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프트 여왕은 현석의 손목을 지그시 잡으며 말했다.“그게 아니라, 누구와 좀 닮은 것 같아서 그래요…….”현석은 자기 팔을 쭉 빼서 여왕의 손길에서 벗어났다.“죄송해요,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스위프트 여왕은 눈길을 거두고 고개를 숙여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제야 그녀는 평정심을 되찾았다.이어진 대화는 아주 순조로웠고 둘은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수단, 그리고 사건 종료 후 어떻게 권력을 나누어 가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논했다…….“스위프트 여왕님, 그럼, 이틀 뒤 뵙도록 하겠습니다.”현석은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를 건네고 가면을 고쳐 쓴 뒤 하우스를 벗어났다.스위프트 여왕은 계단에 기대고 서서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만 보다가 눈물을 쏟아냈다.그녀는 새로 부임한 마피아 우두머리가, 자신의 죽은 남편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얼굴 상처 깊이 마저 똑같았다…….그녀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남편은 그녀를 지키고 그만 목숨을 잃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 시절 남편의 모습만 기억에 남았다.그리웠던 그 얼굴이 트레이북과 겹쳐 보였다…….오페라 하우스를 벗어난 뒤 현석은 레이한테 Y국 최대 규모의 놀이공원으로 운전하라고 했다.차에서 내린 그는 길가 벤치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여자의 옆에는 네 명의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있었다.금색 가면을 벗고 까만 마스크를 착용한 현석이 빠르게 그곳으로 걸어갔다.“와와! 아빠가 진짜 왔어요!”세윤이 제자리에 퐁퐁 뛰며 말했다.예나도 그를 확인하고 입꼬리를 올렸다.아침 일찍 그의 연락을 받은 예나는 이곳에서 만나자는 그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봐 걱정했었다.그런데 그는 약속을 지켰다.그의 앞으로 다가간 예나가 말했다.“일은 끝났어요?”현석은 자연스레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끝났어요. 오늘 내 시간은 모두 당신과 아이들 거예요.”“아빠, 안아줘요!”수아가 짧은 두 팔을 벌렸고, 두 다리를 아등바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는 건 그렇게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그래서 현석은 빠르게 검은색 마스크를 벗었다.직원은 다시 허리를 숙여 사진을 찍으려 는데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카메라 렌즈를 통해 확인한 그의 얼굴에는 긴 흉터가 있어 두렵고 흉악한 인상이었다. 거기에 눈빛은 또 얼마나 날카로운지 마치 비수처럼 찔러왔다.‘이 눈길, 어딘가 익숙해.’‘마피아 우두머리, 트레이북이 바로 이런 눈길을 가졌지. 네티즌들이 죽음의 눈길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정도니까.’“아!”직원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카메라를 들고 도망을 갔다.이미 자리를 잡고 앉은 여섯 명은 눈만 깜박거렸다.“직원분이 아빠 때문에 놀라셨나 봐요.”세윤이 큰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아빠 얼굴 흉터가 조금 무서워서 저도 처음 봤을 땐 놀랐는 걸요.”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마법을 배워서 흉터 지워주고 싶어요.”세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지금은 의학이 많이 발달해서 좋은 성형외과 가면 지울 수 있을 거예요.”제훈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평범한 상처는 병원에 가면 지울 수 있을지 몰라도 현석의 얼굴 흉터는 누군가 일부러 안면 신경이 많은 부위를 찌른 흉터였다.‘이런 흉터면, 성형외과 진료를 받는다고 해도 완벽히 지울 수 없을 거야…….’네 아이의 각기 다른 눈길을 보며 현석은 처음으로 얼굴 흉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았다.그리고 예나의 허리를 감싸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당신도 내 흉터가 무섭나요?”“그럴 리가요.”예나가 웃으며 말했다.“이 흉터는 영광의 상처잖아요.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요. 오히려 이런 당신의 옆에 있으면 안정감이 들고 좋아요. 나쁜 사람들이 당신 흉터만 보고 도망갈 테니 저와 아이들은 걱정이 없어졌어요.”세윤이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맞아요, 이젠 나쁜 사람들이 하나도 안 무서워요!”수아도 현석의 목을 끌어안고 나지막하게 말했다.“저도 아빠 얼굴에 흉터가 있어도 괜찮아요. 아빠가 우릴 지켜줄 테니깐요.”현석의 얼굴에
