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 욕실로 걸어간 예나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확인했다. 하얀 얼굴에 번진 피, 흰 나시에 새빨간 핏자국, 빨개진 눈시울, 헝클어진 머리, 지옥에서 도망친 귀신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을까.’그녀는 고개를 숙여 찬물로 세수하며 정신을 차렸다.다시 안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침대 시트를 교체하고, 귀걸이를 손에 쥔 채로 한참동안 살폈다.예전의 귀걸이와 거의 똑같았다. 안의 칩도 특별한 게 없어 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대에 몸을 기대앉은 예나는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다.‘아무리 악마 같은 강남천이라고 해도 오늘 밤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야.’‘하지만 오늘 다치게 했으니 반드시 복수하러 올 거야.’그녀는 몸을 일으켜 옆방으로 걸어갔다.이미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라, 오직 작은 무드 등만이 방안을 비췄다.어두운 곳에서 현실 감각을 잃은 예나는 현석의 방문 앞에서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문을 열었다.그녀가 들어오자 현석은 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민첩한 현석은 베개 아래로 손을 넣어 무기를 잡았지만, 방안을 찾은 게 예나라는 걸 알아차리고 다시 무기를 내려놓았다.“예나 씨, 무슨 일이에요?”현석이 예나에게 걸어가 그녀를 꼭 껴안았고 그녀의 체온에 깜짝 놀라 물었다.“왜 이렇게 몸이 차가워요?”예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품속을 파고들었다.식은땀을 흘리고, 찬물로 세수까지 했으니 아무리 따뜻한 침대 안에 있어도 도저히 몸이 녹지 않았다.그녀는 현석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그러나 현석은 의식적으로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예나가 그의 얼굴을 감싸 쥐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현석 씨, 하고 싶어요.”그 말에 현석은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현석은 예나의 허리를 감싸 쥐고 다시 키스를 시작했다. 한참이나 이어진 키스에 두 사람 모두 숨을 헐떡이며 침대 위로 누웠다.현석이 예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예나 씨, 지금이라도 그만둘까요? 예나 씨
예나의 몸과 마음은 서로 다른 자아가 생긴 것처럼 몸은 현석을 밀어냈으나 마음은 그를 원했다.그날 밤, 달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방에서 둘은 긴 밤을 보냈다.다시 눈을 떴을 때, 예나는 피곤함에 찌들었다.“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내가 해줄 게요.”현석의 물음에도 예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어젯밤에 내가 이상한 행동한 거 없죠?”현석이 예나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정말 대단해요, 예나 씨는 칩 시스템을 이겼어요.”“정말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렸다.“그럼 앞으로 계속 함께 자도 돼요?”예나의 물음에 현석은 입을 꾹 다물었다.비록 어젯밤 예나가 시스템의 명령 불복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은 너무 힘들어 보였다. 현석은 예나가 힘든 게 싫었다.“함께 자도 돼요. 하지만…….”현석이 조금 뜸을 들였다.“얌전히 잠만 자는 거예요. 다시 날 유혹하지 마요.”예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현석의 품에 안겼다.현석과 함께 지내면 남천이 그녀를 넘볼 기회가 사라질 테니 예나는 그 하나로 만족했다.아침을 먹고 나서 예나는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벌써 보름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았어요. 오늘엔 현장 좀 나가볼 게요.”명훈이 매일 보고를 올렸음에도 예나는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요.”현석이 차 키를 가지고 나가 차를 문 앞으로 운전해 왔다.그리고 직접 좌 수석 문을 열어 예나를 앉히고 친절히 안전벨트까지 해주었다.리조트와 별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불과 10분 만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보름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공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기초시설이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었다.예나와 현석이 임시 사무실로 걸어가며 말했다.“고지훈 부장은 어디 있나요?”사람들은 성남시 최고 미녀인 도예나를 모를 리가 없었다.안내데스크의 직원이 다가와 그녀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고지훈 부장님과 문해준 팀장님은 안에서 회의 중이십니다.
