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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0화

거센 바람이 불어와 창밖으로 무서운 소리를 냈다.

예나는 눈을 내리깔고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스킨십을 할 때 머릿속에서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처음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목소리는 나를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게 했죠. 그리고 내가 현석 씨한테 다가가면 그 목소리는 나를 당신한테서 멀어지라고 명령했어요. 그러다가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그런 말을 내뱉게 했죠.”

예나는 어지러워진 자기 앞머리를 매만졌다.

“그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었어요. 복종하지 않으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거든요. 그런 고통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예나 씨…… 예나 씨.”

현석은 무슨 말을 건네면 좋을지 몰라, 있는 힘껏 예나를 품에 안고 자신의 체온을 나눴다.

그녀의 고통을 체험해 보지는 못했으나 고통스러워하는 예나를 보며 현석은 심장이 찢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자기 심장을 향해 몇 번이고 도살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칩이 나한테 심어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아프면 아팠지, 예나 씨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게 더 힘들어.’

“현석 씨, 칩은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서 떨어지기를 바랄지도 몰라요.”

예나가 고개를 들어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이 나를 사랑할수록 칩은 당신을 괴롭힐거 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현석이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

“아직 그 어떤 기술도 사람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요.”

“사람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그 어떤 물질을 뿜어낸다고 해요. 칩이 그 물질을 인식하고 명령을 내릴지도 모르죠.”

예나가 쓴 웃음을 지었다.

“AI 기술을 무시하지 마요. 특히 암시장에서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생각보다 더 무섭게 발전했을 거 에요.”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착취하는 악독한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칩을 제거해 줄게요. 예나 씨, 너무 걱정 마요. 다 방법이 있을 거 에요.”

현석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도 방법이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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