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지만 따스한 햇볕이 베란다를 통해 방안을 비춰왔다. 햇빛에 눈이 부실 때가 되어서야 강현석과 도예나는 잠에서 깼다.벌써 오전 여덟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늦잠을 거의 자지 않는 두 사람이었지만 밤이 길었기에 아침잠이 늘었다.예나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려는 데 현석의 긴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예나 씨, 조금 더 자요. 어제 많이 피곤했잖아요.”“당신이 더 피곤해 보이는데요?”예나는 심장이 쿵쿵 울렸다.“오늘 회사도 나가봐야 하는데 이만 놔줘요.”그리고 예나는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그녀의 움직임이 조금만 느렸어도 그녀는 또 현석의 품에 안겨 어젯밤이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예나가 빠르게 화장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현석은 헛웃음을 삼켰다.그 역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창밖의 떨어지는 나뭇잎과 따스한 겨울 햇볕을 구경했다. 남자의 눈은 더 이상 차갑지 않고 부드러운 햇살 같았다.‘급한 일부터 해결하고 예나 씨와 따뜻한 나라로 가자고 해야겠어…….’예나와 현석은 준비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아이들이 이미 등원을 한 시간인지라 집이 아주 조용했다.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현석은 예나를 예성과학기술 회사로 바래다주었다.“저녁 퇴근할 때 전화 줘요. 데리러 올 게요.”예나는 그의 입술에 가볍게 뽀뽀하고 차에서 내렸다.“네, 현석 씨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릴 게요.”그녀는 가방을 고쳐 매고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해외로 돌아온 후 회사를 자주 나가지 않았기에 그녀의 책상 위로 한 달가량의 업무가 쌓여버렸다.그녀의 비서 박정연은 아주 훌륭한 비서로 간단한 일은 이미 그녀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예나의 앞으로 남겨둔 일은 모두 자금 투자가 큰 프로젝트였다. 예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를 하나씩 꺼내 보았다. 대부분 도씨 그룹의 오랜 골칫덩이로 남은 문제들이었다.‘그래서 박정연 씨가 직접 해결하지 않았던 거였군.’그녀는 업무를 손보며 가끔 커피도 한 모금 삼켰다. 시간은 그렇
예나는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자기 아내가 뺨을 맞았는데 남편이 되어서 오히려 사과하러 오다니.’비록 서슬기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었으나, 서슬기가 제 남편의 디딤돌이 된 것에 예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그녀는 왜 서슬기가 이혼하지 않고 버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오늘 점심은 제가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도예나 씨는 아량이 넓으시니 슬기 씨의 잘못은 잘 덮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주현무는 여전히 미소를 얼굴 가득 피운 채로 말했다.하지만 그의 가면 속 어떤 표정이 담겼을 지는 예나는 예상이 갔다.예나를 찾아오기 전, 주현무는 먼저 서씨 가문에 다녀와 예나와 현석이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이현숙의 말에 따르면 둘의 관계는 아주 좋았다.또한 정말 이혼한다고 해도, 예나는 강씨 가문 핏줄의 친모인 만큼 아무리 강씨 가문이라고 해도 절대 그녀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그리고 예나는 장씨 가문의 유일한 아가씨이지 않은가.주씨 가문과 장씨 가문은 현재 협력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예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프로젝트가 장기화될 수도 있었다. 조금만 굽신거린 다면 영원히 돈이 나올 구멍이 생길 수 있었으니 주현무가 그녀를 찾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예나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그렇다면 제 사촌 언니를 어떤 식으로 혼을 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자꾸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뺨을 때려 다시 도예나 씨 앞에서 허튼소리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주현무는 제 행동이 만족스러운 듯 당당하게 말했다.예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그녀는 서슬기를 싫어했지만, 가정 폭력을 일삼는 남자는 더 싫었다.예나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저와 사촌 언니의 일은 당신이 끼어들 필요가 없으니 이만 돌아가 주시죠.”주현무는 그녀의 태도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도예나 씨 회사 근처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 뒀습니다. 점심 시간대에 레스토랑에 오시면 제가 대접하겠습니다.”예나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
