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귀에도 두꺼운 굳은살이 있는 걸 보아, 총을 사용하는 일도 자주 있은 모양이었다.‘강현석 씨 주위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는 거지?’그녀는 1~2초 사이에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금세 생각을 접어두고 강세훈 앞으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세훈아, 김 보좌관님이랑 먼저 집에 돌아가 있을래? 엄마는 늦게 돌아갈 것 같아.”강세훈은 방금 정말 공포를 느꼈다.아이는 아버지가 예전과 다르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너무 많은 새로운 정보에 강세훈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먼저 가볼게요. 엄마, 안녕.”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보좌관을 따라나섰다.아이가 떠나는 걸 눈으로 확인한 도예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소파 위로 앉으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어떤 모임인데요?”“그냥 비즈니스 모임이에요.”강남천이 덤덤하게 말했다.“참석하고 싶지 않다면 강요는 하지 않을게요.”“내가 가지 않는다고 하면 캐서린과 함께 갈 건가요? 아니면 주 비서?”도예나가 두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불화설이 있는 이 상황에서 내가 참석하면 불화설이 사그라지지 않겠어요? 참, 새로 산 드레스가 없는데 드레스 보러 같이 갈래요?”강남천은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오전 10시, 연회까지는 아직 두 시간 정도 있었다.그는 회색 금고를 서랍 안에 넣으며 말했다.“가요, 드레스 사러.”도예나는 그에게 팔짱을 걸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탔고 나란히 강씨 그룹을 벗어났다.강남천이 직접 운전을 해 어느 피팅룸에 도착했다.도예나는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저번에 데려간 피팅룸도 괜찮던데, 왜 그곳을 가지 않은 거예요?”“여기도 꽤 괜찮은 편이에요.”강남천이 먼저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도예나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는 더 이상 없었다.두 사람의 등장에 직원이 반갑게 맞았다.“대표님, 사모님, 안녕하세요. 저번에 실장님으로 예약해 드릴까요?”도예나는 소파에
연회는 성남시에서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비즈니스 파티로, 주최 측은 많은 상업 큰손을 초대했다.연회가 시작하기 전, 호텔 입구에는 집 한 채 가격은 족히 넘는 고급스러운 차들이 줄지어 도착했고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이 우아하게 차에서 내렸다.이윽고 한 검은색 차량이 호텔 입구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린 남녀가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강현석 대표와 사모님 아니야?”“불화설이 나더니, 부부 금실 좋아 보이는데?”“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게 뭔가 쇼윈도 부부 같지 않아?”“내 친구가 강씨 그룹을 다니는데 강현석 대표가 요즘 외국 여자랑 엄청 가깝게 지냈대. 두 사람이 단둘이 사무실에도 자주 있었다고 하는데, 남녀가 갇힌 공간에, 한 시간 넘어 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사촌 언니 남편의 동생이 강씨 별장 이웃집에서 기사 일을 하시는데 강현석 대표와 도예나 씨가 매일 싸우는 걸 목격했대. 심지어 강현석 대표는 보름 동안 외박하고.”“그게 사실이야? 그런데 사실이라면 두 사람이 왜 공식 석상에 나란히 나타나겠어?”“결혼하자마자 이혼하면 주가에도 영향을 끼칠 테니까 금실 좋은 척 연기하는 걸 수도 있지.”“……”사람들은 두 사람에 대해 끝없이 의논했고 수군대는 소리는 두 사람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잦아들었다.상업계 큰손들은 어렵게 강씨 그룹 대표를 만나게 되자 저마다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강 대표님, 저번에 말씀드린 프로젝트…….”“강 대표님, 저기에서 차라도 한잔…….”40~50살은 족히 되는 사람들이 자꾸 강남천을 휴게실로 인도하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재촉했다.도예나는 침착하게 미소를 지으며 연회장을 둘러보았다.그녀는 손동원과 이민성을 찾고 있었다.결혼하고 나서 이 둘은 강현석과 두어 번 당구를 치러 갔었다.그러니 그녀는 그들에게 강현석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않았는지를 묻고싶었다…….“도예나 씨 누굴 찾고 계시나요?”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이지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서 벗어났다.