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어떤 여자가 트레이북 애인이 되겠다고 너 보고 대신 전하라고 그랬어?”엘리자는 예쁘게 빨간색 매니큐어를 한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그 여자가 너한테 돈을 얼마나 줬어?”“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그런 거 아닙니다.”루이스의 이마는 순식간에 또다시 땀이 흥건해졌다.“너무 예쁘게 생겨서 제가 순간 넋이 나가 대신 말을 전해준 것뿐입니다.”그러자 엘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차갑게 웃었다.그리고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뽑아서 루이스에게 건네주었다.“이 카드 안에 10만 달러 있어. 한동안 부귀영화 누리면서 살기에는 충분할 거야. 이 돈 가지고 앞으로 다시는 이상한 여자들 트레이북한테 소개해 주지 마. 너희 경호팀 모든 경호원에게도 똑같이 전해. 그 어떤 여자도 도와주지 말라고.”루이스는 멍해져 되물었다.“무슨 뜻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기 바랍니다.”“트레이북은 내가 이미 찜해 놓은 남자야. 누가 나랑 맞선다면 그건 곧 우리 아빠랑 맞서는 걸로 간주할 거야.”엘리자는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며 말했다.“돈만 받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난 우리 아빠한테 네 손톱을 하나씩 뽑고 살을 갈기갈기 찢어서 바다로 던져버리라고 부탁할 거야. 그러니 알아서 해!”엘리자는 말을 마치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트레이북의 발걸음을 따라갔다.루이스는 10만 달러가 들어 있는 은행카드를 들고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앞으로 다른 경호원이 보스한테 여자를 소개해 주면 엘리자는 나한테 책임을 묻겠지?’‘참,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감당해야만 품을 수 있는 10만 달러구나!’루이스는 크게 한숨을 쉬며 느릿느릿 연회장으로 향했다.예나는 설민준과 구석에 있는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곁눈질로 루이스가 뒤에 있는 휴게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루이스는 풀이 잔뜩 죽어있었다.“일을 망쳤나 봐.”설민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이제 어떡해?”예나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고 덤덤하게 말했다.“조급해할 필요 없어. 연회는 이제
루이스의 말에 예나의 발걸음은 순간 멈추게 되었다.예나는 시선을 살짝 돌려 엘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트레이북 약혼녀였구나, 어제 성을 낼만 했네.’만약 예나가 이때 몸을 돌려 떠난다면 엘리자는 예나의 목적을 더욱 의심하게 될 것이다.하여 예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루이스를 옆으로 밀치며 더없이 담담하게 말했다.“저와 엘리자 씨와 아는 사이입니다. 좀 비켜주세요.”루이스는 단지 거대한 힘이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무슨 여자가 힘이 이렇게 세지?’루이스가 한창 예나의 힘을 의심하고 있을 때, 예나는 이미 트레이북과 엘리자 앞에까지 왔다.예나를 보고 엘리자는 마음속에 불안감이 가득했다.어제 예나는 남편이 있다고 했지만, 남편이 있다고 해서 다른 남자를 꼬실 수 없는 것은 아니다.게다가 어제 예나가 가져온 찻잎을 엘리자는 트레이북한테 자기 아빠가 어렵게 구해 온 진 나라의 특산물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만약 이 거짓말이 들통이라도 난다면, 엘리자는 트레이북 앞에서 몹시 난처할 것이다.‘안 돼! 절대 그렇게 둘 수 없어!’어제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자기에게 마냥 불리해지자 엘리자는 재빨리 앞으로 나가 앞을 막았다.“누구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그러자 예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엘리자 씨, 저 기억 안 나요? 어제 우리 만났었잖아요.”엘리자는 예나가 찻잎에 대해 언급할까 봐 안절부절못했다.‘제발 찻잎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어제 예나가 가져온 보이차에 트레이북은 매우 만족하여 엘리자에게 다소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어렵게 얻은 호감을 예나 때문에 망칠 수 없다는 생각이 가득했다.엘리자는 일부러 더욱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여기는 고급 비즈니스 회동 장소인데,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예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트레이북이 손을 들어 금지했다.트레이북은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눈앞의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저께 레스토랑에 있던 그 여자분 아닌가요?”예나는 예쁜 미소를 머금고
