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의 차가운 눈빛이 여 도우미의 얼굴로 향했다.“솔직하게 대답해. 대장로가 구매한 마이크로칩 회사 공급업자는 누구야?”“모릅니다. 제가 어떻게 그걸 알겠어요?”여 도우미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대장로의 군사, 식량, 석유, 칩…… 공급업자만 해도 서너 곳은 된다고 했습니다. 독점을 막기 위해서라고 그랬어요.”현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과연 대장로다운 생각이야.’서너 군데 공급업자를 둔다면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겨도 빠른 대처가 가능했다.현석이 차갑게 말했다.“오늘 칩 공급업자 이름을 대지 못한다면 네 몸에 이게 심어지게 될 거야.”현석의 손에 작은 칩 하나가 쥐여 있었다.여 도우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녀한테도 너무 익숙한 물건이었다. 엘리자가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싶을 때면 이 칩을 그 사람에게 주사했었다.이 칩을 주사한 사람은 엘리자가 얼마나 과분한 요구를 말해도 순순히 복종했다.그리고 엘리자는 그 사람을 조종하다가 질리면 마지막 지령을 자살하라고 했다.‘내 몸에 이 칩이 심어진다면 죽는 것보다 못한 생을 살게 될 거야.’“아니요!”여 도우미가 몸을 잔뜩 움츠리며 말했다.“말할 게요.”그녀는 머리를 잔뜩 싸매고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세로…… 세로 생물 회사? 아가씨가 마지막으로 저한테 세로 생물 회사로 심부름을 시키신 적이 있어요.”‘세로!’현석이 인상을 팍 썼다.세로는 강남천이 다크웹에서의 코드 네임이자, 강남천 마이크로칩 회사의 이름이기도 했다.역시 칩의 공급업자는 강남천이었다.현석이 자신 앞에 무릎 꿇은 여 도우미를 향해 말했다.“만약 네가 한 말에 거짓말이 한 줄이라도 있다면 네 끝은 결코 아름답지 못할 거야.”“이 여자를 지하실에 가둬!”“네!”두 경호원이 눈물범벅이 된 여 도우미를 끌고 갔다.다른 한편, 2층에 있는 예나.예나는 침대에 걸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요즘 들어 책만 읽으면 잠이 솔솔 왔다.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얼굴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그
창문이 부서지고 안방에는 찬 바람이 쌩쌩 불어왔다.예나는 현석의 품 안을 파고들며 말했다.“너무 추워요.”현석은 바로 그녀를 안아 들고 옆방으로 옮겼다.예나를 내려놓은 후 현석은 조금 어리둥절해졌다.“예나 씨…….”이번에는 감정 기복이 심하지도, 그의 품에서 발버둥을 치지도 않았다.“현석 씨, 방금 있었던 일을 기억해요.”예나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남자의 음성이 들려왔고 그 사람이 창문을 깨라고 지시했어요. 전에는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였는데 그건 아마도 시스템 자체 음성이었나 봐요. 그런데 이번의 목소리는 어딘가 익숙했어요.”현석이 인상을 찌푸렸다.수많은 마이크로칩 기사를 읽으면서 현석은 이러한 상황을 예측했었다.기계적인 음성은 시스템 자체 기능이었다면, 남자의 음성은 누군가 지령을 내렸다는 걸 의미했다.‘엘리자도 죽었는데 누가 지령을 내리는 거지.’웅웅-그때, 현석의 전화가 진동했다. 수신자는 레이.“형님, 강남천이 전화 통화를 요청합니다.”현석의 표정이 굳었다. 생각에 빠진 예나를 바라보며 현석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화 바꿔.”“브라더, 내 전화 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남천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네가 뭘 하고 있는지 어디 한번 맞혀볼까? 음…… 아마 도예나랑 같이 있겠지?”현석이 표정을 굳혔다.“할 말없으면 전화 끊을게.”“뭐가 그렇게 급해?”남천이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내 말 계속 들어봐. 아까 도예나 씨가 베란다 창문을 깨부쉈지?”현석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예나도 시선을 돌려왔다.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예나 역시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그녀는 입술을 매만지며 현석의 옆으로 다가가 핸드폰에 귀를 가져다 댔다.“브라더, 나를 햇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에 가둔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줄 알았어?”남천이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숨이 붙어있는 한 너희 둘이 무사한 날은 없을 거야. 도예나, 지금 내 목소리 들리지? 잘 들어. 네가 나한테 한 만큼 백배