이지원은 화가 나 얼굴이 새빨개졌다.‘도예나가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않았어도 확 깔아뭉갤 수 있었는데.’최종 보고서를 제출하기 전에 이지원은 도예나를 함부로 할 수 없어 짜증이 났다.이지원이 바로 장지원을 찾아가서 고자질하려는 찰나 그녀의 사촌 동생인 장명훈이 눈에 보였다!두 사람은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아 격식을 차리지 않고 평소에는 이름을 불렀다.“명훈아, 너도 참석한 거야? 이런 연회에 큰 관심 없었잖아.”이지원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내가 방금 누구랑 대화했는지 봤어?”장명훈은 아직 애티가 나는 얼굴이었다. 빨간 입술, 깊은 눈망울, 그러나 서늘한 눈길을 가졌다.장명훈이 차갑게 대답했다.“네가 누구와 말을 섞든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두 사람은 사촌이고 같은 지붕 아래에서 자랐지만, 크면서 서로 이익 관계 때문에 사이가 틀어졌다.“성남시 최고 미녀, 심지어 유명한 칩 디자이너인 도예나.”이지원이 말을 이었다.“내가 옐리 토스 그룹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도예나 씨 덕분이지. 심지어 나를 장씨 가문 후계자 자리로 만들어 주겠대. 명훈아, 나는 사실 후계자 자리는 크게 욕심이 없어. 근데 도예나 씨가 이렇게 애써주시는데 나도 실망은 시키지 말아야겠지, 안 그래?”정말 비아냥거리는 데에는 이지원이 최고였다.장명훈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그래, 성공하길 바랄게.”그런 장명훈을 보며 이지원은 흥미를 잃었다.‘난 또 후계자 자리에 관심이라도 가지는 줄 알았네. 예전과 똑같아, 나무처럼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권력으로 장명훈을 자극할 수 없다면…….’이지원이 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명훈아, 이 말은 내가 안 하려다가 너 생각해서 하는 거야. 그거 알아? 삼촌, 그니까 네 아버지가 요즘 도예나 씨랑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어. 도예나 씨에게 아주 비싼 결혼 선물도 줬는걸…… 뭐 여기까지만 말할게. 혼자 잘 생
도예나와 장서원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두 사람 모두 검은색 옷차림이라 사람들 눈에 크게 띄지 않았다.“도예나 씨, 요즘 많이 피곤하신가요? 다크써클이 심하세요.”장서원은 도예나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잠이 오지 않는다고 수면제 먹지 말고 따뜻한 우유를 마시거나 반신욕을 하시면 수면에 도움이 될 겁니다.”도예나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장서원은 조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실례인 줄 알면서도 묻습니다. 혹시 결혼 생활에 문제라도 생기신 겁니까?”도예나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아, 죄송합니다!”장서원이 급하게 사과했다.“제가 가십을 즐기는 게 아니라…… 정말 걱정이 되어서…… 너무 사적인 질문이라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저와 제 남편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도예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장서원은 50살이 넘어가는 나이에 사람 표정을 쉽게 읽어내는 방법을 터득했다.그래서 그는 도예나가 대답을 얼버무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아마도 결혼 생활에 작지 않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그러나 장서원은 더 이상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도예나에게 있어 장서원은 낯선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그날 강현석과 도예나의 불화설을 보고 장서원은 잠을 설쳤다. 그는 자신이 찾지 못한 딸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예나와 강현석이 정말 이혼하게 된다면 혼자 남겨진 예나를 장씨 가문에서 보살필 수 있지 않을까?’그래도 장서원은 그보다 도예나가 결혼 생활에서 행복하기를 더 바랐다…….“아버지, 여기에서 뭘 하시는 거예요?”장명훈이 걸어왔다. 그는 도예나에게로 시선을 고정하며 물었다.“이분은?”장서원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도예나 씨야.”“반가워요, 도예나 씨.”장명
