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진이 하루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청한 매니저는 이미 문을 열었고 직원들도 각자 제자리에서 점심 식사의 피크 타임에 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하 사장님.”“하 사장님.”하예진이 가게로 들어서자 직원들이 모두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어제는 가게 오픈 일이라 장사가 잘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어제 가게로 온 귀빈들을 본 직원들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일할 의욕이 넘쳐났다.직원들은 하예진과 같은 사장님을 따라다니게 되면 앞으로 수입도 오르고 더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잘하면 승진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하 사장님이 몇 개의 체인 레스토랑을 세우게 되면 최초의 직원으로서 새 가게의 관리자로 배치될 가능서이 매우 높았다.하여 다들 의욕이 넘쳤다.하예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주방에 들어가 구매한 식자재를 보고 식자재의 품질이 모두 좋은지 확인한 후에야 사무실로 돌아갔다.하예진은 식자재에 관해 자신이 조금 덜 벌더라도 좋은 식자재를 쓰려고 노력했다.하루 토스트이든 하루 레스토랑이든 그녀는 모두 똑같은 이념으로 운영했다.양심적으로 장사하는 것도 있지만 혹시라도 잘못되어 동생의 명성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동생을 위해서, 사돈의 명성을 위해서라도 하예진은 각별히 신경을 써서 매일 사 오는 식자재를 직접 살피고 있었다.하예진이 의자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고개를 들었고 매니저가 그녀의 사무실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하예진이 고개를 들었을 때 매니저가 말했다.“하 사장님, 서인 씨께서 또 오셨어요.”‘주서인?’하예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들어오라고 하세요.”지금의 하예진은 주서인이 두렵지도 않았다. 주서인이 만나러 온다 해도 대수롭지 않았다.매니저는 알았다고 대답하며 몸을 돌려 사무실을 떠났다.곧 매니저가 김은희와 주서인을 모시고 들어왔다.하예진은 두 사람을 앉으라고 표시한 뒤 매니저에게 말을 건넸다.“진 매니저님, 차 올려주세요.”“괜찮아. 엄
아직도 하예진과 주형인을 이어주려고 기회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주형인은 아직 이혼하지 않았지만 설령 그가 다시 이혼한다고 해도 두 사람에게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주형인도 마음속으로 뻔히 알고 있었기에 하예진에게 재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주형인의 어머니와 누나만 이렇게 바쁘게 돌아치고 있을 뿐이다.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예전에도 김은희 모녀가 X랄 하다가 결국 주형인과 하예진이 이혼하게 되었다.김은희는 나오지 않는 웃음을 쥐어짜 내면서 말했다.“그럼 우리가 때 되면 전화해서 음식을 주문할게.”“예진아, 여기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것 같은데 혹시 사람을 더 고용해야 하는 거 아니야?”“지금은 필요 없어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주서인은 지난번 그녀가 하예진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요구에 하예진이 거절한 일을 생각하더니 멋쩍게 웃고 말았다.세 사람은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미지근한 물잔을 들고 천천히 마실 수밖에 없었다.몇 분 동안 앉아 있던 김은희는 낯이 뜨거워 났는지 하예진에게 말을 건넸다.“바쁠 텐데 일 봐. 난 돌아가서 형인이 돌봐야 해. 주말이 되면 우빈이를 데리고 애 아빠 보러 와줘. 형인이가 주말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까.”하예진이 대답했다.“우빈이가 방학하게 되면 형인 씨 보러 가게 할게요.”그때 가서 강일구에게 부탁하여 우빈이를 병원으로 데려가게 할 예정이었다. 직접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전남편의 가족에게 조금의 희망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럼 우린 이만 가볼게.”김은희는 미처 마시지 못한 물잔을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아주머니, 잠깐만요.”하예진은 전 시어머니를 불러세웠다.김은희는 고개를 돌렸고 하예진은 책상 서랍에서 돈 봉투를 꺼냈다.“아주머니, 어제 서인 언니가 주신 축의금이에요. 아주머니와 아저씨께서 주신 오픈일 축의금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돈도 많이 필요하실 텐데 아주머니 마음은 제가 이미 받았어요.”“이 돈을 가져가셔서 우빈이 아