명훈의 눈에 분노가 가득 찼다.어느 높으신 분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불 보듯 뻔했다. 또 장서영의 짓이었다.명훈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왜 고모는 사사건건 프로젝트에 태클을 거는 거야.’‘고지훈 부장과 문해준 팀장을 따돌리고, 우리 프로젝트로 넘어온 두 매니저를 매수하고, 오늘은 강제적으로 공사 중단까지 시키려고 하다니.’‘석유 화학의 승리는 따다 놓은 당상이어도 고모는 태클을 멈추지 않았어.’명훈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뒤로 돌아섰다.그러다가 휴게실에서 나오는 두 사람과 마주친 명훈은 깜짝 놀랐다.“누나, 누나가 여긴 어떻게?”예나가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오지 않았다면 누가 우리 프로젝트의 물을 흐리게 하는지도 모를 뻔 했잖아.”예나가 시선을 몸집이 우람진 사람에게로 돌렸다. 날카로운 시선에 아까까지 당당하던 남자는 금세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외면했다.예나의 시선을 외면하며 뒤로 시선을 돌리자 더 날카로운 시선과 마주쳤다.현석이 입을 열었다.“오 부장, 여기서 다 만나네요.”몸집이 우람진 그 사람은 건설 부문의 오민석 부장이었다. 이 구역 건설은 모두 오민석의 소관이었는데 현석과는 구면이었다.현석과 눈이 마주친 순간, 오민석은 큰일이 났다는 걸 직감했다.현석 얼굴의 흉터는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차가운 시선과 타고난 카리스마는 보는 이에게 오싹한 기분이 들게 했다.“강, 강현석 대표님.”오민석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손을 내밀었다.“여기에서 만나 뵙다니 정말 반가워요.”그러나 현석은 여전히 차가운 태도였다.“이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죠?”오민석이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강씨 그룹 대표님이 왜 이런 작은 프로젝트에 관심을 돌리시는 겁니까?”“기자 좀 섭외해 올까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게 어때요,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오민석 부장님이 뇌물이라도 받은 줄 알겠어요.”오민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성남시에서 강씨 그룹의 권력은 하늘을 찔렀다. 겨우 건설부 부장인 오민석은 감히
예나가 명훈을 향해 덤덤하게 말했다.“무슨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말하라고 했잖아. 왜 지금까지 알려주지 않았어?”명훈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이깟 작은 일로 누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몸은 괜찮아요?”“난 괜찮아.”예나가 입꼬리를 올렸다.“심사 기간이 12날 정도 남았네.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려, 명훈아.”명훈이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외부 사람들의 눈엔 도예나와 이지원의 경쟁으로 보일진 몰라도, 사실은 장명훈과 이지원의 경쟁이었다.만약 이 경쟁에서 진다면, 명훈과 장서원은 가문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일 생기면 바로 연락 줘.”현석이 입을 열었다.“나는 매형이잖아.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해.”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매형.”그동안 예나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명훈은 예나의 뒤로 요리하고, 빨래를 하고, 바닥을 닦는 현석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정말 믿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니 인터넷에 도는 이혼설은 정말 루머에 불과했다.현석은 오늘 새로 받은 문서를 모두 차 트렁크에 넣고 예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바람을 쐬고 나니 예나는 기분이 퍽 좋아졌다.현석이 서재에서 업무를 처리하자, 예나는 책 하나를 꺼내 들고 거실에서 뒹굴거렸다.겨우 몇 줄 읽었을 뿐인데 머릿속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예나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녀는 천천히 힘겹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갔다.남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귀걸이는 얼마든지 새로 만들 수 있었다.“예나야, 내 목에 칼을 꽂은 대가로 강현석의 목에도 칼을 꽂아줘.”남천의 목소리가 예나의 귓가에 울렸다.예나는 최후의 발악으로 두 손을 묶은 채 지령을 거부했다.“나한테 하던 대로 강현석한테 해. 빨리 가, 예나야 빨리.”“예나야, 강현석의 목에 칼만 꽂으면 더 이상 아프지 않아.”그녀는 뒤통수가 너무 아파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예나의 자아는 또 둘로 나누어져 한쪽은 지령을 완수하려고 애쓰고 다른 한쪽은 안
