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북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일단 지내던 곳으로 돌아가, 여기 안전하지 않아.”수아는 즉시 트레이북의 소매를 붙잡고 매달렸다.“아빠, 아직 제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저 가기 싫어요.”세윤도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정말로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 어떻게 힘들게 찾아온 엄마한테 이럴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우리 알아보지도 못하고…… 쫓아내고…… 아빠 꼭 후회하는 날이 올 거예요.”아이의 말에 트레이북은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갈기갈기 찢기는 듯했다.트레이북은 단지 아이들이 자기를 따라 위험을 무릅쓰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그리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반드시 먼저 확실하게 알아내야 했다.만약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고 애들한테 돌아가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다음에는 이렇게 운이 있을지도 단언할 수 없다.“울지 마.”트레이북은 서투르게 세윤과 수아를 위해 눈물을 닦았다.“일이 끝나면 보러 갈게.”“거짓말!세윤은 울먹이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저랑 수아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찾아오기는 뭘 찾아와요!”수아도 흐느끼며 말했다.“아빠, 배가 너무 고파요. 뭐 좀 먹고 가도 돼요?”트레이북은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다른 사람 있을 때 나보고 아빠라고 부르지 마, 알았어?”트레이북의 표정은 매우 엄숙하고 진지했다.세윤은 갑자기 큰형의 했던 말이 떠올랐다.큰형은 전에 아빠 신변에 있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적이라고 했었다.하여 세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저도 수아도 아빠라고 부르지 않을게요.”“그래.”트레이북은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리고 하인에게 음식을 가져오라고 분부했다.두 아이는 긴 식탁 옆에 얌전하게 앉아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곧 두 아이의 앞에는 십여 가지 각양각색의 음식이 올라왔고 모두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음식이다.이때 루이스가 황급히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보스, 예나 씨가 밖
“아빠, 저 가기 싫어요.”“저 아직 다 먹지도 못했어요.”세윤과 수아는 동시에 입을 열었고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가련하게 트레이북을 바라보았다.트레이북의 차갑고 딱딱한 마음은 순식간에 말랑말랑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하여 트레이북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천천히 다 먹고 가도 돼.”‘뭐?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옆에서 지켜보던 예나는 어리둥절해졌다.두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에 트레이북은 응했다.트레이북은 전에 예나의 말에 의문을 던졌었다.‘그때는 그렇게 말하더니, 왜 지금은 아빠라는 소리에 대답하는 거야?’세윤은 예나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빠가 남들 없을 때는 아빠라고 불러도 된다고 그랬어요.”세윤은 이 말을 예나에게 할 때 두 눈에는 온통 찬란한 빛이었다.한 번 잃어봐야 비로소 아빠가 감싸주는 느낌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었다.예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식탁에 앉아 있는 트레이북을 바라보았다.트레이북도 이때 고개를 들어 담담하게 예나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공중에서 눈이 마주쳤고 맑은 공기 속에서 시선이 융합되었다.예나는 트레이북의 동공 깊은 곳을 바라보았는데, 순간 모든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다.설사 기억이 지워진다고 하더라도 혈연과 감정의 견인은 영원히 지워질 수 없다.바로 이때 때아닌 소리가 들려왔다.“택아.”최미연 부인이 걸어 들어왔다.트레이북을 부르며 무언가를 말하려던 참에 식당에 모르는 사람이 세 명이나 있는 것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택아, 이분들은?”최미연 부인의 소리에 트레이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이분들이 누군지 사모님과 상관없습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직접 말씀하시죠.”최미연 부인은 트레이북의 예리한 눈빛에 가슴을 철렁거렸다.더 이상 예나와 두 아이의 신분을 탐구하지 못하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언제쯤 집으로 돌아올지는 결정했어?”트레이북은 고개를 들고 차갑게 말했다.“당분간 돌아갈 생각 없습니다
