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쉽지 않을 거야.”제훈이 쓴웃음을 지었다.“아빠는 마피아 우두머리니까 그렇게 빠르게 자리에서 물러날 수 없을 거야. 권력 다툼에서 죽거나, 이 구역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다음 우두머리에게 넘기거나 둘 중 하나일 거야.”서재가 조용해졌다.한편, 별장 마당에서 놀고 있던 세윤과 수아의 기분도 많이 우울해 보였다.수아는 작은 삽으로 마당 흙을 파고 있었는데,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했다.“수아야, 왜 울어?”세윤이 손에 쥔 장난감을 내려놓고 빠르게 수아에게 달려갔다.수아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있었다.“오빠, 나 아빠 보고 싶어. 아빠가 너무 보고싶어…….”“나도 아빠 보고싶어…….”세윤도 덩달아 훌쩍였다.“하지만 엄마는 아빠가 기억을 잃었다고 했어. 우리가 보러 간다고 해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그 말에 수아는 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까만 눈동자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우리 엄마한테 가서 아빠 보러 가자고 해보자, 그러니까 그만 울어…….”세윤은 수아의 눈물을 닦아주고 거실로 달려갔다. 예나는 지금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굳은 표정이었다.세윤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조용히 마당으로 돌아왔다.“수아야, 엄마가 지금 많이 바쁜 것 같아. 엄마가 볼일을 끝내면 다시 물어볼게.”수아는 아무 말없이 눈물을 삼켰다.이런 그녀의 모습에 세윤은 마음이 아팠다…….그러다가 드디어 결심한 듯 굳센 말투로 말했다.“수아야, 울지마. 내가 데려다줄게.”수아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던 눈에 놀라움이 담겼다.“그런데 엄마는 아빠가 있는 곳이 위험하다고 했잖아…….”“형이랑 제훈이도 안전하게 돌아왔잖아.”세윤이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나는 제훈이보다도 형이니까 내가 널 지켜줄 수 있을 거야. 나랑 갈래, 수아야?”수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아이도 충동적인 감정이 들었다.세윤이 낮은 목소리로 수아에게 말했다.“민준 삼촌의 기사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아빠 얼굴 한 번만 보고 오는 거야. 한 시
세윤은 수아를 데리고 순조롭게 막힘없이 H 지대로 들어왔다.“여기 경호원 아저씨도 많고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도 않아.”세윤은 이리저리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수아에게 말했다.“수아야, 오빠가 지도를 봤는데, 아빠가 계시는 곳은 저쪽이야. 우리 얼른 아빠 만나러 가자.”세윤의 말을 듣고 수아의 두 눈은 더없이 초롱초롱해졌다.그리고 두말하지 않고 세윤을 따라 핵심 별장 구역으로 달려갔다.별장 입구에는 군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화가 잔뜩 난 얼굴로 엘리자가 지금 그 차에 타 있다.‘짜증 나!’김두철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이곳은 엘리자가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그런 곳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들어가지도 못한 채 밖에 가로막힌 그런 신세가 되어버렸다.엘리자는 마피아 가문의 아가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마피아 본거지에도 발을 마음대로 들여놓지 못한다.모든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 기분이 들지 않을 수밖에 없는 엘리자이다.엘리자는 차가운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집으로 가게 차 돌려!”‘트레이북! 두고 봐!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빌게 될 날이 올 거야!’차가 방향을 바꾸자마자 엘리자는 길모퉁이에서 달려오는 두 아이를 보았다.“차 세워.”엘리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두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엘리자는 전에 별장에서 두 남자아이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들이 트레이북과 거의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했었다.지금 엘리자는 또 다른 두 아이를 보았는데, 이번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트레이북과 판박이라는 느낌이 단번에 들었다.‘다 같은 아시아계 사람이라서 그런가?’엘리자는 그들이 모두 아시아계 사람이라 비슷하게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한편, 세윤은 수아의 손을 잡고 별장 입구의 경호원에게 달콤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저씨, 안녕하세요! 저희 트레이북 선생님을 뵙고 싶어서 그러는데, 대신 좀 전해줄 수 있으세요?”두 아이의 순진무구한 모습을 보고 하루 종일 전
