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흉터가 두 개나 생겼는데 왜 이렇게 예쁜 거야!’“할아버지, 아버지, 고모, 오랜만이에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려 모두에게 인사를 올렸다.명훈이 입을 열었다.“누나.”“사생아인 나도 가문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올려야 한다는 걸 아는데 사촌 동생은 왜 이렇게 예의가 없을까요?”예나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고모가 지금껏 애지중지 보살핀 지원이는 아직도 이렇게 예의가 없는데, 저처럼 가문 밖에서 컸다면 정말 망나니로 자라지 않았을까 싶네요.”장서원이 한 방 먹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다니.’‘이 재수 없는 계집애가 문밖에서 한참이나 엿듣고 있었던 거야!’“고모 너무 화내지 마요. 아무리 철이 없어도 지원이는 내 사촌 동생이니까 제가 앞으로 많이 가르칠 게요.”“누가 너한테 가르쳐 달라고 했어? 사생아 주제에 누가 누굴 가르쳐?”지원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지원아, 언니라고 불러야 지.”장대휘가 차갑게 말했다.“이씨 가문과 장씨 가문의 자손이라는 네가 이렇게 예의 없게 굴어서는 안 돼!”지원은 너무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예의 없는 게 아니라, 도예나한테 인사하기 싫었던 거라고!’하지만 장대휘가 이렇게 말을 꺼낸 이상 지원은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마지못해 예나를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다.예나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더니 입을 열었다.“그럼 지금부터 무슨 일인지 말해볼까요?”지원은 금세 전투력을 되찾았다.“언니, 리조트 투자 금액을 어디서 얻었는지 말해보세요.”예나가 지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그걸 내가 왜 너한테 해석해야 하는 거지?”“지원에게 해석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께 해석해야 하는 거 란다.”장서영이 말했다.“리조트 프로젝트의 4,000억 투자 금액에서 2,000억만 회사 투자 금액인데 남은 2,000억은 어떻게 된 거니?”예나가 눈을 반짝였다.‘오늘 오라고 한 게 이 일 때문이었어?’프로젝트가 정식 운영이 되지 않아 투자 금액을 보고
예나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그녀의 미소는 한껏 여유로워 보였다.안정을 되찾은 예나가 입을 열었다.“2,000억은 제가 유치한 투자 금액이에요. 석유 화학 프로젝트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겨우 말 한마디로 뭘 증명할 수 있는데요?”지원이 그녀를 몰아붙였다.“2,000억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에요. 그 금액을 한꺼번에 내놓을 수 있는 회사가 성남시에는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어느 회사에서 투자 받았는지 딱 대요.”2,000억은 정말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비록 주가가 몇 천 억씩 오간다고 해도, 누가 정말 현찰로 그 금액을 갖고 있겠는가?“리조트 프로젝트의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억울할 뻔했어요.”예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문서 한 장을 꺼내 장대휘에게 건넸다.“이건 투자 계약서에요. 아직 보고를 올리지 않았는데 할아버지께서 먼저 확인해 보실래요?”장대휘가 문서를 받아 들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투자자가 강씨 그룹?”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리조트 프로젝트의 가장 큰 투자자는 강씨 그룹이 맞아요. 초기 투자를 제외하고 후기에도 계속해서 투자할 계획이에요.”“그럴 리가 없잖아!”지원이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언니와 강현석은 이혼 했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하겠어요?”예나가 차가운 눈길로 지원을 노려보았다.“누가 이혼했다고 그래?”“기사가 그렇게 떴잖아요. 곧 이혼할 예정이라고!”지원이 막말을 퍼부어 댔다.“강현석은 밖에 여자도 있는데 언니한테 2,000억을 투자할 것 같아요? 이 계약서는 반드시 위조일 거예요. 할아버지를 속이려고…….”장대휘가 계약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이 문서는 위조가 아니란다. 2,000억은 강씨 그룹에서 투자한 게 맞아. 장서영, 앞으로 그 어떤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나한테 허튼 보고를 올리지 말 거라.”장대휘는 정말 예나가 횡령했다고 믿어 장서원을 시켜 예나를 당장 오라고 명령했었다.하지만 자신이 한 행동이 섣불렀다고 생각한 장대휘가 온화