하루 레스토랑에서 나오자마자 김은희는 주서인에게 손을 뻗었다.“왜 그래?”주서인은 모르는 척 물었다.김은희가 대답했다.“예진가 돌려준 축의금 100만 원 나에게 줘.”“엄마, 우리 건축 자재 가게가 요즘 장사가 잘 안 되어 돈도 얼마 못 벌어요. 우리 가족이 먹고살기도 지금 너무 힘들어요. 이 100만 원 저에게 주세요.”“게다가 형인 사고가 났을 때 다행히 제가 앞에서 막아줬기 때문에 형인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저도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잖아요.”“현주도 감옥에 들어가서 제 병원비도 주지 않았는걸요. 저의 병원비도 모두 우리 스스로 지급했어요. 형인이와 그 X친 여자가 아직 이혼하지 않았으니 엄마 며느리가 엄마 딸을 해친 거나 다름없어요.”“이 100만 원으로 제가 영양제 사 먹게 해주세요.”김은희는 손을 뻗어 딸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엄마 앞에서 억지 좀 부리지 마. 우리가 널 얼마나 도와줬는데 아직도 만족을 몰라. 지금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그래? 형인이가 입원하여 지금 우리 집안의 모든 적금을 다 써버린 거 몰라?”“이 100만도 나와 네 아빠가 여기저기서 모아서 빌려온 거야.”“내가 너희 집안에 적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를 거라 생각하지마. 수십억은 아니더라도 1억 원 정도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아. 네 가게도 장사가 엄청나게 잘 된다면서.”“엄마가 병원에 오래 있었다고 해서 날 멍청이 취급 하지마. 아직 형인이 퇴원도 못 했는데 돈이 얼마나 더 드는지 모르니까. 엄마한테 돈을 뜯고 싶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야.”“생각해보니 형인이도 과거에 너에게 많은 도움을 줬잖아. 네가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종일 형인이 집에 가서 먹었잖아. 예진이가 널 조상 모시듯이 너희 다섯 식구를 모셨지.”“아무리 이익만 챙기는 것에 익숙해져도 유분수지, 친정집 형제가 지금 곤경에 처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이기적이야?”주서인은 마지못해 그 돈 봉투를 꺼내 어머니께 돌려드렸다.그리고 입으로 중얼거렸다.“예진 지금 돈 많잖아요. 예진이가 형인이
정윤하가 소지훈을 구했을 때 그는 수억 원의 차를 몰고 다녔고 스스로 회사 대표라는 것을 밝혔기에 굳이 가난한 척할 필요가 없었다.오늘 미니밴을 몰고 온 이유는 학생들에게 선물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소지훈은 학생들에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많이 준비했기에 다른 차로 바꾸었다.평범한 차량으로 바꾸면 다른 사람의 주의력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소지훈은 관성에서 매우 유명하지만 항상 은밀하게 다녔기에 그의 실물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가 2천만 원 정도의 미니밴을 몰고 관성 호텔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이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관성 호텔에 도착한 소지훈은 바로 내리지 않고 정윤하에게 먼저 전화했다.정윤하는 이내 전화를 받았다.“아저씨.”“윤하 씨, 좋은 아침이에요.”“좋은 아침이에요. 무슨 일이세요?”정윤하는 지금 학생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있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으면서 학생들이 경기하는 것을 주의 깊게 쳐다보았다.그 학생들은 정윤하가 엄격하게 선택한 실력 있는 학생으로서 경기장에서 표현도 엄청나게 좋았다.만약 이번 대회에서 정윤하의 정합 도장이 여전히 우승하게 된다면 정합 도장을 위해 홍보할 수 있었고 따라서 더 많은 부모가 자녀들을 그녀의 도장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윤하 씨, 바쁘세요?”“조금 바빠요. 저희 학생들이 지금 경기중이거든요.”소지훈이 빙그레 웃었다.“그러세요? 그럼 지금 호텔에 없겠네요. 오늘 점심 약속을 잊지 않으셨죠? 제가 윤하 씨와 학생들에게 밥 사주기로 했잖아요. 기억나세요?”“아직 식사 시간이 다가오지 않았는걸요. 경기가 끝나면 호텔에 가서 밥 먹을 수 있어요.”정윤하가 대답했다.소지훈도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는 이미 호텔에 도착했어요. 제가 여기에서 기다릴 테니 안심하고 학생들의 경기를 잘 지켜보세요.”소지훈은 모든 학생에게 선물을 준비했고 정윤하에게도 내놓을만한 선물을 준비했다.정윤하도 웃음 지었다.“이렇게 일찍 도착하셨어요? 저는 11시 반쯤에 연락드리려고 했는
“아저씨, 그럼 저 먼저 볼일 볼게요. 점심에 뵙겠습니다.”소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알겠어요. 참, 제가 경기장으로 모시러 갈까요? 제가 모시러 갈게요.”정윤하가 인사했다.“고마워요, 아저씨. 괜찮아요. 우리 전용 버스가 있어요. 좀 이따가 끝나면 우리 버스로 이동하면 돼요.”“그래요. 앞으로 버스 필요하시면 저한테 전화하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정윤하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좋아요. 그럼 다음에 또 경기하러 오면 아저씨 신세 좀 질게요.”경기는 자주 있었지만 관성에 놀러 오는 횟수는 매우 적었다.정윤하는 소지훈의 공손한 태도 때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니 소지훈에게 다시 신세 질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통화를 끊은 소지훈은 점심까지 기다릴 리가 없었다.