입구에 도착해서야 최미연 부인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루이스, 저 여자 누구야?”“보스 사업 파트너입니다.”루이스는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태도로 말했다.“보스와 예나 씨는 업무상으로 나눠야 할 일들이 있어서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는 겁니다. 먼저 돌아가시고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최미연 부인은 고개를 돌려 식당을 한 번 보더니 달갑지 않아 하며 떠났다.최미연 부인의 그림자가 문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예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엄마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저분인가요?”트레이북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분간 어떤 목적인지 알 수 없어 일단은 가만히 둘 수밖에 없어요. 급해지면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겠죠.”‘다행이다.’트레이북의 말을 듣고 예나는 시름을 놓았다.트레이북이 최씨 가문에 대해 방어만 하고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예나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만사에 조심하시고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그럼, 먼저 아이들 데리고 가 볼게요.”음식을 다 먹은 두 아이는 순순히 일어서서 좌우로 나란히 예나의 곁에 섰다.현석은 핸드폰을 꺼냈다.“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게 연락처 알려 주세요.”예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서로 전화를 남겼다.예나는 마지막으로 트레이북을 한 번 보고서야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트레이북은 문 앞까지 나가서 세 모자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손도 흔들었다.트레이북의 곁을 지키며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레이가 어두운 곳에서 걸어 나왔다.트레이북은 담담한 목소리로 분부했다.“믿을 수 있는 사람 두 명 보내. 예나 씨를 포함한 저 아이들까지 제대로 보호할 수 있게끔 말이야. 그리고 작은 움직임이 있어도 나한테 언제든지 보고해.”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레이는 대답을 마치고 다시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마치 여태껏 나타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보스! 정보 떴어요!”경호원이 입구에서 뛰어 들어와 황급히 말했다
“너무 잘 됐다, 예나야!”민준은 진심으로 기뻐했다.그동안 예나는 생기와 활력을 잃은 난초처럼 열심히 살았지만, 온몸에 절망이 배어 있었다.민준은 마침내 예나의 몸에서 또다시 희망을 보았다.그리고 마침내 현석이라는 사람이 예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근데 그 사람 아직 떠날 수 없어.”예나는 어렴풋이 한숨을 내쉬었다.“그 사람 지금의 신분으로는 H 지대 세력은 물론이고 주변의 세력들도 항상 호시탐탐하고 있어. 순조롭게 빠져나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 일단은 기억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다른 건 천천히 하려고 그래.”“맞다! 내가 너무 좋아서 잠깐 깜빡했어!”민준은 자기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방금 피터 씨 도착했어.”민준은 황급히 예나를 데리고 방안으로 걸어갔다.예나는 거실로 시선을 돌렸는데, 소파에 붕대를 칭칭 감은 피터가 누워 있었다.지난번 병원에서 남천은 사람을 시켜 피터를 반쯤 죽여놓았다.불과 일주일만이라 아직 회복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예나는 피터를 보고 더욱 미안해했다.“피터 씨는 무슨 일로 또 불렀어?”“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최면술사는 10명을 넘지 않아. 대부분은 사령부를 위해 봉사하고 또 일부는 황실 부자들이 독점하고 있어. 피터만 자유로운 몸이야.”민준은 목소리를 낮추었다.“그 캐서린은 너무 재수 없잖아! 설마 내가 캐서린을 불러오기를 원한 건 아니지?”“예나 씨, 저한테 은혜 제대로 갚아야 해요.”피터는 소파에 누워 울부짖었다.“예나 씨 때문에 반년 동안 진찰도 볼 수 없을 거 같아요.”세훈은 껍질을 벗긴 포도 한 알을 입에 넣어 주었다.“피터 아저씨, 앞으로 끼니마다 제가 책임지고 먹여드릴게요.”제훈도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저는 책임지고 샤워해 드릴게요.”수아도 다가와서 앳된 소리로 말했다.“저는 머리도 빗겨 드리고 스킨로션도 발라 드릴게요.”“그럼, 저는 마사지 책임지고 시원하게 해드릴게요. 하루빨리 완쾌하시기를 바랍니다.”세윤은 피터의 부러진 다리에 손을
