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도예나와 강현석은 강씨 별장에 도착했다.현석은 큰 트렁크 두 개를 끌고 안으로 걸었고, 예나는 그의 팔에 팔짱을 둘렀다. 별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둘은 마당에 있는 피터를 발견했다.“현석 씨, 짐을 위층으로 옮겨줘요. 옷은 옷장 안에 넣으면 돼요. 저는 할 일이 남아서.”예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 손에 트렁크 하나를 들고 위층으로 향했다. 그는 예나의 옷을 안방 옷장에 걸고, 아이들 옷도 순서대로 방안에 넣었다…….예나는 고개를 돌려 놀이방 안을 확인했다. 정지숙이 아이들을 데리고 블록을 놀고 있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그녀는 몇 발짝 앞으로 걸어가 말했다.“어머님,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블록을 쌓고 있던 정지숙의 손이 멈춰 섰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놀이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예나야, 얼굴은 좀 어때?”“의사가 일주일 뒤면 상처가 아문다고 했어요. 별일 아니에요.”예나가 덤덤하게 말했다.“어머님, 현석 씨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어머님이라는 호칭에, 정지숙은 가슴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정지숙은 애써 호칭을 무시하며 대답했다.“세훈이가 말해줘서 알고는 있단다. 내가 좋은 의사를 찾을 테니…….”“현석 씨 기억은 캐서린이 지운 거예요.”예나가 입을 열었다.“최근에도 캐서린이랑 연락하고 계세요?”정지숙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러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캐서린이라면 일이 쉬워졌구나.”‘캐서린과 알고 지낸 지 몇 년이나 지났으니 내 말은 들을 거야…….’정지숙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그래, 강씨 별장으로 오거라. 할 말이 있으니…….”통화를 마치고 정지숙이 걸어와 말했다.“오늘 저녁 아홉 시에 온다고 했어.”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어머님.”“이건 현석의 일이니 결국 내 일이기도 해.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정지숙이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예
강씨 그룹 재무제표, 각종 프로젝트 데이터, 모두 복구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어떤 숫자들은 익숙하다고 해도, 익숙하다는 느낌 하나로 일을 마무리해서는 안 되었다. 특히 쇼핑몰 프로젝트는 소수점 하나가 달라져도 대형 사고가 생길 수 있었다.그러니 그 어떤 실수도 생겨서는 안 되었다.“강씨 그룹 대부분 직원은 모두 강남천 쪽 사람들로 대체가 되었어요.”예나는 옷을 개며 말했다.“회사에 가서 그 양아치들을 먼저 내쫓아야 할 거예요.”현석은 그녀의 뒤로 백허그를 하며 말했다.“이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요.”예나가 몸을 돌려 그의 마스크를 벗겼다. 그리고 그의 얼굴 중간을 가로지른 상처를 매만지며 말했다.“내일 나랑 성형외과부터 다녀올까요? 얼굴을 다시 원래대로 복구해 주고 싶어요.”“괜찮아요, 당신 얼굴을 복구하고 나서 병원 가면 돼요.”현석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예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뭐예요? 지금 어느 병원 의사가 좋은 지 나 갖고 테스트하는 거예요?”현석이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받들고 거즈 위로 키스를 했다.“그럼 내가 하루 먼저 수술하고, 당신이 하루 뒤에 수술하는 거로 해요.”현석은 자신 먼저 얼굴을 복구하고 싶지 않았다.완고한 현석을 설득할 수 없자 예나는 그만 포기했다.두 사람이 간단히 정리를 마치자 벌써 저녁때가 되었다. 양 집사는 푸짐한 한 상을 준비했으며 긴 식탁 위로 각종 산해진미가 차려졌다.아이들은 Y 국에 오래 머물면서 밋밋한 음식만 먹었으니, 한식이 아주 그리웠었다.여러 반찬은 식탁에 오르자마자 깨끗이 비워졌다.“와, 진짜 너무 맛있어요! 우리 집 셰프 손맛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세윤이 입안 가득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세훈이 세윤을 힐긋 노려보며 말했다.“예전의 여민석 아저씨 손맛 그대로야.”수아는 눈꼬리를 예쁘게 접으며 말했다.“여민석 아저씨가 해준 음식은 예전부터 맛있었어. 오빠가 자꾸 편식해서 그렇지.”“형은 그냥 엄마 밥