장서영은 장대휘와 장서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고개를 떨구었다.“예나야, 미안하다.”“괜찮아요. 이 일은 이렇게 덮는 거로 하죠.”예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저는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서 이만 가볼 게요.”그녀는 몸을 돌려 서재를 벗어났다.장서원이 빠르게 그녀를 쫓았다.“예나야, 밥이라도 먹고 가거라.”“밥 먹고 와서 아직도 더부룩한 걸요.”예나가 미소를 지었다.“아버지, 배웅하지 않으셔도 돼요. 먼저 가볼 게요.”장서원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비록 딸을 되찾았지만, 만날 기회가 적어 예나를 바라보는 장서원의 얼굴에는 매번 미련이 뚝뚝 흘렀다.“예나야, 잠시만 기다려줘.”장서원이 그녀를 붙잡았다.“어제 너를 생각하며 선물을 좀 샀는데 지금 가져가거라.”예나는 괜찮다고 마다할 생각이었지만 장서원은 빠르게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큰 쇼핑백 여러 개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이건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산 원피스고, 이건 액세서리야. 네 엄마가 좋아하던 에메랄드 제품인데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그는 스무 살 딸한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몰라 그 나이 때대부분 여자아이가 좋아할 법한 스타일로 준비했다.어느새 나이가 지긋한 장서원의 얼굴을 보며 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장서원이 그녀를 향한 마음은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또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미련과 여한이 담겨있었다.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 찰나 익숙한 고통이 찾아왔다.이 느낌, 또 시작될 것 같았다.예나가 빠르게 별장을 벗어났다.장서원은 여러 쇼핑백을 들고 도저히 그녀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별장 밖을 나선 예나는 큰 숨을 헐떡였다.조종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어쩌면 조종을 벗어날 다른 방법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자신을 향한 사랑을 거절하고 차갑게 대한다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모두 뿌리치고 살 수 있을까?’“예나 씨,
별장 입구로 막 도착하는데 집 앞을 서성이는 택배 기사가 보였다.현석은 주소를 확인하고 사인을 했다. 그리고 예나와 나란히 집안으로 들어섰다.상자를 열자, 포장재로 겹겹이 쌓인 작은 상자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는 작은 검은색 귀걸이가 담겨있었다.현석은 귀걸이를 분리했고 안에는 복잡한 노즐이 보였다.예나가 손톱보다 작은 칩을 건네받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현석 씨, 한 시간만 줘요. 내가 한번 알아볼 게요.”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는 전문 해커였으니 이 칩을 연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예나가 칩을 들고 서재로 돌아가 익숙하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나의 표정이 굳어졌다.‘이 칩, 상상보다 더 복잡하잖아.’한 시간 후 예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서재를 나왔다.현석이 하던 일을 멈추고 예나를 바라보았다.“어때요? 뭐가 나왔어요?”“그냥 통신기예요. 지령 수출 프로세스밖에 없어요. 칩의 원본 프로그램은 따로 없고요.”예나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원본 프로그램은 예측한 대로 체내에서 분비하는 호르몬과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기본 지령 외에 강남천이 새로운 프로세스를 추가했어요. 이 귀걸이로 본인이 원한대로 나를 조종할 수 있었던 거죠.”현석은 눈앞이 깜깜해졌다.예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도 귀걸이가 우리한테 넘어왔으니 강남천이 날 조종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현석이 그녀를 품에 안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지령 프로세스로 원본 코드를 얻어낼 수 있어요?”예나가 입술을 매만졌다.“얻어낸다고 해도 별 의미 없을 거예요. 원본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야 프로세스를 중지할 수 있거든요.”생물 회사는 법적으로 금지된 일을 하는 회사였고, 회사의 데이터베이스는 또 아마 아주 비밀스러운 곳에 꼭꼭 감춰졌을 것이다. 원본 데이터를 찾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더구나 강남천이 솔직하게 데이터베이스를 알려줄 리가 없었다.“예나 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었어요