“괜찮을 거야.”예나는 안심하라는 듯 설민준을 향해 웃었다.그리고 응접실 문은 굳게 닫혀버렸다.화가 치밀어 오른 설민준은 주머니를 더듬으며 담배 한 대를 꺼냈다.“흥!”이때 엘리자가 차가운 웃음소리를 내며 다가왔다.“아내가 다른 남자하고 단둘이 한 방에 있는데, 걱정도 안 되세요?”“그쪽이 상관할 바는 아니잖아요?”설민준은 엘리자를 차갑게 쳐다보았다.“그쪽 약혼자나 똑바로 챙기세요.”왠지 모르게 설민준은 예나를 보는 트레이북의 눈빛이 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트레이북은 이 지역의 보스이다.만약 정말로 예나한테 다른 마음이 생긴다면 설민준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설민준은 라이터를 든 손을 덜덜 떨며 한참 동안 담배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X발!’그러자 엘리자는 또다시 설민준을 비웃었다.“찌질한 남자만이 자기 아내를 내세워 편의를 바꿉니다! 남자로서 부끄럽지 않아요?”설민준은 엘리자의 말을 들을 겨를이 없었다.담배를 한 모금 피우고 곧 숨을 죽였다.그리고 응접실 안의 소리를 들어 보려고 했지만, 방음 효과가 너무 좋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응접실은 매우 커서 트레이북은 베란다에 가까운 위치에 앉았고 예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두 사람이 지금 있는 이곳은 문에서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예나는 막 입을 열어 자기 의사를 표명하려고 했다.그러나 트레이북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그윽하고 차가운 칠흑 같은 눈동자로 조용히 예나를 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진나라 언어 할 줄 알아요?”예나는 트레이북의 이러한 눈빛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불현듯 떠올랐다.이런 정서에 다소 정신이 몽롱해져 겨우 시선을 거두고 진나라 언어로 말했다.“진나라 사람인데, 당연히 할 줄 압니다.”“그럼, 내가 하는 진나라 언어는 어떤 수준인지 한번 들어줄래요?”트레이북은 천천히 입을 열어 또박또박 말했다.예나는 순간 제자리에 굳어졌다.그저께 예나는 이미 트레이북의 목소리가 매우 익숙하다고 느낌이 들었었다.그리고 오늘 진나라 언어로 들으니 그 익숙
트레이북은 환하게 웃고 있는 예나를 바라보면서 약간 넋이 나갔다.예나의 웃는 모습도 말투도 작은 움직임도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뭐지? 이 익숙한 느낌은?”그러다가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트레이북은 손을 내밀었다.예나는 경계하며 뒤로 몸을 젖혔으나 트레이북은 예나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잡았다.트레이북은 정신을 잃고 손바닥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보면서 오랜만에 익숙한 향기가 풍겨왔다.“지금 뭐 하는 겁니까!”예나의 차가운 목소리는 단 한 번에 넋을 잃은 트레이북을 현실로 끌어들였다.“죄송합니다.”트레이북은 예나의 머리카락을 풀어주었다.얼굴에는 수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고 얇은 입술도 힘껏 오므리고 있었지만, 금색 가면 뒤에 가려져 있었다.하여 예나의 시점에서 보면 트레이북은 여전히 차갑고 위험하며 신비로워 보인다.“만약 합작을 원하지 않는다면,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예나는 갑자기 일어서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무엇이든 바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몸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랑은 베푸는 것이고 주는 것이다.마찬가지로 사랑이란 단어에는 충성과 고수가 따른다.“제가 언제 협조하기 싫다고 그랬나요?”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찾고 싶은 사람이 누군지 말씀해 보세요.”예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입술을 오므리며 고개를 돌렸다.“정말로 찾아줄 수 있는 겁니까?”“그 사람이 누군지부터 말씀해 주세요.”“제가 찾으려는 사람은 아시아계 남자입니다. 한 달 전 H 지대에서 실종됐습니다.”예나의 목소리는 다소 젖어 들었다.“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의 진술로는 20여 일 전이라고 합니다.”예나의 정서는 갑자기 가라앉았는데, 마치 활짝 핀 꽃이 갑자기 시든 것 같았다.그런 예나를 바라보면서 트레이북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미어졌다.이 통증은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서 손가락까지 약간 뻣뻣하게 웅츠러들었다. 트레이북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사람과 어떤 관계입니까?”“제 남편입니다.”예나는 두