“캐서린 씨?”양 집사가 마당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하고 캐서린을 불렀다.캐서린과 정지숙은 막연한 사이이고, 얼마 전에는 강현석과 스캔들까지 있었던 사람이라는 걸 양 집사는 알고 있었다…….만약 도예나가 집에 없었다면 양 집사는 캐서린을 집안으로 절대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현석과 예나는 예전처럼 사이가 좋고, 이런 모습을 캐서린에게 보여주는 게 나쁘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양 집사는 철문을 열고 미소를 지은 채로 물었다.“캐서린 씨, 저녁은 드셨어요?”캐서린은 주방 안을 들여다보며 덜덜 떨었다.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양 집사님, 사모님한테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간다고 전해주세요.”그리고 그녀는 몸을 돌려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양 집사의 표정이 굳었다.‘대표님이 돌아오신 걸 알고 찾아온 게 분명해.’‘그리고 사모님이 함께 계신 걸 보고 도망치는 것이겠지.’‘요즘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 다 있을까? 대표님은 대체 왜 이런 여자와 스캔들이 났고?’양 집사가 다시 철문을 닫으려는데 그들 뒤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캐서린 씨, 여기까지 오셨는데 안으로 들어가서 차 한 잔이라도 하실래요?”예나가 걸어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캐서린을 노려보았다.캐서린은 몇 걸음 걸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차가운 예나의 눈과 마주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날 탓하지 마요…… 저도 남천 씨가 당신을 찾지 못하게 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돌아오지 않길 바랐다고요…… 당신이 돌아오면 나와 남천 씨는 더 불가능해 질게 뻔한데…….”예나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뭘 당신을 잡아먹기라도 한대요? 뭐가 그렇게 무서운데요?”예나는 말을 마치고 캐서린 쇄골 아래의 상처를 발견했다. 화상이었다. 마치 담뱃불에 데인 것 같은 상처였다.예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그날 공항에서 헤어질 때, 내가 그쪽한테 성남시를 며칠 동안 떠나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그동안 계속 강남천 옆에 있었던
캐서린이 눈을 부릅뜨고 이성을 잃은 채 예나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남천은요? 남천은 어디 갔는데요?”예나는 그녀의 상처를 힐끗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당신을 상처 줬던 사람을 그렇게 걱정하는 거예요?”“당신들이 죽인 거죠?”캐서린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했다.“도예나 씨,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아무리 남천이 잘못한 게 많아도 그 사람은 예나 씨를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그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칼을 꽂아요? 당신은 너무 매정하고 냉정한 사람이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예나는 자기 손을 휙 빼내며 말했다.“아직 목숨은 붙어 있어요. 잠시 어딘가로 가두었을 뿐이에요. 왜요, 그렇게 만나고 싶어요?”캐서린이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어디에 가뒀는데요?”예나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캐서린처럼 어린 여자가, 세계 열 순위 안으로 꼽히는 우수한 정신과 의사가, 왜 하필 강남천과 같은 악마에 목을 매는 건지.’그녀에게는 수많은 선택이 존재했으나 캐서린은 남천이라면 심연에도 빠질 사람이었다.이는 그녀의 선택이었으니 예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현석 씨 기억은 당신이 지웠으니, 당신이 책임지고 다시 되돌려줘요.”예나가 덤덤하게 말했다.“기억이 돌아오면 그때 강남천을 만나게 해 줄 게요.”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현석이 별장 안에서 나왔다.식사하고 있었던 터라 그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고 무서운 흉터가 그대로 드러났다. 또한 타고나길 매서운 카리스마 탓에 캐서린은 감히 그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캐서린은 그날 일을 떠올렸다.성남시의 초호화 결혼식에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돌렸지만, 새신랑은 남천에게 납치당해 지하실에 갇혔다.그때 캐서린은 현석의 얼굴에 큰 흉터가 생긴 걸 발견했다. 제때 처리하지 않은 상처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그리고 그녀는 아직도 남천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은 없어야 해.”그렇게 현석의 얼굴은 망가졌다.현석의 기억을 되돌린다면 남천의