날씨가 너무 더워 차에 에어컨이 있다 해도 오래도록 기다리기 힘들었다.그는 차에서 내려 관성 호텔로 들어가 호텔 1층의 휴게실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고 관성의 손님들이 호텔을 들락날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관성 호텔의 장사는 줄곧 잘 되고 있었다.매일 이곳으로 와서 밥 먹는 사람들, 사업 얘기하러 온 사람들, 호텔에 묵는 사람들로 무척 시끌벅적했다.호텔 운영을 맡은 사람은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 전호영이였지만 지금 그는 관성에 없었다.소지훈도 전호영이 강성에 잠시 머무르는 목적이 바로 아내에게 구애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전씨 가문은 강성 쪽에도 큰 호텔이 몇 군데 있었기 때문에 전호영이 아내에게 구애하면서 그쪽 호텔을 운영할 수 있어서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다.전씨 할머니께서 손주들에게 아내감을 골라준 사실을 소지훈도 알고 있었지만 어느 가문의 딸을 아내감으로 골라주었는지는 몰랐다.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소지훈은 관심 없었다.따르릉...소지훈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자 표시를 보았는데 잘 모르는 전화번호였다.하지만 그에게 전화할를 걸 수 있는 사람은 분명 그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소지훈이 전화를 받았다.“
“소현 씨, 어떻게 된 일이죠? 저는 가족 몰래 다녔는데 우리 부모님께서 어떻게 아신 거죠?”성소현이 화를 내며 대답했다.“지훈 씨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지훈 씨가 일으킨 일이니 지훈 씨가 알아서 해결하세요. 지금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시든 지금 당장 우리 집으로 가세요!”소지훈은 자신의 잘못인 줄 알고 쑥스러운 듯 말했다.“소현 씨, 화내지 마세요. 제가 일으킨 일이니 소현 씨께 누가 끼치지 않도록 제가 해결할게요. 지금 바로 갈게요.”“앞으로 소현 씨도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해주세요. 제가 무조건 도와드릴게요.”소지훈은 딴소리 들을까 봐 재빨리 성소현에게 약속했다.“지훈 씨 한 말 제가 다 기억했어요. 앞으로 지훈 씨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연락드리죠.”성소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성소현과 소지훈의 통화 내용을 들은 하예정은 몸을 일으켜 성소현에 의해 뿌리쳐진 전화를 들고 성소현의 앞에 내려놓았다.“그렇게 버리면 휴대전화가 고장 나요.”“고장 나면 지훈 씨 보고 하나 배상하라고 말하면 돼. 무슨 짓을 벌이는지 참...”성소현은 어머니한테서 빨리 집에 돌아오라는 전화를 받고 무슨 일인가고 물어보았다. 소씨 가문의 가주 소균성이 아들이 요즘 성소현에게 열렬한 구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소균성은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까 봐 걱정했다. 그는 점쟁이의 말을 믿고 결혼 적령기의 여자들을 찾아 사진을 찍거나 실제 사람을 만나 소개팅을 주선하느라 한동안 고심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관성의 상류 사회층 사람들은 소균성이 요즘 며느리 얻으려고 미치광이처럼 뛰어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무릇 소지훈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젊은 여성이 나타나기만 하면 모두 소균성에 의해 아들과 맞선을 보게 했다.하지만 여자들은 소지훈이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소지훈의 비주얼이 아무리 멋지고 신분과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평생 과부로 생활하려 하지 않았다.아니나 다를
성소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도 그 당시 그런 뜻을 품고 계셨어. 나도 엄마가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거든. 장연준 씨도 처음에는 우리 엄마의 뜻을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난 뒤로 우리 집을 호랑이 굴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여기고 있었거든.”“연준 씨가 집까지 팔았다고 들었어. 우리와 같은 구역에 살지 않으려고 말이야.”이 일을 말하자니 성소현도 정말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장연준에게 미안할 따름이다.이유 없이 장연준을 말려들게 했다.“연준 씨는 우리 남편의 사촌 동생이거든요. 연준 씨는 이모가 귀찮게 하는 게 짜증 나서 태윤 씨에게 하소연하며 조언을 구했거든요.”하예정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성소현은 바로 알아맞혔다.그녀는 하예정에게 물었다.“태윤 씨가 지훈 씨에게 나의 관심을 끌게 하라고 했다고?”“태윤 씨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지훈 씨를 안배해서 언니에게 구애하라고 했겠어요. 