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 기자들이 몰래 들어온 게 삼촌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요?”이지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사촌 언니 결혼 생활이 하도 파란만장했던 터라 다들 궁금해서 그러는 거죠. 사촌 언니, 오늘 같은 날에 한번 시원하게 밝히는 게 어때요?”사촌 언니라며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과는 달리, 그녀의 말은 날이 섰다.예나가 미소를 지었다.“사촌 동생이 남자를 쫓아 무슨 행동까지 저질렀는지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있다면 나도 내 남편과의 일을 모두 밝히도록 할 게요.”그 말에 지원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굳어졌다.설민준과 이지원 두 사람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원이 끈질기게 쫓아다녀도 민준이 결단코 받아주지 않은 것이었다. 이게 밝혀진다면 지원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예나가 행여나 입을 더 열 가 봐 지원은 자신의 입을 꾹 다물었다.장서원은 예나와 함께 스포트라이트 아래로 걸어갔다.마이크를 손에 쥔 장서원이 한껏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와중에 저희 장씨 가문의 연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이 자리로 모신 건 저희 가문과 저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을 말씀드리고자 한 것입니다.”크게 심호흡을 한 후 장서원은 옆에 선 예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금 제 옆에 선 이 사람은 제가 20여 년 동안 찾아 헤맨 제 딸아이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제 딸이 공식적으로 장씨 가문의 일원으로 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장씨 가문에서 잃어버린 딸아이를 되찾은 것을 축하드립니다!”“축하드려요, 장서원 씨!”“장대휘 어르신, 손녀딸이 생기셔서 좋으시겠어요!”사람들은 환한 웃음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진심일지 가식일지는 몰라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장대휘가 연회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장대휘가 도예나를 자기 손녀라고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고풍스러운 단 나무 상자를 꺼내 예나에게 건넸다.“이건 우리 장씨 가문 후손이라면 모두 있는 것이니 받아 두거라.”예나도 사양하지
지원의 말에 장서원의 얼굴이 싸늘해졌다.“장씨 성도 사람이 아닌 너도 참여한 후계자 경쟁에 왜 우리 예나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냐?”장서원의 눈빛이 차가웠다.“그리고, 우리 예나는 정식으로 장씨 가문의 큰딸이 되었는데 다시 내 귀에 사생아라는 말이 들린다면 난 너 같은 조카 다시 안 볼 것이야!”지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장서원은 조카인 지원을 평생 금이야 옥이야 아꼈다. 좋은 물건이 있으면 가장 먼저 지원을 챙겼는데, 지금은 그녀에게 더없이 잔혹한 말을 했다.‘도예나는 사생아가 맞는데, 왜 말하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지원이 계속해서 입을 열려는데 장서영 (이지원 모친) 이 그녀를 막아섰다.장서영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예나가 장씨 가문으로 들어오는 건 둘에게 있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이 염치없는 예나가 이렇게 빨리 머리를 굴릴 줄은 그녀도 예상하지 못했다.20년 전, 장서영과 장서원은 꽤 사이가 좋은 남매였다. 그래서 장서원과 서금주 사이의 일을 장서영은 조금은 알고 있었다. 장서원은 서금주를 바람 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 아꼈지만, 무슨 이유인지 서금주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서금주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장서원은 적어도 2년 동안 퇴폐적인 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서금주가 죽었다는 소식에 장서원은 또 7년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때 장서영은 장대휘의 믿음을 얻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씨 그룹의 핵심 프로젝트까지 맡을 수 있었는데…….장서영은 장서원이 서금주를 아꼈던 만큼 그녀의 딸을 아낄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다…….그래서 예나가 원하는 게 있다면 장서원은 하늘의 별도 따러 갈 게 뻔했다.한숨을 내쉰 장서영이 입을 열었다.“예나야, 가문으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처리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지 않았더냐. 후계자 일은 추후에 차차 말하자 꾸나.”장서영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며칠 전 장명훈이 후계자 경쟁에서 정식으로 물러났다는 건 성남시 기사에도 올라
