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이렇게 된 이상 주현아는 그녀가 마음이 산산조각 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진수현의 곁을 떠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주현아는 식사 도중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런 질문하는 게 실례인 건 아는데... 할머님은 언제쯤 수술받으셔? 요양원이 아니라 집에 계신 거지?”“응.”심윤아는 주현아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전혀 개의치 않았고 절친에게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집에서 요양 중인데 정확한 수술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지난번 할머니가 쓰러진 일 때문에 의사 선생님이 당분간은 할머니가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하셨거든. 2차 스트레스로 이어지지 않도록 시간을 주는 게 좋다고 하셨어.”그 말을 듣고 있던 주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이 일은 또 미뤄야 한다는 거네?”“응. 할머니의 병세가 중요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어.”심윤아가 아니었기에 그녀의 입장에서 고려하기보다 주현아는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친구의 입장에서는 심윤아가 제일 중요했다.주현아는 입술을 깨물며 걱정거리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강소영이 너한테 안 좋은 일 저지를까 봐 걱정돼.”어젯밤에 일어난 일만으로도 강소영이 얼마나 심윤아를 원망하고 미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심윤아가 진수현옆에 2년이나 있었으니 원망의 감정이 생긴 걸 어느정도 이해할 수는 있으나 주현아는 이런 감정들이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심윤아가 내연녀도 아니고, 강소영과 진수현이 만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악감정을 가지고 있냐는 말이다.생각할수록 화가 점점 치밀어 오른 그녀는 행동마저 거칠어졌다.“주현아, 나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사리 분별 능력은 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네가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있을 거란 보장은 없잖아. 모든 사람이 인성 바르다면 어젯밤 같은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야. 강소영은 지금 어때? 많이 다친 것 같은데 얼굴 망가진 거 아니야?”이 말을 꺼내자 심윤아는 저도 모르게 눈빛이 어두워졌고 말투마저 싸늘하게 변했다.“망가지는
예전에 강소영과 계약을 맺은 건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였다.하지만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는 이번 일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될 건 분명했고 심윤아가 강소영을 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실이 뭐가 됐든 강소영은 모든 걸 심윤아에게 떠넘길 테니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는 건 물 건너 간 거나 다름없다.가장 중요한 건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강소영에 대한 경계심이 생겼다는 것이다.처음에는 강소영이 연약한 척 연기하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욕심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상상과 너무도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연약한 겉모습 뒤에는 남을 모함하려는 사악한 마음이 숨어있었다.온갖 생각이 떠오른 심윤아는 주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스스로 주의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봐봐, 지금도 날 해치려다가 실패했잖아? 오히려 화를 입었으니 쌤통이지 뭐.”“하긴.”주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자신이 한 짓만큼 돌려받는 걸 보니까 속이 통쾌하긴 하네.”“맞아.”말이 끝나는 동시에 종업원이 디저트를 심윤아에게 건네줬고 그 모습을 본 주현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심윤아, 너 내가 안 보는 틈타서 몰래 디저트 하나 더 시켰지? 의사 선생님 말씀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잖아.”“알아. 몇 입만 더 먹을게.”“안돼. 너 아까도 일 인분 다 먹었어.”“그럼 한입만.”심윤아는 흥정을 시도했다.“안돼! 절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으니까 포기해.”...점심을 먹고 나서 두 사람은 백화점으로 향해 밤늦게까지 쇼핑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하루 종일 방해금지 모드를 켰던 심윤아는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그것을 껐다. 곧바로 임연수의 카톡이 쏟아졌는데 대부분 업무와 관련된 일이라 하나씩 읽어보며 정성스레 답장을 보냈고 그 후 진수현의 카톡도 발견했다.첫 번째 카톡.「어디야?」두 번째 카톡은 30분 정도 지나서 보내온 것인데 아마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이런
“그렇군요. 그럼 사모님, 전화는 왜 안 받으셨어요? 사모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도련님이 미칠 지경이었어요.”‘미칠 지경?’심윤아의 입꼬리가 눈에 띄지 않게 위로 올라갔다. 그녀의 눈빛엔 비아냥거림이 스쳤다. ‘단어 사용 참...’만약 박범수가 전부터 항상 진수현의 좋은 말만 하지 않았다면 심윤아는 아마 그 말이 진짜라고 믿어버렸을 것이다. ‘전화도 아마 강소영의 병실에서 한 거겠지.’“어젯밤 잠들기 전에 무음 모드로 해놨었거든요. 일어나서는 그걸 깜빡해서요.”심윤아가 나지막이 해명했다. 그 말을 들은 박범수는 그제야 이해가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범수가 손에 들린 쇼핑백을 들어주려고 하자 심윤아가 말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마침 올라가서 정리를 하려던 참이라, 제가 들고 올라가면 돼요.”“그럼 사모님, 제가 위층으로 가져다드릴게요.”“괜찮아요. 제가 하면 돼요.”심윤아가 완곡하게 박범수의 호의를 거절하고 직접 봉투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박범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뻘쭘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막 진수현에게 전화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도련님. 네네. 사모님께서 막 돌아오셨어요.”계단을 오르던 심윤아의 귓가로 진수현에게 보고하는 박범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정말 관심이 많네. 수시로 전화해 확인하다니. 차라리 일단 병실에서 좀 나오지 그래?’심윤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봉투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짐을 정리해야 했기에 심윤아는 샤워를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봉투를 열어 할머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먼저 드리고 돌아와 다른 걸 정리했다. 사실 쇼핑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임신하기 전 심윤아의 옷은 전부 몸매가 잘 드러나는 것들이라, 그녀는 오버사이즈의 옷을 사고 싶었다. 아직 몇 개월 되지 않아 원래 있던 옷을 입어도 티가 나지 않았지만 미리 준비해야했다. 지금부터 천천히 스타일을 바꿔야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았다. 다행히도 지금은 겨울이
