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나는 아이들의 유치원 수속을 마치고 바로 서씨 가문으로 함께 향했다.그녀가 스무 날 째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아무리 강씨 가문에서 막았다고 해도 서씨 가문이 이 소식을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그녀는 서씨 가문 별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도우미가 바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아가씨, 그동안 사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매일 눈물로 지새우시고, 입맛도 없으셔서 살도 많이 빠졌어요…….”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이현숙이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외 증조 할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세윤이 먼저 총알같이 달려가 이현숙의 품에 안겼다.“외 증조 할머니, 저는 할머니가 제일 좋아요!”수아가 이현숙의 무릎을 올라타며 말했다.세훈은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들고 오며 말했다.“할머니, 이건 엄마가 직접 만든 떡이에요.”“할머니 한입 드세요.”제훈은 떡을 하나 들고 이현숙 입가에 가져갔다.그러자 예나에게 한 소리 하려던 이현숙은 말문이 막혔다. 이현숙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미소가 피었다.예나는 의자 하나를 꺼내 이현숙의 옆에 앉았다.“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이현숙이 흥,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말해보거라, 뭘 잘못했는지를.”“할머니, 엄마한테 너무 화내지 마세요. 엄마도 그동안 아주 힘들었어요.”세윤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현숙이 손을 휘휘 저었다.“애들은 이만하고 저기 마당에서 놀거라. 나는 너희 엄마랑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몰래 엿들을 생각 말고 빨리 가거라.”세훈은 얌전히 동생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예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제가 떠나기 전 먼저 말씀 드렸어야 했어요. 걱정하실 걸 뻔히 알면서도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정말 잘못했어요, 다시 그러지 않을 게요.”그날은 너무 급하게 성남시를 떠났었다. 행여나 서씨 가문에 소식을 전했다가 강남천이 바로 서씨 가문을 찾아가 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되어 연락할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틀렸다!”
관계를 끊은 후, 도예나는 단 한 번도 도씨 가문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애초에 그녀는 도씨 가문 사람도 아니었다.“설혜가 감옥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더라…….”이현숙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보름 전에 임신했다는 게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감옥 사람들의 폭행에 그만 유산을 하고 말았단다…… 설혜는 몸도 망가지고 정신상에서도 큰 타격을 받아 지금 정신 병동에 들어갔어…….”예나도 착잡해진 마음이 들어 입술만 매만졌다.어린 시절, 예나는 설혜를 친동생처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18살 성인식 이후로 자매의 관계에는 금이 갔다.그리고 예나가 아이를 낳던 그날 밤, 둘의 관계는 철저히 끝이 났다.예나는 설혜를 4년 동안 사무치게 미워했고,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차로 설혜를 치고 싶을 정도의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하지만 세훈이와 세윤이를 되찾고 그녀가 여태껏 품었던 원한은 어느새 사라져갔다.예나와 설혜, 두 사람 사이에 이젠 서로 빚진 게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너와 설혜 모두 도씨 가문의 핏줄이지 않더냐. 그 애가 그렇게 되면 너희 아버지는 꼭 너를 다시 찾아올 것이다. 결국 딸은 너 하나만 남았기에…….”예나는 이현숙의 말을 잘랐다.“외할머니, 저는 도씨 가문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도 제 아버지가 아니고요.”“예나야 홧김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거라.”이현숙이 예나를 타일렀다.“네 몸에는 도씨 가문의 피가 흐르지 않더냐, 이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고…….”“외할머니, 홧김에 하는 말이 아니에요.”예나가 입을 열었다.“친자확인을 해본 결과, 도진호는 제 친부가 아니에요.”이현숙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뭐라고?”예나는 이 비밀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실을 밝혔다.