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를 안방 침대에 눕힌 현석은 침대 옆 소파에 앉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인지 대충 예상은 가지만 쉽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어떤 일은 물어봐도 해결할 수 없었다.날은 점점 희미하게 밝아지고 어둠은 햇빛 속에서 종적을 감췄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그러나 뒤통수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지고, 예나는 침대 위에서 거의 부서질 것 같았다.현석은 소파에서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어젯밤 별장 부근에서 강남천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차량 세 대로 갈아타며 도주하는 바람에 사람은 놓쳐버렸지만, 성남시에 있는 이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현석은 텅 빈 눈동자로 예나를 바라보았다.‘모두 내 탓이야. 어젯밤 예나 씨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어야 했어.’‘내가 강남천에게 기회를 준 거랑 다름이 없어.’자책하던 현석은 곧 몸을 일으켜 간단한 아침상을 가지고 올라왔다.“예나 씨, 먼저 뭘 좀 먹는 게 어때요?”“나한테 말 걸지 말라고요! 저리 가요!”예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다짜고짜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예나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현석 씨, 미안해요.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그녀는 자신의 자아가 둘로 갈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한쪽은 제훈이를 강씨 별장에서 내보내자고 아우성치고, 다른 한쪽은 그 생각을 억누르기 바빴다.‘머리가 너무 아파, 더 이상 못 참겠어.’‘강남천은 정말 악마야. 내 손으로 현석 씨를 다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아이들한테까지 손을 대게 하다니.’‘아무리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제훈이라고 해도 상처를 받을 거야. 제훈이에게 버림받는 아픔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현석 씨, 제발 날 좀 가만히 내버려둬요. 문을 닫고 날 이 방안에 가둬요.”‘문을 닫으면 내가 제훈을 찾아갈 수도 없을 테니까.’현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예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예나에게 걸어가 그녀를 품 안에 넣었다.“예나 씨, 강남천이 무슨 지령을 내
무표정인 현석의 얼굴로는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현석의 날카로운 시선이 세윤을 향했다.“올라가서 덤벙대다 가는 엄마가 깨어날 수도 있어.”수아가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 말했다.“아빠, 덤벙대지 않을 자신 있어요. 엄마 한 번만 보게 해주면 안 돼요?”현석은 계속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새해가 되면 만날 수 있는데 지금 굳이 만날 필요가 있을까?”아이들의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했다.세훈이 인상을 찌푸렸다.‘제훈이가 거의 해결했다고 했다고 하지 않았나? 엄마랑 만나도 된다고 했는데 아빠는 왜 우릴 만나지 못하게 막는 걸까?’제훈은 더 이해가 가지 못하는 표정이었다.‘어제 시스템을 고쳤으니 오늘 엄마를 만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아빠는 왜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걸까?’제훈이 현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훈과 눈이 마주친 현석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현석은 남천이 무슨 지령을 내렸는지 제대로 알지는 못해도 예나가 아이들을 피하는 모습에 대충 예상이 갔다.‘예나 씨를 조종해 나를 다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아이들까지 손을 대려고 하다니.’그 순간 현석은 일말의 형제의 정으로 남천을 살려 둔 게 너무 후회되었다.‘강남천은 단 한 번도 나를 형제라고 생각한 적 없어. 내 아내를 넘보고, 내 자식을 다치게 하고, 앞으로 강남천이 또 어떤 말이 안 되는 일을 벌일지 알 수가 없어.’‘이번에는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현석의 냉랭한 표정을 읽은 세훈은 오늘 엄마랑 만나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한숨을 내쉰 아이가 입을 열었다.“아빠, 그럼 우린 이만 돌아가 볼 게요.”세윤은 아직도 많이 아쉬운지 말꼬리를 늘렸다.“아빠, 저녁에 전화할 테니까 꼭 엄마 바꿔줘요.”수아는 잠시 현석의 품에 안겼다가 말했다.“아빠, 우리 먼저 갈게요. 아빠랑 엄마랑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제훈은 2층의 굳게 닫힌 방문을 보며 입술을 매만졌다.“아빠, 또 봐요.”“현석아 걱정하지 말 거라. 네 아이들은 내가 잘 보살필 테니.”정지숙이 웃으며