“아무것도 아니야.”심윤아가 진수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난 그냥 네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뿐이야. 그러니까 네가 왜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웠는지 이해가 되더라고. 넌 소영 씨를 아끼니까 당연히 소영 씨를 이해할 수 있겠지.”심윤아가 이런 말을 할 때, 진수현은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그래서?”진수현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빛은 독기가 서려 있었다. “내 말은, 네가 소영 씨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심윤아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또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만약 내가 너라면 나도 그렇게 했을 거야.”심윤아는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건진 적이 없었고, 진수현이 겪었던 그런 절망도 겪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해 볼 수는 있었다. 비록 진수현 마음의 10분의 1 정도밖에 공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당장이라도 질식해 죽을 것 같은 그 순간, 누군가 당신에게 구원의 손을 뻗는다는 건 오랜 가뭄에 단비처럼, 어두운 밤에 비치는 한 줄기의 빛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진수현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렇게 할 거라고? 넌 이미 내가 너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심윤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위로 예쁘게 말려 올라간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중요한 건, 심윤아는 이미 어젯밤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사실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다. 만약 어제까지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면, 오늘부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 종일 쇼핑한 심윤아는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껴졌다. 지금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은 단 한 가지였다. 할머니가 수술을 마치면 진수현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래?”진수현이 입꼬리를 내리며 심윤아가 새로 산 옷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중요하지 않으면, 그만하자.”‘그만하자.’‘그만하지 않으면 또 어쩔 건데?”심
두 사람 사이는 굉장히 가까웠다. 진수현은 눈을 내리깔고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엔 심윤아의 하얀 피부와 부드러운 솜털, 그리고 연핑크의 입술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선 은은한, 과거의 진수현에겐 너무도 익숙한 향기가 풍겼다. 심윤아는 절대 향수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진수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건 심윤아가 사용하는 바디워시와 청량한 샴푸 향이었다. 심윤아의 향을 느끼며 진수현은 심윤아를 품에 안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전의 진수현이라면 그렇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막 손을 올리려는데, 심윤아가 물러서며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다 됐어.”그녀의 차갑고 냉담한 눈빛이 순간 진수현의 가슴을 쿡 찔렀다. 말랑해졌던 마음은 그 순간, 전부 사라졌다. 진수현이 입꼬리를 올려 냉소 지었다. “수고했어. 이렇게 실감 나게 연기하다니.”그 말을 들은 심윤아가 움찔하더니 곧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수고는.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그녀의 반응은 마치 솜방망이처럼 진수현에겐 전혀 타격이 없었다. 진수현은 차갑게 비웃으며 시선을 거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잠깐만.”심윤아가 그를 불러세웠다. 진수현이 걸음을 멈추었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그는 다만 냉담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그녀가 하는 말을 들을 생각이었다. 한참 후에야 심윤아는 생각을 정리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수현을 떠보았다. “할머니 요즘 어떠신지, 의사에게 연락 온 거 있어?”진수현은 처음엔 그저 할머니를 걱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뒤이은 질문에 심윤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는 비꼬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 “급해?”진수현에게 정곡을 찔렸어도 심윤아는 전혀 화내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급한 건 아냐. 하지만 할머님 건강 말이야. 너무 오래 미루면 더 안 좋아지실 것 같은데.”진수현이 몸을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심윤아를 쳐다보며 서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대체 미루다 할머니 건강이 악화할