“어머니가 도진호와 결혼을 했을 때는 이미 임신 중이었어요. 도진호가 제 어머니와 결혼한 이유는 서씨 가문의 투자를 받아 도 씨 그룹을 창건하기 위해서였구요…….”“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이현숙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강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 도예나는 장씨 가문의 일을 강현석에게 전했다.현석은 예나의 어깨를 감싸 안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당신이 어느 가문 사람이든, 당신은 그저 제 아내일 뿐이에요. 그건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에요.”그 말뜻은 현석은 예나의 친부가 누구인지, 어느 가문 사람인지, 설사 고아라고 해도 그녀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이었다.예나는 그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기대며 말했다.“장서원 씨가 내일 장씨 가문에 초대했어요. 제 어머니와 장서원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거에요…….”“같이 가줄 게요.”현석이 그녀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이들이랑 가면 돼요.”예나는 현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비록 강남천이 감금되었다고 해도, 그의 손발은 여전히 성남시 곳곳에 숨어있어요. 지켜보는 눈이 한둘이 아닌데 저랑 그렇게 가깝게 지내면 오해가 생길 수 있어요.”만약 남천의 손발들이 사람이 바뀐 걸 알아차린다면 작지 않은 소동이 일어날 게 뻔했다.조용히 지나갈 수 있는 일에서 큰 문젯거리를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그러면 내가 데려다 줄 게요.”현석이 그녀를 더 꽉 껴안았고 그의 손은 어느새 예나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해도 돼요?”예나는 얼굴을 붉혔다.안 된다고 대답해봤 자 포기할 현석이 아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할 거예요?”“아니요.”현석이 고개를 돌려 키스했다.바로 그때, 방문 손잡이가 돌려졌다.짧은 1초 사이에 현석은 예나의 몸에서 벌떡 일어났고 예나도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예나는 빠른 시간 안에 책 한 권을 손에 쥐었다.수아가 방문을 열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둘째 오빠가 나 괴롭혀요.”현석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강세윤, 당장 이리로 와!”세윤은 방문 뒤에 숨어서 소심하게 반격했다.“저는 동생을 괴롭히지 않았어요. 형이 증명해 줄 수 있어요.”세훈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수아가 초콜릿 케이크 위의 초콜릿을 먹으려고 했는데 세윤이가 다
현석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아닌데요?”예나는 귓가가 간지러운 느낌에 몸을 뒤척였다.“비켜요, 책 읽어야 해요.”“아이들을 빨리 내보낸 사람이 누군데요? 방문을 잠근 사람이 누구더라?”현석이 그녀의 귓불을 깨물며 말했다.“그래도 아니라고 발뺌할 거예요?”“아니요, 싫어요!”예나는 도망가려고 발버둥 쳤지만, 남자가 그녀의 발목을 잡아당겼다.키스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현석은 그녀의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키스했다. 그녀는 마치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과 같은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그때, 현석이 하던 행동을 뚝 멈췄다.그리고 예나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이제 말해봐요, 날 원한다고.”낮은 목소리가 아주 유혹적이었다.예나는 더 이상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현석의 목을 끌어안고 본능에 몸을 맡겼다.“여보…….”그녀의 목소리에 현석은 바로 항복하고 말았다.이불 안은 따뜻하고, 달빛은 은은했다…….예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그녀는 힘겹게 눈을 떠, 정장으로 갈아입는 중인 현석을 바라보았다. 현석은 다부진 몸매와 완벽한 비율을 자랑했다.천천히 셔츠를 입고, 우아하게 단추를 잠그고 있는 현석을 보며 예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정장 입은 야수.오늘은 정장을 입은 강씨 그룹 대표일지라도, 어젯밤에는 그냥 본능에 충실한 야수에 불과했다.“왜 그래요?”현석이 고개를 돌려 입꼬리를 올린 채 예나에게 물었다.예나는 이불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당신은 짐승 같은 사람이에요. 내 눈앞에서 얼쩡대지 말고 빨리 회사나 가요.”그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현석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잠갔던 단추를 풀고 그는 다시 침대로 걸어갔고, 그녀의 이불을 젖힌 다음 키스를 퍼부었다.“나, 나 아직 양치도 안 했는데!”예나는 화가 났다.현석은 계속 키스하며 말했다.“상관없어요…….”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허리가 끊어질 것 같던 예나는 더 이상 그를 밀어낼