그동안 혼란스럽던 H 지역은 이틀 동안 급작스레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거리는 인심이 흉흉해져 거리를 다니는 행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하늘은 높고, 햇볕은 따스한 날이었다. 하지만 H 지역 강가 경계는 삼엄했다.금색 가면을 쓴 트레이북은 바람을 맞선 곳에 서서 남다른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그의 옆에는 손발이 묶인 대장로와 둘째 장로가 있었다. 감옥에서 4, 5일 동안 온갖 수모를 겪은 둘의 기세가 푹 죽은 게 보였다.루이스가 걸어와 보고했다.“형님, 엘리자가 사람들과 오는 길입니다.”몇 십 대의 차가 천천히 강가로 오고 있었다.가장 앞 차에서 검은색 가죽 구두를 신은 엘리자가 내렸다.그녀는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총을 매만지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행색이 많이 초라해진 대장로를 보고 나서는 도무지 미소를 지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분노를 억누르며 한 걸음 한 걸음 강가로 걸었다.그녀의 뒤로는 군복을 입고 완전히 무장한 군인 200여 명이 따랐다.현석은 몇몇 얼굴이 익숙했다. 며칠 전 군부 회의에서 자신에게 충성을 약속했었던 사람들이었다.하지만 그들은 사실 대장로 쪽 사람들이었다.현석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엘리자. 무장 해제해야지?”엘리자는 손을 들어 모든 사람이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도록 했다. 무기를 내려놓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루이스는 여러 군인과 함께 바닥 위에 올려 둔 총기를 거두어 갔다.모든 무기를 수거한 뒤, 엘리자가 차갑게 말했다.“이젠 아버지를 데려가도 돼?”“당신 쪽 사람들을 먼저 보내.”현석은 손가락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조건 따위 걸 생각하지 마. 당신은 그럴 자격도 없으니까.”그리고 그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대장로를 쳐다보았다.대장로는 자신이 지금껏 키운 사람들을 트레이북에게 넘기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다시 감옥 생활을 할 생각을 하니 말이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자유를 되찾고 난 뒤, 내가 잃어버린 모든 걸 다시 찾을 거야. 트레이북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알면서도 당한 거 아니야?”엘리자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다가가 현석의 가면을 벗기려고 했다.손목이 가까이 다가오자, 현석이 확 낚아챘다.“엘리자, 네가 정말 이겼다고 생각해?”엘리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그게 아니면?”200명이 넘는 군인들이 모두 그녀의 사람들이고, 그녀가 몸에 지닌 무기도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트레이북, 난 네가 마음에 들어. 내 남자로 살겠다면 목숨은 살려줄 게.”“내가 싫다면?”현석이 되물었다.“싫다면 널 가두고, 네 정신을 갉아먹을 거야. 네가 상황판단이 될 때까지…….”그녀의 말을 끝으로 갑자기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엘리자가 고개를 들자, 몇 십 대의 헬기가 하늘 위로 가득 찼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이 되었다.강가 남쪽의 고지에 갑자기 사람 형체 여럿이 보였다.가장 앞에선 여인은 머리를 반듯하게 위로 올렸고,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었으며 이런 그녀는 청색 군인들 사이에서 확연히 눈에 띄었다.그녀는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마피아, 당신들은 지금 포위되었습니다. 항복하세요!”대장로의 얼굴이 굳어졌다.“Y 국 스위프트 여왕이잖아? 저 사람이 여기에는 왜?”“설마 네 짓이야?”엘리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현석을 바라보았다.“감히 Y 국 여왕과 거래하다니. 이런 배신자, 간첩! 당신 같은 사람은 마피아 우두머리를 할 자격이 없어!”펑!총소리가 들려오고 총알이 허공을 뚫고 날았다.대장로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엘리자! 고개 숙여!”엘리자는 반 박자 느렸고 대장로는 다급하게 그녀를 당겼다. 그리고 총알은 대장로의 머리에 꽂혔다.“아버지!”엘리자는 쓰러지는 대장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아버지!”대장로는 눈을 뜬 채로 차갑게 식어갔다.“아가씨, 빨리 가야 해요!”군관이 엘리자를 잡고 숲으로 끌었다.“대장로의 희생을 헛되게 해서는 안 돼요,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스위프트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와 입을 열었다.“이번 합작 순조롭고 멋있었습니다. 저에게 이번 기회를 주셔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트레이북이 어느 나라를 찾아 협력하든 상대 국가는 절대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스위프트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하지만 트레이북은 이 소중한 기회를 스위프트에게 주었다.