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이 장대휘에게 전해진다면, 오규태와 이서국은 장대휘에게 불려 갈 게 뻔했다.장서영에게 따로 이득을 취한 건 아니었지만 소문이라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장서영 대표, 도예나 씨. 저희는 다른 일이 생겨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오규태와 이서국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장서영이 웃음을 터뜨렸다.“예나야, 그렇게 적대심을 보이지 않아도 된단다. 오규태와 이서국 매니저는 회사의 오랜 직원인데 그런 태도를 보이면 안 되지 않겠느냐?”장서영의 말은 예나가 오규태와 이서국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오랜 직원을 무시한다는 꼬리표까지 달아주는 것이었다.예나가 긴 한숨을 쉬었다.“오규태 매니저님과 이서국 매니저님 모두 정말 훌륭한 분이세요. 저도 그분들 아래서 열심히 배우고 싶었지만, 두 분은 고모와 함께 석유 화학 프로젝트를 더 하시고 싶은 눈치예요. 정말 아쉽게 되었어요.”장서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지금 날 한 방 먹이려는 게냐!’이게 소문으로 퍼진다면 장대휘가 장서영을 한 소리 할 것이다.장서영은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발을 구르며 말했다.“도예나, 한 달 뒤에도 이렇게 잘난 척할 수 있기를 바랄 게.”“저도 마찬가지예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려 까닥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또각또각 걸어갔다.고지훈과 문해준은 예나와 명훈을 엘리베이터까지 바래다주었다. 예나와 명훈이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도 둘은 어깨가 뻐근했다.두 사람은 이지원에게 밉보인 사람들이었다. 이지원이 프로젝트 공비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을 두 사람이 거절했고, 그 후로 둘은 회사에서 떠도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그러다가 이지원이 정말 장씨 그룹의 후계자가 된다면 둘이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비록 이지원의 눈에는 별 볼 일 없는 직위라 할지라도 부장과 팀장 자리도 6~7년 동안 고군분투해서 쟁취한 자리였다.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예나를 선택한 건 마지막 발악이었다.“고지훈 부장님, 도예나 씨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요?”“모르겠
겨울바람은 찼지만, 히터를 튼 방안은 따뜻했다.도예나는 서재 카펫 위의 강현석의 품에 안겨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현석 씨, 전에 강씨 그룹도 리조트를 하지 않았던 가요? 장씨 그룹의 리조트 사업에 부족한 점이 있는지 봐줄래요?”현석이 진지하게 답했다.“리조트 계획서를 본다면 전반적으로 이익 창출 공간을 커요. 하지만 석유 화학 프로젝트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더 기발한 점이 있어야 겠죠. 그 기발한 점을 찾는 게 이번 경쟁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현석의 섬섬옥수 같은 손이 도화지 위로 선을 그었다.“이곳을 세 구역을 나눠보는 건 어때요? 첫 번째 구역에는 관광지, 호텔, 민속촌을 한곳으로 모으고, 두 번째 구역은 해상 레저를 개발하는 거죠. 해안선 면적을 이용해서 리조트 면적을 확대하는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 구역에는 수상 클럽을 만드는 거죠. 수상 공연과 같은 고급 관광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시장 시각으로 봤을 때, 이 부분에서 적어도 절반 이상의 수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예나는 귀를 기울여 들었다.그녀의 주 전공은 프로그래밍이었고, 부동산 계획은 다른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아니나 다를까, 현석이 수정해 준 리조트 계획서는 기능이 더욱 완선화 되고, 셀링 포인트가 두드러졌다. 예산 수익도 배로 늘어났다.두 사람은 서재에서 거의 한 시간 동안 리조트 보고서에 관해 토론했고, 드디어 대체적인 방안이 생겼다.“고마워요, 여보!”예나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당신이 돕지 않았다면 난 며칠 동안 머리를 앓았을 거예요.”현석은 그녀를 품으로 고쳐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아요. 프로젝트 초안도 나오지 않을 수 있어요. 강씨 그룹 부동산 프로젝트의 인원을 절반 줄게요. 그 사람을 두 팀으로 나누어 저녁 타임에도 인원을 분배한다면 한 달 시간을 아낀 것과 다름이 없어요.”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강씨 그룹 사람을 나한테 넘기면 강씨 그룹은 어떡하고요?”“인원을 넘기면 내
