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보도를 들으면서 예나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지난번 적의 반란으로 트레이북은 중상을 입었었다.이번에는 군용 무기 폭발을 겪었는데 아직 트레이북이 다쳤는지 알 길도 없다.이렇게 죄악과 전쟁으로 가득 찬 곳에서 예나의 마음은 평온할 때가 없다.“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어.”민준이 무거운 소리로 말했다.“새로운 정책이 많은 세력가들의 이익을 건드렸으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그들이 연합해서 트레이북을 상대할지도 몰라.”카엘은 턱을 괴고 입을 열었다.“근데 새로운 정책 때문에 일반인의 취업 기회가 늘지 않았어요? 여기 치안도 아주 좋아졌고요. 트레이북 뒤에는 영원히 지지자가 있을 거예요.”‘현석 씨, 괜찮아요?’예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여기서 무슨 일이 발생하든 여기서 어떠한 죄악이 일어나든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든 이 모든 것들은 현석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야 한다.예나는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예나의 작은 세상에는 네 명의 아이들과 현석밖에 없다.사랑하는 그들이 안전하고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다.예나는 지금 가능한 한 빨리 현석을 데리고 전쟁으로 가득 찬 이곳을 떠나고 싶다.“아빠가 보스 자리에 앉은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고 주위에는 불안 요소가 너무 많아요.”제훈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밖에 3대 당파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내부 장로제도는 극도로 불균형하며 정치와 경제적 격차도 너무 커요. 이런 구조라면 조만간 반드시 문제가 일어날 거예요.”‘역시나 똑똑한 녀석이야!’카엘은 다시 한번 제훈의 높은 아이큐에 탄복했다.이런 이론은 역사 정치 선생님께서만 들은 적이 있지 4살 난 아이의 입에서는 처음으로 듣는다.‘내가 헛살았나?’카엘은 이런 제훈을 볼 때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의심하곤 한다.“엄마, 우리가 아빠 도와줘야 해요.”세훈은 목소리가 쉬었다.“아빠 혼자 어렵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많은 사람이 아빠를 죽이고 싶어 할 거예요. 그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달이 휘영청 밝아 있다.창문이 가볍게 두드려지는 소리를 듣고 예나는 단번에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예나는 외투를 걸치고 커튼 한쪽을 조금 벌려 밖을 내다보았다.“저예요.”어둠을 뚫고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예나는 소리에 따라 시선을 움직였고 검은색 망토를 입은 트레이북이 베란다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트레이북은 금색 가면을 쓰지 않았고 얼굴의 흉터는 달빛 아래에서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트레이북의 이목구비, 얼굴의 윤곽, 입술을 오므리는 모습까지 기억 속의 현석과 똑같았다.예나는 손을 들어 문을 열어주었다.트레이북은 차가운 밤바람을 안고 베란다로 걸어 들어왔다.칠흑 같은 트레이북의 눈동자는 밤하늘에서 더욱 어둡고 밝아 빛이 났다.그뿐만 아니라 마치 소용돌이처럼 치명적인 유혹도 띠고 있다.예나는 단번에 빨려 들어갔고 심장이 쿵쾅쿵쾅 걷잡을 수 없이 뛰는 소리도 들렸다.예나는 일부러 침착하며 말했다.“갑자기 왜 왔어요?”“예나 씨 보러 왔어요.”트레이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며 예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보고 싶었어요?”트레이북은 갑자기 손을 들어 예나의 어깨 위에 놓았다.그 손은 마치 불타는 숯과 같아서 올려놓자마자 예나의 가슴을 화끈 달아오르게 했다.예나는 당황한 나머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피했다.방에 불이 켜져 있지 않는 상태라 예나는 뒤에 있는 쓰레기통을 보지 못해서 하마터면 걸려 넘어질 뻔했다.다행히 트레이북의 손이 재빨리 예나의 잘록한 허리를 감쌌다.“왜 피해요?”트레이북은 예나의 귓가로 다가가 속삭였다.“전에 해독제가 되어주겠다며 내 품으로 달려들지 않았어요?”예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전에는 그럴만한 상황이 있었고 지금은 그 전과 다른 상황이다.예나는 트레이북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힘껏 발버둥 쳤지만, 더 꽉 안겨졌다.“그때는 그쪽이 다쳐서 상황이 급했고 지금은 다르잖아요.”예나는 입술을 오므렸다.“지금은 기억을 잃었고 트레이북인데, 현석 씨로 돌아오면 그