태윤 씨가 연준 씨에게 지훈 씨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했거든요.”“지훈 씨가 몸에 병이 있어 지훈 씨의 운명적인 여신이 아닌 이상 그에게 시집가면 모두 과부 생활을 해야 했거든요.”“지훈 씨가 나서서 연준 씨를 도와 이모의 관심을 돌린다면 연준 씨도 불구덩이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또 지훈 씨가 나선다면 이모도 분명 준하 씨와 지훈 씨 두 사람 사이에서 사윗감을 선택할 거란 말이에요.”“이모는 언니가 멀리 시집가는 것도 아쉬워하셨지만 언니가 과부 생활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신 거죠. 차라리 언니가 멀리 A시로 시집가는 것이 낫겠다 싶으신 거예요. 어차피 언니와 준하 씨 사이 감정도 애틋하니까.”“언니, 이 일은 태윤 씨 탓도 있어요. 사촌 동생에게 그런 조언을 해주게 되어서. 하지만 연준 씨가 어떤 방법으로 지훈 씨를 나서게 했는지를 저도 잘 몰라요.”“제가 태윤 씨 대신 사과드릴게요. 그동안 지훈 씨 때문에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드릴게요.”성소현이 대답했다.“그런 일이었군.”성소현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하예정도 사무실 입구까지 따라갔고 성소현이 총총걸음으로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성소현의 차가 회사를 나간 뒤에야 하예정은 사무실로 돌아갔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소지훈이 성소현에게 구애한 이유를 알려주었다고 전했다.전태윤은 사촌 언니에게 약간 트라우마가 있었다. 아내가 진실을 말했다는 소식을 들은 전태윤은 이내 물었다.“소현 씨, 내 말은 사촌 누나가 날 죽일 정도로 화가 난 건 아니지?”그의 물음에 하예정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화가 나서 태윤 씨 가죽을 벗기겠다며 서재로 내쫓으라고 저에게 당부까지 했어요.”“그건 안 돼. 누구도 우리 두 사람을 떼어놓을 수 없어. 사촌 누나가 화를 내도 방법 없는걸. 난 단지 연준에게 조언만 했을 뿐인데 누가 연준이가 정말로 지훈 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 알았겠어?”“연준이도 소현 씨와 준하 씨 때문에 귀찮아서 그런 거잖아.”“내 사촌 동생도 억울하게 연루된 마당에 내가 사촌 형으로서 그에게 조언하는 것도 안 돼? 소현 씨는 네 사촌 언니고 연준이는 내 사촌 동생이라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사촌들을 위해서 한 일일 뿐이야.”당당하게 한바탕 말을 쏟아낸 전태윤은 또다시 말투를 바꾸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여보, 사촌 누나가 정말 화 많이 났어?”“농담이에요. 언니가 진실을 알고도 화내지 않았는걸요. 언니는 사리가 밝은 사람이라 속 좁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단지 지훈 씨가 언니에게 구애한 척 한 사실이 어떻게 흘러나갔는지 소씨 가문의 가주가 알고 있더라고요.”“소씨 가문의 가주와 그분 부인도 선물을 가득 사 들고 이모 댁에 가서 소현 씨와 지훈 씨의 혼사에 대해 상의하려고 했대요.”“언니는 이미 집으로 들아가셨어요. 지훈 씨한테도 알려드렸고요.”전태윤이 말을 이었다.“걱정하지 마. 지훈 씨가 장가가기 싫어하면 지훈 씨 부모님께서 나선다 해도 아무런 소용도 없을 거야. 지훈 씨도 분명 부모님께 잘 설명해 드릴 거야.”하예정은 소지훈한테 아무런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노동명은 남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등에 한 번, 손바닥에 한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예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관 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동명 씨, 진지하게 좀 굴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노동명은 늘 거칠고 대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쳤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그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변했다. 하예정은 언니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명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진지해질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예진아, 앞으로 네가 휴식을 원할 때,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면 나에게 말만 해줘. 아무리 바빠도 내 손에 있는 일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나갈 수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는 돈도 충분히 있어. 예전에 번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 지금 일을 하는 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용돈을 버는 정도야. 