이번 공적으로 스위프트는 여왕의 자리에 더욱 오래 앉게 할 것이고 스위프트의 딸 또한 신분이 한 층 더 높아질 것이다.현석은 담담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마피아 주요 반란군은 이미 체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주요 도시에는 아직 일부 잔당이 남아 있습니다. 부디 여왕 폐하께서 직접 처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직접 처리해야만 스위프트는 공적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낼 수 있다.스위프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황실에서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정리가 다 끝나면 황실로 대접해도 되겠습니까?”현석은 손을 들어 시간을 한 번 보았다.현석은 본래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이곳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정식으로 마피아에서 탈퇴할 계획이었다.“트레이북 씨, H 지역의 향후 계획에 관해서 아직 여쭤보고 싶은 게 많습니다. 부디 저의 황실로 왕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스위프트는 자세를 낮추고 간절하게 현석을 초청했다.대장로의 잔당은 비록 대부분 체포되었지만, H지역은 당파가 수도 없이 많다.일단 한 자리가 비워지면 곧 그 자리를 메꾸는 당파가 나타난다.이곳의 악한 세력은 고구마 줄기처럼 주렁주렁 끊임이 없다.하여 단시간 내에 깨끗이 제거할 수 없다.현석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스위프트는 현석의 응답에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남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돌려 떠났다.송강에서 발생한 일은 곧 뉴스의 헤드라인에 올랐다.“30년 동안 마피아가 통치해 온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마피아도 죄악도 폭력도 없을 것입니다!”“H 지역은 Y국에 의해 정식으로 병합되었습니다. 앞으로 스위프트 여왕
Y국, 황실.지금 황실에서는 축제가 한창이다.마피아를 단번에 없애버리고 국가 영토도 3분의 1이나 확대되었다.다들 춤추고 노래하며 매우 떠들썩하다.스위프트는 황궁 본청에서 연회를 열었는데, 손님은 트레이북 한 명뿐이다.“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 이십니까?”스위프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그러자 현석은 덤덤하게 답했다.“제가 속해 있던 곳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스위프트는 현석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속해 있던 곳이라면 그게 어딘지 여쭤봐도 될까요?”“저와 H 지역의 후속 발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요?”현석은 내색하지 않고 화제를 자연스럽게 돌렸다.‘절대 내 정체를 노출해서는 안 돼.’현석은 자신의 정체와 가족들을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지금 현석의 상황으로는 신분이 무척이나 민감하기 때문이다.“H 지역은 30~40년 동안 암적인 존재였습니다. 악성 종양을 하루아침에 모두 제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난 H 지역을 하나의 주로 단독으로 관리할 생각입니다. Y국과는 다른 법률과 정책으로 통치할 생각입니다.”스위프트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당당하게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지금 저에게 유능한 인재가 부족한데, 잠시 남아서 저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그러자 현석은 덤덤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죄송합니다만 더욱 중요한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현석의 거절에 스위프트 여왕의 두 눈에는 실망이 가득했다.스위프트는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한참 지나서 스위프트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고 물었다.“사업보다 중요한 일이라면 가족인가요? 아내? 아이?”스위프트 여왕 옆에 앉아있는 17살밖에 안 된 공주는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오늘따라 왜 저렇게 꼬치꼬치 캐묻지?’스위프트는 종래로 사사건건에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이 아니다.오늘따라 유난히 사적인 일을 추궁하는 스위프트를 보면서 공주는 어리둥절했다.공주는 고개를