엘리자의 두 경호원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가 각자 한 명씩 들어 올렸다.공중으로 들어 올려진 세윤은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당장 놔줘! 이 마귀할멈! 우리 아빠 나오면 너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반드시 복수해 줄 거야! 놔!”세윤은 화를 내며 자기 나라 언어로 말했는데, 엘리자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비록 알아듣지 못했지만, 엘리자는 어느 정도로 이 꼬마가 자기를 욕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너무 시끄러워, 좀 조용하게 해 봐.”엘리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경호원은 명령을 듣고 망설임 없이 세윤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세윤의 오른쪽 뺨은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어떻해 감히 나를 때릴 수 있어!’세윤은 멍하니 두 눈을 부릅뜨고 순간 발생한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었다.“이제 좀 조용해졌네.”엘리자는 앞으로 다가가 손을 들어 세윤의 턱을 들어 올렸다.“뭐 얼굴은 그런대로 잘 생겼네. 힘도 좋아 보이고, 아빠한테 술안주 드리면 딱 좋겠어.”엘리자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세윤은 입을 벌려 엘리자의 손등을 꽉 깨물었다.“미친 XX! 당장 놔!”경호원은 화들짝 놀라서 얼른 세윤의 턱을 잡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엘리자의 손등에는 피가 났고 지나친 아픔으로 얼굴까지 일그러졌다.화가 제대로 터진 엘리자는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저 XX 반쯤 죽여 놔! 그리고 저 XX 이도 한 번에 말고 천천히 하나씩 깨뜨려!”이때 다른 경호원이 입을 열어 물었다.“아가씨, 이 여자애 이도 하나씩 깨뜨려야 합니까?”“아니, 예쁘게 생겼는데, 이가 없으면 얼마나 아깝겠어.”엘리자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깨끗이 씻어서 저기 빈민가로 보내! 나를 건드린 대가가 얼마나 아픈지 제대로 보여주겠어!”“네! 알겠습니다!”두 경호원은 엘리자의 심복이다.여러 해 동안 엘리자를 지켜 오면서 이미 손에 수많은 피를 묻혔다.하여 두 아이가 자기들 손에 죽는다고 해도 그 어떠한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경호원은 손을 들어 세윤의 입을 강
트레이의 두 눈은 한겨울의 칼바람처럼 차가워졌다.품속의 안겨있는 아이는 벌벌 떨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대로 트레이북의 목으로 굴러떨어졌다.아이의 눈물에 가슴이 갑자기 불에 데기라도 한 듯이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트레이북은 허리를 굽혀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괜찮아, 눈 감고 있어.”수아가 눈을 감자 맺혀있던 눈물방울은 볼을 타고 뚝뚝 굴러떨어졌다.트레이북은 고개를 숙이고 또다시 입을 열었다.“너도, 눈 감아.”그러자 세윤은 순순히 두 눈을 꼭 감았다.팡팡-곧이어 총성이 연거푸 두 번 울리자, 엘리자는 비명을 질렀다.‘아! 말도 안 돼!’엘리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 경호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방금 손과 다리만 다쳤던 두 경호원은 어느새 차가운 주검으로 변해버렸다.두 경호원은 엘리자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고 엘리자를 위해 그들은 수많은 죄를 대신 지었다.‘죽었어?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트레이북!”이사벨은 히스테리를 부렸다.“네가 오늘 저지른 일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는 날이 올 거야! 네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 그 반대편에 내가 있을 거야! 딱 기다려!”트레이북은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트레이북은 문 앞에 누워 있는 시체 두 구를 한 번 보고는 담담하게 분부했다.“깨끗하게 처리해.”말을 마치고 트레이북은 세윤도 품속으로 껴안았다.그리고 두 아이를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갔다.“이제 눈 떠도 돼.”트레이북의 말이 떨어지자 두 아이는 바로 눈을 떴다.안개가 자욱한 눈동자 속에는 찬란한 빛이 반짝였다.이러한 빛에 트레이북은 예나의 두 눈에 그렸던 찬란한 빛이 떠올랐다.예나와 판에 박힌 듯 똑같았다.“아빠! 왜 이제야 나타났어요?”“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요. 저 기억나세요?”두 아이는 새까만 눈동자를 부릅뜨고 트레이북을 바라보며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이러한 모습에 트레이북은