수아도 예나를 향해 달려왔지만 예나는 달려오는 아이를 피해 몸을 돌렸다.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제훈만을 향했다.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점점 빨라졌다.“예나 씨.”현석이 빠르게 걸어와 그녀를 품에 넣었다.“제대로 쉬지 못했잖아요. 방으로 데려다 줄게요.”현석은 예나를 타이르며 위층으로 데리고 가는데 예나는 그의 손길을 휙 내쳤다.제훈이 앞까지 걸어온 예나는 허리를 굽혀 제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제훈아, 엄마가 결정을 하나 내렸어.”제훈은 미리 예상을 했기에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네, 말하세요.”“강씨 별장을 떠나.”입 밖으로 말을 뱉자, 심장이 저릿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가 없었다.“더 이상 강씨 별장에서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앞으로 어디에서 지내든지 네 마음대로 해.”비록 예상했지만 제훈은 너무 당황해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예나야, 왜 겨우 네 살인 아이에게 그런 농담을 하는 거니?”정지숙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이렇게 어린데 혼자 어디를 간다는 말이냐?”어두운 표정의 현석이 걸어와 말했다.“제훈아, 엄마가 하는 얘기 잘 들었지?”“네, 네.”제훈이 힘겹게 대답했다.“오늘 바로 이사 갈게요.”“제훈아, 왜 농담을 진담으로 들어?”정지숙은 깜짝 놀라 아이의 손목을 잡았다.“할머니가 있는 이상, 넌 어디도 가지 못해.”“농담 아니에요.”예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어머님, 어머님도 별장에서 나가주세요.”“뭐라고?”정지숙이 잠시 멈칫하다가 말했다.“예나야, 이해할 수 있게 자세하게 말해줘.”“어머님, 아이들과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세요.”예나가 주먹을 꽉 쥐고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저와 현석 씨가 볼일을 끝내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데리러 갈게요.”“말도 안 되는 소리!”정지숙이 호통쳤다.“곧 새해인데 내가 가길 어딜 간다는 말이냐!”“엄마, 우리 얌전하게 말 잘 들었는데 왜 우릴 다른 곳으로 보내려는 거예요?”세윤이 울먹거렸다.“앞으로 더 얌전히 말도
“도제훈은 시작에 불과해. 내 말 대로 하지 않는다면 네 아이 모두 내보낼 거야.”“난 당신을 많이 아껴, 그러니 당신이 아파하는 걸 보는 내 마음도 힘들지. 지금 바로 강씨 별장으로 와. 할 말이 있어.”예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강씨 별장? 아이들이 모두 그곳에 있는데 강남천은 왜 거기에 있는 거지?’예나가 빠르게 입을 열려는데 다시 목소리가 울려왔다.“도예나, 강현석에게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도제훈의 손을 토막 내서 선물로 보내줄 테니까.”예나는 소름이 확 끼쳤다. 강남천이라면 못해낼 일이 아니었기에 예나는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이런 그녀를 현석이 잡아당겼다.“예나 씨, 왜 그래요?”“잠시 나갔다가 올 게요. 따라오지 마요.”예나는 허겁지겁 외투를 챙겨 입고 차 키를 쥐고 밖으로 나갔다.현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주시하다가 그녀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그는 운전하면서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사람 더 붙여.”“대표님, 강씨 별장 부근에서 강남천의 행적이 발견되었습니다.”현석의 눈에 점점 익숙한 풍경이 들어오고, 예나가 가고 있는 곳은 강씨 별장이 맞았다.‘두 날 동안 온 성남시를 샅샅이 뒤져도 찾아내지 못한 강남천이 사실 등잔 밑에 숨어 있었다니.’‘제기랄, 그걸 예상하지 못했어. 하지만 다시 숨을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현석은 차 속을 높여 예나의 차를 바짝 쫓았다.운전대를 꼭 잡은 예나의 머릿속에는 강남천의 목소리만 들려왔다.“강현석도 참 대단해. 성남시를 이 잡듯 뒤져도 날 찾아내지 못하다니.”“하지만 성남시에서 더 이상 있을 수는 없게 됐어. 그러니까 나랑 함께 떠나자, 예나야. 강씨 별장에서 기다릴 게.”“내가 아무리 사람을 죽이고 악행을 저질러도 너를 향한 사랑은 강현석 못지않아.”그 말에 예나는 구역질이 올라왔다.대체 자신이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사람과 엮기게 되었는지 예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예나는 점점 빠르게 달려 현석의 차를 따돌렸