나에게는 너와 우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하예진은 그를 꾸짖듯 말했다. “동명 씨가 말하는 약간의 용돈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버는 금액이에요. 동명 씨,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예진이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이 좋아 월 순이익이 꽤 높다고 하더라도 그가 버는 돈에 비하면 그녀의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잇, 비교하니까 열 받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온 힘을 다해야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노동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고생하며 노력한 결과다. 노동명은 업계에서 십여 년을 뛰어다니며 오늘의 성과를 이루었다. 노
우빈은 새 장난감을 들고 호텔로 돌아가 놀고 싶었다.아직 강성의 밤 구경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하예진이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아, 일구 삼촌과 함께 호텔로 돌아가서 놀아달라고 할래? 엄마랑 아저씨랑 좀 더 돌아다니다가 돌아갈게.”우빈은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하여 강일구는 우빈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계속 돌아다녔다. 이는 두 사람만의 데이트나 다름없다.“동명 씨,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 이 근처에 큰 영화관이 있거든요. 저는 거의 매일 그 영화관 입구를 지나다녔는데도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어요.”노동명이 간절히 원하던 바였다.그는 즉시 경호원에게 먼저 영화표를 사라고 지시했고 그와 하예진은 천천히 걸어갔다.십여 분 후, 두 사람은 영화관 입구에 도착했다.경호원은 표를 끊고 간식도 사 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간식을 먹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단지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이고 구매한 표도 곧 시작하게 된다.영화관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면 곧 들어갈 수 있었다.노동명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한 손으로 경호원의 어깨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은 하예진이 부축하여 들어갔다.자리에 앉은 노동명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들 주변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그와 하예진, 그리고 몇 명의 경호원들이 두 사람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경호원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었다.“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노동명은 자리에 앉은 뒤 감개무량하게 한마디 했다.하예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저도 몇 년 됐어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온 적 없어요.”결혼한 뒤로 영화를 보기는커녕 주형인은 그녀와 함께 쇼핑하는 것조차 점점 더 짜증을 냈다.그는 하예진이 물건을 살 때 항상 물건을 이리저리 비교하여 싼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싫어했다.하예진은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배속의 태아를 돌봐야 했다. 저축한 돈은 모두 신혼집을 꾸미는 데 썼기에 돈 가방
하예진은 아들의 이마를 톡 쳤다.“뭐라고 한 거야?”우빈은 하예진이 때린 곳을 만지며 노동명에게 말했다.“아저씨, 엄마가 절 아프게 때렸어요. ‘호’ 해주세요.”노동명은 재빨리 불어주고는 다시 어루만져주며 하예진을 나무랐다.“예진아, 우빈 이마를 자꾸 치지 마. 똑똑한 애가 멍청해지면 어떡해.”“똑똑하면 똑똑하고 멍청하면 멍청한 아이인 거예요. 제가 몇 번 쳤다고 멍청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멍청한 건 녀석이 원래 멍청한 아이였기 때문이에요.”“우리 우빈은 똑똑하거든 멍청하지 않는단 말이야.”우빈은 하예진에게 혀를 내밀고는 얼른 노동명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노동명 아저씨가 그를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우빈을 아껴주던 노동명은 결국 우빈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들어갔다.가게에 들어간 우빈은 노동명 품으로부터 바닥에 미끄러져 내려와 먼저 몇 권의 유아용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하예진의 앞에서 귀여운 얼굴을 들고 물었다.“엄마, 이거요. 저 장난감을 더 사도 돼요?”노동명이 녀석에게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녀석은 엄마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만약 하예진이 그에게 새 장난감을 사지 말라고 고집한다면 그도 사지 않을 것이다.