현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엄마는 요즘 너무 바빠. 아, 제훈아 조금 있다가 너한테 뭘 좀 보낼 테니 한번 봐줘.”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빠.”전화를 끊고 현석은 예나가 분석한 프로세스를 제훈에게 몰래 보냈다.제훈이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아들의 해킹 기술을 믿었다.예나는 주로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다면 제훈은 해킹 기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강씨 별장.제훈은 이메일을 전해 받았다.세훈이 다가가 물었다.“아빠가 뭘 보낸 거야?”제훈이 이메일을 눌러 확인하더니 인상을 찌푸렸다.“프로세스 코드야, 나한테 풀어 달라고 하는 것 같아.”그리고 아이는 방으로 올라가 익숙하게 침대 아래서 노트북을 꺼내 자리를 잡았다.세훈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제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타닥타닥 키보드 소리와 함께 화면은 코드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제훈의 표정도 점점 더 심각해졌다.30분 후, 제훈의 손이 멈췄다.“무슨 프로세스야? 성공했어?”세훈의 물음에 제훈은 고개를 저었다.“서버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코드 전송이 힘들어.”잠시 뜸을 들인 제훈이 말을 이었다.“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건 사람의 뇌를 조종하는 마이크로칩 프로세스야.”“아빠는 왜 이런 걸 너한테 부탁한 걸까?”세훈도 인상을 쓰며 물었다.“H 지역에서 돌아온 후로 다시 그 지역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잖아.”제훈은 한참이나 고민에 빠졌다.무언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지만, 아직 확신하기는 일렀다.‘어딘가 이상해.’‘하지만 이 추측이 틀렸다면 왜 엄마는 이사하고, 아빠는 왜 이 프로세스 해킹을 부탁하는 걸까?’“아빠한테 물어봐야 겠어.”제훈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현석은 아직도 저녁 준비로 분주했다. 간단한 집밥이라고 해도 정성을 쏟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마지막으로 달걀 후라이를 하는 데 전화가 진동했다.“아빠, 해킹은 좀 어려울 것 같아요.”제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건 마이크로칩 프로세스 잖아요. 아빠가 왜
세훈이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았다.아이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이어 표정이 굳어버렸다.“에이 설마, 네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 게 아닐까?”“나도 내 추측이 틀리길 바라고 있어.”제훈이 입을 열었다.“하지만 엄마한테 이상 증세가 나타난 걸 사실이잖아.”세훈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세훈 역시 컴퓨터를 꺼내 들고 이것저것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마이크로칩 피해자는 반드시 지령에 복종해야 하며…… 마치 아무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움직인다.”“지령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데…… 조사에 따르면 30%의 피해자들은 지령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 가족을 살해했다.”“마이크로칩 피해자들을 구출하고 칩 프로세스를 파괴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린다.”세훈은 기사를 빠르게 읽어 내려가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제훈아, 그럴 리가 없어.”제훈이 덤덤하게 말했다.“내일, 엄마 보러 가자.”아이들이 이러한 결정을 내릴 때까지 예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요즘 들어 잠이 부쩍 많아진 예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바로 안방에서 잠을 청했다. 전에 지내던 안방 창문은 아직 재설치를 못했고 예나는 그 옆방에서 지냈다.그러나 그날 밤, 현석은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그는 계속 다크웹에서 마이크로칩에 대해 아는 사람을 수소문했고, 마이크로칩에 대해 본인이 모르는 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날은 점점 추워지고, 아침 8시가 되어서야 날은 밝아졌다.예나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식탁 위에는 따끈따끈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예나가 잠에서 깨난 걸 알아차린 현석이 아침을 다시 데워준 것 같았다.아침을 두둑하게 먹고 예나는 현석이 일하고 있는 서재 문을 빼꼼 열었다.칼로 깎은 듯한 옆선, 신이 빚은 듯한 이목구비, 예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하지만 정신을 차린 예나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어젯밤 잘 잤어요?”현석은 고개도 들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그럭저럭요.”그리고 말 한마
