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까지 연루되게 하고 싶지 않아! 아이들만 대신 좀 챙겨줘.”예나는 다짜고짜 거실을 나와 문을 꼭 닫았다.별장 입구의 철책 쪽으로 걸어가서 호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무슨 일입니까?”“보스 트레이북이 당신을 만나려고 합니다. 같이 가시죠.”예나는 눈동자가 반짝였다.지난번에 만났을 때 이 남자는 합작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었다.‘결정을 내린 것일까?’아이들의 이 길은 분명히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예나는 방긋 웃었다.“네, 잠시만요.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두 호위는 이 여자가 보스의 파트너라는 것을 알고 너무 윽박지르지 못하고 공손하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예나가 들어가자, 네 아이가 에워쌌다.“엄마, 괜찮아요?”“트레이북은 나와 합작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 같아.”예나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직접 가서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의논해야겠어.”아이들이 우거지상을 하는 것을 보고 예나는 진지하게 말했다.“세훈이도 말했듯이 트레이북은 사실 그리 무서운 존재가 아니야. 그러니 걱정들 하지 마!”카엘은 입을 삐죽거렸다.‘나만 무서운 거야?’카엘은 입을 벌리고는 이 말을 하려고 했지만 도로 삼켰다.원래 아이큐가 도제훈 보다 못하기 때문에 담력까지 절대 더 이상 억눌려서는 안 된다.“민준아, 애들 좀 돌봐줘, 금방 올게.”예나는 옷을 갈아입고 여유롭게 별장을 나와 군부의 차에 올랐다.차는 평온하게 도로를 달리다가 H 지대로 직접 들어가 핵심 지역의 별장 입구에 멈췄다.호위가 다가와 공손하게 차 문을 열었다.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한 후 하이힐을 밟고 안으로 걸어갔다.들어가자마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왔다.검은 두루마기를 두른 어르신들이다.예나는 전에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다.마피아 내부 구조의 장로제이다.모두 아홉 명의 장로가 있는데, 각 장로는 모두 크거나 작은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지역을 관장하고 있다.이 장로들이 서로 말하면서 거실에서 걸어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2층에서 내려와 카리스마를 띠고 있다.이런 트레이북을 보면서 대장로의 얼굴은 다소 차가워졌다.김두철이 집권할 때 그는 매번 회의를 열 때마다 발언의 무게가 매우 무거웠지만 트레이북으로 바뀌어 수령이 된 후 회의 발언은 늘 무시되었다.어떤 중요한 건의를 하든 트레이북은 전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예를 들면 오늘, 경제건설에 대한 제의는 중시를 받지 못했으며 더우기는 아무런 피드백도 없었다.그는 대장로인 자신이 점점 더 멸시당하고 있다고 느꼈다.대장로는 걸어오는 남자를 바라보며 지팡이를 메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여자는 분명히 다른 꿍꿍이가 있어. 난 단지 수령을 도와 주변의 잠재적 위험을 해결하고 싶을 뿐이다. 뭐가 잘못됐어?”트레이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꿍꿍이는 도대체 저 여자가 품고 있는지 대장로가 품고 있는지 말을 똑똑히 해야 하나요?”뭇사람 앞에서 이런 말을 듣자, 대장로는 정말 체면이 말도 아니었다.대장로는 소매를 세게 내동댕이쳤다.“이 구역은 내가 김두철과 함께 싸워 얻은 것이다. 구역마다 나의 심혈이 있다. 난 정말 모든 것이 한 여자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 트레이북, 네가 나를 탓해도 좋고, 나를 추방하고 싶어도 좋다. 근데, 난 반드시 저 여자를 제거해야 한다!”“여봐라, 저 여자 잡아라!”대장로가 불쑥 명령을 내렸다.예나는 마냥 할 말을 잃었다.여기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되었고, 핵심 지역에 온 지도 세 번도 안 되었는데, H 지대의 존망은 예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일까?대장로는 자신의 사심을 체우기 위해 군중들을 선동하고 있다.예나는 차갑게 눈썹을 찌푸리며 멀지 않은 곳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호위를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예나가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서 있던 남자는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대장로가 데리고 온 네 명의 호위는 순식간에 쓰러져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그러자 대장로의 안색이 더욱 더러워졌다.그는 마침내 트레이북이 우