“아무것도 아니야.”현석이 덤덤하게 말했다.“물 마시고 싶다며? 빨리 내려가서 마셔.”“네.”세윤은 몸을 돌려 한걸음 옮기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유치원 친구가 어느 날 엄마랑 아빠랑 다투는 걸 봤는데 아빠가 엄마를 때렸 대요. 친구가 너무 무서워서 유치원 선생님께 말했어요. 아빠, 엄마 괴롭히면 안 돼요. 저는 유치원 선생님 말고 바로 경찰 아저씨를 찾아갈 거에요.”“…….”예나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세윤아, 엄마랑 아빠랑 왜 다투겠어?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허튼 생각 하지 마. 자, 엄마랑 물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그리고 물 한 컵 들고 방으로 돌아가면 새벽에 목이 말라도 아래층으로 내려올 필요가 없어.”예나는 세윤에게 물을 따라주고 방안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안방으로 돌아왔다.그리고 그녀는 방문을 잠갔다.“또 당신이 깜빡하고 문을 잠그지 않은 거 잖아요. 다음에도 이러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현석이 그녀에게 걸어와 품에 꼭 안으며 말했다.“걱정 마요. 절대 방심하지 않을 게요.”그의 뜨거운 체온이 피부에 닿자 예나는 얼굴이 붉어졌다.“아이가 방까지 쳐들어왔는데 왜 아직도…….”현석은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줬다.그의 키스에 예나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 것 같았다.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예나는 천천히 현석의 리드에 몸을 맡겼다.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머리 깊숙한 곳에서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밀어내!”“그 사람을 밀어내!”다급한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머릿속에 울렸다.“아!”예나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예나 씨, 왜 그래요?”현석은 바로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그녀의 양 볼에 키스하며 물었다.“아니에요…… 아, 아파요!”그녀의 오른쪽 얼굴, 뒤통수가 너무 아파졌는데 마치 머리가 조각날 것만 같았다.현석의 거친 손가락이 그녀 오른쪽 얼굴의 상처를 부드럽게 쓸었다.“만지지 마요, 당장 꺼져요!”예나가 갑자기 두 눈을 떴다. 방금까지 나른하던 눈동자에 또 온기가 사라졌다.
눈이 또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솜덩이 같은 눈이 베란다 창가에도 내렸다.도예나가 눈을 좋아한다는 걸 강현석은 알고 있었다. 며칠 전 큰 눈이 내리고, 그녀는 아이처럼 눈을 한 움큼 잡아 방으로 돌아왔었다.하지만 지금의 예나는 창밖의 눈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눈은 점점 거세게 내려 어느새 베란다에 두껍게 쌓였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 지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아마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는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그때, 베란다에 서 있던 여자가 갑자기 몸을 돌려 말했다.“현석 씨, 눈이 내려요.”그녀의 말에 마음을 졸이던 현석도 드디어 안심되었다.그는 베란다로 걸어가 여자를 품에 안았다.“눈이 내리면 날은 점점 더 추워져요. 내일은 그냥 집에서 푹 쉬는 게 어때요? 아랫사람들에 업무를 지시하면 되잖아요.”예나는 그에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그래도 어떤 일은 내가 직접 가서 해결해야 하는 걸요.”그녀는 하품하며 손목시계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세상에, 벌써 새벽 두 시라니!”현석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방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늦은 시간이었어요. 한참 웃고 떠들었으니 이젠 잘 시간이에요.”그는 예나와 함께 침대로 돌아갔고 그녀에게 이불을 세심하게 덮어주고 나서야 무드등을 껐다.예나는 남자의 품에 안겨 잠을 청했지만, 따끔거리는 상처로부터 자신이 또 한 시간가량의 기억을 잃었다는 걸 눈치챘다.이 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그는 현석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왜 매번 오른쪽 얼굴이 아픈 걸까…….’‘엘리자가 내 상처에 무슨 짓을 한 걸까.’‘내일 회사로 돌아가고 설민준에게 연락을 해 봐야겠어. 엘리자의 잔여 세력을 찾아 원인을 물어봐 야지.’그날 밤, 두 사람 모두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눈이 내린 탓에, 아침은 일찍 밝아왔다. 예나가 눈을 떴을 때, 현석은 이미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 하품했다.“너무 돌려요.”“그러면 계속 자요.”현석이 그녀의 이
