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는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미소를 지은 채 현석과 주방으로 향했다.예나가 감자를 씻으며 덤덤하게 물었다.“현석 씨, 강남천은 요즘 말썽 안 피워요?”현석이 고개를 숙인 채로 채소를 썰며 대답했다.“요즘 지하실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어요.”처음 갇힌 몇 달 동안 남천은 각종 이상한 요구를 했고, 그 틈을 타 도망을 가려고 했으나 매번 다시 잡혀 왔다.탈출할 수 없다고 마음을 비운 요즘은 오히려 조용했다.감자를 씻던 예나의 손이 뚝 멈췄다.‘강남천이 탈출한 걸 현석 씨는 아직 모르고 있어.’그녀는 고개를 숙여 천천히 말했다.“현석 씨, 나 강남천하고 통화하고 싶어요.”현석이 하던 일을 멈추고 예나에게 시선을 돌렸다.“예나 씨, 강남천은 너무 위험한 사람이에요. 예나 씨가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칩 데이터베이스에 대해 알아보려고 아무리 함정을 파도 남천은 입을 꾹 다물었다.‘현석 씨는 내가 강남천과 연락하는 게 싫은가 봐.’“여보, 뭘 걱정하는 거예요?”예나가 손을 닦고 그의 목에 두 팔을 걸었다.“난 현석 씨 한 사람만을 사랑해요. 날 믿지 못하는 거예요? 강남천에게 연락하려는 건 칩에 대해 알아볼 게 있어서 그래요. 혹시 말실수로 중요한 단서를 흘릴 수도 있잖아요.”현석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알겠어요. 레이한테 연락할 게요.”“급하지 않아요. 저녁 먹고 연락해요.”예나는 감자를 마저 씻었고 현석은 미소를 터뜨렸다. 두 사람은 함께 저녁 요리를 완성했다.감자반, 제육볶음, 미역국, 밥 두 그릇. 간단한 집 밥이었지만 너무 행복한 저녁 식사였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현석이 설거지를 했다.그리고 전화를 꺼내든 현석이 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위협적이고 상위 포식자 같은 위압감이 있었다.그런데 이런 남자가 방금 주방에서 설거지했을 거라고 누가 예상을 하는가?예나는 턱을 괴고 현석을 보며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남천이 없어졌다는 걸 알아버린다면 평화롭던 둘의 생활에 또 금이 생길 것이다
예나가 걸어가 현석의 등을 토닥였고 현석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입술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현석이 입을 열었다.“모니터는 이미 망가졌을 수도 있어. 해커를 찾아서 내용을 복구하고 강남천을 다시 잡아와.”전화를 끊은 후에도 현석은 화를 삼키지 못했다.“괜찮아요.”예나가 현석을 다독였다.“강남천같은 사람이 어떻게 얌전히 지하실에 갇혀 지내겠어요. 갇힌 그날부터 어떻게 탈주할지 고민했겠죠.”현석이 차가운 예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예나 씨가 강남천과 연락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면 난 강남천이 사라졌다는 걸 꿈에도 모를 뻔했어요.”“현석 씨, 지금 자책할 시간이 없어요. 강남천이 어디로 숨었는지 알아봐야 죠.”현석이 굳은 얼굴로 잠시 고민에 빠졌다.“성남시로 왔을 거예요.”그는 점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남천은 자신을 원망했으니, 자신에게 복수하러 왔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현석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남천이 예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현석은 예나를 품에 안았다.“오늘부터 단 1초도 내 옆에서 사라지지 마요.”마이크로칩이 심어진 예나는 너무 위험했다.“현석 씨, 걱정하지 마요.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예나가 쓴웃음을 지었다.“날 찾아오면 현석 씨가 있을 텐데 강남천은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지 않을 거예요.”두 사람은 꼭 껴안았으나 서로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다.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어느새 저녁 11시가 다 되어가자, 현석이 예나를 품에서 놓아주었다.“예나 씨,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난 옆방에 있을 게요.”예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돌아갔다.방으로 돌아간 후, 예나는 베란다 창문을 꼼꼼히 확인하고 화장대로 문 앞으로 막아 두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남천의 목소리가 울렸다.“예나야, 착하지. 베란다 문 열어.”그 목소리는 반복해서 예나의 머릿속에 울렸다.예나는 필사적으로 자기 손바닥을 꼬집으며 목소리와 대적했다.하지만 명