하예진이 대답했다.“하나만 사.”우빈이가 대답했다.“네.”우빈은 장난감 몇 개 더 사려고 했지만, 하예진이 한 가지만 살 수 있다고 하니 하나만 사는 수밖에!녀석은 얼른 가서 그의 장난감을 고르고 있었다.노동명은 우빈이가 여러 장난감을 어루만지며 전부 가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이 좋아하는 건 다 사자. 내가 선물로 사줄게.”“동명 씨, 너무 아이 뜻에만 따르면 안 돼요. 한 가지만 고르게 해요. 장난감도 가지고 왔던데.”그러나 하예진은 아들에게 장난감 하나만 사주겠다고 고집했다.노동명은 어쩔 수 없이 하예진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는 우빈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사서 우빈에게 주고 싶었다.“우빈은 너무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고 아껴
“엄마, 하나만 사줘요. 네?”우빈은 계속해서 졸라댔다.“안 돼. 장난감을 사도 여기저기 쌓여 있을 텐데. 네가 놀다가도 정리하지 않으면 엄마가 대신 치워야 하잖아.”“엄마, 제가 다 치울게요. 앞으로 다 치울게요.”우빈도 스스로 정리하고 있었다. 다만 가끔 치우지 않을 때도 있었을 뿐이다.“장난감을 가지고 왔잖아.”하예진은 우빈에게 장난감을 너무 많이 사주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녀석이 장난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우빈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댔다.“새 장난감 사고 싶어요. 제가 새것 사 가서 동생에게 줄게요.”“그 동생은 아직 어려서 못 놀아.”“그럼, 스케치북을 사줘요. 글씨를 쓰고 숫자도 적으면서 놀래요. 네?”우빈이는 한발 물러서서 스케치북이라고 사고 싶었다.그 장난감 가게에는 연필들과 책들도 많았다.우빈은 그 가게를 다 돌아본 후에야 엄마를 찾으러 돌아와서 사달라고 졸랐다.강일구는 우빈이가 좋아하는 것을 사준다고 했지만, 녀석은 감히 받지는 못하고 하예진의 뜻을 물어보려고 했다.하예진은 항상 우빈의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 두 번째 장난감 방도 가득 찼다고 잔소리했다.우빈은 장난감을 매우 사랑했다. 어떤 장난감은 실수로 망가져도 엄마가 버리겠다고 하면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다.하예진이 쓰레기통에 버리면 녀석은 전부 도로 주워왔다.“스케치북은 사줄게.”우빈은 금세 원숭이처럼 노동명의 허벅지에 올라가 자신을 안아달라고 요구했다.그리고 하에진이 그들을 밀고 앞으로 가게 했다.“엄마, 그럼 우리 스케치북 사러 가요.”가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녀석이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있었다.우빈은 여러 대의 큰 장난감 차와 강아지 인형이 갖고 싶었다.정말 탐나는 장난감이었다!그는 엄청 좋아했다.“스케치북만 사. 이따가 돌아오면 그림도 그려.”하예진은 그녀의 아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그녀는 손을 뻗어 아들의 이마를 콕 찔렀다.“엄마가 네 곁에 없었는데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노동명은 다정하게 말했다.“널 위해서 늘 재활을 꾸준히 하고 있어. 회사 일은 특히 중요할 때만 나가서 처리하거든. 우리 형도 도와줘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노동명은 그윽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예진아, 만약 네가 없었다면 난 정말로 재활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면서 평생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바보.”“아니거든. 난 단지 너와 우빈을 너무너무 사랑했을 뿐이야. 남들은 네가 이혼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어. 내가 널 알게 되었을 때에도 넌 뚱뚱하고 못생겼는데 내가 왜 널 좋아하게 되었는지 몰라... 근데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나도 그 이유를 찾고 싶지도 않아. 아마 너의 강인함과 감히 자신을 개변시키는 그 능력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르지. 난 우빈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사실 난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느껴져서 안 좋아하거든. 근데 처음으로 우빈을 보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다.”“저도 알아요. 저도 제 아들 덕을 봤죠.”노동명은 우빈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빈의 엄마, 즉 하예진에게 조금 더 많은 관심과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그러다가 접촉 횟수가 많아졌고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정이 들었다.“우빈이가 우리 두 사람 중매를 선 거나 다름없어.”노동명은 헤벌쭉 웃었다.“태윤이도 마찬가지야. 태윤 때문이 아니었다면 널 알지도 못했을걸. 예진아, 네가 강성에서 일을 마치면 나랑 결혼하는 건 어때?”