“나가요!”“나가!”예나가 이를 악물며 겨우 몇 글자를 뱉었다.현석이 예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내가 여기 있잖아요, 무리하지 마요.”칩으로 조종된 예나는 대부분 주변 사람을 다치게 했다.현석은 자신이 다쳐도 좋으니 예나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가요! 나가라고요!”예나가 새빨개진 눈시울로 현석을 노려보았다.“나가요, 현석 씨. 제발 나가요. 더 이상 못 참겠어요.”머릿속 남천의 목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려왔다.“예나야, 베개 아래에 숨겨둔 칼을 꺼내 강남천의 목을 찔러!”“싫어!”예나는 고통에 몸부림쳤다.현석은 여전히 예나를 품에 안고 그녀를 다독였다.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와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는 커다란 덫이 되어 그녀를 옭아맸다.예나는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그러다가 있는 힘껏 끈을 끊어낸 예나는 단숨에 베개 아래 감춰진 칼을 들고 현석을 향해 휘둘렀다.칼이 현석의 목을 관통하려는 찰나, 예나는 손목을 꺾어 자신의 손등을 내리찍었다.손등 위로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드디어 머릿속을 지배하던 목소리가 사라졌다.“예나 씨!”현석이 바로 그녀의 손을 지압하다가 아래층으로 안고 내려가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예나는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현석에게 손을 맡겼다.치료가 끝나고 현석이 물었다.“아까 시스템이 무슨 지령을 내렸던 거예요?”예나가 입술을 우물거렸다.“멀리 떨어지라니까 왜 자꾸 다가온 거예요?”그녀의 말에 현석이 얼굴이 굳었다.예나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하려던 말을 삼켰다.만약 기본 시스템의 지령이라면 예나는 자기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하지만 예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러니 방금 지령은 시스템이 아닌 누군가가 지령을 내린 것이었다.“강남천!”현석이 인상을 찌푸렸다.“성남시에 이미 사람을 풀었으니 금방 찾아낼 거예요.”예나가 현석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우리 당분간만 떨어져서 지내요.”“왜요?”현석이 그녀의 다친 손
웅웅-핸드폰이 진동했다.수신자를 확인하니 아이들이었다.현석이 수신 확인을 누르자 네 얼굴이 화면 가득 채워졌다.“엄마, 오늘부터 겨울 방학이에요.”세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 한 달 동안 방학인데 엄마 보러 가면 안 돼요?”세윤의 천진한 얼굴을 보며 예나는 쓴웃음을 지었다.강남천 이 사악한 악마가 성남시에 있으니 예나는 아이들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아이들이 남천의 눈에 띈다면 아이들마저 목표물이 될 수 있었다.“엄마가 요즘 너무 바빠서 너희들이랑 함께 있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예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들을 달랬다.“열흘 뒤면 새해인데, 그땐 아빠랑 같이 돌아갈 게. 우리 새해는 함께 보내자.”수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새해는 처음인 것 같아요.”제훈이 말했다.“우린 해외에서도 새해를 같이 보냈어. 네가 너무 어려 기억하지 못했을 뿐이야.”“와, 난 엄마랑 처음 새해를 보내는 거예요!”세윤이 입을 헤벌쭉 벌렸다.“엄마, 갖고 싶은 새해 선물 말하시면 제가 사드릴 게요.”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너희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엄마는 바랄 게 없어.”“안 돼요, 선물 하나만 고르세요.”세윤이 고개를 저었다.“목도리? 모자? 아니면 코트?”예나는 가슴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대화를 이어가다 가는 또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었다.예나는 머릿결을 쓸어내리며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데 제훈이가 물었다.“엄마 손이 왜 그래요?”금방 치료를 마친 손이라 아직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흰 거즈 위의 빨간 피는 공포스러운 느낌을 줬다.예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옷소매 안으로 숨기며 말했다.“오늘 채소를 다듬다가 실수로 베었어. 괜찮아.”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빠, 저번에 부탁하신 코드 새로운 발견이 있어요.”현석이 핸드폰을 받아 쥐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말해봐 봐.”“아직 원본 데이터를 해킹하지는 못했지만, 프로세스를 고칠 수는 있어요.”제훈이 천천히 말했다.“아빠가 말하셨던 그 부하를 한번