눈 때문에 현장 작업은 오늘 하루 쉬기로 했고, 근로자들은 하루 휴가를 받았다.그러나 저 멀리 해안선 부근에 십여 명의 근로자들이 여전히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도예나가 살풋 인상을 쓰며 물었다.“지금 저긴 뭘 하는 거에요?”고지훈이 대답했다.“제가 아까 가서 물어봤는데 가드레일을 작업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도면에는 가드레일 공사가 없는데요.”문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도면에서는 저 부분을 선박 운영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가드레일이 들어서면 이 프로젝트에 큰 영향을 끼칠 듯싶습니다.”예나는 외투로 몸을 꽁꽁 싸매고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바닥 위에는 각종 가드레일 작업 도구들이 놓여 있었는데, 얼핏 보아 규모가 300~400미터는 되어 보였다. 작업은 3분의 2 정도의 해안선을 가려버렸다.만약 가드레일이 완공되어 절반가량의 해안선을 가려버린다면 이 리조트의 특별함도 사라지는 것이었다.예나가 입을 열기 전 장명훈이 먼저 차갑게 말했다.“누가 지시한 겁니까?”작업 반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겨우 40살 남짓해 보이는 살집이 있는 남성이었다. 담배를 입에 지그시 문 그 사람은 가드레일 나사를 틀며 대답했다.“장씨 그룹의 구역이니, 당연히 장씨 그룹 사람이 보내온 거겠죠. 아니면 저희가 왜 이 날씨에 꿋꿋이 하고 있겠습니까?”예나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 가드레일의 완공 시간은 언제 인가요?”“오늘 내로 완공입니다.”담배를 입에 문 남자가 여유작작한 태도로 보였다.“장씨 그룹은 정말 대단한 가문이에요. 제시한 금액이 시장 가격의 10배가 넘거든요.”명훈이 주먹 쥔 손에 힘을 주었다.“이게 다 고모가 벌인 일일 거예요. 해안선을 막아서 리조트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게 하려고!”고지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석유 화학 프로젝트는 가만히 있어도 이기는데 대표님은 왜 이런 일을 지시한 걸까요?”“장 대표가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걸 몰랐어요?”문해준이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경쟁에서 이겨보겠다고 지금까지 얼마나
반장은 쇠 파이프를 들고 예나를 향해 돌진했다.명훈은 반장이 무슨 짓을 벌일지 생각도 하기 전에 몸이 먼저 튀어 나가 예나의 앞을 막아섰다.반장은 대수롭지 않게 두 손을 뻗어 명훈을 밀어냈다.겨우 20살 남짓한 마른 소년은 그의 손길에 밀려나 하마터면 바닥 위로 넘어질 뻔했다.예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바로 손을 뻗어 반장의 한쪽 손목을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어깨 너머로 넘어뜨렸다.저들의 반장이 바닥 위로 고꾸라져 있는 모습에 열 몇 명의 근로자들이 그곳으로 몰려왔다.예나가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경찰서에서 며칠 콩밥을 드시고 싶으신 거예요?”근로자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그들이 경찰서에 갇혀 며칠 내내 일을 하지 못한다면 가족이 떠안게 될 손실이 적지 않았다.“오늘 반나절 동안 일하신 금액은 장씨 그룹에서 정산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예나가 입을 열었다.“오후에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가드레일 철수 작업을 진행해 주시 길 바랍니다. 정산 금액은 오전 금액과 동일합니다.”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근로자들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가드레일 설치 작업은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해체 작업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일이었다.“누나, 너무 대단한데요?”명훈이 조금 어안이 벙벙해서 말했다.“호신술이라도 배운 거예요?”“예전에 조금 배웠는데 놀랄 것 없어.”예나는 가방에서 문서 하나를 꺼냈다.“이건 리조트 프로젝트의 새로운 계획서입니다. 수정할 사항이 있는지 함께 체크해주세요. 수정 사항이 없다면 오늘 내로 회사에 가서 법적 절차를 확인하고 내일부터 정식 공사를 시작할 겁니다.”명훈이 문서를 받아 들자, 고지훈과 문해준도 가까이 다가와 문서를 확인했다.겨우 몇 장을 펼친 그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지는 게 보였다.“예나 씨, 우리 리조트가 정말 이렇게 진행된다면 해외 유명한 관광지의 리조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어쩌면