강현석은 서재 소파에 몸을 뉘었다.피터가 최면술에 필요한 도구를 챙겨왔고, 캐서린은 그중 회중시계 하나를 들고 최면을 시작하려고 했다.“허튼수작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피터가 차갑게 말했다.“나도 정신과 의사니까, 당신이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바로 발견할 수 있어요.”캐서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녀는 회중시계를 다시 상자 안에 넣고, 모래시계를 꺼냈다. 모래가 흐르는 작은 소리가 서재 안에서 울렸다.그녀는 또 도우미한테 2미터가량의 전신 거울을 정면으로 놓으라고 시켰고, 거울 중앙에는 멈추지 않고 회전하는 나선을 두었다.이 장면을 보고만 있어도 예나는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이런 최면술이라면 아무리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어도 기억을 잃어버릴 거야…….’최면은 빠르게 시작되었다.캐서린이 본격적으로 최면을 시작하자, 정신과 의사다운 냉정함과 침착함이 돋보였다. 그녀는 현석과 함께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들어섰다.최면은 장장 두 시간이 걸렸다.시침이 12시에 이르자, 현석이 갑자기 소파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캐서린이 거의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한 달 전에도 세 번에 걸쳐 기억을 지웠으니, 이번에도 최면술을 세 번 진행해야 기억을 온전히 돌릴 수 있을 거예요.”예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좀 와봐요.”서재 밖에서 대기를 타고 있던 두 경호원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와 캐서린의 양 팔을 잡아당겼다.“지금 뭘 하는 거예요?”캐서린이 몸부림을 쳤다.“약속대로 강현석 씨 기억을 돌려주고 있는데 왜 나를 잡는 거예요? 도예나 씨, 애초에 당신한테 강현석 씨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는 게 아니었어요!”‘공항에서 그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남천이 실종되는 일은 없었을 거야.’‘내가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을 거고…….’“최면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으니 그동안 강씨 별장에서 꼼짝없이 있어요.”예나가 차갑게 말했다.“이 사람을 3층 객실로 데려가요.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제대로 지키고 있어요.”두 경호원은 바로
현석은 그녀의 손을 잡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예나 씨, 고마워요.”지난 한 달 동안,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모든 일을 현석 혼자 이겨내야만 했다.이런 그가 성남시에 도착하고, 예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를 세세히 보살폈다…….‘이 사람에게 빚진 게 너무 많아.’“우린 부부니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요.”예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여전히 그의 머리를 문질렀다.현석은 두 눈을 감고, 무수히 많은 파편 같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부서진 기억을 끼워 맞추려고 애썼다. 그래야만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예나 씨, 기억났어요!”현석이 갑자기 두 눈을 뜨더니 입을 열었다.“열다섯 살 때 일이 생각났어요.”예나의 손이 멈칫했다.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아마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일 것이다. 그리고 열다섯 때라면…… 아마도 현석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긴 해일 테고.예나는 그의 옆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뭐가 떠올랐는데요? 천천히 말해봐요.”“열다섯 그 해에, 선천적인 심장병을 앓고 있던 쌍둥이 형이 다른 곳으로 옮겨져 요양한다고 했어요…….”예나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양 집사가 그녀에게 말해준 내용과 거의 일치했다.“형은 어릴 때부터 절에서 자랐는데 그 후 한 가족한테 입양이 되었어요. 그런데 너무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형이 그 가족이 8년 동안 키운 강아지를 죽였어요. 그리고 형은 보육원으로 보내졌죠. 보육원에서도 형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수많은 아이를 괴롭혔거든요…….”현석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형이 이런 행동을 했던 건 모두 강씨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위해서였어요. 강씨 가문에 돌아오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미신을 맹신하는 편이라 형이 평생 가문에 돌아오면 안 된다고 믿었어요. 형이 돌아오면 형의 목숨이 위험해질 거라고…….”“몇 년 동안 형은 가문 밖에서 목숨을 유지했고, 부모님은 미신을 더 맹신하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형이