“허.”예나는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지원이 이렇게까지 뻔뻔한 사람일 줄은 미처 몰랐다. 온갖 더러운 수단으로 장명훈을 퇴출시켜 놓고도 이렇게 당당하다니.“뭘 웃어요?”지원이 예나를 집어삼킬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이라서 웃음만 나오네요.”예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장씨 그룹은 장씨 가문의 사람이 이어받는 게 당연해요. 장씨 성을 가지지도 않은 당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요. 제 생각에는 명훈이만큼 후계자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명훈이가 포기했으니 누나인 제가 그 자리를 대신 지키려고 해요.”그 말은 명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명훈은 예나가 이런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그날 오후, 장씨 별장에서 만났을 때 예나는 명훈에게 후계자에 대한 얘기를 꺼냈었다.그리고 자신이 후계자 자리를 포기한 게 맞다고 확신하는 순간, 예나가 장서원에게 연회를 열어 달라는 말을 꺼냈다.명훈은 그제야 왜 예나가 후계자 경쟁에 참여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자리를 지켜주겠다는 건 결국 나에게 빚지지 않으려고 그러는 걸 거야.’‘배다른 동생을 이렇게 챙겨준 다니 정말 의외야.’명훈의 표정이 조금 착잡해 보였다.“정말 뻔뻔하기도 해라.”지원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명훈이와는 배다른 남매로 여태껏 얼굴도 모르고 지냈는데 갑자기 남매의 정이라도 생긴 거예요? 무슨 얼어 죽을 남매의 정이라고! 그건 모두 당신의 사리사욕이에요! 장씨 그룹을 이어받아야 당신이 마음대로…….”“누나!”명훈이 지원의 말을 잘랐다.“저와 예나 누나가 남매의 정이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에요. 제가 누나를 위해 희생을 한 만큼 누나도 저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거겠죠. 이게 바로 남매의 정 아니겠어요? 당신 같은 외부인은…… 그런 걸 이해할 수가 없어요.”“너, 너!”지원은 너무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다.장서영이 그녀를 막아섰다. 행여나 지원이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이라도 퍼부을까 봐 걱정이
장서영 (이지원 모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예나 이 뻔뻔한 아이가 명훈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 아버지가 허락하실 거라는 건 예상했어.’‘그리고 역시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명훈이만이 후계자였던 거야…….’“아버지의 말씀이 옳아요.”장서영이 맞장구를 쳤다.“우리 지원이 아직 나이가 어려 철이 없어서 그래요. 아버지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이틀 후, 장씨 그룹의 내부 회의에서 세부 사항을 다시 의논해 보는 게 어때요?”장대휘가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추후에 다시 정리를 하자 꾸나.”예나가 입꼬리를 올렸다.공개적인 연회 자리에서 이 일을 꺼낸 건 장씨 가문이 말을 바꾸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말을 꺼낸 이상, 아무리 장서영이 다른 방법을 댄다고 해도 후계자 경쟁에 참여하는 건 정해진 일이 될 것이다.‘장씨 그룹 후계자, 꼭 되고 말겠어.’소란은 끝나고 연회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연회장의 사람들이 예나를 향한 눈빛은 시니컬했다.“외할머니, 저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지 않았어요.”예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철이 들고 나서부터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는 저를 떠나지 않았고, 이런 여론에 휘둘릴 저였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이현숙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배다른 동생을 돕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싶구나.”예나 본인도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 수없이 생각했던 문제였다.‘그동안 가족의 온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던 탓에 명훈이의 희생에 쉽게 감동했던 걸까.’‘하지만 후계자 경쟁에 참여하는 건 명훈이뿐만 아니라 장서원, 아버지를 위한 일이기도 해.’아내를 잃고 10년 동안 소극적인 태도로 살던 장서원은 장씨 그룹에서의 발언권을 잃고 계속 장서영의 손아귀에 잡혀 살았었다.장서원이 그룹을 이끌 능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으니 예나는 최선을 다해 그를 지키고 싶어졌다.“어르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예나를 반드시 잘 지키겠