예나는 자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빨간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셋 셀 테니 대답해. 아니면 당장 강현석을 위험하게 만들 거야.”남천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귀걸이를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버튼만 누르면 예나를 조종할 수 있었다.아무리 저항하고 애써도 결국 예나는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손에 든 칼이 현석을 향해도 예나는 자신을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현석 씨는 내가 공격해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거야.’“하나.”“둘.”“셋.”“…….”“그래, 알겠어.”예나가 고개를 들어 남천을 바라보았다.“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남천이 침대를 힐긋 보며 말했다.“올라가서 옷을 벗어.”예나는 말없이 몸을 돌려 침대 옆으로 걸어가 불을 끄려고 했다.그러나 남천이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옷이나 벗어.”예나는 고개를 떨구고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이어 하얀색 민소매와 정교한 쇄골 라인, 흰 피부가 드러났다.남천이 군침을 꿀꺽 삼켰다.몇 달 전, 법적으로 부부 사이임에도 남천은 예나의 몸에 손 한번 대지 못했다.그날 밤 예나가 약을 탄 술을 먹여 정신을 잃은 남천은 관계를 맺은 걸 기억하지 못하는 줄만 알았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게 예나의 계획이었다.‘교활한 여자, 지금까지 날 속였어!’예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남천에게 걸어가며 말했다.“이러면 돼요?”남천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체향을 맡았다.지하실에 몇 달 갇혀 지내면서 수많은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지만…… 모두 예나만큼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얼굴에 흉터가 생겼다고 해도 그녀의 아름다움에는 손색이 없었다.예나의 말 한마디, 움직임 하나하나가 남천에게는 치명타였다.예나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오늘 밤만 같이 지내면 나와 현석 씨를 놔줄 거예요?”“네 목숨은 살려주지. 하지만 강현석은…….”남천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나와 강현석의 원한은 20년이 넘었어. 네 말 한마디로 없어질 원한이 아니라고.”예나가 입술을 매만지며 말했다.
“적응할 시간이라도 줘야 죠.”눈물을 그렁그렁 단 예나가 말했다.“어떻게 내가 아무 감정 없이 당신이랑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겠어요.”예나의 눈물은 남천의 마음을 한순간에 누그러뜨렸다.교활한 여인이라는 걸 알면서도 남천은 마음이 약해졌다.“그럼 천천히 적응하도록 해.”그는 손가락으로 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남천은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어둠 속에 갇혀 낮과 밤이 없는 나날들, 그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여전히 머리를 쓰다듬던 남천이 물었다.“어때, 마음이 좀 편해졌어?”예나는 가녀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점차 느슨하게 몸을 풀고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남천은 신발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가 예나의 몸 위로 향했다. 그의 손길은 더없이 부드러웠다.“바로 그때!”예나는 베개 아래에 숨겨둔 칼을 꺼내 남천의 목에 꽂았다.뜨겁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단숨에 공기마저 살벌해졌다.남천이 표정을 굳혔다가 다시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잘 지내보려고 달래고 애써도 이 여자는 내 목숨만 노리고 있어.’칼이 꽂힌 목에서 고통이 찾아오고 피가 주르륵 흘러 흰 침대 시트를 물들였다.예나는 두 손으로 칼을 꼭 쥔 채로 몸을 바로 세웠다.옷도 챙겨 입지 않은 상태로 예나가 서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예상 밖의 일이지?”남천이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쉽게 넘어갈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그는 귀걸이를 손에 쥐고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예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령을 내려도 난 당신을 죽일 만큼의 시간은 버틸 수 있어. 그럼, 우리 둘 다 죽는 거야.”남천의 손이 멈춰 섰다.‘정말 지독한 여자야. 새삼 놀랍지도 않네.’예나가 손을 뻗어 귀걸이를 낚아채자, 남천이 웃음을 터뜨렸다.“이 귀걸이가 마음에 드는 거야? 나한테 몇 백 개는 있는데.”남천이 나른하게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댔다. 목에 칼이 꽂혀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천이 말을 이었다.“내 모든 부하한테도 있어. 날 죽이고 부하들의
