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가 돈을 마련했을 때, 에메랄드 목걸이는 더 이상 경매에 나오지 않았다.솔직히 말한다면, 시가 100억도 너무 낮게 잡은 것이었다. 200억을 제시해도 살 수 없는 게 에메랄드 목걸이였다.“그렇다면, 여씨 가문의 양녀가 이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말씀인가요?”김성희가 목걸이를 집어 들며 물었다.백소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아이의 신분이 범상치 않아 권씨 가문에 시집을 보내려는 겁니다. 성수시에서 그 아이에게 걸맞은 신분은 오직 권씨 가문뿐이라고 생각됩니다.”김성희는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처음부터 김성희는 제 아들과 성남시 가문의 딸을 맺어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성남시 가문들은 성수시 가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그래서 권씨 가문은 아무리 애를 써도 성남시 명문가에 녹아들지 못했다.성남시 가문의 딸과 맺어줄 수 없다면, 성수시에서 제일 대단한 가문을 골라 혼인을 맺어야 했다.여씨 가문의 양녀라는 신분은 살짝 실망스럽지만, 에메랄드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여지연은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날 속이는 게 아닌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어요?”김성희가 덤덤하게 물었다.백소은은 나무 상자를 다시 덮으며 입꼬리를 올렸다.“저는 지연의 친부모를 찾아주고 싶어 권씨 가문과 혼인을 시키려는 겁니다. 사모님이 내키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성남시에서 가서 어울리는 짝을 찾아주면 돼요…….”김성희가 침묵했다.“이 일은 조금 더 고민할 시간을 주세요.”“고민할 필요 없으세요. 제가 싫습니다.”그때, 문밖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연은 또각또각 걸어와 두 사모님의 앞으로 섰다.“기억을 찾기 전에는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어머님도 이 일로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김성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연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여씨 저택을 자주 오가며 양녀를 몇 번 만나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겨우 양녀 신분의 그녀를 김성희는 눈에 담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보니 정말
김성희의 노골적인 말에 백소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까 말했다 시피 저는 이 결혼 반대입니다.”지연이 한층 더 차가워진 얼굴로 말했다.“사모님께서도 이만 돌아가시죠. 앞으로 이 일을 다시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김성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지금 네가 뭘 거절했는지 알기나 하는 것이냐?”지연이 입꼬리를 올렸다.‘오만하고 거들먹거리긴, 정말 모든 사람이 권씨 가문을 대단하다고 여기고, 들러붙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지연은 김성희와 말다툼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으며, 더 이상 방해받고 싶지도 않았다.가방에서 진단서를 꺼낸 지연이 김성희에게 내밀었다.“사모님, 이 진단서를 확인해 주세요. 그래도 저를 권씨 가문의 며느리로 삼고 싶다면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김성희는 진단서를 확인하고 바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게 사실이니?”“누가 본인 스스로 거짓 소문을 내겠어요?”지연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자, 아직도 저한테 볼일이 남으셨나요?”김성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백소은을 한번 흘겨보고 발길을 옮겼다.백소은이 빠르게 김성희를 뒤쫓았다.“사모님,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방금까지는 얘기가 잘 흘러가지 않았나요?”백소은은 양녀인 지연이 점점 두려워졌고, 더 이상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죄책감을 느꼈기에, 자신의 최선을 다해 좋은 짝을 찾아주려는 것인데, 거의 다 된 일이 뒤엎게 되었다.“백소은, 당신은 날 너무 얕잡아 봤어요.”김성희가 화를 냈다.“양녀가 아이를 낳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우리 석훈이가 아쉬워도 아이를 낳은 적이 있는 여자와는 결혼시키지 않을 겁니다!”그 말을 끝으로 김성희는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백소은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날카로운 지연의 눈빛과 마주했다.“지연아, 지금…….”“어머니, 병원 다녀오는 길이에요.”지연이 진단서를 넘겼다.“의사는 제가 3~4년 전에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고 했어요.”