“환자분은 평소 스트레스가 많고,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해 실신하신 것으로 보입니다.”의사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환자가 깨어난 후, 적어도 3일 동안은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평소 스트레스 받는 일을 줄일 수 있도록 가족이 옆에서 많이 돌봐 주세요.”강현석의 표정이 많이 어두워 보였다.“감사합니다, 그렇게 할 게요.”의사는 마지막으로 링거를 확인하고 병실을 나섰다.현석의 시선이 장명훈을 향했다.“누나가 쓰러지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요?”명훈이 입술을 매만졌다.이는 명훈이 소문으로만 전해 듣던 매형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그는 누나와 매형 사이에 정말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장씨 별장을 한 번도 찾지 않은 것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직접 만나보니 매형은 누나를 끔찍하게 챙겼다. 병원에 들어선 순간부터 현석의 눈길은 예나를 떠나지 않았다.‘장씨 별장으로 오지 않은 이유가 설마 매형 얼굴에도 흉터가 있어서?’명훈은 현석 얼굴의 흉터를 티 나게 살피지는 않았다.“현장에서 불법으로 가드레일을 건설하고 있었고, 누나와 현장 사람 사이에서 작은 다툼이 생겼어요. 그 일은 간단하게 정리가 되긴 했는데 그 이후, 누나가 우리에게 업무를 지시하다가 갑자기 쓰러졌어요.”현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리조트 프로젝트는 명훈 씨가 앞으로 담당하는 게 좋겠어요.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요. 여기 제 연락처예요.”명훈은 조금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매형은 누나가 앞으로 이 일에서 손을 떼기를 바라는 거야.’명훈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현석의 연락처를 전해 받았다.“매형, 누나 잘 챙겨주세요. 저는 이만 회사로 돌아가 계획서를 정리해야 해서요.”‘내가 아니었다면 누나가 후계자 경쟁에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스트레스로 실신하지도 않았을 거야.’‘다 내가 너무 못나서 그래. 아빠도, 누나한테도 걱정만 시키고.’명훈
“예나 씨, 진정해요.”현석이 예나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이거 놔요!”예나는 갑자기 이성을 잃고 현석을 세게 밀어냈다.너무 힘을 준 나머지 링거 바늘이 뽑히고 피가 쏟아져 나와 흰 침대 시트에 튀었다.현석이 바로 그녀 손등의 상처를 확인하려 는데 예나가 손을 숨기며 소리쳤다.“나한테서 멀리 떨어져요! 강현석, 당신! 내 눈앞에 띄지 말라고요!”남자는 더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예나 씨, 링거는 계속 맞아야 해요. 그러면 제가 간호사 불러올 테니 수액이라도 마저 맞을래요?”“수액 더 맞지 않을래요. 당신이 내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게 싫어요!”예나는 신발을 챙겨 신고 병실 밖으로 향했다.병실은 4층에 있었고, 4층에는 야외 테라스가 있었다.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현석은 몸을 돌려 예나를 꼭 껴안았다.“이거 놔요! 날 놔줘요!”예나는 심하게 발버둥 쳤다. 그녀의 힘은 예상을 초월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광기가 담긴 것 같았다.하지만 현석의 힘은 당연히 예나보다 컸고, 두 팔로 예나를 품에 가둔 현석이 소리를 낮춰 말했다.“예나 씨, 이러지 마요. 예나 씨, 내 이름은 강현석이고 당신의 남편이에요.”“당신이 강현석이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날 건드리지 말라고요!”그녀의 감정 기복이 더 심해졌다. 예나는 주먹 쥔 손으로 남자의 가슴을 내리치거나 심지어 남자의 손등을 깨물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현석은 절대로 품에서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현석은 손등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예나의 입안에도 피비린내가 퍼졌다. 그렇게 점차 그녀는 진정이 되었다.“예나 씨, 내 이름은 강현석이고 당신의 남편이에요.”현석은 이 말만 계속 반복했다.부드러운 목소리가 점차 예나의 분노를 잠재웠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품에 안긴 예나의 행동이 점차 누그러 들었다.“예나 씨, 우리 침대에 다시 누울까요?”떠보듯 물어본 말에 예나는 더 이상 반항을 하지 않고 그의 손길을 따라 병실 침대로 돌아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