도예나는 샴페인 한 모금을 삼켰다. 고급 샴페인이라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부드럽고 상쾌했다.연회는 이렇게 막이 내렸다.장서원이 예나를 바래다주겠다고 했으나 예나가 웃으며 거절했다.“현석 씨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가보세요.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장서원이 고개를 돌리자 장대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면 조심해서 돌아가거라. 도착해서 문자 보내고.”예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고 연회장 밖으로 걸었다.이미 사람들이 연회장을 많이 떠났고 예나도 막 떠나려는 데 누군가 예나를 붙잡았다.“사촌 동생, 이게 지금 뭘 하는 거예요?”지원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도예나,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지?”예나가 입꼬리를 올렸다.“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네.”“설민준을 뺏아갔으면 됐지. 왜 내 후계자 자리까지 넘보고 그래?”지원이 원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쪽 기사를 바로 터뜨릴 거야.”예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명훈에게 했던 방법이 나한테 통할 거라고 생각해? 너무 유치한 거 아니야? 명훈은 나이가 어리니 넘어갔을 지 몰라도, 내가 그런 유치한 수단에 넘어갈 거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지원이 미리 뽑아 둔 사진을 예나에게 던졌다.“결혼 생활 중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 이 사진이 공개되면 강씨 가문은 너를 맨몸으로 쫓아낼 거야. 강씨 가문을 나온 너에게는 아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거라고!”몰래 도촬한 사진이었다. 주인공은 예나와 현석.예나는 지원의 시력이 잘못된 건지 머리가 잘못된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현석의 뒷모습도 알아보지 못하는 건지.예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마음대로 해봐.”그리고 그녀는 다시 연회장 밖으로 또각또각 걸었다.지원은 너무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이 사진은 함부로 공개할 수도 없었다. 이는 명훈의 유일한 약점이니 사진이 유출되면 명훈이 바로 장대휘를 찾아가 고자질을 할 수
연회장을 벗어난 도예나는 출구에 주차되어 있는 검은색 차를 발견했다.입꼬리를 올린 예나가 천천히 걸어가는데 강현석이 차에서 내려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차에 올라탄 후, 현석은 세심하게 안전벨트도 대신해주었다.“왜 술 마셨어요?”“두 모금만 마셨어요.”예나가 입을 열었다.“그런데 언제 도착한 거예요?”현석이 운전대를 잡으며 말했다.“온 지 얼마 안 됐어요.”차는 천천히 큰길로 향했고 중저음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오늘 내가 함께 연회에 참석했어야 했어요.”예나는 바로 무슨 의미인지 눈치를 챘다.연회장에 있었던 일이 벌써 기사로 뜬 게 분명했다. 서슬기에게 조롱당하고, 기자들에게 둘러싸이고, 연회장 사람들이 수군대던 일에 대해…… 인터넷에서도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그리고 현석은 그녀의 기사를 모조리 찾아보았을 것이다.예나는 말없이 남자의 손을 잡았다.“당신이 나랑 나란히 나타난다면 부부가 함께 얼굴에 흉터를 달고 나왔다고 또 뭐라고 할 거예요. 흉터가 생긴 내막을 궁금해할 거고, 또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지어낼지도 모르죠.”현석이 헛웃음을 터뜨렸다.현석은 어제 흉터 시술을 하고 아직 거즈를 두르고 있었다. 이런 그의 모습으로는 공식적인 자리에 나올 수가 없었다.하지만 현석은 예나 혼자 온갖 유언비어를 견디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우리 사이는 변함이 없고 이혼도 하지 않을 텐데 사람들이 수군댄다고 달라질 리가 없잖아요.”예나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오늘 회사 상황은 좀 어때요? 강남천이 남긴 문제는 해결이 되었나요?”현석의 표정이 심각해졌다.“그 사람이 몰래 운영하고 있던 생물 연구 회사가 한 두 곳이 아닌 모양이에요. H 지역에도 자회사가 있는데 그의 지문이 있어야만 해체가 가능해요. 강남천의 지문을 따오고 처리할 계획이에요.”그 회사는 모든 죄악의 시초였다. 반드시 개발된 칩까지 모두 망가뜨려야만 범죄율을 낮출 수 있었다.예나도 그 회사의 정체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몇 개월 전, 방찬이 직접
