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훈이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았다.아이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이어 표정이 굳어버렸다.“에이 설마, 네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 게 아닐까?”“나도 내 추측이 틀리길 바라고 있어.”제훈이 입을 열었다.“하지만 엄마한테 이상 증세가 나타난 걸 사실이잖아.”세훈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세훈 역시 컴퓨터를 꺼내 들고 이것저것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마이크로칩 피해자는 반드시 지령에 복종해야 하며…… 마치 아무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움직인다.”“지령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데…… 조사에 따르면 30%의 피해자들은 지령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 가족을 살해했다.”“마이크로칩 피해자들을 구출하고 칩 프로세스를 파괴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린다.”세훈은 기사를 빠르게 읽어 내려가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제훈아, 그럴 리가 없어.”제훈이 덤덤하게 말했다.“내일, 엄마 보러 가자.”아이들이 이러한 결정을 내릴 때까지 예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요즘 들어 잠이 부쩍 많아진 예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바로 안방에서 잠을 청했다. 전에 지내던 안방 창문은 아직 재설치를 못했고 예나는 그 옆방에서 지냈다.그러나 그날 밤, 현석은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그는 계속 다크웹에서 마이크로칩에 대해 아는 사람을 수소문했고, 마이크로칩에 대해 본인이 모르는 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날은 점점 추워지고, 아침 8시가 되어서야 날은 밝아졌다.예나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식탁 위에는 따끈따끈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예나가 잠에서 깨난 걸 알아차린 현석이 아침을 다시 데워준 것 같았다.아침을 두둑하게 먹고 예나는 현석이 일하고 있는 서재 문을 빼꼼 열었다.칼로 깎은 듯한 옆선, 신이 빚은 듯한 이목구비, 예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하지만 정신을 차린 예나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어젯밤 잘 잤어요?”현석은 고개도 들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그럭저럭요.”그리고 말 한마
예나가 피식 웃으며 명훈에게 물었다.“그러는 넌, 어떻게 생각해?”“이지원은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에요. 장씨 그룹이 정말 이지원에게 넘어간다면 3년 안으로 망해버릴 거예요.”예나는 솔직한 명훈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그걸 아는 녀석이 왜 후계자 경쟁을 포기했어?”그 말에 명훈은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그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어쨌든 우리가 경쟁에서 이긴다면 가장 좋은 결과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괜찮아.”예나가 웃으며 말했다.“리조트 프로젝트는 대부분 네가 담당하고 있고 프로젝트를 끝내면 너는 확실하게 큰 성장을 했을 거야. 이건 앞으로 네가 장씨 그룹에서 새로운 입지를 다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고.”명훈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누나, 나한테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고맙긴, 할아버지한테 고맙다고 해야 지.”예나가 말했다.“할아버지는 널 무척 아끼셔. 그래서 나도 경쟁에 참여시킨 거야. 더 이상 할아버지 실망시키지 마렴.”“그럴게요.”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한참 명훈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예나는 또 온몸이 나른해졌다.영상 통화를 종료하고 그녀는 소파에 몸을 기대 까무룩 잠에 들었다.그렇게 한참이나 지났을까 그녀는 점심 준비를 하려고 눈을 떴다.막 몸을 일으키려는데 별장 입구에 인기척이 느껴졌다.“경호원!”별장 옆으로 작은 별채가 하나 더 있었는데 두 경호원은 주로 그곳에 머물렀다. 엘리자의 여 도우미도 그곳에 있었다.예나의 목소리에 경호원이 허겁지겁 정원으로 달려왔다.“네, 사모님.”“저쪽에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세요.”예나가 풀숲을 가리켰다.경호원은 허리춤의 총을 꺼내 들고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움직이지 말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확실히 사람이 숨어있다고 판단한 경호원이 외쳤다.풀숲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다가 갑자기 두 아이가 뛰쳐나왔다.예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평소에 제일 얌전하던 두 녀석이 여길 왜?’세훈이와 제훈이는 풀이 죽은 채로 고개를 푹