불현듯 서글픈 감정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그러한 감정이 생겨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마냥 괴롭고 한동안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트레이북은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H 지대에서 사람을 찾는 건 어렵지 않지만, 다른 세력의 반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저도 며칠간 고민해 봐야 합니다.”예나의 예상에 이러한 반응도 있었다.하여 예나는 당황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네, 그럼, 답장 기다릴게요.”예나는 트레이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여유롭게 바깥쪽으로 걸어갔다.응접실 문을 열고 한 걸음 나가자마자 화사하게 차려입은 여자에게 길이 막혔다.엘리자의 푸른 눈동자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엘리자는 목소리를 낮추어 냉랭하게 말했다.“남편도 있으면서 다른 여자 약혼자한테 꼬리를 치는 게 취미세요? 진나라의 여자들은 모두 이렇게 뻔뻔하나요?”“엘리자 씨, 좀 가리면서 말씀하시죠! 예나는 차갑게 말했다.“전 트레이북 씨와 비즈니스 합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부디 그런 추악한 마음으로 추측하지 말아 주시죠."“굳이 문을 닫고 할 필요는 있을까요?”엘리자는 점점 이성을 잃어 가듯 목소리도 다소 불안정했다.“경고하는데 내 약혼자한테서 멀리 떨어져요. 그렇지 않으면 평생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하게 내가 그쪽 얼굴 망가뜨릴 겁니다.”그러자 예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굳이 문을 닫은 이유는 엘리자 씨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입니다.”“근데 약혼자라는 사람이 왜 이토록 자기 약혼녀를 방비하는 지 곰곰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엘리자는 화가 치밀어 얼굴도 화끈 달아올랐다.예나는 그런 엘리자를 한 번 힐끗 보고는 설민준 곁으로 다가가 담담하게 말했다.“좀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 우리 그만 가자.”설민준의 눈빛은 예나의 몸 위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그렇게 여러 번 훑어보더니 한숨을 돌렸다.“그래, 집에 가자.”오는 내내 설민준은 머뭇거리기만 하고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뭐? 누구라고?’예나는 이름을 듣자마자 멍해졌다.예나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두 아들이 세윤이를 노려보는 것을 보고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예나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친구가 트레이북라고?”“맞아요! 트레이북 맞아요!”강세윤은 흥분하여 말했다.“트레이북이 엄청 대단하다고 제훈이한테서 들었어요. 이쪽 지대의 보스라는 소리도 있던데, 지금 형이랑 제훈이는 그 사람한테 우리 아빠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러 가는 길이었어요.”예나는 도제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제훈아,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해.”도제훈은 입술만 오므렸다.‘더 이상 속일 수 없을 것 같아.’‘이럴 줄 알았다면 세윤이 끼어들지 못하게 해야 했는데.’도제훈은 고개를 들어 얌전한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엄마도 제가 해커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트레이북을 알게 되었고 무심결에 몇 번 도와줘서 자연스레 친구가 된 거예요. 저도 H 지대에 도착해서야 트레이북이 보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근데, 트레이북은 내 정체에 대해 모르고 있어요.”“그럼 됐어.”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다른 사람보고 대신해서 가게 하자.”어린아이 둘이 마피아의 두목을 만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예나는 어느 아이라도 이러한 모험을 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옆에서 지켜보던 설민준이 엄숙하게 말했다.“너희들 대신 해서 내 쪽의 경호원을 보낼게. 트레이북과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해 봐.”“전문적인 해커는 경호원이 사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예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차라리 내가 가는 것이 낫겠어. 나도 어느 정도 해커에 대해서 알고 있어서 티가 나지 않을 거야.”“너무 위험해.”설민준은 예나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았다.“겉으로는 트레이북과 합작하려고 하고 사사로이 또 해커의 신분으로 친구가 됐다고? 네가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고 의심할 게 뻔하잖아.”도제훈은 손가락을 꽉