예나가 피식 웃으며 명훈에게 물었다.“그러는 넌, 어떻게 생각해?”“이지원은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에요. 장씨 그룹이 정말 이지원에게 넘어간다면 3년 안으로 망해버릴 거예요.”예나는 솔직한 명훈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그걸 아는 녀석이 왜 후계자 경쟁을 포기했어?”그 말에 명훈은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그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어쨌든 우리가 경쟁에서 이긴다면 가장 좋은 결과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괜찮아.”예나가 웃으며 말했다.“리조트 프로젝트는 대부분 네가 담당하고 있고 프로젝트를 끝내면 너는 확실하게 큰 성장을 했을 거야. 이건 앞으로 네가 장씨 그룹에서 새로운 입지를 다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고.”명훈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누나, 나한테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고맙긴, 할아버지한테 고맙다고 해야 지.”예나가 말했다.“할아버지는 널 무척 아끼셔. 그래서 나도 경쟁에 참여시킨 거야. 더 이상 할아버지 실망시키지 마렴.”“그럴게요.”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한참 명훈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예나는 또 온몸이 나른해졌다.영상 통화를 종료하고 그녀는 소파에 몸을 기대 까무룩 잠에 들었다.그렇게 한참이나 지났을까 그녀는 점심 준비를 하려고 눈을 떴다.막 몸을 일으키려는데 별장 입구에 인기척이 느껴졌다.“경호원!”별장 옆으로 작은 별채가 하나 더 있었는데 두 경호원은 주로 그곳에 머물렀다. 엘리자의 여 도우미도 그곳에 있었다.예나의 목소리에 경호원이 허겁지겁 정원으로 달려왔다.“네, 사모님.”“저쪽에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세요.”예나가 풀숲을 가리켰다.경호원은 허리춤의 총을 꺼내 들고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움직이지 말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확실히 사람이 숨어있다고 판단한 경호원이 외쳤다.풀숲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다가 갑자기 두 아이가 뛰쳐나왔다.예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평소에 제일 얌전하던 두 녀석이 여길 왜?’세훈이와 제훈이는 풀이 죽은 채로 고개를 푹
“엄마는 오늘 저녁 회의가 있어서 너희들이랑 함께 있을 시간이 없어.”현석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릴 때부터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세훈은 현석의 명령에 반항할 마음도 가지지 못했다.그러나 제훈은 고개를 쳐들고 한껏 고집을 피웠다.“엄마랑 밥만 먹고 갈게요. 저녁만 먹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간다고요!”현석이 인상을 찌푸리자 예나가 현석에게 말했다.“밥만 먹이고 돌려보내요.”예나는 미소를 지은 채로 아이들과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그럼 거실에서 놀고 있어, 엄마가 밥해줄 게.”그녀가 앞치마를 두르고 채소를 다듬기 시작했다. 주방에는 부족한 식재료가 없었다. 대체로 현석이 예나가 잠든 틈을 타 식재료를 가득 채워왔다.예나가 요리하는 동안, 현석이 두 아이에게 몰래 다가가 물었다.“왜 너희 둘만 온 거야? 세윤이랑 수아는?”세훈이 얌전히 대답했다.“둘은 저희가 여기 온 줄 몰라요.”“왔는데 왜 몰래 숨어있었던 거야?”현석이 덤덤하게 물었다. 날카로운 눈빛이 제훈을 향했다.그는 자기 큰아들인 세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하지만 제훈이와 함께 지낸 건 겨우 한 달 남짓한 시간이었으므로 제훈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다.‘둘째 녀석이 세훈이 못지않게 똑똑하고 눈치가 빨라 가끔 참 놀라울 때가 많지.’제훈은 현석의 눈길에도 꿋꿋이 대답했다.“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엄마가 바쁘니까 형이랑 몰래 엄마만 보고 가려고 했어요.”대답을 들은 현석은 더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며칠 뒤면 방학인데 계획은 있어?”제훈이 입을 열었다.“아빠가 보낸 프로세스 해킹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그것부터 해결하려고요.”“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데이터베이스와 연결이 되면 제일 먼저 아빠한테 연락하고.”제훈이 현석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아빠는 데이터베이스에 많은 관심이 있나 보군요.”“당연하지.”현석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내가 해외에서 목숨이 위험할 때 그 부하가 아빠를 지켜줬어. 그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