“왜 이 사실을 저한테 숨겼어요?”지연이 점점 화를 누르지 못하고 백소은을 다그쳤다.이 말에 백소은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네가 여씨 가문에서 처음 지내던 몇 달 동안, 넌 매일 같이 악몽에 시달렸 단다. 계속 잠꼬대로 ‘내 아이를 해치지 말라’고 중얼거렸지…… 그래서 나는 네가 아이와 함께 도망을 가다가 결국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추측을 했어. 넌 파도에 휩쓸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아이는 아마도 운이 좋지 못했을 거야. 네가 너무 슬퍼할까 걱정이 되어 숨겨왔어.”지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두 눈을 지그시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지연은 수많은 상상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죽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지연아, 너무 속상해하지 말 거라. 아이는 앞으로도 또 생길 수 있을 거야.”백소은이 긴장한 표정으로 지연을 살폈다.“엄마가 좋은 짝을 찾아 줄게. 아직 나이가 어리니 앞으로 아이가 또 찾아올 거야.”“저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지연이 덤덤하게 말했다.“어머니가 계속해서 혼사를 알아본다면, 저는 집을 나갈 수밖에 없어요.”백소은의 얼굴이 살짝 굳었고,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지연아, 혼기가 차면 결혼해야 해.”“내 기억과 신분을 되찾고 생각해 볼 게요.”지연이 대답했다.“그리고 내가 누구한테 쫓겨 아이를 잃게 되었는지도 알아봐야 겠어요. 그 사람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침착한 말투였지만 무게가 담겨있었고, 그 말은 백소은의 가슴에 콕 박혔다.“지연아…….”백소은은 식은땀이 흘렀다.“네 아이를 해친 사람을 찾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그 사람 역시 동등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지연이 입술을 매만졌다.“나와 내 아이가 동시에 바다에 빠졌다면, 그 아이도 저처럼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요. 어느 날인가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지연은 마지막으로 백소은을 힐긋 살피고, 가방을 들고 여씨 저택을 떠났다.지연이 떠나자, 백소은은 마음이 가벼워진 듯, 편
여진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정원의 등나무 덩굴을 바라보았다.처음에는 여지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백소은이 여지연을 입양하겠다고 했을 때, 말없이 승낙했었다.그러나 함께 지내는 3년 동안, 여진석은 여지연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느꼈다.가족회의에서 지연과 시선을 마주하면, 의자에 가시가 돋친 것처럼 안절부절못해졌다.“이미 죽은 아이는 우리가 되돌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루빨리 지연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를 기도해야 해요. 현실을 직면한다면 죽은 아이는 빠르게 잊어버릴 거예요.”백소은의 말에 여진석이 차갑게 대답했다.“지수의 두 사촌 오빠도 지금 선 자리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어? 둘 중 아무나 지연과 맺어주는 게 어때?”백소은은 말문이 막혔다.“그게…….”“지연이 여씨 가문을 위해 아이를 낳는다면, 앞으로 우리 가문에 해를 입히지 못할 거야.”여진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일은 당신이 잘 생각해 봐.”백소은은 할 말을 잃었다.‘여씨 가문의 두 철없는 도련님이 어떻게 지연이랑 어울리겠어.’성수시에서 유일하게 어울리는 짝인 권석훈은, 이미 지연이 건넨 진단서 하나로 모든 가능성이 파멸되었다.“지연이 진상을 알아버린다면, 제일 큰 해를 입는 건 지수일 테니, 잘 생각해 봐!”여진석은 마지막으로 이 말만 남기고 서재로 돌아갔다.백소은은 두 손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끙끙 앓았다.……지연은 바닷가로 운전했다.성수시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였고, 너무 작은 도시인 탓에 해안선도 개발되지 않았다.지연은 자갈이 깔린 모래사장 위를 걸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지도를 통해, 이 바다의 맞은편은 국제도시인 성남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소은은 본인이 성남시 사람일 가능성이 크며, 파도에 휩쓸려 성수시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성남시에서 성수시까지, 비록 바다 하나가 떨어진 거리였으나, 파도에 휩쓸려 이곳까지 살아서 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거리였다.‘나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내 아이는…….’‘그