예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 욕실로 걸어간 예나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확인했다. 하얀 얼굴에 번진 피, 흰 나시에 새빨간 핏자국, 빨개진 눈시울, 헝클어진 머리, 지옥에서 도망친 귀신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을까.’그녀는 고개를 숙여 찬물로 세수하며 정신을 차렸다.다시 안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침대 시트를 교체하고, 귀걸이를 손에 쥔 채로 한참동안 살폈다.예전의 귀걸이와 거의 똑같았다. 안의 칩도 특별한 게 없어 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대에 몸을 기대앉은 예나는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다.‘아무리 악마 같은 강남천이라고 해도 오늘 밤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야.’‘하지만 오늘 다치게 했으니 반드시 복수하러 올 거야.’그녀는 몸을 일으켜 옆방으로 걸어갔다.이미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라, 오직 작은 무드 등만이 방안을 비췄다.어두운 곳에서 현실 감각을 잃은 예나는 현석의 방문 앞에서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문을 열었다.그녀가 들어오자 현석은 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민첩한 현석은 베개 아래로 손을 넣어 무기를 잡았지만, 방안을 찾은 게 예나라는 걸 알아차리고 다시 무기를 내려놓았다.“예나 씨, 무슨 일이에요?”현석이 예나에게 걸어가 그녀를 꼭 껴안았고 그녀의 체온에 깜짝 놀라 물었다.“왜 이렇게 몸이 차가워요?”예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품속을 파고들었다.식은땀을 흘리고, 찬물로 세수까지 했으니 아무리 따뜻한 침대 안에 있어도 도저히 몸이 녹지 않았다.그녀는 현석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그러나 현석은 의식적으로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예나가 그의 얼굴을 감싸 쥐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현석 씨, 하고 싶어요.”그 말에 현석은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현석은 예나의 허리를 감싸 쥐고 다시 키스를 시작했다. 한참이나 이어진 키스에 두 사람 모두 숨을 헐떡이며 침대 위로 누웠다.현석이 예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예나 씨, 지금이라도 그만둘까요? 예나 씨
예나의 몸과 마음은 서로 다른 자아가 생긴 것처럼 몸은 현석을 밀어냈으나 마음은 그를 원했다.그날 밤, 달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방에서 둘은 긴 밤을 보냈다.다시 눈을 떴을 때, 예나는 피곤함에 찌들었다.“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내가 해줄 게요.”현석의 물음에도 예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어젯밤에 내가 이상한 행동한 거 없죠?”현석이 예나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정말 대단해요, 예나 씨는 칩 시스템을 이겼어요.”“정말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렸다.“그럼 앞으로 계속 함께 자도 돼요?”예나의 물음에 현석은 입을 꾹 다물었다.비록 어젯밤 예나가 시스템의 명령 불복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은 너무 힘들어 보였다. 현석은 예나가 힘든 게 싫었다.“함께 자도 돼요. 하지만…….”현석이 조금 뜸을 들였다.“얌전히 잠만 자는 거예요. 다시 날 유혹하지 마요.”예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현석의 품에 안겼다.현석과 함께 지내면 남천이 그녀를 넘볼 기회가 사라질 테니 예나는 그 하나로 만족했다.아침을 먹고 나서 예나는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벌써 보름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았어요. 오늘엔 현장 좀 나가볼 게요.”명훈이 매일 보고를 올렸음에도 예나는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요.”현석이 차 키를 가지고 나가 차를 문 앞으로 운전해 왔다.그리고 직접 좌 수석 문을 열어 예나를 앉히고 친절히 안전벨트까지 해주었다.리조트와 별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불과 10분 만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보름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공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기초시설이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었다.예나와 현석이 임시 사무실로 걸어가며 말했다.“고지훈 부장은 어디 있나요?”사람들은 성남시 최고 미녀인 도예나를 모를 리가 없었다.안내데스크의 직원이 다가와 그녀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고지훈 부장님과 문해준 팀장님은 안에서 회의 중이십니다.