예나의 말을 듣고 피터는 한숨을 돌렸다.피터는 최면에 쓰일 물건을 찾으러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저 사람 믿을 만해요?”트레이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정말로 기억 되찾아 줄 수 있어요?”그러자 예나는 나지막이 말했다.“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번 해 보아야 해요.”만약 정말로 방법이 없다면, 예나는 캐서린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하지만 지금 캐서린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다.피터는 곧 상자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그리고 상자를 열고 물건을 가지런히 꺼내 놓았다.트레이북을 앉힐 의자도 끌고 와서 입을 열었다.“자, 지금부터 긴장을 풀어주세요.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것처럼 최대한으로 몸이 나른 해져야 합니다. 미간도 풀고 안정감을 되찾도록 노력해 주세요.” 트레이북의 표정은 피터의 말에 따라 점점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확실히 전보다 극도로 느슨해졌다.“좋아요, 지금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뭔지 말해줄 수 있어요?”트레이북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제가 깨어난 곳은 아주 어두운 곳인데, 피비린내가 진동해요. 주변에는 온통 상처를 입은 사람이고 저도 몸에 상처를 조금 입었어요. 얼굴에 상처를 가장 크게 입었는데, 미처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이렇게 흉터가 남았어요.”여기까지 말하자 예나는 갑자기 손가락을 움켜쥐었다.트레이북을 바라보는 눈빛은 복잡함으로 가득 차 있다.“계속 얘기해도 좋아요.”피터가 부드럽게 말했다.그러자 트레이북은 갑자기 눈을 치켜떴다.“예나 씨, 먼저 좀 나가 있어 줄래요?”트레이북이 앞으로 말해야 할 기억들은 조금 전에 말했던 것 보다 100배 나 잔혹하다.트레이북은 예나가 그 말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피터는 트레이북의 뜻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최면술을 할 때 제3가 현장에 없는 게 좋아요. 나가서 기다려요.”예나는 마지못해 밖으로 나갔고 나가자마자 숨을 죽이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려고 했다.그러자 애석하게도 피터와 트레이북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왜 불렀어요?”“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난 봄꽃이 활짝 피어난 따뜻한 곳으로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는데, 예나 씨가 나타났고 누군가가 예나 씨를 데리고 가는 모습이 보였어요.”트레이북은 예나를 껴안았다.“현실감이 너무 넘쳤고 그 사람이 예나 씨를 내 삶에서 강제로 떼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분노도 아쉬움도 밀물처럼 밀려왔고 아주 강렬했는데, 일단 깨어나기만 하면 머리는 다시 백지상태가 되어버려요.”트레이북은 말하면서 갑자기 뒤통수에 따끔한 통증이 다시 밀려왔다.매번 과거를 기억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이처럼 머리가 아파진다.“인제 그만 생각해요.”예나는 일부러 입꼬리를 올리며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했다.“아이들이 이거 좀 전해달라고 했어요.”예나는 침대 옆으로 가서 베개 밑에 있는 서류를 건네주었다.“세훈이랑 제훈이가 같이 알아낸 정보예요.”트레이북은 서류에 적힌 내용들을 보다가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세훈이, 제훈이, 블랙 넷에서 닉네임이 사나이와 도보스 맞죠?”“맞아요, 전에 현석 씨한테 도움을 많이 줬었다고 그랬어요.”예나의 두 눈은 약간 실의에 빠졌다.“내가 현석 씨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기 전에 아이들과 이미 동맹군이 된 거였어요.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그래서 조금만 더 일찍 와서 도움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이렇게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고 몸에 상처도 남지 않았을 텐데.’“지금도 늦지 않았어요.”트레이북은 갑자기 또 예나를 껴안았다.그러자 예나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왜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는 거지?’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예나는 지금의 상황이 마냥 부끄러웠다.예나는 헛기침하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척하며 말했다.“이 서류를 다 보고 드는 생각이라도 있어요?”트레이북은 예나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풀어주며 헛기침했다.“어떤 사람들의 내력은 대체로 잘 알고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중용하려고 했는데, 이미 다른 조직으로 넘어간 줄은 몰랐어요. 아