대략 8~9살 되는 앳된 얼굴, 검은 긴 생머리 위의 핑크색 리본, 포도알 같이 큰 눈동자는 아주 차분해 보였다.주변의 수군거림은 소녀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지, 여전히 차분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나이는 겨우 여덟 살이라고 해도, 성숙한 마인드는 열여덟 살 같아 보였다.지연은 수아를 발견하고 자꾸 아이에게로 시선이 갔다.왠지 모르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피아노 연주곡을 즐겨 듣지도 않고, 최근에 연주회를 간 적도 없으며, 이 소녀를 본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익숙한 기분이 드는 걸까?’“아가씨, 차에 타시죠.”경호원이 차 문을 열고 공손하게 말했다.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올라타려 는데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수아는 한참 전부터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던 수아는 시선 집중에 익숙했지만, 이번만큼은 시선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천천히 고개를 돌린 수아는 사람들 사이를 꿰뚫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여자에게로 시선을 향했다.수아의 눈은 그 순간 동그랗게 커졌다.갑자기 몸을 돌린 아이는, 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아가씨!”경호원은 깜짝 놀라 빠르게 뒤쫓으며, 사인을 받으려고 달려드는 행인들을 차단했다.지연은 먼 곳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처음에는 자신의 뒤편에 볼일이 있나 싶어, 자리를 살짝 비켜주었지만, 수아는 지연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무표정이던 얼굴에 슬픈 표정이 번지고, 차갑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렀다.“엄마!”아이가 울먹이며 말했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지연은 빠르게 아이를 부축했다.“꼬마야, 사람 잘못 봤어. 난 네 엄마가 아니야.”‘내 아이가 살아 있다면 겨우 3~4살일 텐데, 이렇게 큰 아이일 리가 없어.’수아는 가득 고인 눈물 너머로 지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까이에서 보니, 어쩐지 기억 속 엄마의 얼굴과 조금 달라 보였다.‘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비슷한 얼굴을 보고 엄마라고 착각한 걸까?’아이는 옷소매
수아의 울먹이는 소리가 지연의 귓가에 윙윙 울렸다.주변에 둘러싸였던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천재 피아니스트 소녀가 저 여자를 엄마라고 부른 거지?”“전에 강수아의 연주회에서 ‘어머니께’라는 연주곡을 들어 봤어. 그 곡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어.”“설마 어릴 때부터 엄마가 옆에 없었던 거야?”“그래도 모르는 여자를 엄마라고 부를 리가 없잖아. 저 여자가 얼마나 당황해하는지 봐 봐.”“깜짝 놀랐을 거야. 갑자기 저렇게 큰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니.”“강수아가 날 엄마라고 부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예쁘고 똑똑한 아이가 내 딸이면 좋겠어.”“꿈 깨는 게 좋을 거야.”“…….”수아의 울음소리와 주변의 수군거리는 소리는 지연에게 윙윙거리는 소음으로 들렸다.긴 한숨을 내쉰 지연이 입을 열었다.“꼬마야, 난 정말 네 엄마가 아니야. 하지만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잠시 옆에 있어 줄 수는 있어.”수아가 코를 훌쩍거렸다.아이의 티 없이 맑은 눈동자는 끈질기게 지연을 쫓았고, 두 손은 지연의 옷소매를 지그시 잡고 있었다. 마치 지연이 어디 론가 도망갈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배고 파요. 같이 밥 먹어줄 수 있어요?”지연은 시간을 힐긋 확인했다. 오후 3시인 시간에, 점심이라면 너무 늦고, 저녁이라면 너무 일찍 한 시간이었다.하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가 마음에 걸린 지연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그래, 밥 먹으러 가자.”수아는 눈물을 닦고 다시 차분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경호원분들은 이곳에서 기다려주세요. 밥만 먹고 돌아올 게요.”가장 앞에 선 경호원은 김정하, 양 집사의 친척 조카였다. 수아가 전국 순회를 돌게 되면서 김정하는 수아의 경호원 겸 매니저로 되었다.김정하는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말했다.“아가씨, 제가 같이 갈 수 있게 해주세요.”아가씨의 안전을 지키는 게 그의 가장 큰 임무였고, 낯선 여자와 단둘이 밥을 먹는 걸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수아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오