오전 업무를 마치고 도예나와 박정연은 기타 직장 동료들과 회사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레스토랑에 들어서는데 창가 자리에 주현무와 화려하게 차려 입은 한 여자가 나란히 앉아있는 게 보였다.여자는 주현무 옆에 꼭 붙어 앉아 가슴을 은근슬쩍 주현무의 팔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주현무는 몰래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고 있었는데, 예나는 여기가 레스토랑이 아니라 침대 위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예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른 장소로 이동하죠.”그러나 그녀가 레스토랑을 벗어나기 전 주현무가 예나를 발견하고 걸어왔다.“사촌 동생, 빨리 여기로 와서 앉아요. 한참 기다렸잖아요.”그의 미소 가득한 얼굴을 보며 예나는 소름이 끼쳤다.“그럴 시간 없습니다.”“사촌 동생, 어차피 지금 점심 먹으러 온 거 아니에요? 함께 먹어요.”주현무가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를 잡았다.“마침 하고 싶은 얘기가 남아서 그래요.”“도예나 씨, 우리 현무 오빠가 점심 사게 해주세요. 사과의 의미로요.”화려한 옷차림의 여자도 걸어왔다.“서슬기가 정말 선을 넘었다는 걸 알아요. 공개적인 장소에서 돌아가신 이모를 들먹이다니요. 뺨 한 대에 제 속도 시원해졌어요…….”예나는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그녀는 도저히 이런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그녀의 앞에서 알짱거린다면 예나도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서슬기가 선을 넘었다면 당신은 선을 넘은 게 아닌가요?”예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겨우 스무 살 넘은 것 같은데 미래가 창창한 나이에 왜 굳이 내연녀로 살아가는 겁니까? 내연녀로 살아도 된다고 댁 부모님이 가르치던 가요?”“그, 그게 무슨…….”여자의 표정이 구겨졌다. 레스토랑 곳곳에서 그녀를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왔다. 그녀는 발가벗겨진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을 느꼈다.주현무의 표정도 좋진 않았다.“사촌 동생,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주현무 씨, 서슬기를 핑계로 저한테 아는 척하지 마세요. 제가 서슬기에게 원한이 있다
주현무는 손을 툭툭 털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거기 서!”내연녀는 얼굴을 가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다른 한편, 주씨 저택.서슬기는 주씨 가문으로 시집을 가고 주씨 가문의 셋째 사모로 평소에는 하릴없이 차를 마시고 여유롭게 살아갔다.현재, 그녀는 박해연 (서슬기 모친) 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어차피 저는 서씨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어젯밤엔 정말 화가 나서 미치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서슬기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도예나한테 뺨을 맞았는데 외할머니는 아무 말없으시고, 아버지도 가만히 있기나 하고, 저 같은 딸은 이제 필요 없다는 말씀이잖아요! 서씨 가문은 처음부터 저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거기에 제가 돌아갈 곳은 없어요!”“우리가 언제 너를 가족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그러냐? 저번에 주현무가 여자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 아버지가 직접 찾아가 혼을 내지 않았 더냐? 네 아버지도 너를 많이 아끼고 있단다. 그러니 제발 너도 정신을 차리거라, 자꾸 걱정만 시키지 말고.”박해연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러니, 이만 이혼을 하는게…….”“싫어요! 절대 이혼은 안 해요!”서슬기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녀는 입을 열 때마다 얼굴이 아팠다. 어젯밤 예나한테 맞은 뺨은 고사하고, 오늘 아침 주현무한테 맞은 반대편 뺨까지, 양쪽 얼굴이 모두 퉁퉁 부어버렸다…… 결혼 7~8년 동안 그녀는 자주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가장 옳은 선택이 바로 이혼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그녀가 처음 주씨 가문에 들어왔을 때 주현무는 주씨 가문의 막내아들로 아무 능력이 없었다. 모두 서슬기, 외가의 세력에 의지해 천천히 주씨 그룹에서 성장했다. 이젠 주현무가 주씨 가문의 차세대 후계자로 될 수도 있었다…… 조금 출세했다고,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꼴을 서슬기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박해연이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나이가 어리니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 그에게 목을