트레이북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일단 지내던 곳으로 돌아가, 여기 안전하지 않아.”수아는 즉시 트레이북의 소매를 붙잡고 매달렸다.“아빠, 아직 제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저 가기 싫어요.”세윤도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정말로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 어떻게 힘들게 찾아온 엄마한테 이럴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우리 알아보지도 못하고…… 쫓아내고…… 아빠 꼭 후회하는 날이 올 거예요.”아이의 말에 트레이북은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갈기갈기 찢기는 듯했다.트레이북은 단지 아이들이 자기를 따라 위험을 무릅쓰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그리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반드시 먼저 확실하게 알아내야 했다.만약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고 애들한테 돌아가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다음에는 이렇게 운이 있을지도 단언할 수 없다.“울지 마.”트레이북은 서투르게 세윤과 수아를 위해 눈물을 닦았다.“일이 끝나면 보러 갈게.”“거짓말!세윤은 울먹이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저랑 수아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찾아오기는 뭘 찾아와요!”수아도 흐느끼며 말했다.“아빠, 배가 너무 고파요. 뭐 좀 먹고 가도 돼요?”트레이북은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다른 사람 있을 때 나보고 아빠라고 부르지 마, 알았어?”트레이북의 표정은 매우 엄숙하고 진지했다.세윤은 갑자기 큰형의 했던 말이 떠올랐다.큰형은 전에 아빠 신변에 있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적이라고 했었다.하여 세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저도 수아도 아빠라고 부르지 않을게요.”“그래.”트레이북은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리고 하인에게 음식을 가져오라고 분부했다.두 아이는 긴 식탁 옆에 얌전하게 앉아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곧 두 아이의 앞에는 십여 가지 각양각색의 음식이 올라왔고 모두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음식이다.이때 루이스가 황급히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보스, 예나 씨가 밖
“아빠, 저 가기 싫어요.”“저 아직 다 먹지도 못했어요.”세윤과 수아는 동시에 입을 열었고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가련하게 트레이북을 바라보았다.트레이북의 차갑고 딱딱한 마음은 순식간에 말랑말랑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하여 트레이북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천천히 다 먹고 가도 돼.”‘뭐?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옆에서 지켜보던 예나는 어리둥절해졌다.두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에 트레이북은 응했다.트레이북은 전에 예나의 말에 의문을 던졌었다.‘그때는 그렇게 말하더니, 왜 지금은 아빠라는 소리에 대답하는 거야?’세윤은 예나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빠가 남들 없을 때는 아빠라고 불러도 된다고 그랬어요.”세윤은 이 말을 예나에게 할 때 두 눈에는 온통 찬란한 빛이었다.한 번 잃어봐야 비로소 아빠가 감싸주는 느낌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었다.예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식탁에 앉아 있는 트레이북을 바라보았다.트레이북도 이때 고개를 들어 담담하게 예나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공중에서 눈이 마주쳤고 맑은 공기 속에서 시선이 융합되었다.예나는 트레이북의 동공 깊은 곳을 바라보았는데, 순간 모든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다.설사 기억이 지워진다고 하더라도 혈연과 감정의 견인은 영원히 지워질 수 없다.바로 이때 때아닌 소리가 들려왔다.“택아.”최미연 부인이 걸어 들어왔다.트레이북을 부르며 무언가를 말하려던 참에 식당에 모르는 사람이 세 명이나 있는 것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택아, 이분들은?”최미연 부인의 소리에 트레이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이분들이 누군지 사모님과 상관없습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직접 말씀하시죠.”최미연 부인은 트레이북의 예리한 눈빛에 가슴을 철렁거렸다.더 이상 예나와 두 아이의 신분을 탐구하지 못하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언제쯤 집으로 돌아올지는 결정했어?”트레이북은 고개를 들고 차갑게 말했다.“당분간 돌아갈 생각 없습니다