“엄마는 오늘 저녁 회의가 있어서 너희들이랑 함께 있을 시간이 없어.”현석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릴 때부터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세훈은 현석의 명령에 반항할 마음도 가지지 못했다.그러나 제훈은 고개를 쳐들고 한껏 고집을 피웠다.“엄마랑 밥만 먹고 갈게요. 저녁만 먹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간다고요!”현석이 인상을 찌푸리자 예나가 현석에게 말했다.“밥만 먹이고 돌려보내요.”예나는 미소를 지은 채로 아이들과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그럼 거실에서 놀고 있어, 엄마가 밥해줄 게.”그녀가 앞치마를 두르고 채소를 다듬기 시작했다. 주방에는 부족한 식재료가 없었다. 대체로 현석이 예나가 잠든 틈을 타 식재료를 가득 채워왔다.예나가 요리하는 동안, 현석이 두 아이에게 몰래 다가가 물었다.“왜 너희 둘만 온 거야? 세윤이랑 수아는?”세훈이 얌전히 대답했다.“둘은 저희가 여기 온 줄 몰라요.”“왔는데 왜 몰래 숨어있었던 거야?”현석이 덤덤하게 물었다. 날카로운 눈빛이 제훈을 향했다.그는 자기 큰아들인 세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하지만 제훈이와 함께 지낸 건 겨우 한 달 남짓한 시간이었으므로 제훈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다.‘둘째 녀석이 세훈이 못지않게 똑똑하고 눈치가 빨라 가끔 참 놀라울 때가 많지.’제훈은 현석의 눈길에도 꿋꿋이 대답했다.“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엄마가 바쁘니까 형이랑 몰래 엄마만 보고 가려고 했어요.”대답을 들은 현석은 더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며칠 뒤면 방학인데 계획은 있어?”제훈이 입을 열었다.“아빠가 보낸 프로세스 해킹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그것부터 해결하려고요.”“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데이터베이스와 연결이 되면 제일 먼저 아빠한테 연락하고.”제훈이 현석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아빠는 데이터베이스에 많은 관심이 있나 보군요.”“당연하지.”현석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내가 해외에서 목숨이 위험할 때 그 부하가 아빠를 지켜줬어. 그러니
현석이 인상을 찌푸렸다.“세훈아, 제훈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세훈이 깜짝 놀라 물었다.“아직 밥을 먹지도 않았는데, 다 먹고 가면 안 돼요?”현석이 예나를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예나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었다. 차가운 그녀의 표정은 마치 기계 사람 같았다.제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제훈은 세훈을 잡아당기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먼저 엄마랑 위층으로 올라가세요. 저와 형은, 마저 먹고 돌아갈 게요.”현석은 별말 없이 예나를 안아 들고 방으로 올라가 문을 잠갔다.“제훈아, 어떻게 된 일이야?”세훈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렸다.“정말 네 추측대로 그런 거야?”제훈의 표정이 심각했다.“엄마의 표정 변화를 보면 인터넷에서 읽은 마이크로칩의 피해자 서술과 똑같아. 시스템이 지령을 내린 후의 변화가 맞는 것 같아.”세훈은 고개를 푹 숙였다.“그럼 우린 이제 어떡해?”“엄마가 이사를 한 건 어쩌면 가장 최선인 방법일지도 몰라.”제훈이 주먹을 꼭 쥐며 말했다.“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빠를 도와 하루라도 빨리 프로세스를 해킹하는 거야.”제훈은 눈앞의 한 상 차림을 보고도 입맛이 없어졌다.“형, 우리 이만 돌아가자.”세훈은 2층의 닫긴 안방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제훈과 함께 집을 나섰다.2층의 예나는 현석의 품에 안겨 현석이 반복적으로 불러주는 이름을 들으며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얼마 뒤 그녀의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아까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진 않았죠?”“아무 일도 없었어요. 내가 바로 방으로 데려왔어요.”현석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예나를 위로했다.“점점 지령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은데요.”“이젠 작동 원리를 알 수 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예나가 입꼬리를 작게 올렸다.“대단하죠, 나?”현석이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우리 예나 씨가 세상에서 제일 대견해요.”두 사람이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경호원은 두 아이가 이미 강씨 별장으로 돌아갔다고 전했