정지숙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남천아, 너희는 친형제야. 같은 시간에 태어난 너희들인데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니…….”“도예나만 나한테 넘긴다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어요.”남천의 말에 정지숙은 깜짝 놀랐다.“남천아, 도예나는 네 제수야!”남천이 입 꼬리 한쪽을 올리며 말했다.“오늘 날 못 본 걸로 해요. 내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금방 떠날 테니까.”“어딜 가는데?”정지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형제가 또 생사가 오가는 싸움에 빠질까 봐 두려웠다.이런 정지숙을 보며 남천은 웃음을 터뜨렸다.“도예나가 도착했어요. 아이들이 눈치 못 채게 몰래 이 방으로 데리고 와주세요.”정지숙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남천아, 그러지 말 거라…….”“그럼 그냥 아이들 눈앞에서 도예나를 끌고 갈게요.”남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아이들이 충격을 받아도 저는 아무 상관없으니 깐요.”“그래, 알겠다. 예나를 데리고 오 마.”정지숙은 긴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열었다.아래층으로 내려 가려는데 아이들이 이미 도예나를 발견해 버렸다.예전 같았으면 예나의 등장에 아이들이 환호하며 달려갔겠지만, 방금 별장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엄마가 눈앞에 있어도 감히 달려가지도 못하고 두 눈으로 뚫어져라 예나만 바라보았다.예나는 별장 안으로 걸어와 주위를 살피며 남천을 찾았다. 따뜻한 실내에 들어와서도 그녀는 외투를 벗지 않고 두 손을 주머니 안으로 꾹 넣고 있었다. 예나의 눈길이 아이들에게로 향했다.“모두 방으로 돌아가 있어. 부르기 전까지 절대 나오지 말고.”수아가 울먹거렸다.“엄마, 저…… 저 좀 안아주면 안 돼요?”예나가 고개를 저었다.“이따가 엄마가 볼일 마치면.”악마 같은 남천이 어디에 숨어서 그녀를 지켜볼지 모르는 노릇이었기에 예나는 함부로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예나의 눈길이 이번에는 제훈을 향했다.아직 강씨 별장을 떠나지 않은 제훈은 구석 자리에서 감
정지숙은 말없이 한숨만 내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예나는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천천히 정지숙의 뒤를 따랐다.안방 문을 열자 자욱한 담배 연기가 보였다. 남천은 지독한 흡연자로, 남천과 함께 지낼 때 늘 담배 냄새 때문에 힘들었었다.예나는 방안의 연기가 좀 줄어들고 나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나가주세요.”남천의 시선이 정지숙의 얼굴에 떨어졌다.정지숙은 하려던 말을 삼키고 행여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스레 방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예나는 문 입구에 서서 물었다.“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뭐야?”남천의 시선이 그녀의 손으로 향했다.“두 손 꺼내 봐.”예나가 얌전히 그의 지시를 따랐다.“외투를 벗어서 그곳에 내려놔.”예나는 순순히 외투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고, 짤그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또 주머니에 칼을 숨긴 거야? 그거 말고 뭐 다른 건 없어?”예나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당신을 상대하는 건 칼 한 자루면 돼.”남천은 자신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더니 검은색 리모컨 하나를 꺼내 들었다.“이 빨간색 버튼을 누르면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하지 않아?”예나는 입술을 매만졌다.“강씨 별장 마당에 폭탄을 설치해 놓았어. 버튼만 누르면 이 별장이 통째로 날아갈 거야.”남천은 두 팔을 벌려 오버 액션을 취했다.“2층에 있는 네 아이들은 아마 폭탄에 시체조차 찾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미쳤어?”예나는 화를 삼키며 겨우 세 글자를 뱉었다.“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도예나, 당신이 내 경고를 하도 많이 무시하잖아.”남천이 예나 앞으로 걸어와 그녀의 턱을 잡았다.“고분고분 나를 따라간다면 이 리모컨을 바로 부숴버릴 게. 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너와 네 아이들은 모두 같이 죽는 거야.”예나는 애써 분노를 억눌렀지만,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남천과 함께 이곳을 떠난다고 해도 그녀의 일상이 평화로울 리가 없었다.또한 아이들을 이곳에 두고 떠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그래, 너와 함께 떠날 게.”
