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후, 한 가족이 놀이공원 입구에 도착했다.“아빠, 안아줘요!”수아가 두 팔을 뻗어 강남천의 목에 걸었다.따듯하고 보드라운 몸이 남자의 가슴에 닿았다. 차갑던 그의 마음이 말캉해지는 순간이었다.친딸이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혈연관계가 있었다. 수아는 그의 조카였다.삼촌이 조카를 사랑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강남천은 수아를 안아 들고 앞장을 섰다…….도예나는 아이들과 함께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눈동자는 자꾸 흔들렸다.양 집사와의 대화를 통해 20년 전 아버님의 사고가 그의 가장 큰 트라우마일 것이라 그녀는 판단했다.‘아버님이 어떤 사고로 돌아가셨는지 잘 알지는 못해도, 이젠 현석 씨가 아빠가 되었고 아이를 사랑해 주는 게 어쩌면 본체를 찾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세윤아, 왜 아빠랑 함께 가지 않는 거야?”도예나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조금 더 엄격해지셨을 뿐이지, 아빠는 여전히 너희들을 사랑하셔.”“흥!”강세윤은 팔짱을 척 끼며 화가 나서 말했다.“아빠는 수아만 좋아해요. 오늘 저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는 걸요.”강세훈이 화가 난 강세윤을 힐긋 보며 말했다.“수아는 귀여운데 너는 귀엽지도 않잖아. 아빠가 널 볼 이유가 없는거지.”“……”‘친형 맞아? 너무 상처야!’도예나는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음을 터뜨렸다.“아빠는 수아와 회전목마 타러 갔어. 너희들도 함께 갈래?”“네! 갈래요!”강세윤이 짧은 다리로 총총총 뛰어갔다.강세훈과 도제훈도 나란히 뒤를 따랐다.그들은 오늘 놀이공원에 온 건 엄마가 애써 마련한 자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한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고, 그리고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아마 아빠 때문일 것이라 그들은 생각했다.그러니 아이들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하는 말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다.어른 두 명과 아이 네 명 모두 회전목마에 올랐다. 수아는 강남천의 품에 안겼고 강세윤은 도예나의 품에 기댔으며 강세훈과 도제훈은 각각
익숙한 그림자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강현석 씨,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캐서린이 활짝 웃으며 강남천에게 말했다.“어떻게 이런 우연이.”그녀는 허리를 숙여 아이들에게도 인사를 했다.“안녕, 나는 캐서린 이모라고 해. 혹시 날 기억해?”“기억해요!”강세윤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아빠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병원에서 봤어요!”“맞아.”캐서린이 강세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도예나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도예나씨, 만나서 반가워요.”도예나는 무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캐서린만 아니었어도 강현석은 방찬을 잡을 수 있었다.‘참, 하마터면 방찬을 잊어버릴 뻔했네. 그 사람은 결국 잡혔으려나?’그녀가 잠시 고민하던 찰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불만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당신이 왜 여기에?”“여기가 성남시에서 제일 큰 놀이공원이잖아요. 쉬는 날이라 저도 놀러 왔죠.”캐서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혼자 다니려니까 좀 심심한데 함께 다녀도 될까요?” 그녀의 눈길은 남자의 얼굴을 향했다. 그 둘 사이에 도예나는 모르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저번에는 제가 실수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오늘 사과의 의미로 제가 밥을 사도 될까요?”도예나는 말없이 자기 남편을 바라보았다.이 사람이 캐서린에게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했다.“마음대로 하세요.”강남천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내쫓는다고 내쫓아지는 것도 아니고.”그 말에 캐서린의 얼굴이 확 굳어졌지만, 그녀는 빠르게 표정 관리하며 말했다.“그럼 오늘은 함께 다니는 거로 해요. 수아야, 이모가 안아줄까요?”“싫어요!”수아는 고개를 획 돌려 강남천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아빠에게만 안겨있을 거예요!”도예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캐서린 씨, 평소에 얼굴이 두껍다는 말 자주 듣지 않으셨어요?”캐서린을 면박을 주기 위해 이렇게 말한 건 아니었다. 이 여자는 방찬을 도왔