예나는 핸드폰을 들고 서재로 돌아가 노트북을 켰다.장씨 그룹의 기사는 이미 내려 갔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있었다.이익률을 높이려고 장서영은 많은 근로자들을 밤샘 근무시켰고 최대 16시간 동안 일했으며 대부분 근로자가 현장에서 실신하고, 심각한 자는 쇼크사로 목숨이 위태로웠으며 어떤 사람은 중환자실에 들어갔다.예나는 빠르게 기사를 확인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명훈아, 우리 현장은 반드시 2교대로 진행되어야 해. 매 교대는 8시간 근무이고, 내일 네가 직접 확인해 봐.”그녀의 말을 명훈은 열심히 적어갔다.전화를 끊은 후에도 예나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이대로 라면 석유 화학 프로젝트는 한 달 안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낼 수 있었다.리조트 프로젝트도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으나 출발선 자체가 달랐으니 열심히 달려 비등비등한 수준은 유지해도 추월하기는 어려웠다.그리고 평가 기간도 어느새 절반이 훌쩍 지나고 열흘만 지나면 종료가 되었다.안방 창문은 이미 새로 달았고, 미닫이문으로 변경된 후로는 한 번도 잠금을 푼 적이 없었다.그녀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창문이 훌쩍 열리고 검은색 그림자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예나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벌떡 일어나 도망가려고 했다.“거기 서.”차갑고 사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예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두 다리를 움직이고 싶었으나 몸은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렇게 그녀는 문을 몇 걸음 앞두고 멈춰 버렸다.검은색 그림자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예나를 향해 걸어왔다.“도예나, 많이 놀랐지? 내가 여기 나타날 줄 감히 예상이나 했겠어?”예나의 차가운 시선이 눈앞의 사람에게 떨어졌다.“강남천, 여긴 성남시야. 현석 씨가 있는 곳에서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안방에 홀연히 나타난 사람은 바로 강남천이었다.온통 검은색으로 몸을 가린 남천은 검은색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얼굴을 반쯤 가렸다.그러나 날카로운 입술 선만은 선명하게 보였고 그 입술은
남천은 침대 옆에 누워 한 손으로 예나의 턱을 잡았다.지령을 완성한 예나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남천의 손을 탁 쳐냈다.그러나 남천이 다른 손으로 예나의 입을 막아버렸다.“강현석을 불러올 생각 마. 나도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겠으니까.”그리고 남천은 손에 쥔 귀걸이를 그녀의 앞으로 흔들었다.“강현석을 죽이라고 명령한다면 당신은 그것마저 복종할 수밖에 없을 거야. 한번 시도해 볼래?”“미친놈!”예나는 참지 못하고 욕을 읊조렸다.“당신 몸에 마이크로칩이 심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알아?”남천이 예나의 얼굴을 그러쥐며 말했다.“더구나 그 칩이 내 회사에서 만든 거라니, 믿을 수가 없었어. 정말이지 난 그 지하실에서 그렇게 죽어가려고 했었는데 당신이 나한테 새로운 희망을 준 거야.”예나는 뒤로 슬금슬금 도망가며 남천의 손길을 피했다.남천의 손길이 닿을 때면 예나는 속이 메슥거렸다.‘현석 씨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왜 이렇게 비뚤어진 생각을 하는 건지.’“도예나, 나랑 함께 떠나자.”남천이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내가 잘해 줄게. 평생 사랑해 줄게. 그러니까 나랑 성남시를 떠나.”“꿈 깨!”예나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 물건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남천이 귀걸이를 손에 쥐며 말했다.“세 날 동안 고민할 시간을 줄게. 만약 나와 함께 떠나지 않는다면 난 지령을 내릴 거야.”“당신…….”예나가 입을 열려는데 안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예나 씨, 들어가도 될까요?”현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천의 얼굴에 조롱과 질투의 표정이 여렸다.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내가 이곳을 찾아온 걸 강현석에게 알린다면 당신 손으로 직접 강현석을 죽이라고 명령할 거야.”그 말을 끝으로 남천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예나는 빠르게 걸어가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닫아봤 자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알지만 예나는 커튼까지 꽁꽁 닫아버렸다.현석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잠이 든 줄