집을 찾아온 내연녀는 서슬기의 쏟아지는 욕설에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그날 밤, 주현무의 운전 기사가 서슬기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보고했고, 서슬기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졌다.“그러니까, 도예나가 레스토랑에서 벌레 같은 저 남녀에 욕을 퍼부었다는 말이에요? 주현무는 쪽팔려서 내연녀 얼굴을 때렸고요?”기사는 서슬기의 거친 말에 이미 익숙해졌다.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셋째 도련님은 도예나 씨를 찾아가 장씨 그룹 프로젝트를 제안하러 갔는데 도예나 씨가 대차게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바로 도련님이 불륜남이라는 것이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슬기의 표정이 착잡했다.1초 전,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원망하는 사람은 바로 도예나였다. 그때 맞은 뺨을 열 배로 갚아주지 못해 이를 바득바득 갈았었다.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은, 예나가 서슬기를 대신해 복수를 해준 것 같기도 했다.서슬기는 주현무를 원망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의 폭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도예나는 주현무를 속 시원히 욕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체면을 구기게 했어. 그리고 주현무와 짜증 나는 불륜녀를 갈라서게 해줬지…….’‘정말 속이 시원해!’‘도예나를 찾아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그딴 쓰레기 같은 놈이 수치스러움을 느꼈는지 알고 싶어…….’서슬기는 입꼬리를 매만졌다. 하지만 도저히 과거의 “원수”를 찾아갈 수는 없었다.다른 한편, 예나는 현석의 차에 앉아 통화를 하고 있었다.예나는 웃으며 거절했다.“이미 집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마쳤다고 했어요. 며칠 뒤에 아이들과 찾아 뵐 게요.”끊자 현석이 예나에게 물었다.“왜 거절했어요?”“장씨 가문에서 아버지와 동생을 제외하고 저를 반기는 사람이 없어요. 가 봤자 트러블만 일으킬 거예요.”예나는 몸을 살짝 돌려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어쩐지 당신은 가고 싶은 모양이네요?”현석이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며 말했다.“아직 장인어른을 정식으로 만나 뵙지 못했잖아요.”H 지역에서 돌아오고 회사 일에 발이 붙잡혀 찾아
“할머니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아. 어린이 집에서 돌아오고 할머니랑 얘기 많이 해드려.”예나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주방으로 들어갔다.제훈은 고민했다.‘강남천과 상관이 있는 걸까?’제훈이와 세훈이는 대부분 일을 알고 있었으니 예나도 굳이 두 아이에게 숨기지 않았었다.예나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파기름을 냈다.채소는 이미 도우미들이 다듬어 놨고, 그녀는 볶기만 하면 되었다. 반 시간 뒤, 6가지 반찬과 국이 뚝딱 완성되었다.저녁 식사 후, 아이들은 책을 읽고 예나와 현석은 서재로 돌아가 업무를 손봤다.예나는 장씨 그룹 자료를 읽고 있었다. 후계자 경쟁에 참여하기로 한 이상, 그녀도 장씨 그룹에 대해 알 필요가 있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현석이 문서를 건네 왔다.“장씨 그룹 최근 몇 년 동안의 재무 보고서와 6개월 내의 모든 큰 프로젝트 보고서 에요. 천천히 읽어봐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렸다.“어떻게 내가 이게 필요할 거라는 걸 알았어요? 당신이 짱 이에요.”현석이 웃음을 터뜨렸다.“고마우면 나한테 뭘 해줄 거예요?”그 말에 예나는 바로 흥-하고 소리를 냈다.“매일 이상한 생각만 하지 말고, 다른 생각도 하고 그래요. 피곤하지도 않아요?”“전혀요.”현석이 바로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자료는 내일 확인하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요.”피부에 닿는 그의 체온이 뜨거웠다. 예나는 바로 몸을 피했다.“모레가 이사회인데, 내일 자료를 읽으면 너무 늦어요! 이러지 마요…… 현석 씨, 자꾸 이러면 정말 화낼 거예요!”그녀가 목소리를 살짝 높이자, 현석은 바로 행동을 멈추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자료를 정리했다.예나는 그의 등에 기대앉아 천천히 장씨 그룹의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장씨 그룹 이사회 당일이 되었다.후계자 경쟁에 관한 사안인지라 주주들을 제외하고도 그룹의 고위층까지 빼곡하게 회의에 참석했다.장서원은 예나와 나란히 회의실에 들어섰고, 몇 십 쌍의 눈빛이 그들을 향했다.하지만