한겨울의 햇살이 참 따사로웠다.도예나는 니트 원피스 위에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간단하게 메이크업을 했다.다만 두 볼 위에 자리 잡은 거즈가 조화를 깨뜨리는 느낌이 들었다.현석은 장씨 가문 앞에 차를 세우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거의 끝날 때쯤 엔 전화해요. 미리 와서 기다릴 게요.”“아빠, 안녕!”“안녕, 아빠!”“아빠, 꼭 데리러 와야 해요!”네 아이들은 순서대로 아빠에게 인사를 건네고 예나의 손을 잡은 채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장씨 가문의 별장은 전통적인 한옥 스타일로, 따뜻한 햇살이 비춰 들자 고즈넉한 분위기가 돌았다.도우미들은 한참 전부터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우미는 공손히 안으로 모셨다.“예나 씨!”장서원은 도우미의 목소리를 듣고 빠르게 방안에서 달려 나왔다.그는 아주 흥분에 겨운 표정이었다. 두 손을 앞으로 깍지를 낀 모습에서 긴장한 마음이 드러났다.“장서원 씨, 안녕하세요.”예나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네 아이들에게 말했다.“얘들아,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해야지.”“할아버지, 안녕하세요.”세훈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사를 올렸다.“할아버지, 왜 저희랑 밥 먹자고 한 거예요?”세윤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제훈은 손에 쥔 선물을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희 엄마가 준비한 선물이에요.”수아는 주머니 안을 한참이나 뒤적이다가 핑크색 막대 사탕을 꺼냈다.“저번에 할아버지가 막대 사탕 주셨잖아요, 이번엔 제가 드리는 거예요! 사탕이 엄청 달아요!”장서원은 벅찬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막대 사탕을 받아 쥐었다.“고마워.”그는 막대 사탕을 조심스레 주머니에 넣고, 네 개의 두툼한 봉투를 꺼내 아이들에게 건넸다.아이들은 손을 내밀지 않고 일단 예나의 눈치를 살폈다.“할아버지가 주는 첫인사 선물이니까 받아도 돼.”세훈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들은 그제야 봉투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1초 만에 봉투는 다시 예나의 손으로 넘어갔다.“엄마가 대신 보관해 주세요.”예나는 봉투를
장서원은 뒷말을 삼켰다.‘서화를 좋아한다는 말이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아 보이지 않을까? 예나가 싫어하면 어떡하지?’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말을 바꾸었다.“저는 서화 시장을 연구하는 걸 좋아해요. 전에 수집했던 서화를 지난달에는 세 배 이상으로 팔았지요.”세 배를 벌어들인 돈은 모두 예나의 기사를 막는 데 사용했었다.“할아버지, 그러면 그림 그릴 줄 아세요?”세윤이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저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그림을 좋아한다고?”장서원의 눈에 빛이 돌았다.“밥 먹고 나서 할아버지한테 그림 한 장 그려줄 수 있을까?”세윤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당연하죠. 유치원 그림 대회에서 1등도 한 걸요.”너무 똑똑한 세훈이와 제훈이 탓에, 그 누구도 세윤이의 그림 재간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실질적으로 세훈이와 제훈이, 그리고 수아의 재능에 비하면 그의 그림 재능은 평범한 정도였으니…….장서원은 아주 기뻐했다.장서원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그림 하나로 해외 진출도 했었다. 그러다가 가업을 이어받고 가족이 생기고 나서는 그림에 대한 영감도 사라지고, 마음도 비웠다. 그래서 이젠 수집이 취미가 되었다.예전에는 장명훈을 화가로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재능이 없는 아이를 보며 장서원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외손자가 자신의 그림 재능을 물려받았을 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다.점심 식사를 마치고 장서원은 재빠르게 그림 도구들을 준비해 왔고, 직접 세윤이가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세훈은 세윤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실력은 몰랐기에 가만히 옆에 서서 살폈다.제훈이와 수아는 옆 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다.이 평화로운 장면에 예나는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리고 이 틈을 타 화장실을 다녀오기로 했다.화장실에서 나와 손을 씻는데 복도에서 도우미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오늘 오신 손님이 바로 도예나 씨인데, 이 가문 사생아라는 말이 있