지연은 수아의 가족 성원을 묻고 싶었지만, 아까 행인들이 엄마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떠들어대던 것을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수아는 이런 지연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엄마는 성수시 사람이에요?”지연은 미소를 지은 채로 대답했다.“엄마 말고, 지연 이모라고 불러 줘. 난 너처럼 큰딸이 없거든.”그 말에 수아는 하마터면 눈물을 쏟아낼 뻔했다.‘분명히 엄마가 맞는데, 또 자세히 보면 왠지 낯설어.’‘정말 내가 착각한 걸까?’‘아니, 난 엄마를 착각할 리가 없어.’“당신은 제 엄마가 맞아요.”수아가 뜻을 굽히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했다.“아빠가 엄마를 4년 동안 찾아다녔어요.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지연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수아 엄마는 4년 전 실종 되었어?”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엄마는 새벽에 집을 나서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날 일이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밤이었을 테지만, 그날은 강씨 가족 5명에게는 악몽 같은 하루였다.“난 3년 전 일만 기억이 나. 그전에 있었던 일은 하나도 기억에 없어.”지연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나한테 이렇게 큰딸이 없을 거라고 확신해.”‘내 아이는 아마도 3,4살일 거고, 이 세상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을 거야.’아이 생각에 지연은 눈가가 촉촉해졌다.그 모습에 수아는 자리에 얼어붙었다.‘엄마가 기억을 잃었어!’‘예전에 있었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해!’‘그래서 날 알아보지 못했던 거야!’수아는 지연의 손을 꽉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 엄마가 맞아요. 당신이 바로 제 엄마예요.”지연은 머리가 어지러워졌다.아이의 호칭을 다시 고쳐주는 대신, 지연이 물었다.“올해 몇 살이야?”“몇 달 뒤면 9살이에요.”수아는 여전히 지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엄마, 나랑 돌아가면 안 돼요?”지연은 수아에게 잡혔던 손을 살며시 빼냈다.그러자 수아는 지연이 떠나려는 줄 알고, 허둥지둥 다시
수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마지막 기억 속의 엄마는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이었지만, 수아는 여전히 엄마를 그리워하고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왜 그래 수아야? 입맛에 안 맞아?”지연이 입꼬리를 올리고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수아는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우리 엄마는 이렇게 상냥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아니였어…… 정말 내가 잘못 찾은 걸까…….’“왜 울고 그래?”지연이 빠르게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날 엄마라고 생각하고 싶은 거면, 계속 엄마라고 불러도 돼. 난 괜찮아.”수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참았다.“한번 안아봐도 돼요?”“당연하지.”지연이 두 손을 뻗어 수아를 품에 안았다.9살이 되는 아이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었지만, 지연의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김정하는 빠르게 사진을 찍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3년 동안 수아를 경호하면서 이렇게 무너진 아가씨의 모습은 처음이었다.많은 사람 기억 속 천재 피아니스트 강수아는 침착하고 차분한 아이였다. 울지도, 보채지도 않았으며 대부분 상황에서 무표정으로 일관했다.수아는 아빠와 세 오빠 앞에서만 가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 역시 길지 않았다.하지만 김정하는 오늘, 수아가 진심으로 미소를 짓는 모습과, 온 힘을 다해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모두 보았다.‘정말 저 사람이 실종된 지 4년 된 강씨 가문 사모인 건가?’김정하가 인터넷에서 도예나의 사진을 찾아보려고 하던 찰나, 지연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울고 있던 수아가 울음을 그쳤다. 차가운 눈동자는 지연의 등으로 향했고, 바로 슬그머니 손을 뻗어 머리카락 한 가닥을 쥐어 소맷자락에 넣었다.김정하는 마음속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역시 수아 아가씨는 똑똑해. 머리카락만 가지고 가면 친자 확인 검사를 받을 수 있어.’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확신을 할 수 없지만, 친자 확인만 된다면 모든 게 확실해졌다.“아이고, 눈두덩이가 빨갛게 됐네.”지연이 물 티슈로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