트레이북은 잠긴 서랍을 열고 장부 한 묶음을 책상 위에 던졌다.“지난해 마피아 매출 장부입니다. 많은 곳에 문제가 있는데, 10곳만 찾아낼 수 있으면 됩니다.”예나는 장부를 받아 책상의 다른 한쪽에 앉아 자세히 뒤적였다.예성과학기술회사는 설립 초기에 회계를 초빙하지 않았다.재무 방면의 사업은 모두 예나가 책임 지고 있었다.장부를 보는 것은 예나에게 있어서 전혀 큰 난이도가 없었다.그리고 이 장부도 전문가가 만든 것이 아니다.전에 김두철의 친척이나 측근들이 손 글씨로 쓴 장부일 것이다.그중 허점은 백출이라고 할 수 있다.3분의 1도 보지 않았는데 예나는 이미 적어도 10개의 착오를 찾았다.예나는 장부를 들고 걸어가서 첫 페이지를 가리키며 말했다.“이것은 매우 허술한 회계 장부입니다. 첫 줄부터 틀렸어요.”트레이북은 열심히 예나의 말을 들었다.그취임 첫날부터 이 장부들을 보았는데, 아무렇게나 뒤져봐도 큰 문제가 있었다.하지만 트레이북은 문제가 있다는 것만 알고 이렇게 많은 전문적인 단어를 말하지 못한다.술술 말하는 예나를 보면서 이 방면에 대해 정말 공로가 있는 것 같다.재무 방면의 사무는 줄곧 이장로가 관장해 왔는데, 장부가 잘못되면 이장로는 쉽게 끌어내려질 수 있다.트레이북은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리듬 있게 두드리며 이장로를 물러나게 할 판을 머릿속에 세웠다.예나는 말을 마친 후 답장을 기다리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트레이북이 보였다.예나의 각도에서는 남자의 옆 라인을 볼 수 있다.머리카락은 검은색으로 딱 봐도 진나라 사람이다.그리고 몸에는 아직도 어렴풋이 익숙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예나는 머리가 갑자기 텅 비었다.걷잡을 수 없이 남자에게 한 걸음 다가갔고, 두 사람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그 냄새는 그녀로 하여금 5년 전의 그날 밤을 떠올리게 했고, 결혼 전의 뜨거웠던 밤이 생각났다.이것은 강현석만이 가지고 있는 냄새다.예나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예나는 다시 한번 이 남자의
예나는 멍하니 트레이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저는 남편이 있는 유부녀예요. 당신의 애인이 될 수 없으니 다른 소원을 들어 줄게요. 저는 단지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을 뿐이에요.”“남편이 있어도 괜찮아요. 애인만 해요.”트레이북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이에 예나는 온몸이 간질거렸다.현지에는 법규의 구속이 없으니, 여성들은 결혼하고도 권력 때문에 다른 남자의 애인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예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남편이 있는 여자에게 애인이 되어 달라고 말하다니.’‘이런 사람은 절대 현석 씨가 아니야!’‘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이런 사람이 아니야.’예나가 빠르게 뒷걸음질하며 말했다.“죄송해요, 지금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그녀가 나가려는데 갑자기 허리를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졌다.“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는 정거장 같은 곳이 아니에요, 여긴.”트레이북은 그녀를 힘껏 당겨 자신의 품으로 가뒀다.그는 익숙한 향을 맡았다. 익숙한 나머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그의 손은 점점 아래로 타고 내려가 어느새 여자의 골반까지 내려왔다…….예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녀는 바로 발길질했는데 트레이북은 바로 그녀의 발목을 감싸 쥐었다.그의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까슬까슬한 그의 손이 그녀의 피부에 닿자, 그녀는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찌릿했다.예나는 자신의 이런 모습이 창피했다.그래서 온 힘을 다해 자기 발목을 빼려 노력했지만, 트레이북은 그녀의 종아리를 덥석 잡아당겼다. 이에 그녀는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나랑 하룻밤만 보내요. 모든 소원을 들어 줄게요.”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욕망이 가득한 목소리였다.“꿈 깨세요.”예나는 트레이북의 손을 탁- 치며 말했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마치 강철처럼 단단해 그녀의 공격은 아예 먹히지 않았다.예나는 이를 악물고 남자의 가면을 잡아당겼다.조금만 힘을 주어도 가면이 쉽게 벗겨졌다.눈에 들어오는