예나는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날이 밝아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세수를 마치고 드레스로 갈아입은 예나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아이들은 이미 식당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카엘과 피터는 영어로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예나 씨,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었어요? 어디 데이트라도 가는 거예요?”피터는 예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그러자 예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입을 열었다.“나 오늘 연주회에 가려고 하는데, 얘들아, 엄마랑 같이 갈래?”“저요! 저도 갈래요.”예나의 말에 수아는 순간 두 눈이 밝아졌다.“엄마, 저 피아노 치지 않은 지 한참 됐어요.”예나는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황급히 아이들을 데리고 성남시를 떠난 바람에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아이들은 제대로 유치원에 다닐 수도 없고 수아는 더 이상 피아노 수업을 들을 수도 없고 세훈과 제훈은 회사에 가서 일을 처리 할 수 없게 되었다.하지만 예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해야만 했다.예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수아는 오늘 엄마하고 연주회 들으러 가자. 그리고 우리 수아 피아노 실력 줄어들었는지 한 번 들어도 보자.”수아는 마냥 기뻐하며 얼른 치마를 갈아입으러 위층으로 올라갔다.옆에서 보고 있던 세윤은 큰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엄마, 저도 같이 가도 돼요?”세윤은 어제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감히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행여나 세훈에게 꾸중을 들을까 마냥 조심스러웠다.“당연히 되지! 세윤이도 같이 가고, 우리 다 같이 가자.”예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H 지대에 가지 않는 한 이 주위는 안전해. 오늘 엄마랑 같이 연주회도 듣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게 놀자! 어때?”예나의 눈웃음을 보고 제훈도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졌다.‘우리 엄마 오랜만에 웃는 것 보네.’한 달 동안 제훈은 마침내 엄마가 활짝 웃는 것을 보았는데, 아마 아빠를 찾았기 때문이다.제훈은 엄마의 마음속에서 아빠의 자리가 점점 더 커지
예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앞줄에 앉았는데, 들어오자마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어느 나라에서나 이 나이대 아이들은 환영받지 못한다.현장에 있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네 아이를 장난꾸러기로 정해버렸다.심지어 연주회가 시작되고 만약 이 아이들이 소음을 낸다면 그들은 반드시 가차 없이 아이들을 쫓아낼 것이라고 다짐까지 했다.“저기 봐, 스위프트 여왕님 오셨어.”누군가의 소리에 따라 뭇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우아하기 그지없는 한 여인이 사람들의 추대를 받으며 들어왔다.예나도 고개를 돌려 스위프트 여왕을 바라보았다.텔레비전에서 본 스위프트 여왕과 별다른 차이는 나지 않았다.스위프트 여왕은 젊고 우아하며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귀족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스위프트 여왕은 올해 마흔 초반이지만 자기관리를 잘한 덕분에 30살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다.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스위프트 여왕은 귀빈석에 앉았다.바로 예나와 네 아이의 앞에 있는 자리다.연주회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오늘의 연주자는 Y 국에서 가장 젊은 피아니스트 그룹으로서 남녀 둘이서 연합하여 피아노를 친다.피아노 소리는 때로는 잔잔하게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잔잔하고 때로는 폭포가 내리치는 것처럼 웅장하다.남다른 피아노 연주 실력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감동도 선사해준다.바로 이때, 갑자기 연주회 장내는 칠흑같이 어두워졌다.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는 어둠이 내려오는 동시에 뚝 그쳤고 무대 위의 두 피아니스트도 제자리에 굳어졌다.무대 아래도 잠시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지만, 순식간에 다시 시끌벅적해졌다.“왜 갑자기 정전된 거야?”“맙소사! 이 곡만 보고 왔는데! 갑자기 중단되면 어떡해!” “이제 어떡하지?”주변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자, 스위프트 여왕은 불쾌해하며 고개를 돌렸다.“좀 진정하세요! 다 큰 어른들이 얘들보다 시끄러우면 어떡해요!”말하면서 여왕은 뒤에 앉아 있는 네 아이를 한 번 보았다.연주회가 두