예나의 기억 속에 제훈은 똑똑하고 일찍 철이 든 아이라 2살을 넘긴 후로는 우는 모습도 드물었다.하지만 그렇게 듬직하던 제훈이 숨이 차도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예나가 빠르게 걸어가 제훈을 품에 안고 눈물을 닦아주었다.“제훈아, 엄마 여기 있어. 제훈이 옆에 있으니까 그만 울어.”예나는 제훈의 등을 토닥였다.“엄마, 엄마…….”제훈은 천천히 진정하기 시작했다.예나는 이런 제훈을 품에 안고 소파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빠가 왜 제훈이를 오라고 했는지 알아?”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몸의 칩 프로세스를 고치려고요.”예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역시 제훈이는 알고 있었어.’예나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자신 있어?”“최선을 다해볼 게요.”현석이 컴퓨터와 각종 기구를 꺼내 왔다.모든 준비는 끝났다.예나는 소파에 기대앉아 두 눈을 감고 몸의 긴장을 풀었다.제훈은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작은 두 손으로 키보드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검은색 화면 위로 하얀색 파란색 부호가 나타나고 빨간 점이 계속 깜박였다.현석은 귀걸이를 손에 쥐고 긴장한 모습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시간은 1분 1초가 지나고 날은 어느새 어두워졌다. 겨울 찬 바람이 창밖으로 몰아쳤으나 거실 안은 적막했다.탁!제훈이 컴퓨터를 닫아버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원본 프로세스는 파괴가 되지 않아요.”제훈이 입술을 매만졌다.“하지만 프로세스 내용을 수정해서 호르몬이 분비되어도 작동하지 않도록 했어요.”예나의 눈이 반짝거렸다.“그게 정말이야, 제훈아?”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데이터베이스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겨우 몇 가지만 수정했어요. 며칠 더 연구하면 새로운 발견이 있을 거예요.”“제훈아, 너무 대단해!”현석이 제훈을 바라보며 칭찬을 아끼지 못했다.‘제훈이는 생각보다 더 재능이 있어.’“제훈아, 고마워.”예나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네가 엄마를 구해준 거야.”제훈은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을 푹 숙였다.“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
현석은 침대 옆에 서서, 길쭉한 손가락으로 셔츠 단추를 하나씩 천천히 풀어 내려갔다.그의 판판한 가슴이 드러나자, 예나는 자연스럽게 침을 삼키며 그 모습에 눈길을 돌렸다.어젯밤 현석은 예나의 상황을 살피느라 많이 억제했었다.하지만 오늘 밤에는 더 이상 참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예나 씨, 사랑해요.”현석은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타며 이마부터 키스를 시작했다.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피부에 닿자, 예나는 자연스럽게 발가락이 오므라졌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이제 더 이상 스킨십을 막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오늘 밤 아무도 그들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예나와 현석은 알지 못했다. 다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예나는 까무룩 잠에 들었고, 그동안 억눌렀던 마음을 모두 분출한 현석도 예나를 품에 안고 깊은 잠이 들었다.그렇게 밤은 점점 더 깊어 가고…….예나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깜깜한 방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뒤척이자 현석도 잠에서 깨어났다.“무슨 일이에요?”“목이 말라서 물 마시고 올 게요.”현석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제가 화장실 다녀오면서 한잔 따라올 게요.”그러나 예나는 다시 현석을 침대 위로 눕히고 이불을 꽁꽁 덮어주었다.외투 하나를 걸친 예나는 실내화를 신고 조심조심 안방 문을 닫았다.그러나 문을 닫은 예나의 표정이 얼음처럼 차가웠다.이 야심한 시간에, 남천은 지령을 내렸다.깊은 잠이 들었던 예나는 지령 소리에 너무 시끄러워 잠에서 깬 것이었다.“문을 나서고 왼쪽으로 100미터 걸어.”그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렸다.예나는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두꺼운 패딩 하나를 더 껴입었고 몰래 별장을 나섰다.겨울 밤의 성남시는 영하 10도로 내려갔다. 문을 열자마자 예나는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별장을 나서고 왼쪽으로 꺾어 100미터 정도 걸자 골목 끝에 서 있는 검은색 몸짓이 보였다.우중충한 나무숲에 몸을 숨긴 그는 저승사자라고 해도 믿을 몰골이었다.예나가 발걸음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