강현석과 도예나는 국내로 돌아온 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예나는 황급히 자신의 시선을 거두고 현석을 쉽게 건드리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차는 빠르게 강씨 별장으로 도착했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현석은 예나를 품에 안고 길게 키스를 나눴다.별장 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오자 예나는 다급하게 현석을 밀어냈다.“안에 손님이 온 모양이에요. 좀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현석이 별장 안을 훑어보며 말했다.“둘째 숙모예요. 손님 아니에요.”예나는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었다. 박정화는 결코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정지숙을 만나러 별장을 찾아와 예나의 험담을 늘어놓는 그런 사람이었다…….예나는 정지숙이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상관이 없었지만 적어도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낸다면 화목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박정화가 계속해서 이간질한다면 예나와 정지숙의 관계가 점점 나빠질 테고 결국 한집에서 살지 못할 것이다.예나는 옷을 매만지고 입구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입구부터 박정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저녁 기사 봤어요? 온통 도예나 얘기로 도배가 됐어요. 정말 성격도 드세지,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서씨 가문 아가씨 뺨을 때리 다니요. 사촌 언니인데!”박정화는 계속해서 말을 늘려 놨다.“강씨 가문 사모라는 얘가 또 무슨 장씨 가문 후계자까지 되겠다고 이 난리를 부리는지, 다른 사람이 봤으면 형님이 예나를 구박하는 줄 알겠어요…….”“둘째 숙모 오셨네요?”예나가 안으로 들어가며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 이름이 들리던데 무슨 얘기하고 계셨어요?”박정화의 얼굴이 굳었다.두 번의 험담을 한번은 아이들에게, 또 한번은 예나 본인과 현석에게 들켜버렸다. 정말 운이 좋지 않은 박정화였다.정지숙이 대신 입을 열었다.“오늘 장씨 가문 연회를 기사로 통해 보고 얘기를 하던 중이었단다.”박정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나야, 네가 장씨 그룹 후계자 경쟁에 참여하겠다는 기
박정화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이에 정지숙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예나의 일은 시어머니인 나도 간섭하지 않는데 올케 말은 더 듣지 않을 거야.”“형님은 시어머니고, 예나는 며느리인데 어떻게 어른한테 이렇게 예의 없이 구는 거예요?”박정화는 목소리를 낮추며 계속해서 험담을 늘려 놨다.“현석이 결혼하기 전 형님한테 보여준 제 가문의 조카 있잖아요. 얼마나 얌전하고 착한 아이인지, 현석이한테 시집을 갔다면 남편 내조며, 시어머니 수발도 참 잘했을 거예요. 어디 도예나처럼 막무가내로 사는 얘가 또 있겠나요?”정지숙은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정지숙은 박정화의 말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오늘날, 정지숙과 현석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모자는 일주일이 지나도 한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예나는 그 중간에서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박정화가 소개한 아이가 시집을 왔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지는 않을 텐데…….’정지숙은 예나의 잘못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예나가 둘 사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랐다.박정화가 아래층에서 투덜거리는 소리는 안방까지 미세하게 들려왔다. 박정화의 목소리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예나는 현석의 품에 안겨 낮은 소리로 물었다.“현석 씨, 제가 방금 둘째 숙모한테 실례를 범한 거 아니에요?”“당신이 옳아요.”현석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둘째 숙모 성격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 세게 나가면 다시 이러지 못할 거예요.”예나는 남자의 목에 팔을 걸며 말했다.“어느 날 제가 어머님이랑 다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둘째 숙모와 예나 사이에서, 남자는 아무런 고민 없이 예나를 선택했다.‘어머님과 나, 이런 상황에서도 내 편을 들어줄까?’“내가 말했잖아요. 언제나 당신이 옳다고.”현석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에 입술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