현석이 낮은 목소리로 예나를 달랬다.“예나 씨, 두려워하지 마요. 배후가 강남천이라는 걸 알아냈으니 이제 해결할 일만 남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줘요.”그리고 그는 다시 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반 시간 후, 레이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형님, 찾았습니다. 작은 귀걸이였는데 수신기 기능이 있었어요.”“당장 나한테 보내.”현석이 차갑게 말했다.그러나 아무리 빠른 국제 운송이라고 해도 최소 두 날은 걸렸다.예나는 두 날 동안 질문 밖을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그건 현석도 마찬가지였다.예나가 소파에 앉아 책을 보거나 티비를 보면, 현석은 주방에서 요리를 했다.서투른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예나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요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현석이 그녀를 위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비록 맛은 평범해도 예나는 현석이 직접 만든 요리를 먹는 게 좋았다.“장씨 그룹이 보기 드문 유전을 발견하여…….”티비에 장씨 그룹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자 예나가 고개를 들었다.“성남시 최초로 유전이 발견되었는데, 채굴할 수 있는 석유량은…… 장씨 그룹의 주가가 하룻밤 만에 급상승하고 있습니다.”예나가 인상을 찌푸렸다.평가 기간에 유전을 개발한다면 평가 점수가 높을 게 뻔했다.리조트 프로젝트로 우세를 차지하려면 더 많은 공을 세워야 했다.예성과학기술 회사 일은 현석이 전적으로 맡고 있었으니 예나는 마침 시간이 많이 비었고, 리조트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그때, 예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장서원이 걸어온 전화였는데, 아마 유전 문제로 걱정이 되어 전화가 온 듯싶었다.예나는 고민도 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장대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집에 한 번 들리거라.”예나가 놀라서 되물었다.“네?”“장씨 별장에 오거라.”장대휘가 덤덤하게 말했다.“30분 안으로.”장서원이 바로 전화를 바꿔 들었다.“예나야, 급해 말고 천천히 운전해서 와. 한 시간 늦어도 괜찮으니까.”예나는 무언가 사건이 벌어졌다는 걸 눈치챘다.“네, 바로 갈게요
“예나 씨, 잠깐만 기다려요. 설거지만 끝내고 데려다 줄게요.”현석이 앞치마를 두르고 빠르게 그릇을 씻어냈다.예나는 식탁에 앉아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훤칠한 키와 듬직한 어깨, 길쭉한 다리, 정장 바지를 입은 그의 뒷모습은 정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예나는 군침을 꿀꺽 넘겼다.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그쪽으로 넘어갔다.별장으로 이사하고 두 사람은 각방으로 지냈는데, 행여나 문제라도 생길까 둘은 키스도 하지 못했다. 스킨십은 겨우 포옹에 그쳤다.현석이 고개를 돌려 예나의 시선과 마주치자, 현석 역시 침을 꿀꺽 삼켰다.그는 고개를 다시 휙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표정으로 날 보지 마요.”예나의 얼굴이 새빨개졌고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현석 씨도 얼마나 힘들겠어, 괜히 건드리지 말아야 지.’현석이 차를 별장 문 앞까지 운전해 왔고 예나가 좌 수석에 올라탔다.“요즘 계속 나랑 별장에 갇혀 지내느라 회사 업무가 많이 밀렸을 텐데 강씨 그룹에 다녀와요. 그리고 한 시간 뒤에 장씨 별장에서 만나요.”차에서 내린 예나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사실 현석은 예나와 함께 장씨 별장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그녀의 말에 현석은 마음을 접었다.“그래요, 한 시간 후에 다시 올 게요.”예나가 별장 안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현석은 여전히 별장 주위에 머물렀다. 노트북을 꺼낸 현석은 그 자리에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장씨 별장에서.장대휘는 서재 책상에 앉아있었는데 화가 잔뜩 난 모습이었다.장서영은 맞은편에 앉아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정말 이기려고 아득바득하는 걸 좀 보세요. 지금껏 가문 밖에서 자란 아이가 공평 경쟁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다행히 이 일은 우리 장씨 가문 내부 사람들만 알고 있으니 망정이지 세상에 알려지면 무슨 창피를 당하겠어요.”“고모, 아직 누가 벌인 일인지 밝혀지지 않았는데 너무 앞서 나가시는 거 아니에요?”장명훈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증거도 없