정지숙이 힘겹게 복도를 지나 아이들 방으로 걸어갔다.정지숙의 손이 문손잡이에 닿자마자 방문이 열렸다.“엄마…… 할머니? 왜 할머니가 왔어요?”세윤의 얼굴은 실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정지숙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달랬다.“세윤아 착하지? 지금 엄마랑 할머니랑 여자들끼리 할 얘기가 있어. 우리 수아도 여자 아이니까 할머니랑 엄마 보러 가자.”수아는 웃음을 가득 머금고 치마를 살짝 든 채로 퐁퐁 뛰어갔다.하지만 제훈이 수아를 막아섰다.“엄마가 직접 부를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그 말에 수아가 바로 발걸음을 멈춰 서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맞아요. 엄마가 와야 나갈 수 있어요.”정지숙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엄마가 할머니한테 수아를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했어. 늦게 가면 엄마가 화낼지도 몰라.”수아는 고개를 숙이고 발가락만 꼼지락거렸다.최근의 엄마는 너무 변해버렸다. 부드럽게 말해주지도, 따듯하게 안아주지도 않았다.‘요즘 엄마는 자주 화내는 것 같아.’“알겠어요. 할머니랑 같이 갈게요.”수아는 몸을 돌려 세 오빠를 향해 손을 저었다.“이건 여자들끼리 대화니까 오빠들은 엿들으면 안 돼요.”정지숙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수아와 함께 복도를 지나 방문 앞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방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시 놀란 수아는 금세 활짝 웃으며 물었다.“아빠도 왔어요?”정지숙은 수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문득 수아를 안으로 들여보내기 싫어졌다. 수아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손녀였으니.‘내가 어떻게 수아를 구렁텅이에 직접 밀어 넣을 수가 있어…….’그러나 정지숙이 다른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고 큼지막한 손목이 나와 수아를 확 안아 들었다.쿵-문이 닫혔다.수아는 까만 눈동자를 또르르 돌려 먼저 예나를 발견했다. 기뻐하기도 잠시 고개를 돌리자, 현석과 똑같은 얼굴의 남천이 서 있었다.“안녕, 수아야. 오랜만이야?”수아는 허공에 안긴 채로 그대로 굳어버렸다.“악당! 너는 악당
“수아야!”예나의 동공이 세게 흔들리고 거의 날아가다시피 달려가 수아를 받아냈다.하지만 그녀는 한발 늦어버렸고, 수아는 침대 옆 캐비닛에 머리를 세게 부딪혀 기절해 버렸다.예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눈시울을 붉혔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드는 남천이 보였다.“도예나, 아무리 네 딸이라고 해도 결국 나한테는 널 조종할 도구에 불과해. 도구 주제에 날 물다니, 정말 죽으려고 작정했나?”까만 총구가 수아의 이마를 노리자 예나 마음속엔 분노가 치솟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심호흡 하며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위해 애썼다.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예나는 겨우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강남천, 내 아이를 놔주면 널 따라 갈게. 아니면…….”그녀는 허리춤에서 날이 시퍼런 비수를 꺼냈다.“아니면 넌 내 시체를 보게 될 거야.”남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대체 몇 개를 숨긴 거야?”“보름 동안 너무 절망스러운 순간들이 많아 자살을 생각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예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지만 내가 죽고 나면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어지니까 겨우겨우 참고 지냈어. 하지만 지금 보니 나 같은 엄마가 살아있는 게 아이들에겐 더 큰 불행이라는 걸 깨달았어. 내가 죽어야 아이들이 평범하게 자랄 수 있는 거야.”그녀는 말하면서 칼을 점점 자기 목으로 가져다 댔고 새하얀 목덜미에 순식간에 피가 흘러내렸다.“네가 죽으면 네 아이들을 다 죽여버릴 거야.”남천이 차가운 목소리로 위협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달리 예나는 품 안의 아이를 카펫 위로 내려놓았고 여전히 칼을 목에 댄 채로 몸을 일으켰다.“죽으려고 하는 사람한테 그깟 게 뭐가 두렵겠어? 나도 죽고, 내 아이들도 죽어서 천국에서 만나면 오히려 고맙지.”칼은 점점 더 깊게 파고들고 피가 끊임없이 솟구쳤다.남천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당장 떠나! 이 녀석은 여기 내버려두고!”남천은 결국 그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항상 그래왔다시피 예나 앞에서 남천은 모든 걸 내려놔야 했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