하예진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노동명이 계속하게 말했다.“내가 정상적으로 걷지 못해도 난 결혼하고 싶어. 난 이미 스스로 설 수 있어. 그리고 몇 걸음 정도는 앞으로 걸을 수 있게 됐고. 1년이란 시간을 더 주면 분명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 근데 난 그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노동명은 지금 36세이고, 2년만 더 기다리면 38세까지 될 것이다.곧 있으면 마흔이 된다.하예진은 속으로 흐뭇해하며 대답했다.“좋아요. 저야 지금 당장이라도 동명 씨와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요. 근데 동명 씨가 원하지 않잖아요.”노동명은 자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하지만 가난해 본 여운별은 자신에게 뒷길을 남겨두기 시작했다.용태호로부터 돈을 받을 때면 그녀는 몰래 저축해 놓았다.나중에 관계를 끊으면 수중에 재산이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예전처럼 여천우에게 매달 수십만 원 생활비를 달라고 매달릴 필요 없을 것이다.“태호 씨, 연회의 주인은 제가 누군지 아세요?”“네 신분을 몰라. 나도 관성 지역의 명문가 사모님께 부탁해 널 데려가도록 했어. 잘 들어. 넌 용씨 가문의 사모님이지 여운별이 아니야. 너의 시댁은 조용하게 지내는 가문이라서 넌 남들을 몰라야 해. 옛날 지인을 보더라도 아무리 친해도 모른 척해야 해.”여운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용태호는 그녀의 턱을 풀어주었다.“날 따라와. 올라가자.”여운별은 어리둥절했다.용태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면서도 반항할 수 없었고, 감히 반항하지도 못했다. 얌전히 용태호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강성, 하루 호텔.식사를 마치고 여행 가방을 내려놓은 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아들과 함께 호텔에서 걸어 나왔다. 근처 거리로 쇼핑하러 갈 준비를 하려던 참이다.우빈은 너무 기뻐서 가는 내내 깡충깡충 뛰며 재잘거렸다.하예진은 강일구에게 우빈을 따라가라고 지시했다, 어린 녀석이 너무 빨리 달려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강일구와 다른 경호원은 우빈을 따르고 있었고 네 명의 경호원은 노동명과 하예진의 뒤를 따랐다.그러나 노동명과 하예진을 방해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하는 사랑의 말을 무심코 듣고 싶지 않았다.“우빈이가 너무 기뻐하네.”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우빈은 외출하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몇 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부터 매일 밤 제가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 돌았거든요. 매일 시간이 되어 내려가지 않으면 어찌나 보채는지...”“하하, 그래? 우빈이가 어렸을 때 키우기 힘들었지?”하예진이 대답했다.“맞아요. 특히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달아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기어오르다가도 뛰어내리고... 조금만 부주의해도
“태호 씨, 방금 태호 씨가 한 말 제가 전부 귀담아들었어요.”여운별도 여운초가 그녀를 보고 의심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하예정이 허점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여운초는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누가 뭐라고 해도 친자매이니까.여운초는 여운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여운별은 오히려 여운초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몇 번이고 여운초에게 짓밟혔다.가장 두려운 것은 여운별의 남동생이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 점이다.여천우의 머리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여천우가 여운별을 따르지 않을뿐더러 두 고모도 사촌 오빠들을 데리고 관성을 떠나 어디로 갔는지 행방도 모른다.여운별은 이제 의지할 곳이 없어서 용태호의 눈에 들어 바둑판의 알로 사용되고 있고 심지어 용태호의 내연녀까지 되었다.용태호는 탁자 서랍에서 종이 두 장을 꺼내 여운별에게 건네며 말했다.“잘 봐. 이 종이에 적힌 모든 내용을 잘 기억해.”여운별은 그 두 장의 종이를 받았다. 그 종이 위에는 전부 낯선 이름과 낯선 회사들, 그리고 그 회사들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적혀있었다.빼곡히 많은 글이 붙어있었다.“태호 씨, 다 기억하여야 하는 거죠?”이는 용태호가 여운별에게 이어준 인맥임을 그녀도 잘 알고 있다. 이 사람들과 회사는 관성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여운별은 처음으로 용씨 사모님의 신분으로 연회에 참석하게 된다.연회에서 다른 사람이 시댁에서 무슨 사업을 하는지 물으면 적어도 대답을 해주어야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관성이 이토록 큰데 몇몇 명문가 외에도 많은 새로운 기업들과 수많은 크고 작은 회사들이 있다.모든 사람이 서로의 회사 대표님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그녀가 말을 꺼내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녀의 가족이 정말로 그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믿을 것이다.여운별은 이미 하예정에게 자신의 남편 사업이 관성에 있지 않고 관성에 정착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알려주었다.“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능숙하게 외워야 해.”용태호는 담담하게