‘얼굴에 흉터가 두 개나 생겼는데 왜 이렇게 예쁜 거야!’“할아버지, 아버지, 고모, 오랜만이에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려 모두에게 인사를 올렸다.명훈이 입을 열었다.“누나.”“사생아인 나도 가문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올려야 한다는 걸 아는데 사촌 동생은 왜 이렇게 예의가 없을까요?”예나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고모가 지금껏 애지중지 보살핀 지원이는 아직도 이렇게 예의가 없는데, 저처럼 가문 밖에서 컸다면 정말 망나니로 자라지 않았을까 싶네요.”장서원이 한 방 먹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다니.’‘이 재수 없는 계집애가 문밖에서 한참이나 엿듣고 있었던 거야!’“고모 너무 화내지 마요. 아무리 철이 없어도 지원이는 내 사촌 동생이니까 제가 앞으로 많이 가르칠 게요.”“누가 너한테 가르쳐 달라고 했어? 사생아 주제에 누가 누굴 가르쳐?”지원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지원아, 언니라고 불러야 지.”장대휘가 차갑게 말했다.“이씨 가문과 장씨 가문의 자손이라는 네가 이렇게 예의 없게 굴어서는 안 돼!”지원은 너무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예의 없는 게 아니라, 도예나한테 인사하기 싫었던 거라고!’하지만 장대휘가 이렇게 말을 꺼낸 이상 지원은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마지못해 예나를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다.예나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더니 입을 열었다.“그럼 지금부터 무슨 일인지 말해볼까요?”지원은 금세 전투력을 되찾았다.“언니, 리조트 투자 금액을 어디서 얻었는지 말해보세요.”예나가 지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그걸 내가 왜 너한테 해석해야 하는 거지?”“지원에게 해석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께 해석해야 하는 거 란다.”장서영이 말했다.“리조트 프로젝트의 4,000억 투자 금액에서 2,000억만 회사 투자 금액인데 남은 2,000억은 어떻게 된 거니?”예나가 눈을 반짝였다.‘오늘 오라고 한 게 이 일 때문이었어?’프로젝트가 정식 운영이 되지 않아 투자 금액을 보고
예나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그녀의 미소는 한껏 여유로워 보였다.안정을 되찾은 예나가 입을 열었다.“2,000억은 제가 유치한 투자 금액이에요. 석유 화학 프로젝트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겨우 말 한마디로 뭘 증명할 수 있는데요?”지원이 그녀를 몰아붙였다.“2,000억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에요. 그 금액을 한꺼번에 내놓을 수 있는 회사가 성남시에는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어느 회사에서 투자 받았는지 딱 대요.”2,000억은 정말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비록 주가가 몇 천 억씩 오간다고 해도, 누가 정말 현찰로 그 금액을 갖고 있겠는가?“리조트 프로젝트의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억울할 뻔했어요.”예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문서 한 장을 꺼내 장대휘에게 건넸다.“이건 투자 계약서에요. 아직 보고를 올리지 않았는데 할아버지께서 먼저 확인해 보실래요?”장대휘가 문서를 받아 들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투자자가 강씨 그룹?”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리조트 프로젝트의 가장 큰 투자자는 강씨 그룹이 맞아요. 초기 투자를 제외하고 후기에도 계속해서 투자할 계획이에요.”“그럴 리가 없잖아!”지원이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언니와 강현석은 이혼 했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하겠어요?”예나가 차가운 눈길로 지원을 노려보았다.“누가 이혼했다고 그래?”“기사가 그렇게 떴잖아요. 곧 이혼할 예정이라고!”지원이 막말을 퍼부어 댔다.“강현석은 밖에 여자도 있는데 언니한테 2,000억을 투자할 것 같아요? 이 계약서는 반드시 위조일 거예요. 할아버지를 속이려고…….”장대휘가 계약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이 문서는 위조가 아니란다. 2,000억은 강씨 그룹에서 투자한 게 맞아. 장서영, 앞으로 그 어떤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나한테 허튼 보고를 올리지 말 거라.”장대휘는 정말 예나가 횡령했다고 믿어 장서원을 시켜 예나를 당장 오라고 명령했었다.하지만 자신이 한 행동이 섣불렀다고 생각한 장대휘가 온화