이 연주회는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 G 단조를 홍보로 하였다.오로지 이를 보고 현장에 온 청중들도 적지 않다.오늘 이 곡은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다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실망한 한숨을 내쉬었다.스위프트 여왕은 천천히 몸을 곧게 펴고 퇴장할 준비를 했다.“여왕 폐하.”예나는 유창한 영어로 입을 열었다.“만약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5분만 저한테 내주실 수 있을 까요? 제 딸이 피아노 협주곡 2번 G 단조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스위프트 여왕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여사님 딸이요?”“저 피아노 협주곡 2번 G 단조 칠 줄 압니다.”수아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용감하고 얌전하게 말했다.“알버트 거장은 저의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이 곡에 대한 저의 깨달음이 매우 강하다고 칭찬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부디 여왕 폐하께서 저에게 연주할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수아는 시원시원하고 대범하게 어린 아이 자기 의사를 똑똑히 표현했다.수아의 말이 떨어지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워 마지 못했다.“알버트 거장? 내가 알고 있는 그 알버트 거장이야?”“알버트 거장이 제자 한 명을 드렸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저 여자애야?”“선생님이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피아니스트인 건 알겠는데, 저 어린 아이가 정말로 피아노 협주곡 2번 G 단조를 연주할 수 있을까?”“이 곡은 너무 어려워서 알버트 거장조차도 겨우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여왕 폐하 환심 사려고 애를 쓰는가 본데, 뱁새가 황새 쫓다가 가랑이 찢어진다고, 이제 한 번 더 망치면 여왕 폐하 화만 더 내실 거야.”“어차피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으니 들어보고 가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여왕 폐하도 아직 계시니 조금만 더 지켜보자.”연주회에 있던 사람들은 이런저런 마음을 안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스위프트 여왕은 수아를 한번 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그럼, 네가 한번 해 봐.”수아는 긴장해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어릴 때부터
제훈은 한 달 동안 침묵만을 지켜오던 수아의 모습이 떠올랐다.‘우리 수아 다 알고 있었구나.’수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제훈은 줄곧 수아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사실 수아는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여 아빠한테 사고가 났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을 것이다.다만 수아는 아빠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그런 상태로 날마다 두려워하고 밤낮으로 불안해하며 지내다가 마침내 아빠를 만난 후 그 공포에서 벗어난 것이다.그래서 수아는 지금 여유롭게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다.처음의 두려움이 지나간 후에야 곡은 점점 가벼워졌고 객석의 사람들은 이미 안색이 변했다.방금 그 우수한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때도 그들은 모두 그 상황으로 빠져들지 못했었다.하지만 지금 겨우 네 살로 보이는 어린 소녀는 그들이 작곡가가 느낀 당시의 그런 두려움 속으로 이끌었다.수아의 피아노 기교는 그리 능숙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감정에 대한 깨달음은 출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알버트 거장이 제자로 들일만 했네.’사람들의 경탄, 충격, 놀라운 가운데 곡은 천천히 마무리되었다.짝짝짝-연주실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옆에 앉아 감상하던 두 명의 피아니스트는 원래 이 어린 소녀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하지만 소리가 울리자마자 그들은 자신이 수아를 우습게 여겼고 들을수록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연주회가 끝나자 두 피아니스트는 얼른 다가갔다.“꼬마 아가씨, 이름이 뭐예요? 우리하고 간단하게 소통할 수 있을까요?”수아는 높은 의자에서 뛰어내려 다소 수줍어하며 제훈 뒤에 숨었다.“죄송합니다만 제 여동생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없습니다. 저랑 말씀하시면 됩니다.”제훈은 수아의 손을 잡고 대범하게 말했다.세훈도 다가와 입을 열었다.“앞으로 제 여동생이 피아노 연주회를 열면 제가 입장권을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세윤은 수아의 몸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우리 동생 넘볼 생각하지 마세요! 저 가만히 있지 않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