트레이북은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맸다.여자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엘리자도 그의 앞에서 자주 눈물을 흘렸는데, 그는 오히려 반감이 들었었다.그러나 예나의 눈물에는 마치 심장이 찢기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트레이북의 물음에 예나는 엉엉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성남시에서 강남천과 함께 지내며 매번 위험에 처할 때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먼 H 지역까지 와서, 반복되는 희망과 실망을 겪으며 오랜 불면증에 시달릴 때도 그녀는 눈물을 삼켰다.그러나 현재,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내 남편이, 나를 알아보지 못해…….’“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예나가 울먹이며 물었다. 떨리는 목소리에 조금의 희망이 담겼다.트레이북은 입을 꾹 다물고 고민했다. 루이스에게서 전해 듣기를, 성이 도 씨인 여성이라고 했는데 이름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그는 입술을 매만지다가 말했다.“그만 울어요. 내 얼굴 보고 싶다면서요. 실컷 보게 해 줄게요.”그리고 자기 가면을 벗었다.눈물로 흐려진 시야로 그녀는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았다.얼굴 절반을 가로지르는 흉터는 길어야 한 달 전에 다친 상처 같아 보였는데 아직도 아물고 있는 중이었다…….‘대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얼마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왔을까…….’예나는 문득 캐서린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남천이 기억을 지우라고 했는데 계속 반복해도 당신의 이름만 외워 대서 기억을 지우는 데에 실패했어요……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현석 씨를 남천이 그곳으로 보냈어요…….”‘캐서린은 기억을 지우는 데에 실패했다고 했는데, 사실은 성공했던 걸까?’‘그래서 자신이 누구였던지, 내가 누구인지, 자기 자식이 누구였던 지도 모두 잊어버린 걸까…….’‘그렇다면 모든 걸 해석할 수 있어.’예나는 손을 들어 얼굴의 긴 흉터를 매만지며 울먹였다.“이 흉터는 어떻게 생긴 거예요?”그녀의 눈물과 부드러운 눈길, 트레이북은 마음이 약해졌다.“기억도 나지
“형님, 큰일 났습니다. 변경에 난입한 반란군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경호원이 초조한 표정으로 들어와 보고했다.트레이북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리고 예나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요.”그리고 그는 서랍에서 두 자루의 총을 꺼내 허리춤에 끼우고 경호원을 따라 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려왔다.예나는 창가에 서서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강씨 그룹 대표, 강현석. 원래대로면 성남시에서 대표직에 앉아 멀쩡히 비즈니스를 하고 있어야 할 사람이지. 그에게 있어 시련은 비즈니스의 실패거나, 제일 크게는 사업이 망하는 것, 이런 정도의 시련이 다였겠지만.’‘도대체 지금은 무슨 이유로 이런 곳에 남겨져, 어수선한 땅의 우두머리가 되어 위험이 닥치면 맨 앞에 서는 총알받이로 살아야 하는 걸까.’예나는 현석이 안타까웠다.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그의 서재를 둘러보았다. 여긴 아마도 김두철의 서재였던 것 같았다. 곳곳에 김두철 가문의 표식이 남아있었다.한 바퀴 다시 둘러보아도 트레이북이 바로 강현석이라는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은 없었다…….핵심 구역에서 나온 예나는 아직도 어리벙벙했다.‘전쟁터에 버려진 아픈 사람이, 짧디짧은 한 달 안에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 걸까?’‘현석 씨와 똑같은 얼굴 하나로, 내가 또 헛된 생각을 하는 걸까?’‘남천도 현석 씨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똑같게 생긴 사람들이 세상에 왜 이렇게나 많은건지…….’갓 피어오른 희망이 예나의 어지러운 머릿속으로 흩어져, 불안한 기대로 되어버렸다…….“엄마, 왜 그래요?”“엄마, 트레이북이 엄마를 괴롭혔어요?”“엄마 눈이 엄청 빨개요. 울었어요?”“트레이북 나쁜 사람! 내가 대신 혼내줄게요!”예나는 그제야 자신이 별장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예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 속에 걱정이 가득했다.‘내가 또 아이들을 걱정시
