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은 찼지만, 히터를 튼 방안은 따뜻했다.도예나는 서재 카펫 위의 강현석의 품에 안겨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현석 씨, 전에 강씨 그룹도 리조트를 하지 않았던 가요? 장씨 그룹의 리조트 사업에 부족한 점이 있는지 봐줄래요?”현석이 진지하게 답했다.“리조트 계획서를 본다면 전반적으로 이익 창출 공간을 커요. 하지만 석유 화학 프로젝트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더 기발한 점이 있어야 겠죠. 그 기발한 점을 찾는 게 이번 경쟁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현석의 섬섬옥수 같은 손이 도화지 위로 선을 그었다.“이곳을 세 구역을 나눠보는 건 어때요? 첫 번째 구역에는 관광지, 호텔, 민속촌을 한곳으로 모으고, 두 번째 구역은 해상 레저를 개발하는 거죠. 해안선 면적을 이용해서 리조트 면적을 확대하는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 구역에는 수상 클럽을 만드는 거죠. 수상 공연과 같은 고급 관광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시장 시각으로 봤을 때, 이 부분에서 적어도 절반 이상의 수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예나는 귀를 기울여 들었다.그녀의 주 전공은 프로그래밍이었고, 부동산 계획은 다른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아니나 다를까, 현석이 수정해 준 리조트 계획서는 기능이 더욱 완선화 되고, 셀링 포인트가 두드러졌다. 예산 수익도 배로 늘어났다.두 사람은 서재에서 거의 한 시간 동안 리조트 보고서에 관해 토론했고, 드디어 대체적인 방안이 생겼다.“고마워요, 여보!”예나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당신이 돕지 않았다면 난 며칠 동안 머리를 앓았을 거예요.”현석은 그녀를 품으로 고쳐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아요. 프로젝트 초안도 나오지 않을 수 있어요. 강씨 그룹 부동산 프로젝트의 인원을 절반 줄게요. 그 사람을 두 팀으로 나누어 저녁 타임에도 인원을 분배한다면 한 달 시간을 아낀 것과 다름이 없어요.”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강씨 그룹 사람을 나한테 넘기면 강씨 그룹은 어떡하고요?”“인원을 넘기면 내
“아무것도 아니야.”현석이 덤덤하게 말했다.“물 마시고 싶다며? 빨리 내려가서 마셔.”“네.”세윤은 몸을 돌려 한걸음 옮기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유치원 친구가 어느 날 엄마랑 아빠랑 다투는 걸 봤는데 아빠가 엄마를 때렸 대요. 친구가 너무 무서워서 유치원 선생님께 말했어요. 아빠, 엄마 괴롭히면 안 돼요. 저는 유치원 선생님 말고 바로 경찰 아저씨를 찾아갈 거에요.”“…….”예나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세윤아, 엄마랑 아빠랑 왜 다투겠어?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허튼 생각 하지 마. 자, 엄마랑 물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그리고 물 한 컵 들고 방으로 돌아가면 새벽에 목이 말라도 아래층으로 내려올 필요가 없어.”예나는 세윤에게 물을 따라주고 방안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안방으로 돌아왔다.그리고 그녀는 방문을 잠갔다.“또 당신이 깜빡하고 문을 잠그지 않은 거 잖아요. 다음에도 이러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현석이 그녀에게 걸어와 품에 꼭 안으며 말했다.“걱정 마요. 절대 방심하지 않을 게요.”그의 뜨거운 체온이 피부에 닿자 예나는 얼굴이 붉어졌다.“아이가 방까지 쳐들어왔는데 왜 아직도…….”현석은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줬다.그의 키스에 예나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 것 같았다.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예나는 천천히 현석의 리드에 몸을 맡겼다.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머리 깊숙한 곳에서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밀어내!”“그 사람을 밀어내!”다급한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머릿속에 울렸다.“아!”예나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예나 씨, 왜 그래요?”현석은 바로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그녀의 양 볼에 키스하며 물었다.“아니에요…… 아, 아파요!”그녀의 오른쪽 얼굴, 뒤통수가 너무 아파졌는데 마치 머리가 조각날 것만 같았다.현석의 거친 손가락이 그녀 오른쪽 얼굴의 상처를 부드럽게 쓸었다.“만지지 마요, 당장 꺼져요!”예나가 갑자기 두 눈을 떴다. 방금까지 나른하던 눈동자에 또 온기가 사라졌다.
