게 알았어?”“잊었어? 환송회 날 저녁 너 혼자 과일 주스 두 잔이나 마셨잖아. 그런데 오늘은 많이 주문 안 하고 한 잔이면 충분하지?”심윤아는 원래 주스를 주문할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메뉴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는데 이선우가 신경 써 줄 줄은 몰랐다.“고마워.”“고맙긴. 네가 계산할 건데 뭐.”“…”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오늘은 심윤아가 그에게 밥 한 끼를 사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런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먹는 한 끼는 아마 적지 않은 돈을 써야 할 것이다.예전의 심윤아에게 그 정도의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그녀의 월급으로 이 정도 식당에서 한 끼쯤이야 당연히 살 수 있지만... 그녀가 이제 아기를 낳으면 돈을 써야 할 일이 많다.의식주행, 그리고 나중에 공부할 때 드는 돈까지 하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녀는 미리 돈을 모아야 했다.생각만 해도 심윤아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재혼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만약 아이에게 좋은 생활과 학습 조건을 주려면 지금 하는 일로는 부족할 것이다.“왜? 이렇게 비싼 식당에 와서 후회 돼?”그녀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이선우가 물었다.심윤아는 정신 차리고 고개를 들자 이선우의 웃는 듯 마는 듯한 눈과 마주쳤다.“진씨 그룹의 월급을 받으면서 나한테 점심 한 끼 사주는 걸로 그렇게 고민되지는 않을 텐데.”심윤아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그럴 리가?”이선우는 테이블 위의 찻잔을 들어 입에 갖다 대고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우리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정을 봐서, 만약 진씨 그룹에서 주는 월급이 너무 적으면 우리 회사로 와도 돼.”“지금 인재를 빼앗으려는 거야?”“빼앗다니?”그 말에 이선우는 당황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것 때문에 부정하지도 않았다.그는 확실히 인재를 자기 회사로 데려갈 생각이 있었다.
조금 있다가 심윤아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화장실에 다녀왔다.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 복도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심윤아는 걸음을 멈추고 앞에 있는 슬픈 표정의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지난번에 병원에서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다.그 여자아이는 임진숙의 딸, 조보아였다.심윤아는 애를 떼려고 병원에 갔을 때 임진숙을 만났었다. 만약 딸의 일이 알려질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면 임진숙은 아마 심윤아의 일을 소문냈을 것이다.이 여자아이를 보자 심윤아는 병원에 있을 때 그녀가 임진숙에게 단호하게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나 그 사람 좋아해.”그 아이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고 그 앞에 키 크고 마른 잘생긴 남자도 함께 있었다.그 남자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어깨를 잡고 뭔가 부탁하는 듯 말했다.“보아야, 내가 부탁할게. 우리 아이를 포기하자. 너 아직 젊은데 지금 학교를 그만두고 아이를 낳을 순 없잖아. 게다가 나도 아빠 될 준비가 안 됐어. 나한테 시간 좀만 더 주고 나중에 다시 아이를 갖자, 응?”심윤아는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들의 대화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그녀는 어이가 없어 그 남자를 힐끗 쳐다봤다.그러나 그 두 사람은 자신들의 대화에 집중해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너 전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 너... 우리 아이가 생기면 결혼하자며? 너 나 안 좋아해? 좀 일찍 아빠가 되는 게 뭐 어때서?”“보아야, 나 너 좋아해. 그런데 네 어머니 아버지가 날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우린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 생각해 봐. 네가 지금 아이를 낳으면 네 부모님은 나를 더 싫어하실 거야. 그럼 우리 앞으로도 같이 있을 수 있겠어?”이렇게 말하자 조보아는 마음이 흔들린 듯 더 말하지 않았다.키 크고 마른 남자는 그녀의 마음이 흔들린 듯하자 이어서 말했다.“봐, 우리는 아직 젊어. 앞으로 언제든 아이를 또 가질 수 있어. 너 예전에 나를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했잖아. 이번 일은 내가 많이 미안해. 나를