“아빠, 솜사탕…….”수아가 애교 부리는 목소리에 얼어붙은 분위기가 깨졌다.강남천이 인상을 찌푸리며 수아를 고쳐 안았다.“가자, 솜사탕 먹으러.”도예나의 눈길이 조금 날카로웠다.“캐서린 씨는 방찬 씨를 아주 끔찍이 생각하지 않았나요?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요?”“더 좋은 곳으로 갔다고 생각하면 되죠, 제가 슬퍼해야 하나요?”캐서린이 강남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강현석 씨는 아주 좋은 아빠인가 봐요.”도예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당연하죠. 아빠가 제 자식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캐서린이 올라간 입꼬리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그렇죠, 자식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남녀 일은 모르는 거죠. 방금까지 함께 있으면서 강현석 씨가 도예나 씨 얼굴을 단 1초도 보지 않은 거 아세요?”도예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그 말을 들은 도예나는 마침내 강현석과 캐서린 사이에 자신이 모르는 일이 있음을 확신했다.‘그날 술집에서 강현석과 캐서린은 서로를 얼마나 증오했던가. 하마터면 몸싸움으로 번질 뻔했는데 어떻게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수가 있는 걸까?’그날의 캐서린은 오만하고 기고만장했다. 뱉는 말마다 날이 서 있었다.그런데 아까 대화 속에서 캐서린은 계속해서 강현석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마치 현석 씨를 떠보는 느낌이었다고.’두 사람은 마치 상사와 부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도예나는 캐서린을 위아래로 살폈다.“도예나 씨, 이렇게 저를 경계하실 필요 없어요. 저는 그냥 도예나 씨가 안타까워서 그래요.”캐서린은 자기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결혼식을 올린 지 한 달 만에 불화설이 나고, 강현석 씨는 결혼반지도 잃어버렸죠. 사실 이 모든 건 다 용서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방금 강현석 씨는 도예나 씨를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이것만으로도 강현석 씨의 마음이 변했다는 게 증명이 될 것 같은데요. 도예나 씨가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면 선택을 잘하시리라 믿어요. 마음 떠난 사람 붙잡지 말고 빨리 이
정말 끝까지 갔다고 하면, 이제 와서 그녀가 노력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다른 여자와 몸을 섞은 남자는 도예나에게 있어 쓰레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그녀가 비굴하게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모두 아이들 때문이었다…….그녀의 억지 미소에 강남천은 가슴이 철렁하는 걸 느꼈다.강남천은 몇 년 전의 일이 생각이 났다. 그가 엄마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닌 시절 그는 캐서린을 처음 만났다.그때의 캐서린은 겨우 열일곱이었다. 가장 밝고, 천진난만하고 부끄러움이 많던 열일곱 소녀…….그 무렵 강남천은 온갖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이런 그의 주변 여자들은 몸을 함부로 굴리는 비천한 여자들이었지만 유독 캐서린만은 그렇지 않았다.이렇게 청순한 소녀의 유혹에 강남천은 이겨내지 못하고…….그들은 아주 예전에 남녀 관계를 가졌었다…….그러니 강남천은 도예나의 질문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강남천은 자신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도예나를 바라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아무 일도 없었어요…….”“저 여자가 계속 나한테 들러붙는 거예요. 며칠 전 립스틱 자국도 저 여자가 일부러 한 게 맞아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요. 앞으로 다시 만나는 일 없을 테니깐요.”도예나는 조용히 제 남편을 쳐다보았다.‘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이렇게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나?’그녀는 헛웃음만 나왔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마음이 너무 빠르게 변한 것에 헛웃음이 나왔다.캐서린과 바람을 피웠지만 지금은 그녀와 선을 긋기에 급급했다.도예나는 저 사람이 과연 자신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갔다.‘어떻게 강현석 씨 몸에 저런 인격이 있을 수 있는 거야. 믿기지 않아.’도예나가 마음을 다잡으며 물었다.“방찬 씨는 어떻게 죽은 거예요?”강남천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정말 죽었기를 바라요?”“제가 바라는 게 아니라, 당신과 캐서린이 모두 방찬이 죽었다고 말했잖아요.”도에나가 한 글자 한 글자 뱉었다.“나를 납치했던 사람이