심윤아는 아무런 감정 없이, 전혀 힘들이지 않고 진수현이 화를 내며 자리를 피하게 했다. 방을 나서는 진수현의 얼굴은 잔뜩 어두웠다. 그는 하늘이 울리도록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 어깨를 으쓱인 심윤아는 진수현이 나가자마자 손으로 자기 배를 살며시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아가, 무서워하지 마. 신경 쓰지도 말고. 나중에 크면 절대 저 인간 닮으면 안 돼. 성질이 정말 더럽거든.”배 속 아이에게 흉을 본 심윤아는 출근 준비를 했다. -막 주차장에 들어선 진수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심윤아 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다. 그는 침울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자 표시를 확인한 그의 얼굴이 점점 무표정하게 변해갔다. 표정을 싹 감춘 진수현이 전화를 받았다. “진 선생님.”김선월의 주치의인 진우빈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진수현 씨, 안녕하세요.”진우빈의 목소리는 본인만큼이나 부드러웠다. “저는 김선월 님 주치의인 진우빈입니다. 이런 시간에 죄송해요. 요즘 김선월 님 건강이 어떠신지 여쭤보고 싶어서 전화 드렸어요. 시간 되시면 요즘 병원으로 오셔서 검사 받으실 수 있을까요?”그 말에 진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꽉 움켜쥐었다. “오늘요?”“네.”“그러죠.”전화를 끊고 진수현이 운전석에 앉았다. 어찌나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던 건지 그의 얇은 입술이 더 얇아져 보였다. 할머니가 조금 더 요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진우빈에게서 이렇게 빨리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 ‘하늘의 뜻인가?’방금 내려오기 전에 심윤아도 물었었는데, 바로 진우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하늘도 이렇게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생각하던 중, 진수현은 백미러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심윤아를 발견했다. 추운 날씨라 심윤아는 조금 큰 사이즈의 하늘색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안엔 캐주얼한 베이지색 니트와 연한 컬러의 바지를 매치했다. 신발은 베이지색의 스니커즈였다. 언제부터인지 심윤아의 코디 스타일이 크게 바뀌었다. 심윤아가 스쳐
“이리 와.”진수현은 오히려 심윤아를 불러세우고 냉담하게 말했다. “같이 가서 얘기하자. 차에 타.”‘차에 타라고?’심윤아는 그의 조수석을 한 번 쳐다보았다. 솔직히 그 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다. 혼자 운전하는 편이 더 나았다.그녀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진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왜? 나랑 평화롭게 지내려던 거 아니었어? 그래도 내 차에 타지 않을 거야?”그 말에 심윤아는 정신을 차리고 살며시 미소 지었다.“아냐. 할머니께 언제 가서 말씀드릴지 생각 중이었어.”심윤아는 말하며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막 자리를 잡고 안전벨트를 하기도 전에 진수현이 차를 출발했다. 깜짝 놀란 심윤아가 고개를 돌리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운전하고 있는 진수현이 보였다. ‘됐어, 심윤아. 어차피 할머님 수술만 끝나면 넌 더 이상 여기 없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진수현이 성질을 부리든 말든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절대 침착해야 해. 일 만들지 마.’스스로를 달랜 심윤아는 그제야 올라오던 분노를 가라앉히며 안전벨트를 맸다. 안전벨트를 하자마자 진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오늘 왜 이렇게 입었어?”다른 질문이라면 심윤아는 평정심을 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심윤아의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그녀는 잘생긴 진수현의 옆모습을 힐끔 쳐다보았다. 심윤아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오늘 그저 조금의 변화만 줬을 뿐인데, 뜻밖에도 진수현은 한눈에 알아봤다. “내가 이렇게 입는 게 왜?”그녀는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너답지 않아.”진수현이 말했다. 심윤아는 조금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일부러 공격적으로 말했다. “뭐가 나답지 않아? 설마 난 한 가지 스타일로만 입어야 하는 거야?”“너 전엔 이런 스타일 안 입었잖아.”사실 진수현이 신경 쓰는 건, 그녀가 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갑자기 스타일을 바꿨냐는 것이었다. 뭘 입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은연중에 심윤아는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고, 자신은
각자 업무에 복귀한 후, 심윤아는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다.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 두 사람은 내일 할머니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기로 약속했다. 저녁에 퇴근해서 할머니한테 말씀드리기로 했는데 이혼에 대해서는 두 사람 모두 입도 뻥끗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난번, 화가 난 두 사람은 아침 일찍부터 법원에 갔었지만 할머니의 수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이혼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할머니가 수술을 마치고 회복이 잘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혼할 생각이었다.의외의 일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고 진수현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점심때가 되자, 심윤아는 여느 때처럼 죽을 사러 내려갔다. 오늘은 다른 야채 죽을 한번 먹어볼 생각이다. 근데 아래층으로 내려와 주문하려는 찰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확인해 보니 이선우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고 심윤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며칠 전에 알게 된 그 주차 공간을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낯익은 차 한 대가 마침 그 자리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녀가 고개가 돌리자 차창이 서서히 내리면서 이선우의 잘생긴 옆모습이 드러났다. 그가 핸드폰을 든 채 심윤아를 향해 손을 흔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그를 보게 되니 심윤아는 의외였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를 향해 걸어갔다. “여긴 웬일이야?”그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이 근처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이렇게 널 만날 줄은 몰랐네. 운이 좋은데.”“이런 우연이 다 있다고?”사실 심윤아는 그의 말에 의심을 품었다. 그가 이 부근에 볼일이 있어 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마침 이곳에 차를 주차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마침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전화를 걸 수 있겠는가?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선물한 넥타이핀을 하고 있는 그를 보고 심윤아는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이선우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안 믿어?”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을 뿐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