도예나가 장씨 가문으로 돌아 온지 한 주일도 지나지 않았으므로, 장씨 그룹에서의 인맥은 거의 없었다.예나의 능력을 겨우 한 달 안으로 전부 보여주는 것도 무리였다.그러니 이번 경쟁은 예나에게 있어 더없이 불리했다.장서원도 이를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아버지, 한 달은 너무 짧아요. 적어도 장씨 그룹의 분위기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반년은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경쟁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인 인맥을 잘 키워야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삼촌, 그게 무슨 말씀 이세요?”이지원이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스스럼없이 입을 열었다.“엄마가 처음 해외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도 장씨 그룹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었어요. 그래도 삼촌이랑 나란히 경쟁했었는데, 제 엄마가 해냈다면 언니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해요.”장서원은 지원이 쏘아붙인 말에 말문이 막혔다.그는 처음부터 후계자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 경쟁에 참여했던 것도 모두 장대휘의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던 것이었다. 남들 보기엔 멀쩡한 경쟁이었 을지 몰라도, 사실상 후계자 자리는 장서원이 장서영에게 직접 넘긴 것과 다름이 없었다.하지만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지원은, 장서영이 본인 힘으로 해낸 것이라고 우겼다.장서원의 표정이 구겨지자, 장서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버지, 아무리 우리 지원이가 이씨 성을 가졌다고 해도 아버지의 손녀 아닙니까? 두 아이 모두 장씨 가문의 손녀인데 경쟁 조건을 공평하게 해야 다른 사람들도 별말 없지 않겠습니까?”장명훈이 입술을 매만지다가 말했다.“반년이 길다면, 3개월 정도는 어떤 가요?”‘내가 이지원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면 누나가 이 싸움에 끼어들 필요가 없었어.’한 달의 시간은, 아직 장씨 가문의 인정을 받지도 못한 예나에게 있어 승산이 전혀 없는 시간이었다.“시간은 한 달로 해요.”차가운 목소리가 울려왔다.예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3개월이든, 반년이든 시간을 늘렸다가 누가 경쟁에서 져서, 불공평한 조건이었다는 이유
어느 프로젝트나 모두 장서영의 사람이 심어져 있었고, 프로젝트를 좌우지할 수 있는 능력도 모두 장서영에게 달렸다.“아버지, 할아버지 말씀대로 해요.”예나가 덤덤하게 말했다.“지금도 괜찮아요. 경쟁에서 진 동생이 자기 주 종목이 아니었다고 찡찡댈까 봐 그래요.”예나는 지원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지원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언니가 말한 거니까 후회하지나 마요.”예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후회할 게 뭐 있겠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게 과연 후계자 자리에 욕심 있어서 그러는 것 같아요?”그 말에 지원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그녀는 드디어 예나가 이 경쟁에 참여한 게 자신에게 태클을 걸기 위해서라는 걸 알아차렸다.예나의 눈빛,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지원에게 치명타가 되었다!지원은 겨우 화를 짓누르며 프로젝트를 골랐고, 예나의 예상을 하나도 벗어나지 않은 석유 화학을 골랐다.예나는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저는 리조트 프로젝트를 고를 게요.”리조트 프로젝트는 3개의 프로젝트에서 종합 순위 2번째에 달했지만, 석유 화학 프로젝트에 비하면 모든 게 무난했다.장서원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장대휘가 계속해서 회의를 이끌어갔다.“자, 그러면 지금부터 인원 배분을 진행하겠네. 회의실 내의 모든 인원은 2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한 달 안으로 성과를 내야 할 것이야. 좋은 성과를 낸 사람은 승진이 가능하니 모두 신중히 선택하시게.”장씨 그룹의 이번 분기에는 총 3개의 큰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을 두 프로젝트로 나눈다는 건 그중 하나를 포기한다는 뜻이었다.성남시에서 대부분 자손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후계자로 선발되었다. 장대휘도 별다를 수가 없었으므로 관례대로 이 경쟁을 준비했다.회의실은 몇 분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저는 계속 석유 화학 프로젝트를 하던 사람이니 이지원 씨를 따르겠습니다. 이지원 씨에게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 드리겠습니다.”그러다가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장씨 그룹에서 장씨 가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