차가운 샴페인을 막 삼켰는데, 현석은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는 것만 같았다.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눈앞이 어두워지자, 현석은 바로 식탁에 넘어졌다.한편, 어느새 짙은 어두운 장막이 내려앉았다.예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시침은 이미 11을 가리키고 있었다.아이들은 줄줄이 잠에 들었지만, 예나는 잠결이 조금도 없었다.‘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이치대로라면 현석은 응당 예나를 찾아왔을 것이다.시간이 늦어 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화 한 통 정도는 했을 것이다.예나는 본래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마침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어쩔 수 없이 충동을 억눌렀다.“아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거야.”민준은 예나를 위로하며 말했다.“마피아가 없어졌으니, 사방으로 도망간 사람이 많을 거야. 그 사람들을 모두 잡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 특히 도망간 엘리자는 틀림없이 다시 일어설 거야.”“알고 있어.”예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만 자야겠어. 너도 일찍 자.”예나는 하품하고 한 걸음씩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예나가 세수를 마치자마자 핸드폰이 침대에서 진동하기 시작했다.예나는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침대로 다가갔다.그러나 발신자 번호를 보자마자 뜨거웠던 심장은 단번에 차가워졌다.발신자는 남천이다.예나는 주저 없이 남천의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남천도 계속 다시 전화하지 않고 기나긴 메시지를 보내왔다.[도예나, 너 설마 트레이북을 꼬셨다고 나를 깔아뭉갤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마피아가 끝장난 이상 트레이북은 아무것도 아니야! 난 그놈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 그러니 내 상처 아물때까지 딱 기다리고 있어! 우리 사이에도 정산해야 할 게 많아! 네가 나한테 빚진 거 하나씩 되찾을 생각이니 잠자코 내가 찾아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메시지에서 남천의 불쾌감과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예나는 메시지를 한 번 보고는 주저 없이 삭제해 버렸다.트레이북이 아니라도 현석은 얼
예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능숙하게 현석의 번호를 눌렀다.뚜뚜뚜-[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주시기를 바랍니다.]현석이 전화를 받지 않자, 마음속의 불길한 예감은 점점 커졌다.예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한 번 더 해볼게.”윙윙-휴대전화가 먼 곳의 마루에서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다.현석은 눈꺼풀이 심하게 떨렸고 거듭 발버둥을 치더니 마침내 간신히 눈을 떴다.현석은 뒤통수가 좀 아파서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려고 했다.막 손을 들려고 하는데 그제야 손발이 밧줄에 꽁꽁 묶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어떻게 된 일이야?’현석은 순간 경계 태세에 들어섰다.칠흑 같은 어둠에서 오로지 휴대전화에서만 희미한 빛이 발하고 있다.스크린에는 익숙한 번호 한 줄이 떠올랐는데, 현석의 마음속 깊이 새긴 열 자리의 숫자이다.“전화 왔어요?”한 여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칠흑 같은 실내에서 울려 퍼졌다.‘누구야?’현석은 소리를 따라 그 주인을 찾으려 했다.어둠에 어느 정도 적응된 후에 현석은 서서히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현석은 2미터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그 여자의 윤곽을 똑똑히 볼 수 있었고 목소리까지 익숙했다.현석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스위프트 여왕, 이게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스위프트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있는 휴대전화를 주웠다.그리고 입가에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이 사람한테서 총 세 통의 전화와 한 통의 메시지가 왔었어요. 언제쯤 집으로 돌아오냐고 묻던데요.”현석의 안색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현석은 용솟음치는 분노를 억누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토끼를 다 잡고 나니 사냥개를 죽이는 격인가요? 여왕 폐하께서 이런 일을 적지 않게 한 것 같네요. 여러 해 동안 탄핵을 당하고 왕위가 위태로웠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걱정하지 마세요.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스위프트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일단 제 스토리부터 들어 보실래요?”지금 현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