도예나는 다시 거실에 있는 베란다로 돌아갔다.그녀는 세윤의 그림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겨울철 마른 연꽃을 담은 그림이었는데 벌써 절반 정도 완성이 되었다. 아직 미성숙한 감이 있었지만, 분위기는 남달랐다.예나는 세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옆자리에 착석했다.시간은 눈 깜짝 할 새로 지나 벌써 오후 세 시가 넘어갔다. 세윤이의 그림도 마무리 단계가 되었고 별장 밖에는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장서원은 세윤의 그림 재능에 푹 빠져 외부 상황은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예나가 고개를 돌리자, 검은색 승용차에서 훤칠한 소년 하나가 내리는 걸 발견했다.장명훈이었다.그러자 점심시간 도우미들이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후계자 경쟁을 포기했다는 장명훈.예나는 입술을 매만지며 앞으로 걸어갔다.층계로 올라가려던 명훈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조금 당황한 듯 물었다.“당신이 여긴 무슨 일로?”예나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장서원 씨가 나와 아이들을 초대한 걸 장씨 가문 사람들은 모른다는 말인가?’그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장서원 씨가 점심 식사로 초대하셔서 왔어요.”명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그럼 식사마저 하세요. 저는 볼일이 있어서 이만.”그의 목소리는 평온하고 침착했다.이에 예나는 도우미들이 허튼소리를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몇 번 만난 적도 없는 배다른 형제를 위해 후계자 자리를 포기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한참 고민을 하는데 명훈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말했다.“앞으로는 좀 주의하시는 게 좋겠어요. 몰래 사진이나 찍히지 마시고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렸다.“딱히 사진이 찍혀도 문제가 될 만한 게 없어서요.”명훈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무슨 말을 꺼내려 다가 또 멈칫했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잠시만요.”예나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이지원 씨가 무슨 일로 당신을 협박하고 있나요?”명훈이 고개를 휙 돌렸다
명훈은 할 말이 없어졌다.‘대체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데?’‘도예나는 나한테 멍청하다고까지 말했다고!’예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장서원 씨, 명훈 씨가 대체 왜 후계자 자리를 포기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시나요?”장서원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왜 대화가 거기로 흘러간 거죠?”비록 아쉬운 마음이 들어도 이미 결정한 사항이니 장서원은 마음을 접기로 생각했었다.“이지원 씨가 제 스캔들 기사로 명훈 씨를 협박해서 포기하게 만든 거예요.”장서원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명훈아, 나는 네가 예나를 친 누나로 받아들이지 못한 줄만 알았어. 그런데 이렇게 큰 희생을 하다니, 아버지는 네가 참 달리 보이는구나…….”“…….”‘포인트가 그게 아니잖아, 포인트는 후계자 자리를 포기했다는 건데.’‘두 사람 모두 참 멍청해.’명훈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아버지, 저는 그저 스캔들 기사가 저희 가문 명예에 해가 끼칠까 걱정이 되어…….”“외부 사람들은 예나 씨가 우리 장씨 가문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데 어떻게 명예 실추가 될 리 있겠어.”장서원은 아들의 새로운 모습에 아주 흡족스러워했다.“아들아, 네가 누나를 받아들여서 나는 참 기쁘구나. 그동안 예나 씨도 많은 고생을 했는데 누나한테 잘해드리거라…….”“큼큼!”예나는 마른기침으로 장서원의 말을 끊었다.“이지원 씨가 손에 쥔 건 별 볼 일 없는 카드예요. 이것 때문에 큰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명훈 씨가 다시 후계자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장서원 씨.”하지만 명훈은 덤덤하게 말했다.“저는 이미 후계자 경쟁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그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후계자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장서원이 말했다.“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예나는 지원이 자신을 빌미로 명훈을 협박했다는 게 거슬렸다.‘감히 나를 밟고 올라가려고 했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어.’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