진정으로 용씨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는 없다.그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용씨 가문을 잘 다스릴 수 있다 해도 임시 대리인으로 될 수밖에 없다.용정이가 어른으로 되어 다시 가주의 증표와 토템을 가지고 돌아오면 용태호는 아무 말 없이 무조건 자리에서 물러나 열심히 운영해왔던 모든 것을 내줘야 한다.용씨 가문의 진정한 세력과 인맥도 그 녀석에게 충성할 것이다.하여 용태호는 상대방이 아직 어리고 복수할 능력이 없을 때 먼저 증표와 토템을 받은 후 입을 막으려고 했다.그래야만 진정으로 용씨 가문의 주인이 되어 용씨 일족을 호령할 수 있으니까.그러나 그가 막 용정이 모연정의 양자라고 의심하던 찰나에 단서는 끊어졌고 그 아이와 관련된 소식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마치 보호막이라고 생긴 것 마냥 예진 리조트에서 너무 잘 보호되고 있었다.용태호도 손을 내밀어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는 정겨울의 배후에 서 있는 노인네와 국내와 국외를 자유롭게 오가는 신비로운 조직 오제당을 감히 건드릴 담이 없다. 용씨 가문은 매우 대단한 가문이지만 용태호는 아직 진정한 용씨 가문의 가주가 아니었다. 따라서 오제당과 맞서지 못할 것이다.그는 먼저 모연정의 양자가 그가 찾는 녀석인지 아닌지를 알아내야 했다.“태호 씨.”여운별은 무언가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용태호를 불렀다.용태호는 눈빛을 돌려 여운별이 말하기를 기다렸다.“태호 씨, 하예정은 매일 조카를 유치원에 데려다줘야 해서 저도 시누이를 데리러 가는 척했거든요. 유치원 입구에서 우연히 만나려고 늘 기회를 찾고 있었고요. 근데 하예정은 제가 늘 말하는 시누이를 본 적 없어요.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는 의심 살 수 있으니 제 일에 협조해줄 수 있는 아이를 배정해 줄 수 있을까요?”용태호는 웃으며 칭찬했다.“좋아. 진보 많네. 그럼 내가 아이 한 명을 찾아서 네 연기에 협조해주도록 하지. 그분 외조카가 유치원 소반이라고 했지? 넌 하예정 씨와 소개할 때 시누이가 몇 살이라고 알려줬어?”“네다섯 살 정도요.”용태호
여운별은 잠자코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하긴, 여운초가 이미 제 목소리를 들었으니 다음에 제가 변성하면 더 의심할 거예요. 이제 다들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하지만 하예정은 어떻게 저를 의심했죠? 몇 번 만나보지 못했는데.”용태호는 여운별을 힐끗 쳐다보다가 대답했다.“기억력이 좋거든.”여운별은 말을 잇지 않았다.여운초의 기억력도 아주 좋다.여운초는 10년 가까이 눈이 멀어서 기억력에 의존해야 했다.“그리고 네 눈먼 장님 언니도...”“태호 씨, 여운초는 이제 장님 아니에요. 진작에 시력을 회복했거든요. 전이진 도련님이 신의의 제자인가 뭔가 하는 사람을 찾아와서 눈을 치료해 주었다고 들었어요.”여운별은 말하다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그 장님은 왜 이렇게 운이 좋을까!”전이진이 여운초에 접근했을 때 그녀 아직도 장님이었으나 전이진은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여운초의 두 고모는 그때 명해은을 만나러 서원 리조트에 찾아가 여운초의 눈이 멀어서 전이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들쑤시기까지 했다.그러나 명해은은 전씨 가문의 사모님은 아무 일도 할 필요 없이 돈 쓸 줄만 알면 된다고 당당하게 쏘아붙였다.그녀의 두 고모를 울분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전씨 가문에서 미치광이처럼 떠들지는 못했다.이제 여운초는 시력을 회복했고 또 전이진과 혼인 신고까지 했다. 그녀가 전씨 가문에서의 지위는 더욱 견고해지기만 할 것이다.내일 저녁에 여운초는 명해은을 따라 연회에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예전에는 상류층에 연회가 있을 때마다 추미자는 여운별을 데리고 참석했지만, 여운초는 절대 데려가지 않았었는데...여운별이 여운초를 심하게 괴롭혔을 때 여운초가 평생 관성의 상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비꼬기까지 했다.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지금은 여운별은 상류 사회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여운초는 전이진의 어머니가 데리고 다니며 접대하고 교제하고 있다!여운초는 지금도 여씨 가문의 모든 사업을 관리하고 있다.여운별은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