심윤아가 뾰로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누가 너의 카톡 친구 추가를 하고 싶대?”“아니면?”“내가 밥 산다고 했잖아.”심윤아는 이선우의 핸드폰을 향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카톡 친구 추가는 안 해도 되니까 QR 코드화면이나 켜. 내가 스캔할 수 있게. 그래야 송금이라도 하지.”심윤아가 말을 하자마자 이선우는 심윤아의 손을 한쪽으로 밀었다.“지난번에도 네가 냈잖아. 이번에도 네가 내면 내 체면이 뭐가 돼?”심윤아는 눈썹을 살며시 찡그렸다.“정 미안하면 회사 그만두고 우리 이선 그룹으로 오든가.”“갑자기?”“이상해?”이선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잠깐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이상하다면 그럴 수 있는데 진심이야. 잘 생각해 봐.”“고작 밥 한 끼로 나를 스카우트하겠다고? 어림없지.”말을 마치자마자 심윤아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더 이상 그에게 송금하겠다고 고집하지 않았다. 굳이 사겠다고 하는데 어떡하겠는가? 그리고 어차피 이선 그룹 후계자에게 이 정도의 돈은 있으나 마나이다.‘이 돈은 나중에 반려견 키울 때 보태지 뭐.’ “그래. 확실히 고작 한 끼로는 어렵지. 앞으로는 우연인 척 너와 자주 만나서 얘기해야겠네.” 심윤아는 이선우가 예전보다 훨씬 유머러스해졌다는 것을 느꼈다.예전의 그는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의 화를 돋워 지금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었고 완전히 딴 사람이 된 듯 했다. 아마 요 몇 년 동안 해외에서 그도 많이 성숙해 진 것 같다.식사를 마친 후, 이선우가 심윤아를 회사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됐어.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택시 타는 게 편해.”이선우는 잠시 멈칫했지만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계산을 마친 두 사람은 함께 식당을 나섰다.문밖으로 나왔을 때, 심윤아는 방금 복도에서 만난 키 크고 깡마른 조보아의 남자친구를 보았다.그들은 아직도 가지 않고 여기에 있었다.힐끗 그를 향해 눈길을 돌린 순간 심윤아는
키 크고 마른 남자는 의아한 듯 심윤아를 바라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매우 아름답지만 안면이 있는 사이는 아니다.옆에 있던 성숙한 여자도 심윤아를 보고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경계하는 듯한 얼굴로 키 크고 깡마른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이 여자는 누구야? 또 나 몰래 만나고 다녔어?”그러자 키 크고 깡마른 남자는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아니에요. 누나. 나 이 여자 몰라요. 왜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거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당신! 당신 대체 누구야?”사실 이 키 크고 깡마른 남자는 성격이 그리 좋지 않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옆에서 이런 말을 하자 그는 언성을 높여 화를 내고 싶었지만 상대가 하도 절세미인이라 최대한 참고 있었다. “알고 모르는 게 그리 중요한가요?”심윤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 남자를 노려봤다.“중요한 건 당신은 지금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서 다른 여자와 아이까지 생겼다는 거예요. 도대체 누구에게 진심인 거예요?”그 말을 들은 키 크고 깡마른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거렸다.“그게... 그게 당신이란 무슨 상관인데?”옆에 있던 그 여자의 안색도 점점 어두워졌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심윤아는 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계속 입을 열었다.“당신의 그 애틋한 척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릴 뿐이에요.”“당신! 예쁘면 다야? 당신의 그 반반한 얼굴에 내가 손을 못 댈 것 같아?”심윤아의 말에 심기가 크게 불편한 듯 키 크고 깡마른 남자는 격분하는 얼굴로 심윤아를 향해 주먹을 내보였다. 사실 그는 심윤아를 때릴 생각이 없었다. 그저 겁주려고 했을 뿐이다.하지만 그가 막 손을 들어 올리자마자 누군가의 거센 힘이 그를 제압했다. “x 발, 누구야?”키 크고 깡마른 남자가 누군지 보려고 고개를 들자 자기를 쏘아보고 있는 깊고 까만 눈동자의 이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안경 렌즈 뒤로 보이는 이선우의 눈은 마치 깊은 저수지와 같이 으스스한 냉기를 풍겨 저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