황급히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도예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에 잠겼다.‘이건 착각이 아니야. 유독 방찬이라는 이름을 꺼낼 때면 강현석 씨의 표정이 달라져.’‘방찬, 강현석…….’‘강현석, 방찬…….’그녀는 계속해서 두 이름을 반복해 불렀다…….“엄마, 아빠는 왜 갑자기 간 거예요?”수아가 총총총 달려와 울먹이며 물었다.도예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품에 안았다.“아빠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회사에 가셨어. 엄마랑 놀면 안 될까?”“싫어요, 싫어요…….”여자아이는 엉엉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아빠 데려와요. 아빠랑 같이 놀래요. 엉엉엉…….”도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수아는 평소에도 응석받이였다.결혼하기 전 수아의 부탁이라면 강현석은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기세였다.그러나 결혼하고 나니 갑자기 한 달이나 집을 비우지 않나, 이젠 딸을 아끼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이런 급격한 변화를 도예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지금 강현석 씨와 이혼한다고 하면 수아는 이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겠지?’“엄마, 이만 돌아갈까요?”강세윤은 서럽게 우는 동생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꼬리를 축 내렸다.“다음에 아빠가 시간이 많이 생기면 다시 와요.”강세훈도 고개를 끄덕였다.“수아도 아주 피곤할 텐데 이만 돌아가요.”도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놀이공원을 벗어나서 생각을 해보니, 오늘은 강현석이 운전을 해서 놀이공원에 온 것이었다.유일한 차량을 강현석이 타고 갔으니, 도예나와 아이들은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20분이나 지나 그들은 겨우 택시를 탈 수 있었고 무사히 별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어, 어떻게 벌써 돌아온 거야? 남…… 현석이는, 왜 함께 오지 않고?”강 부인이 깜짝 놀라 물었다.도예나는 이미 잠에 든 수아를 품에 안은 채로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회사에 일이 생겨서 먼저 갔어요.”강 부인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오늘 놀이공원에서는 재밌게 보냈어?”“놀이공원에서 캐서린 씨를 만
‘아빠가 갑자기 떠난 건 캐서린이라는 여자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설마 아빠가 바람을 피운 건가……?’복잡한 감정 문제를 어린아이인 도제훈은 알 수가 없었지만, 또 그렇다고 도예나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지금 엄마가 나를 부르는 건 이 일에 대해 말해주려는 건가?’도제훈은 도예나를 따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도예나는 방문을 잠갔다. 침대 위에 자리를 잡은 도예나가 입을 열었다.“제훈아, 노트북 가져와.”도제훈이 주먹을 질끈 쥐며 말했다.“엄마, 그게…….”“노트북을 침대 아래에 감춰두고 있는 걸 다 알고 있으니까 가지고 와.”도예나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혼내는 게 아니라, 부탁할 게 있어서 그래.”도제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이는 온라인으로 해커 작업실을 차린 일을 들킨 줄만 알았다.엄마가 반대하면 작업실 문을 닫을 생각도 있었다.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시면 그는 언제든지 그만둘 생각이었다.‘다행히, 아직 들키진 않았어.’도제훈은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빠르게 침대 아래의 노트북을 꺼내왔다.“엄마, 내가 뭘 도와줄까요?”“전에 내가 방찬이라는 사람을 찾아 달라고 했던 거 기억해?”도예나가 계속 말을 이었다.“그 사람을 다시 찾아봐 줘. 아직 살아있는지 알아야겠어.”도제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15분 후, 아이가 고개를 휙 들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28일 전 성남시에 있었던 건 확인이 되는데 그 이후로는 증발이 된 것처럼 아무런 흔적이 없어요.”도예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죽었을 가능성은?”“다른 가능성은 어딘가에 갇혔다는 거예요. 모든 통신 설비를 빼앗긴 상태로요.”도제훈이 대답했다.“그 사람은 경찰이 지명수배한 범죄자예요. 경찰이 사망신고를 하기 전에는 사망했는지 단정 지을 수 없어요.”“그래, 알겠어.”도예나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고마워, 제훈아.”그녀도 어느 정도의 해커 기술