명훈의 눈에 분노가 가득 찼다.어느 높으신 분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불 보듯 뻔했다. 또 장서영의 짓이었다.명훈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왜 고모는 사사건건 프로젝트에 태클을 거는 거야.’‘고지훈 부장과 문해준 팀장을 따돌리고, 우리 프로젝트로 넘어온 두 매니저를 매수하고, 오늘은 강제적으로 공사 중단까지 시키려고 하다니.’‘석유 화학의 승리는 따다 놓은 당상이어도 고모는 태클을 멈추지 않았어.’명훈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뒤로 돌아섰다.그러다가 휴게실에서 나오는 두 사람과 마주친 명훈은 깜짝 놀랐다.“누나, 누나가 여긴 어떻게?”예나가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오지 않았다면 누가 우리 프로젝트의 물을 흐리게 하는지도 모를 뻔 했잖아.”예나가 시선을 몸집이 우람진 사람에게로 돌렸다. 날카로운 시선에 아까까지 당당하던 남자는 금세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외면했다.예나의 시선을 외면하며 뒤로 시선을 돌리자 더 날카로운 시선과 마주쳤다.현석이 입을 열었다.“오 부장, 여기서 다 만나네요.”몸집이 우람진 그 사람은 건설 부문의 오민석 부장이었다. 이 구역 건설은 모두 오민석의 소관이었는데 현석과는 구면이었다.현석과 눈이 마주친 순간, 오민석은 큰일이 났다는 걸 직감했다.현석 얼굴의 흉터는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차가운 시선과 타고난 카리스마는 보는 이에게 오싹한 기분이 들게 했다.“강, 강현석 대표님.”오민석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손을 내밀었다.“여기에서 만나 뵙다니 정말 반가워요.”그러나 현석은 여전히 차가운 태도였다.“이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죠?”오민석이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강씨 그룹 대표님이 왜 이런 작은 프로젝트에 관심을 돌리시는 겁니까?”“기자 좀 섭외해 올까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게 어때요,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오민석 부장님이 뇌물이라도 받은 줄 알겠어요.”오민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성남시에서 강씨 그룹의 권력은 하늘을 찔렀다. 겨우 건설부 부장인 오민석은 감히
예나가 명훈을 향해 덤덤하게 말했다.“무슨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말하라고 했잖아. 왜 지금까지 알려주지 않았어?”명훈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이깟 작은 일로 누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몸은 괜찮아요?”“난 괜찮아.”예나가 입꼬리를 올렸다.“심사 기간이 12날 정도 남았네.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려, 명훈아.”명훈이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외부 사람들의 눈엔 도예나와 이지원의 경쟁으로 보일진 몰라도, 사실은 장명훈과 이지원의 경쟁이었다.만약 이 경쟁에서 진다면, 명훈과 장서원은 가문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일 생기면 바로 연락 줘.”현석이 입을 열었다.“나는 매형이잖아.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해.”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매형.”그동안 예나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명훈은 예나의 뒤로 요리하고, 빨래를 하고, 바닥을 닦는 현석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정말 믿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니 인터넷에 도는 이혼설은 정말 루머에 불과했다.현석은 오늘 새로 받은 문서를 모두 차 트렁크에 넣고 예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바람을 쐬고 나니 예나는 기분이 퍽 좋아졌다.현석이 서재에서 업무를 처리하자, 예나는 책 하나를 꺼내 들고 거실에서 뒹굴거렸다.겨우 몇 줄 읽었을 뿐인데 머릿속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예나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녀는 천천히 힘겹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갔다.남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귀걸이는 얼마든지 새로 만들 수 있었다.“예나야, 내 목에 칼을 꽂은 대가로 강현석의 목에도 칼을 꽂아줘.”남천의 목소리가 예나의 귓가에 울렸다.예나는 최후의 발악으로 두 손을 묶은 채 지령을 거부했다.“나한테 하던 대로 강현석한테 해. 빨리 가, 예나야 빨리.”“예나야, 강현석의 목에 칼만 꽂으면 더 이상 아프지 않아.”그녀는 뒤통수가 너무 아파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예나의 자아는 또 둘로 나누어져 한쪽은 지령을 완수하려고 애쓰고 다른 한쪽은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