예나는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미소를 지은 채 현석과 주방으로 향했다.예나가 감자를 씻으며 덤덤하게 물었다.“현석 씨, 강남천은 요즘 말썽 안 피워요?”현석이 고개를 숙인 채로 채소를 썰며 대답했다.“요즘 지하실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어요.”처음 갇힌 몇 달 동안 남천은 각종 이상한 요구를 했고, 그 틈을 타 도망을 가려고 했으나 매번 다시 잡혀 왔다.탈출할 수 없다고 마음을 비운 요즘은 오히려 조용했다.감자를 씻던 예나의 손이 뚝 멈췄다.‘강남천이 탈출한 걸 현석 씨는 아직 모르고 있어.’그녀는 고개를 숙여 천천히 말했다.“현석 씨, 나 강남천하고 통화하고 싶어요.”현석이 하던 일을 멈추고 예나에게 시선을 돌렸다.“예나 씨, 강남천은 너무 위험한 사람이에요. 예나 씨가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칩 데이터베이스에 대해 알아보려고 아무리 함정을 파도 남천은 입을 꾹 다물었다.‘현석 씨는 내가 강남천과 연락하는 게 싫은가 봐.’“여보, 뭘 걱정하는 거예요?”예나가 손을 닦고 그의 목에 두 팔을 걸었다.“난 현석 씨 한 사람만을 사랑해요. 날 믿지 못하는 거예요? 강남천에게 연락하려는 건 칩에 대해 알아볼 게 있어서 그래요. 혹시 말실수로 중요한 단서를 흘릴 수도 있잖아요.”현석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알겠어요. 레이한테 연락할 게요.”“급하지 않아요. 저녁 먹고 연락해요.”예나는 감자를 마저 씻었고 현석은 미소를 터뜨렸다. 두 사람은 함께 저녁 요리를 완성했다.감자반, 제육볶음, 미역국, 밥 두 그릇. 간단한 집 밥이었지만 너무 행복한 저녁 식사였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현석이 설거지를 했다.그리고 전화를 꺼내든 현석이 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위협적이고 상위 포식자 같은 위압감이 있었다.그런데 이런 남자가 방금 주방에서 설거지했을 거라고 누가 예상을 하는가?예나는 턱을 괴고 현석을 보며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남천이 없어졌다는 걸 알아버린다면 평화롭던 둘의 생활에 또 금이 생길 것이다
예나가 걸어가 현석의 등을 토닥였고 현석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입술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현석이 입을 열었다.“모니터는 이미 망가졌을 수도 있어. 해커를 찾아서 내용을 복구하고 강남천을 다시 잡아와.”전화를 끊은 후에도 현석은 화를 삼키지 못했다.“괜찮아요.”예나가 현석을 다독였다.“강남천같은 사람이 어떻게 얌전히 지하실에 갇혀 지내겠어요. 갇힌 그날부터 어떻게 탈주할지 고민했겠죠.”현석이 차가운 예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예나 씨가 강남천과 연락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면 난 강남천이 사라졌다는 걸 꿈에도 모를 뻔했어요.”“현석 씨, 지금 자책할 시간이 없어요. 강남천이 어디로 숨었는지 알아봐야 죠.”현석이 굳은 얼굴로 잠시 고민에 빠졌다.“성남시로 왔을 거예요.”그는 점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남천은 자신을 원망했으니, 자신에게 복수하러 왔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현석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남천이 예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현석은 예나를 품에 안았다.“오늘부터 단 1초도 내 옆에서 사라지지 마요.”마이크로칩이 심어진 예나는 너무 위험했다.“현석 씨, 걱정하지 마요.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예나가 쓴웃음을 지었다.“날 찾아오면 현석 씨가 있을 텐데 강남천은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지 않을 거예요.”두 사람은 꼭 껴안았으나 서로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다.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어느새 저녁 11시가 다 되어가자, 현석이 예나를 품에서 놓아주었다.“예나 씨,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난 옆방에 있을 게요.”예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돌아갔다.방으로 돌아간 후, 예나는 베란다 창문을 꼼꼼히 확인하고 화장대로 문 앞으로 막아 두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남천의 목소리가 울렸다.“예나야, 착하지. 베란다 문 열어.”그 목소리는 반복해서 예나의 머릿속에 울렸다.예나는 필사적으로 자기 손바닥을 꼬집으며 목소리와 대적했다.하지만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