뉴스 보도를 들으면서 예나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지난번 적의 반란으로 트레이북은 중상을 입었었다.이번에는 군용 무기 폭발을 겪었는데 아직 트레이북이 다쳤는지 알 길도 없다.이렇게 죄악과 전쟁으로 가득 찬 곳에서 예나의 마음은 평온할 때가 없다.“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어.”민준이 무거운 소리로 말했다.“새로운 정책이 많은 세력가들의 이익을 건드렸으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그들이 연합해서 트레이북을 상대할지도 몰라.”카엘은 턱을 괴고 입을 열었다.“근데 새로운 정책 때문에 일반인의 취업 기회가 늘지 않았어요? 여기 치안도 아주 좋아졌고요. 트레이북 뒤에는 영원히 지지자가 있을 거예요.”‘현석 씨, 괜찮아요?’예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여기서 무슨 일이 발생하든 여기서 어떠한 죄악이 일어나든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든 이 모든 것들은 현석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야 한다.예나는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예나의 작은 세상에는 네 명의 아이들과 현석밖에 없다.사랑하는 그들이 안전하고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다.예나는 지금 가능한 한 빨리 현석을 데리고 전쟁으로 가득 찬 이곳을 떠나고 싶다.“아빠가 보스 자리에 앉은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고 주위에는 불안 요소가 너무 많아요.”제훈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밖에 3대 당파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내부 장로제도는 극도로 불균형하며 정치와 경제적 격차도 너무 커요. 이런 구조라면 조만간 반드시 문제가 일어날 거예요.”‘역시나 똑똑한 녀석이야!’카엘은 다시 한번 제훈의 높은 아이큐에 탄복했다.이런 이론은 역사 정치 선생님께서만 들은 적이 있지 4살 난 아이의 입에서는 처음으로 듣는다.‘내가 헛살았나?’카엘은 이런 제훈을 볼 때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의심하곤 한다.“엄마, 우리가 아빠 도와줘야 해요.”세훈은 목소리가 쉬었다.“아빠 혼자 어렵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많은 사람이 아빠를 죽이고 싶어 할 거예요. 그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달이 휘영청 밝아 있다.창문이 가볍게 두드려지는 소리를 듣고 예나는 단번에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예나는 외투를 걸치고 커튼 한쪽을 조금 벌려 밖을 내다보았다.“저예요.”어둠을 뚫고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예나는 소리에 따라 시선을 움직였고 검은색 망토를 입은 트레이북이 베란다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트레이북은 금색 가면을 쓰지 않았고 얼굴의 흉터는 달빛 아래에서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트레이북의 이목구비, 얼굴의 윤곽, 입술을 오므리는 모습까지 기억 속의 현석과 똑같았다.예나는 손을 들어 문을 열어주었다.트레이북은 차가운 밤바람을 안고 베란다로 걸어 들어왔다.칠흑 같은 트레이북의 눈동자는 밤하늘에서 더욱 어둡고 밝아 빛이 났다.그뿐만 아니라 마치 소용돌이처럼 치명적인 유혹도 띠고 있다.예나는 단번에 빨려 들어갔고 심장이 쿵쾅쿵쾅 걷잡을 수 없이 뛰는 소리도 들렸다.예나는 일부러 침착하며 말했다.“갑자기 왜 왔어요?”“예나 씨 보러 왔어요.”트레이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며 예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보고 싶었어요?”트레이북은 갑자기 손을 들어 예나의 어깨 위에 놓았다.그 손은 마치 불타는 숯과 같아서 올려놓자마자 예나의 가슴을 화끈 달아오르게 했다.예나는 당황한 나머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피했다.방에 불이 켜져 있지 않는 상태라 예나는 뒤에 있는 쓰레기통을 보지 못해서 하마터면 걸려 넘어질 뻔했다.다행히 트레이북의 손이 재빨리 예나의 잘록한 허리를 감쌌다.“왜 피해요?”트레이북은 예나의 귓가로 다가가 속삭였다.“전에 해독제가 되어주겠다며 내 품으로 달려들지 않았어요?”예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전에는 그럴만한 상황이 있었고 지금은 그 전과 다른 상황이다.예나는 트레이북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힘껏 발버둥 쳤지만, 더 꽉 안겨졌다.“그때는 그쪽이 다쳐서 상황이 급했고 지금은 다르잖아요.”예나는 입술을 오므렸다.“지금은 기억을 잃었고 트레이북인데, 현석 씨로 돌아오면 그