눈이 또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솜덩이 같은 눈이 베란다 창가에도 내렸다.도예나가 눈을 좋아한다는 걸 강현석은 알고 있었다. 며칠 전 큰 눈이 내리고, 그녀는 아이처럼 눈을 한 움큼 잡아 방으로 돌아왔었다.하지만 지금의 예나는 창밖의 눈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눈은 점점 거세게 내려 어느새 베란다에 두껍게 쌓였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 지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아마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는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그때, 베란다에 서 있던 여자가 갑자기 몸을 돌려 말했다.“현석 씨, 눈이 내려요.”그녀의 말에 마음을 졸이던 현석도 드디어 안심되었다.그는 베란다로 걸어가 여자를 품에 안았다.“눈이 내리면 날은 점점 더 추워져요. 내일은 그냥 집에서 푹 쉬는 게 어때요? 아랫사람들에 업무를 지시하면 되잖아요.”예나는 그에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그래도 어떤 일은 내가 직접 가서 해결해야 하는 걸요.”그녀는 하품하며 손목시계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세상에, 벌써 새벽 두 시라니!”현석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방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늦은 시간이었어요. 한참 웃고 떠들었으니 이젠 잘 시간이에요.”그는 예나와 함께 침대로 돌아갔고 그녀에게 이불을 세심하게 덮어주고 나서야 무드등을 껐다.예나는 남자의 품에 안겨 잠을 청했지만, 따끔거리는 상처로부터 자신이 또 한 시간가량의 기억을 잃었다는 걸 눈치챘다.이 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그는 현석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왜 매번 오른쪽 얼굴이 아픈 걸까…….’‘엘리자가 내 상처에 무슨 짓을 한 걸까.’‘내일 회사로 돌아가고 설민준에게 연락을 해 봐야겠어. 엘리자의 잔여 세력을 찾아 원인을 물어봐 야지.’그날 밤, 두 사람 모두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눈이 내린 탓에, 아침은 일찍 밝아왔다. 예나가 눈을 떴을 때, 현석은 이미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 하품했다.“너무 돌려요.”“그러면 계속 자요.”현석이 그녀의 이
눈 때문에 현장 작업은 오늘 하루 쉬기로 했고, 근로자들은 하루 휴가를 받았다.그러나 저 멀리 해안선 부근에 십여 명의 근로자들이 여전히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도예나가 살풋 인상을 쓰며 물었다.“지금 저긴 뭘 하는 거에요?”고지훈이 대답했다.“제가 아까 가서 물어봤는데 가드레일을 작업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도면에는 가드레일 공사가 없는데요.”문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도면에서는 저 부분을 선박 운영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가드레일이 들어서면 이 프로젝트에 큰 영향을 끼칠 듯싶습니다.”예나는 외투로 몸을 꽁꽁 싸매고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바닥 위에는 각종 가드레일 작업 도구들이 놓여 있었는데, 얼핏 보아 규모가 300~400미터는 되어 보였다. 작업은 3분의 2 정도의 해안선을 가려버렸다.만약 가드레일이 완공되어 절반가량의 해안선을 가려버린다면 이 리조트의 특별함도 사라지는 것이었다.예나가 입을 열기 전 장명훈이 먼저 차갑게 말했다.“누가 지시한 겁니까?”작업 반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겨우 40살 남짓해 보이는 살집이 있는 남성이었다. 담배를 입에 지그시 문 그 사람은 가드레일 나사를 틀며 대답했다.“장씨 그룹의 구역이니, 당연히 장씨 그룹 사람이 보내온 거겠죠. 아니면 저희가 왜 이 날씨에 꿋꿋이 하고 있겠습니까?”예나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 가드레일의 완공 시간은 언제 인가요?”“오늘 내로 완공입니다.”담배를 입에 문 남자가 여유작작한 태도로 보였다.“장씨 그룹은 정말 대단한 가문이에요. 제시한 금액이 시장 가격의 10배가 넘거든요.”명훈이 주먹 쥔 손에 힘을 주었다.“이게 다 고모가 벌인 일일 거예요. 해안선을 막아서 리조트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게 하려고!”고지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석유 화학 프로젝트는 가만히 있어도 이기는데 대표님은 왜 이런 일을 지시한 걸까요?”“장 대표가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걸 몰랐어요?”문해준이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경쟁에서 이겨보겠다고 지금까지 얼마나