그녀는 연회장을 빙 둘러보아도 강현석을 찾지 못했고 결국 웨이터에게 물었다.“혹시 강현석 씨를 보셨나요?”웨이터는 아주 공손하게 대답했다.“20여 분 전에 강현석 씨가 베란다가 있는 휴게실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고마워요.”도예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또각또각 베란다로 걸어갔다.연회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이미 떠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베란다 쪽에는 텅 비어있었다.그러나 저 멀리 베란다 쪽으로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그곳을 향해 걸어가는데 누군가 그녀를 막아섰다.“사모님,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도예나는 김용식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절 막아서는 겁니까?”“죄송합니다, 사모님. 대표님의 당부가 있었습니다.”김용식이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대표님이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도예나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바로 김용식의 손목을 낚아챘다.김용식도 습관적으로 반격을 시작했고, 둘은 베란다 앞에서 싸우기 시작했다.두세 번의 힘 겨루기 끝에 김용식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손을 거두었다.“사모님, 제발 저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주세요.”“난처해지고 싶지 않다면 당장 비켜!”도예 나가 차갑게 말했다.“나를 막아 설수록 막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그리고 당신 따위가 날 막아 설 수 없어!”그녀는 검은색 드레스를 들어 무릎을 드러내더니 높은 하이힐로 김용식의 무릎을 내리쳤다.김용식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바닥에 무릎을 내리 꿇게 되었고 반격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김용식은 무심결에 자신의 허리춤으로 손이 갔고 옷자락이 들리는 순간, 도예나는 그의 허리춤에 있는 총기를 발견했다.‘정말 총을 소지하고 있을 줄이야.’‘이건 불법이잖아!’김용식은 총을 쥐려다가 빠르게 도예나의 발목을 끌어안았다.도예나가 냉소했다.“강현석 씨에게 부하 직원이 감히 나에게 손을 댔다고 말하면 당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상상이나 되나요?”김용식은 빠르게 발목에서 손을 뗐다.도예나는 다시 발을 들어 김용식의 명치 쪽을
“퍽!”뺨을 때리는 소리가 휴게실에 울려 퍼졌다.캐서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입안으로 피비린내가 느껴지고 반쪽 얼굴이 얼얼해지는 게 느껴졌다.도예나의 손도 아픈 건 마찬가지였다.그녀는 거의 전신의 힘을 다해 따귀를 때렸다.도예나는 캐서린을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뱉었다.“부부가 대화하는데 당신이 뭔데 끼어들어요?”캐서린은 입술을 덜덜 떨며 말했다.“저기…… 도예나 씨. 저와 강현석 씨는 진심으로 사랑해요. 그러니까 제발 우리를 위해 이혼해주세요…….”도예나는 기가 막혀 그 자리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이어 그녀는 또 뺨을 날렸다.그동안 너무 참고만 지냈다. 이 두 뺨은 강현석을 향해 날리고 싶었으나 캐서린이 주제도 모르고 끼어든 탓에 고스란히 그녀가 받아버렸다.두 번으로는 부족했다. 도예나는 숨을 고르고 세 번째 뺨을 날렸다.연속 세 번이나 맞은 뺨은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그만 해요.”강남천이 도예나의 손목을 잡았다.“나와 캐서린 씨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어요. 정말 오해에요.”도예나는 자기 손을 휙 낚아챘다.그리고 고개를 숙여 떨어뜨린 와인병을 다시 주어 그의 얼굴에 쏟았다.“강현석, 당신이란 사람 참 역겨워.”그 말을 끝으로 도예나는 몸을 돌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벗어났다.캐서린은 빨갛게 부은 뺨을 쥐고 억울한 말투로 말했다.“남…… 현석 씨, 저 여자 얼마나 무서운 여자인지 봤죠? 날 때렸으면 됐지, 당신에게 끝까지 와인을 퍼붓는 것 좀 봐요. 당신은 강현석도 아닌데 왜 참고만 있었어요? 이혼해요, 이혼하면 다시 들킬 일도 없고…….”“닥쳐!”강남천은 인상을 팍 쓰며 소리 질렀다.술을 평소보다 조금 더 마셨다고 강남천은 캐서린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그는 캐서린과 관계를 맺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도예나가 화를 내고 가버리자, 그와 캐서린이 관계를 맺었다는 건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다시 말하는데,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도 마!”강남천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맞