장서영은 장대휘와 장서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고개를 떨구었다.“예나야, 미안하다.”“괜찮아요. 이 일은 이렇게 덮는 거로 하죠.”예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저는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서 이만 가볼 게요.”그녀는 몸을 돌려 서재를 벗어났다.장서원이 빠르게 그녀를 쫓았다.“예나야, 밥이라도 먹고 가거라.”“밥 먹고 와서 아직도 더부룩한 걸요.”예나가 미소를 지었다.“아버지, 배웅하지 않으셔도 돼요. 먼저 가볼 게요.”장서원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비록 딸을 되찾았지만, 만날 기회가 적어 예나를 바라보는 장서원의 얼굴에는 매번 미련이 뚝뚝 흘렀다.“예나야, 잠시만 기다려줘.”장서원이 그녀를 붙잡았다.“어제 너를 생각하며 선물을 좀 샀는데 지금 가져가거라.”예나는 괜찮다고 마다할 생각이었지만 장서원은 빠르게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큰 쇼핑백 여러 개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이건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산 원피스고, 이건 액세서리야. 네 엄마가 좋아하던 에메랄드 제품인데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그는 스무 살 딸한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몰라 그 나이 때대부분 여자아이가 좋아할 법한 스타일로 준비했다.어느새 나이가 지긋한 장서원의 얼굴을 보며 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장서원이 그녀를 향한 마음은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또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미련과 여한이 담겨있었다.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 찰나 익숙한 고통이 찾아왔다.이 느낌, 또 시작될 것 같았다.예나가 빠르게 별장을 벗어났다.장서원은 여러 쇼핑백을 들고 도저히 그녀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별장 밖을 나선 예나는 큰 숨을 헐떡였다.조종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어쩌면 조종을 벗어날 다른 방법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자신을 향한 사랑을 거절하고 차갑게 대한다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모두 뿌리치고 살 수 있을까?’“예나 씨,
별장 입구로 막 도착하는데 집 앞을 서성이는 택배 기사가 보였다.현석은 주소를 확인하고 사인을 했다. 그리고 예나와 나란히 집안으로 들어섰다.상자를 열자, 포장재로 겹겹이 쌓인 작은 상자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는 작은 검은색 귀걸이가 담겨있었다.현석은 귀걸이를 분리했고 안에는 복잡한 노즐이 보였다.예나가 손톱보다 작은 칩을 건네받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현석 씨, 한 시간만 줘요. 내가 한번 알아볼 게요.”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는 전문 해커였으니 이 칩을 연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예나가 칩을 들고 서재로 돌아가 익숙하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나의 표정이 굳어졌다.‘이 칩, 상상보다 더 복잡하잖아.’한 시간 후 예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서재를 나왔다.현석이 하던 일을 멈추고 예나를 바라보았다.“어때요? 뭐가 나왔어요?”“그냥 통신기예요. 지령 수출 프로세스밖에 없어요. 칩의 원본 프로그램은 따로 없고요.”예나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원본 프로그램은 예측한 대로 체내에서 분비하는 호르몬과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기본 지령 외에 강남천이 새로운 프로세스를 추가했어요. 이 귀걸이로 본인이 원한대로 나를 조종할 수 있었던 거죠.”현석은 눈앞이 깜깜해졌다.예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도 귀걸이가 우리한테 넘어왔으니 강남천이 날 조종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현석이 그녀를 품에 안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지령 프로세스로 원본 코드를 얻어낼 수 있어요?”예나가 입술을 매만졌다.“얻어낸다고 해도 별 의미 없을 거예요. 원본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야 프로세스를 중지할 수 있거든요.”생물 회사는 법적으로 금지된 일을 하는 회사였고, 회사의 데이터베이스는 또 아마 아주 비밀스러운 곳에 꼭꼭 감춰졌을 것이다. 원본 데이터를 찾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더구나 강남천이 솔직하게 데이터베이스를 알려줄 리가 없었다.“예나 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