예나의 말을 듣고 피터는 한숨을 돌렸다.피터는 최면에 쓰일 물건을 찾으러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저 사람 믿을 만해요?”트레이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정말로 기억 되찾아 줄 수 있어요?”그러자 예나는 나지막이 말했다.“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번 해 보아야 해요.”만약 정말로 방법이 없다면, 예나는 캐서린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하지만 지금 캐서린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다.피터는 곧 상자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그리고 상자를 열고 물건을 가지런히 꺼내 놓았다.트레이북을 앉힐 의자도 끌고 와서 입을 열었다.“자, 지금부터 긴장을 풀어주세요.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것처럼 최대한으로 몸이 나른 해져야 합니다. 미간도 풀고 안정감을 되찾도록 노력해 주세요.” 트레이북의 표정은 피터의 말에 따라 점점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확실히 전보다 극도로 느슨해졌다.“좋아요, 지금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뭔지 말해줄 수 있어요?”트레이북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제가 깨어난 곳은 아주 어두운 곳인데, 피비린내가 진동해요. 주변에는 온통 상처를 입은 사람이고 저도 몸에 상처를 조금 입었어요. 얼굴에 상처를 가장 크게 입었는데, 미처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이렇게 흉터가 남았어요.”여기까지 말하자 예나는 갑자기 손가락을 움켜쥐었다.트레이북을 바라보는 눈빛은 복잡함으로 가득 차 있다.“계속 얘기해도 좋아요.”피터가 부드럽게 말했다.그러자 트레이북은 갑자기 눈을 치켜떴다.“예나 씨, 먼저 좀 나가 있어 줄래요?”트레이북이 앞으로 말해야 할 기억들은 조금 전에 말했던 것 보다 100배 나 잔혹하다.트레이북은 예나가 그 말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피터는 트레이북의 뜻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최면술을 할 때 제3가 현장에 없는 게 좋아요. 나가서 기다려요.”예나는 마지못해 밖으로 나갔고 나가자마자 숨을 죽이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려고 했다.그러자 애석하게도 피터와 트레이북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왜 불렀어요?”“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난 봄꽃이 활짝 피어난 따뜻한 곳으로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는데, 예나 씨가 나타났고 누군가가 예나 씨를 데리고 가는 모습이 보였어요.”트레이북은 예나를 껴안았다.“현실감이 너무 넘쳤고 그 사람이 예나 씨를 내 삶에서 강제로 떼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분노도 아쉬움도 밀물처럼 밀려왔고 아주 강렬했는데, 일단 깨어나기만 하면 머리는 다시 백지상태가 되어버려요.”트레이북은 말하면서 갑자기 뒤통수에 따끔한 통증이 다시 밀려왔다.매번 과거를 기억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이처럼 머리가 아파진다.“인제 그만 생각해요.”예나는 일부러 입꼬리를 올리며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했다.“아이들이 이거 좀 전해달라고 했어요.”예나는 침대 옆으로 가서 베개 밑에 있는 서류를 건네주었다.“세훈이랑 제훈이가 같이 알아낸 정보예요.”트레이북은 서류에 적힌 내용들을 보다가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세훈이, 제훈이, 블랙 넷에서 닉네임이 사나이와 도보스 맞죠?”“맞아요, 전에 현석 씨한테 도움을 많이 줬었다고 그랬어요.”예나의 두 눈은 약간 실의에 빠졌다.“내가 현석 씨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기 전에 아이들과 이미 동맹군이 된 거였어요.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그래서 조금만 더 일찍 와서 도움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이렇게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고 몸에 상처도 남지 않았을 텐데.’“지금도 늦지 않았어요.”트레이북은 갑자기 또 예나를 껴안았다.그러자 예나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왜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는 거지?’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예나는 지금의 상황이 마냥 부끄러웠다.예나는 헛기침하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척하며 말했다.“이 서류를 다 보고 드는 생각이라도 있어요?”트레이북은 예나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풀어주며 헛기침했다.“어떤 사람들의 내력은 대체로 잘 알고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중용하려고 했는데, 이미 다른 조직으로 넘어간 줄은 몰랐어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