도예나가 강세훈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손을 잡고 옆 화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강세훈은 계속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있었다. 오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아이는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엄마가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 예상하고 하루 종일 어떻게 답을 할지 고민했지만 아이는 여태껏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세훈아, 엄마 믿어?”도예나가 강세훈의 어깨를 감싸 쥐며 두 눈을 마주했다.강세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믿어요.”도예나가 또 물었다.“지금의 아빠와 엄마 사이에 누굴 더 믿어?”강세훈이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엄마요.”“그럼 다행이야.”도예나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러면 지금 묻는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해 줄 수 있어?”강세훈이 침묵했다.‘엄마가 물어볼 거라고 예상은 했어. 그런데 내가 본 걸 정말 엄마한테 말해도 되는 걸까?’“너는 정말 똑똑한 아이니까, 며칠 동안 아빠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을 거야. 사실 나도 원인을 찾고 있었는데 지금 확실하지 않은 추측이 하나 있어. 하지만 지금은 너희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는 없어.”도예나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일상에서의 일은 내가 거의 다 시험을 해봤는데, 회사 쪽은 내가 손을 댈 수가 없어서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세훈아, 너는 착한 아이라 아무 이유도 없이 아빠 사무실을 뒤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너도 이상한 점을 느껴서 그랬던 거야, 맞아?”강세훈이 손가락을 배배 꼬면서 말을 시작했다.“아빠와 새로 온 보좌관이 대화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는데, 느낌이 너무 이상했어요…….”“무슨 이야기를 들었는데?”강세훈은 자신이 들은 내용을 천천히 도예나에게 전했다. 그리고 도예나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엄마, 너무 무서워요…… 아빠 서랍에서 나온 문서들이 너무 불안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세훈아, 오늘 듣고 본건 모두 잊어버려.”도예나가 아이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이 일은 엄마가 해결할게. 너는 착하게 유치원 다니고,
도예나는 종이를 파쇄기에 돌린 후 쓰레기통에 버렸다.그리고 내일 무슨 핑계로 강씨 그룹을 다녀올지 고민하던 중, 별장 마당에서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슬리퍼를 고쳐 신을 겨를도 없이 맨발로 베란다로 나가 커튼을 걷고 차를 확인했다.익숙한 검은 차,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강현석이 돌아올 줄이야!’그의 손에는 꽃다발까지 쥐어져 있었다.도예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빠르게 안방으로 돌아가 탁자 위에 놓인 물을 손바닥에 조금 부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발소리가 천천히 다가왔다.방문이 가볍게 열리고, 강남천은 문틈으로 도예나를 살폈다.그는 도예나가 침대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로 휴지로 눈가를 닦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탁자 위로는 이미 사용한 듯한 휴지 뭉치가 잔뜩 놓여 있어 오랫동안 울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큼큼!”남자가 힘껏 기침을 두어 번 했다.도예나는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올리고 옆에 놓인 베개를 그를 향해 던졌다.“당장 꺼져!”강남천은 손쉽게 베개를 낚아챘다.그의 눈앞의 여자는 빨개진 눈, 젖은 눈가로 계속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강남천은 여태껏 도예나의 침착하고 강인한 모습만 보아왔지만, 이렇게 속상할 때는 눈물을 흘릴 줄 안다는 걸 처음 알았다…….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편이 벌레에 쏘인 것처럼 따끔거렸다.강남천은 문을 열고 들어서서 등 뒤에 숨겨둔 장미꽃을 건넸다.“이젠 화내지 마요. 꽃도 사 왔으니까 이만 용서해 줘요.”도예나의 시선이 꽃을 향했다. 역겨워하는 표정이 하마터면 드러날 뻔했으나 그녀는 바로 표정을 감췄다.그리고 휴지로 눈을 가리며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꽃다발로 없던 일이 돼요? 꽃다발에 내가 용서를 해줘야 하나고요? 강현석 씨, 사람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니에요?”그리고 옆에 놓인 또 하나의 베개를 그를 향해 던졌다.강남천은 이런 그녀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점점 마음에 들었다. 화도 내고, 사랑도 주고, 마치 가을철에 피어나는 난초 같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