입구에 도착해서야 최미연 부인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루이스, 저 여자 누구야?”“보스 사업 파트너입니다.”루이스는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태도로 말했다.“보스와 예나 씨는 업무상으로 나눠야 할 일들이 있어서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는 겁니다. 먼저 돌아가시고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최미연 부인은 고개를 돌려 식당을 한 번 보더니 달갑지 않아 하며 떠났다.최미연 부인의 그림자가 문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예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엄마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저분인가요?”트레이북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분간 어떤 목적인지 알 수 없어 일단은 가만히 둘 수밖에 없어요. 급해지면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겠죠.”‘다행이다.’트레이북의 말을 듣고 예나는 시름을 놓았다.트레이북이 최씨 가문에 대해 방어만 하고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예나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만사에 조심하시고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그럼, 먼저 아이들 데리고 가 볼게요.”음식을 다 먹은 두 아이는 순순히 일어서서 좌우로 나란히 예나의 곁에 섰다.현석은 핸드폰을 꺼냈다.“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게 연락처 알려 주세요.”예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서로 전화를 남겼다.예나는 마지막으로 트레이북을 한 번 보고서야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트레이북은 문 앞까지 나가서 세 모자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손도 흔들었다.트레이북의 곁을 지키며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레이가 어두운 곳에서 걸어 나왔다.트레이북은 담담한 목소리로 분부했다.“믿을 수 있는 사람 두 명 보내. 예나 씨를 포함한 저 아이들까지 제대로 보호할 수 있게끔 말이야. 그리고 작은 움직임이 있어도 나한테 언제든지 보고해.”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레이는 대답을 마치고 다시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마치 여태껏 나타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보스! 정보 떴어요!”경호원이 입구에서 뛰어 들어와 황급히 말했다
“너무 잘 됐다, 예나야!”민준은 진심으로 기뻐했다.그동안 예나는 생기와 활력을 잃은 난초처럼 열심히 살았지만, 온몸에 절망이 배어 있었다.민준은 마침내 예나의 몸에서 또다시 희망을 보았다.그리고 마침내 현석이라는 사람이 예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근데 그 사람 아직 떠날 수 없어.”예나는 어렴풋이 한숨을 내쉬었다.“그 사람 지금의 신분으로는 H 지대 세력은 물론이고 주변의 세력들도 항상 호시탐탐하고 있어. 순조롭게 빠져나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 일단은 기억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다른 건 천천히 하려고 그래.”“맞다! 내가 너무 좋아서 잠깐 깜빡했어!”민준은 자기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방금 피터 씨 도착했어.”민준은 황급히 예나를 데리고 방안으로 걸어갔다.예나는 거실로 시선을 돌렸는데, 소파에 붕대를 칭칭 감은 피터가 누워 있었다.지난번 병원에서 남천은 사람을 시켜 피터를 반쯤 죽여놓았다.불과 일주일만이라 아직 회복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예나는 피터를 보고 더욱 미안해했다.“피터 씨는 무슨 일로 또 불렀어?”“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최면술사는 10명을 넘지 않아. 대부분은 사령부를 위해 봉사하고 또 일부는 황실 부자들이 독점하고 있어. 피터만 자유로운 몸이야.”민준은 목소리를 낮추었다.“그 캐서린은 너무 재수 없잖아! 설마 내가 캐서린을 불러오기를 원한 건 아니지?”“예나 씨, 저한테 은혜 제대로 갚아야 해요.”피터는 소파에 누워 울부짖었다.“예나 씨 때문에 반년 동안 진찰도 볼 수 없을 거 같아요.”세훈은 껍질을 벗긴 포도 한 알을 입에 넣어 주었다.“피터 아저씨, 앞으로 끼니마다 제가 책임지고 먹여드릴게요.”제훈도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저는 책임지고 샤워해 드릴게요.”수아도 다가와서 앳된 소리로 말했다.“저는 머리도 빗겨 드리고 스킨로션도 발라 드릴게요.”“그럼, 저는 마사지 책임지고 시원하게 해드릴게요. 하루빨리 완쾌하시기를 바랍니다.”세윤은 피터의 부러진 다리에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