반장은 쇠 파이프를 들고 예나를 향해 돌진했다.명훈은 반장이 무슨 짓을 벌일지 생각도 하기 전에 몸이 먼저 튀어 나가 예나의 앞을 막아섰다.반장은 대수롭지 않게 두 손을 뻗어 명훈을 밀어냈다.겨우 20살 남짓한 마른 소년은 그의 손길에 밀려나 하마터면 바닥 위로 넘어질 뻔했다.예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바로 손을 뻗어 반장의 한쪽 손목을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어깨 너머로 넘어뜨렸다.저들의 반장이 바닥 위로 고꾸라져 있는 모습에 열 몇 명의 근로자들이 그곳으로 몰려왔다.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경찰서에서 며칠 콩밥을 드시고 싶으신 거예요?”근로자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그들이 경찰서에 갇혀 며칠 내내 일을 하지 못한다면 가족이 떠안게 될 손실이 적지 않았다.“오늘 반나절 동안 일하신 금액은 장씨 그룹에서 정산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예나가 입을 열었다.“오후에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가드레일 철수 작업을 진행해 주시 길 바랍니다. 정산 금액은 오전 금액과 동일합니다.”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근로자들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가드레일 설치 작업은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해체 작업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일이었다.“누나, 너무 대단한데요?”명훈이 조금 어안이 벙벙해서 말했다.“호신술이라도 배운 거예요?”“예전에 조금 배웠는데 놀랄 것 없어.”예나는 가방에서 문서 하나를 꺼냈다.“이건 리조트 프로젝트의 새로운 계획서입니다. 수정할 사항이 있는지 함께 체크해주세요. 수정 사항이 없다면 오늘 내로 회사에 가서 법적 절차를 확인하고 내일부터 정식 공사를 시작할 겁니다.”명훈이 문서를 받아 들자, 고지훈과 문해준도 가까이 다가와 문서를 확인했다.겨우 몇 장을 펼친 그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지는 게 보였다.“예나 씨, 우리 리조트가 정말 이렇게 진행된다면 해외 유명한 관광지의 리조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어쩌면
“환자분은 평소 스트레스가 많고,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해 실신하신 것으로 보입니다.”의사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환자가 깨어난 후, 적어도 3일 동안은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평소 스트레스 받는 일을 줄일 수 있도록 가족이 옆에서 많이 돌봐 주세요.”강현석의 표정이 많이 어두워 보였다.“감사합니다, 그렇게 할 게요.”의사는 마지막으로 링거를 확인하고 병실을 나섰다.현석의 시선이 장명훈을 향했다.“누나가 쓰러지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요?”명훈이 입술을 매만졌다.이는 명훈이 소문으로만 전해 듣던 매형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그는 누나와 매형 사이에 정말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장씨 별장을 한 번도 찾지 않은 것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직접 만나보니 매형은 누나를 끔찍하게 챙겼다. 병원에 들어선 순간부터 현석의 눈길은 예나를 떠나지 않았다.‘장씨 별장으로 오지 않은 이유가 설마 매형 얼굴에도 흉터가 있어서?’명훈은 현석 얼굴의 흉터를 티 나게 살피지는 않았다.“현장에서 불법으로 가드레일을 건설하고 있었고, 누나와 현장 사람 사이에서 작은 다툼이 생겼어요. 그 일은 간단하게 정리가 되긴 했는데 그 이후, 누나가 우리에게 업무를 지시하다가 갑자기 쓰러졌어요.”현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리조트 프로젝트는 명훈 씨가 앞으로 담당하는 게 좋겠어요.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요. 여기 제 연락처예요.”명훈은 조금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매형은 누나가 앞으로 이 일에서 손을 떼기를 바라는 거야.’명훈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현석의 연락처를 전해 받았다.“매형, 누나 잘 챙겨주세요. 저는 이만 회사로 돌아가 계획서를 정리해야 해서요.”‘내가 아니었다면 누나가 후계자 경쟁에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스트레스로 실신하지도 않았을 거야.’‘다 내가 너무 못나서 그래. 아빠도, 누나한테도 걱정만 시키고.’명훈