두 발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별장 정원의 경호원 두 명이 달려들어 그를 에워쌌다.“아니에요! 오해에요!”남자는 두 손을 번쩍 들고 그다지 유창하지 않은 진나라 언어를 구사하며 말했다.바로 이때 별장의 문이 열렸다.그러자 청년은 흥분하여 말했다.“도보스, 접니다! 저 K, 카엘입니다!”설민준은 청년을 위아래로 자세히 훑어보았다.“정말로 카엘 맞아요?”‘대단하다고 두 녀석이 침이 마를 정도로 말했는데, 왜 이렇게 약해 보이지?’“당연하죠! 저 카엘 맞아요!”카엘은 얼른 경호원의 속박에서 벗어났다.“근데 도보스 너무 멋지신 거 아닙니까? 몇 년도 생입니까? 누가 형인지 한 번 봐요.”설민준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저 도보스 아닌데요.”그러자 카엘은 급히 방안으로 돌진했다.카엘과 도보스는 알게 된 지 어느덧1년이 넘었고 두 사람은 동업하여 작업실까지 열었다.하지만 지금까지 동업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카엘은 막 뛰어 들어가자마자 예나가 위층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예나는 이미 아래층의 소란을 들은 상황이라 담담하게 말했다.“카엘 씨, 안녕하세요, 저는 도예나라고 합니다.”“도”라는 성을 듣고 카엘은 흥분했다.‘이거였어? 이래서 사진을 보내주지 않은 거였어?’도보스는 줄곧 사진을 보내주기 싫어했고 카엘이 자기의 얼굴을 보게 된다면 틀림없이 놀랄 것이라고 했었다.카엘은 줄곧 도보스를 남자로 생각했었다.하지만 요즘 세상에 음성 변조 기계도 있으니, 남자로 위장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너무 예뻐.’해커가 이렇게 예쁘게 생긴 것은 보고 카엘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카엘은 몸에 손을 닦고 허리를 구부리고 다가갔다.“도보스, 반갑습니다. 이렇게 미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말하면서 카엘은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예나는 그런 카엘의 모습에 말 문이 막혔다.‘웃기는 사람이네.’예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 도보스가 아니라 도보스 엄마예요.”‘뭐? 엄마?’카엘은 순간 사고가 정지되었다.‘기껏해야 20
카엘은 늘 도보스가 자기보다 나이가 좀 많은 30대 정도로 생각했었다.사나이는 매번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어른스러워 적어도 40세는 된 줄 알았다.그러나 지금 카엘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뜻밖에도 4살 난 두 아이다.카엘은 당연히 이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하지만 두 아이가 입을 열자마자 한 말은 그로 하여금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했다.“K, 중요한 일이 있어서 불렀어.”도제훈은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했다.카엘은 충격에서 휩싸여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도 못한 채 소파에 앉았다.“나를 대신해서 트레이북 만나러 가야 해.”도제훈이 입을 열었다.“나하고 트레이북 사이의 일은 잘 알고 있을 거니 더는 말하지 않을게.”“이번에 트레이북을 만나게 되면 마피아 중의 아시아계 군인 명단에 대해서 알아봐.”도제훈은 말을 조리 있게 하고 논리성이 매우 강하다. 비록 앳된 목소리지만 성인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리가 명확하다.하여 카엘의 좌절감은 더 강해졌다.카엘은 자신의 가문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이다.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카엘을 영광으로 여긴다.하지만 누군가의 자랑인 카엘은 지금 네 살짜리 아이 밑에서 부하로 움직이고 있다.카엘은 줄곧 자신이 대단하다고 자신감이 넘쳤었다.그러나 네 살 난 두 아이를 마주하니 순간 헛된 삶을 살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난 4살 때 뭐 했더라? 소꿉장난? 딱지치기?’“너무 의기소침하지 마세요.”설민준은 카엘의 어깨를 두드렸다.“저도 요 몇 년 동안 제훈이한테 받은 충격 속에서 성장했어요.”설민준의 졸렬한 해킹 기술은 제훈이가 조금씩 가르쳐줘서 비로소 조금씩 기초를 갖추게 된 것이다.일 년 내내 서너 살짜리 아이에게 충격을 받아 왔으니 이미 일찍이 강인한 의지를 지니게 되었다.“카엘 씨, 이 일은 어느 정도 위험성이 있으니 잘 생각하시고 결정해 주세요.”예나가 옆에서 담담하게 일깨워 주었다.그러자 카엘은 큰 손을 흔들었다.“우리는 트레이북과 오랜 친구입니다. 애초에 트레이북이 단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