도제훈이 어두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키가 엇비슷한 형을 쳐다보며 도제훈이 입을 열었다.“내가 강해져야 엄마를 지킬 수 있으니깐요.”강세훈이 입술을 매만지며 물었다.“아빠를 믿지 못하는 거야?”“믿을 만한 구석이 있어요?”도제훈이 되물었다.“이렇게 하루아침에 달라질 사람이라는 건 정말 예상 못 했어요. 엄마를 평생 사랑해 줄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 내가 강해질 수 밖에요. 엄마가 아빠를 포기하면 저는 엄마랑 동생을 데리고 이 집에서 나갈 거예요.”“그래서…….”강세훈은 조금 목이 메었다.“나와 세윤이는 조금도 고려해 보지 않은 거야?”“형과 세윤이는 강씨 성을 가졌고 저와 동생은 도씨 성을 가졌으니, 처음부터 우린 다른 사람이었죠.”도제훈이 침대 위에 다시 앉으며 강세훈을 향해 경계의 눈길을 보냈다.이런 그의 모습에 강세훈은 할 말을 잃었다.아빠와 엄마에게 문제가 생기고 나서 강세훈은 아빠의 문제 행동에 온갖 변명을 붙여줄 생각만 했었다.엄마를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일이 벌어지고 보니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여섯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엄마의 감정은 나몰라라하다니…….’‘내가 큰형인데 제훈이보다도 성숙하지 못했어.’“제훈아, 이 일은 내가 책임지고 해결할게…….”강세훈이 도제훈을 바라보며 말했다.“큰형인 내가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테니 날 믿어줘.”도제훈이 입을 삐죽였다.“그러길 바랄게요.”그날 밤, 강현석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이튿날 새벽이 되어서야 강현석의 검은색 승용차가 별장으로 들어섰다.양 집사는 깜짝 놀라 허겁지겁 달려갔다.“대표님, 아침은 드셨어요?”강남천은 외투를 아무렇게나 소파에 던지며 입을 열었다.“강세훈은?”“아직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잠에서 깨지 않았을 겁니다.”양 집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급한 일이 있으시면 제가 가서 큰 도련님을 깨울까요?”“빨리 일어나라고 해.”강남천은 인상을 팍 썼다. 인내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강남천은 몸을 일으켜 외투를 손에 쥐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강세훈이 그의 뒤를 따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갑자기 회사에는 왜요?”“가보면 알 텐데 뭔 말이 그렇게 많아?”강남천은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하더니 액셀을 세게 밟아 도로 위를 질주했다.강세훈은 저도 모르게 손잡이를 꼭 쥐고 텅 빈 눈동자로 운전하고 있는 강남천을 바라보았다…….아이는 이런 아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그리고 왜 도제훈이 그런 결심을 내리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차는 강씨 그룹 건물 앞으로 급정거했다.아침 7시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라 회사 건물 안에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강 대표가 큰 도련님을 데리고 회사안으로 들어오자, 모든 사람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그러나 강남천을 얼굴을 굳히고 강세훈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향해 직진했고 사무실 문을 확 열어젖혔다.“예전에 여기 와본 적 있어?”강남천이 나른하게 사무실 소파에 앉더니 차갑게 물었다.강세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세 살이 넘었을 때 아빠가 자주 데리고 오셨어요.”강남천은 소파 아래에서 회색 금고를 꺼내더니 차갑게 입을 열었다.“그럼, 비밀번호도 알겠네? 열어.”강세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강남천을 바라보았다.“아빠, 저는 비밀번호를 몰라요.”“네가 왜 몰라?”강남천이 차갑게 아이를 노려보았다.“내가 전에 말해줬잖아. 왜 기억을 못 해?”강씨 그룹 핵심 기술 자료들이 바로 이 금고에 있었다. 이 금고를 만약 폭력적으로 연다면 금고는 자동으로 안의 물건을 폐기하는 기능이 있었다…… 기술 자료들이 훼손된다면 강씨 그룹은 절반의 재산을 잃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절반의 재산이라도 아주 거액이었다. 이런 모험을 강남천은 할 수가 없었다.강남천은 소파에 머리를 기대며 다시 입을 열었다.“며칠 후 너에게 강씨 그룹 대부분의 라인을 맡기려고 했는데 금고 비밀번호도 모른다니. 강세훈, 참 실망이야.”그 말에 강세훈의 얼굴이 굳어졌다.‘아빠는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