“얼굴에 아주 긴 흉터가 눈가부터 입가 주변까지 절반을 가로지르고 있어도, 현석 씨와 같은 얼굴인 건 틀림없었어.”“뭐라고?”민준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예나야,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아.”세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그니까 트레이북이 우리 아빠라고요?”“그럴 리가!”옆에 앉아있던 카엘이 무덤덤하게 말했다.“너희 아버지는 사업가였다며? 트레이북은 군인이야. 특전사 출신이고…….”세훈이 입을 매만지며 말했다.“어제 트레이북을 만날 때 음색이 우리 아빠랑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혹시 아빠가 아닐지 하는 의심을 했는데 나와 제훈이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니 아니라고 단정을 지었죠.”제훈이 입을 열었다.“정말 아빠라면 우릴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어요. 반드시 저희를 찾아왔을 거라고요.”예나가 이마를 감싸 쥐며 힘없이 말했다.“너희 아빠…… 어쩌면 기억을 잃어버린 걸지도 몰라.”“네?”수아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아빠가 우릴 기억 못 한다는 말이에요?”세훈도 깜짝 놀란 모습이었다.“왜 기억을 잃었는데요?”예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아마 캐서린의 짓이겠지. 전 세계 세 손가락 안으로 꼽히는 심리 상담사인 캐서린이 제일 잘하는 게 바로 최면술이야. 아마 최면술로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작업을 했을거고…… 그런데 캐서린이 현석 씨 기억을 얼마나 지웠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그녀가 알아본 결과 지운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돌아온다고 했다.하지만 뒤틀려 버린 기억은 다시 되돌리기 아주 힘들다고 했다…….“예나야, 트레이북이 바로 현석 씨라고 확신하는 거야?”민준이 인상을 쓴 채로 물었다.“현석 씨가 실종된 지 한 달이 지났어. 어떻게 한 달 만에 마피아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더구나 기억을 잃은 사람이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겠어? 예나야, 지금 현석 씨를 찾지 못해 조급한 마음을 이해해. 그래도 조금 더 신중하게 그 사람이 맞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아
“왜, 너도 몰라?”지원이 일부러 놀란 척 연기했다.강씨 가문이 철저히 숨기고 있던 터라 기사 한 줄 나지 않은 소식이었다.정지숙이 개인 탐정에게 하는 말을 엿듣지 않았다면 지원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내용이었다.더구나 예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사라졌다고 했다.정지숙이 개인 탐정을 풀어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지원이 민준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민준이 좋아했던 그 여자는 결혼하자마자 헤프게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갔다는 것을 알려주며 약 올리기 위해서였다.“강 부인이 도예나 하나 찾겠다고 사방을 뒤지고 있는데 아직도 못 찾았대.”지원이 더 약을 올리며 말했다.“너희 둘 사이가 너무 다정해서 난 또 너랑 도망갔다는 줄 알았지, 뭐야.”“이지원, 도예나가 누구랑 도망을 갔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민준이 차가운 미소를 보였다.“강 대표도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는데 네까짓 게 뭔데?”“허, 강현석은 이미 한 주일 동안 강씨 그룹으로 출근하지 않았어. 널 찾아가는 건 시간 문제야.”지원이 흥-하고 콧방귀를 꼈다.“설민준, 내가 경고하는데. 그 재수 없는 도예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강현석에게 밉보였다가는 설씨 그룹에 불똥이 튈 수 있어. 이게 다 너를 위해서하는 소리니까 아니꼽게 듣지 말고…….”이 말을 끝으로 통화는 종료되었다.민준은 온기 없는 눈길로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강남천이 한 주일 동안이나 출근하지 않았다면 H 지역까지 찾아올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네.’‘강남천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려야겠어…….’예나는 빠르게 식사 준비를 마쳤다. 이윽고 일곱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거실 텔레비전은 여전히 뉴스 프로그램이 틀어져 있었다.“제훈이 어머님 요리 솜씨가 정말 대단하세요. 다들 아시아에 맛있는 음식이 많다고 하던데, 여기에서 지낸 지 이틀 만에 다섯 근은 쪘을 것 같아요…….”카엘이 밥 한 숟가락을 입에 가득 넣으며 우물우물 말했다.예나는 조용히 카엘의 말을 경청하다가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폭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