“예나 씨, 진정해요.”현석이 예나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이거 놔요!”예나는 갑자기 이성을 잃고 현석을 세게 밀어냈다.너무 힘을 준 나머지 링거 바늘이 뽑히고 피가 쏟아져 나와 흰 침대 시트에 튀었다.현석이 바로 그녀 손등의 상처를 확인하려 는데 예나가 손을 숨기며 소리쳤다.“나한테서 멀리 떨어져요! 강현석, 당신! 내 눈앞에 띄지 말라고요!”남자는 더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예나 씨, 링거는 계속 맞아야 해요. 그러면 제가 간호사 불러올 테니 수액이라도 마저 맞을래요?”“수액 더 맞지 않을래요. 당신이 내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게 싫어요!”예나는 신발을 챙겨 신고 병실 밖으로 향했다.병실은 4층에 있었고, 4층에는 야외 테라스가 있었다.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현석은 몸을 돌려 예나를 꼭 껴안았다.“이거 놔요! 날 놔줘요!”예나는 심하게 발버둥 쳤다. 그녀의 힘은 예상을 초월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광기가 담긴 것 같았다.하지만 현석의 힘은 당연히 예나보다 컸고, 두 팔로 예나를 품에 가둔 현석이 소리를 낮춰 말했다.“예나 씨, 이러지 마요. 예나 씨, 내 이름은 강현석이고 당신의 남편이에요.”“당신이 강현석이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날 건드리지 말라고요!”그녀의 감정 기복이 더 심해졌다. 예나는 주먹 쥔 손으로 남자의 가슴을 내리치거나 심지어 남자의 손등을 깨물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현석은 절대로 품에서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현석은 손등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예나의 입안에도 피비린내가 퍼졌다. 그렇게 점차 그녀는 진정이 되었다.“예나 씨, 내 이름은 강현석이고 당신의 남편이에요.”현석은 이 말만 계속 반복했다.부드러운 목소리가 점차 예나의 분노를 잠재웠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품에 안긴 예나의 행동이 점차 누그러 들었다.“예나 씨, 우리 침대에 다시 누울까요?”떠보듯 물어본 말에 예나는 더 이상 반항을 하지 않고 그의 손길을 따라 병실 침대로 돌아갔
“우리 사이에 뭘 고맙다고 말하고 그래요. 편히 누워 있어요. 의사 불러올 게요.”현석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병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멀리 나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간호사를 불렀다.간호사는 새 링거를 들고 왔고, 이번에는 거즈까지 둘러주었다.예나는 두 눈을 감고 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리려고 애썼다.그녀는 자신이 방금 잠에서 깨어난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링거도 잠결에 뺀 게 아닌 것도 알 수 있었다.‘또 뭔가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걸까.’‘이번에는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는데.’‘설마 이젠 내 몸을 점령해버린 걸까.’“예나 씨, 무슨 생각 해요?”현석의 목소리가 예나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별거 아니에요.”예나가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언제 퇴원할 수 있어요?”“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 대요. 푹 쉬면 된다고 하는데, 언제 퇴원할지는 예나 씨가 결정해도 돼요.”현석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적어도 일주일 동안 쉬어야 한다고 하는데, 일주일 동안의 업무는 내가 대신 봐줘도 될까요?”예나는 웃음을 터뜨렸다.“예성과학기술 회사와 도씨 그룹 일은 그렇다고 해도 장씨 그룹 프로젝트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어차피 제가 직접 해야 해요. 그래도 아프니까 현석 씨가 매일 출퇴근 때 바래다주고 데리러 오면 안 돼요?”그녀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현석도 미소를 지었다.방금 광기에 잡힌 모습과 지금 애교 가득한 모습은 정말 다른 사람 같았다.하지만 아무리 다른 모습이라고 해도, 현석에게는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예나였다.현석은 복잡한 마음을 감추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예나 씨 부탁이라면 다 들어줘야 죠. 예나 씨 회사로 같이 출근해달라고 해도 저는 좋아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리며 남자의 품에 안겼다.비록 몸이 불편해도 마음은 평온했다. 기댈 곳이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었다.링거 하나를 다 맞기도 전에 네 아이들이 병실을 찾았다.“엄마, 괜찮아요?”제훈이 먼저 달려와 걱정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