예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녀는 현석이 왜 그렇게 남천을 미워했는지, 왜 남천을 성남시 밖으로 내쫓으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남천이 아니라면 그의 아버지가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죽는다고 해도, 그런 오명을 쓰고 죽지 않았을 텐데.“전형적인 반사회적 인격의 소유자였어요. 아버지가 죽어도 달라지는 게 없었죠.”현석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는 항상 강씨 가문이 자신에게 빚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신이 모든 고통은 내가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믿었죠…… 아버지가 죽고 나서 자극을 받았는지 형은 그 후에도 여러 번 나를 암살하려고 시도했어요. 다행히 내가 그의 손에서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고요.”예나가 그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이런 사람은 감옥에 가두어야 해요. 이렇게 멀쩡히 밖을 돌아다니는 건 너무 위험해요.”현석이 예나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열다섯 살 그 이후의 기억은 잠시 없어요. 나도 왜 그 사람을 감옥에 넣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쩌면 어머니가 나를 막았는지도 모르죠. 어머니는 항상 형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나를 막았을 거예요.”예나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어머님이 현석 씨한테 강남천을 용서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에요.”현석은 예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을 넘보지 않았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줬을 지 몰라도, 당신을 넘본 그 사람에게 선처는 없어요. 예나 씨, 당신이 단번에 나를 알아봐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나를 찾아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라면 나는 여전히 매일 피 튀기는 전쟁터에 있을 거예요.”“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잖아요.”예나는 일부터 애교 부리듯 그의 품에 안겨 말했다.그리고 예나는 현석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그녀는 황급히 품에서 나오며 말했다.“아, 아이들 보러 가야 겠어요.”“밖은 아주 조용해요. 아이들도 쉬고 있는 것 같은데요.”현석의 낮은 목소리가
현석은 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에서 따뜻한 물 한 잔과 약 두 알을 가지고 올라와 건넸다. 그리고 예나가 약을 삼키는 걸 보고 나서야 그녀를 품에 안고 다시 잠이 들었다.하지만 예나는 한참이나 뒤척이다가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진 후였다. 햇살이 방 안으로 들어와 방안이 포근했다.그녀는 이를 닦고 간단한 샤워를 한 뒤 머리를 묶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주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현석은 식탁에 앉아 수아가 먹을 계란의 껍데기를 까고 있었다.너무 따뜻한 일상에 예나는 가슴 한쪽이 포근해졌다.그녀가 입을 열려는 찰나, 두 볼이 또 갑자기 간지러웠다. 특히 오른쪽 얼굴에는 무수히 많은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견딜 수 없을 만큼 간지러웠다.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 약을 두 알 삼키고 주방으로 돌아왔다.“굿모닝, 엄마.”“좋은 아침이에요, 엄마. 빨리 아침 먹어요. 이건 아빠가 직접 만든 아침이에요.”예나가 깜짝 놀라 물었다.“당신, 요리할 줄도 알았어요?”현석이 마른기침하며 말했다.“셰프가 가르쳐준 대로 해봤어요. 빨리 맛있는지 먹어봐요.”예나는 고개를 숙여 국을 한 입 떠먹으며 말했다.“간도 딱 맞고, 요리에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요?”“그렇게 맛있어요?”세윤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엄마, 나도 한 입 먹어 볼래요.”예나가 숟가락으로 한술 떠서 세윤이 입에 넣어주었다.“우엑!”세윤은 다급하게 싱크대로 달아가며 말했다.“맛이 하나도 없잖아요! 엄마, 거짓말쟁이!”“…….”‘나쁘지 않은 맛인데?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고?’세훈이 입을 열었다.“나도 한번 맛볼래요.”세훈이 다가와 한술 떠먹더니, 그 자리에 잠시 얼어붙었다. 그리고 힘겹게 국을 넘기더니 말했다.“평범한 맛이네요.”“…….”‘내 혀에 문제가 생긴 걸까?’그녀는 다시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정말 맛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이 한 요리와 다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