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훈은 하얀 종이 위로 다양한 기호를 적고 있었다.모든 숫자는 문자로 조합되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나타내고 있었다…….강남천은 다가가 힐긋 쳐다보았으나 한 글자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그의 몸에는 강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으나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탓에 유치원도 다니지 못했고 초등학교도 하루건너 하루 다녔을 정도이니 그의 머리로는 강씨 그룹 대표의 자리를 감당하기 어려웠다.그러니 그는 자신이 손에 쥘 수 있는 모든 걸 손에 넣으려고 했다…….강남천은 또 담배가 당겨 턱을 매만지다가 사무실을 벗어났다.강세훈은 고개를 숙인 채로 열심히 계산했지만, 아직8자리의 숫자와 문자의 조합인 비밀번호를 풀지 못했다…….‘그냥 한번 해볼가……?’‘강씨 그룹 성립일이랑 아버지 이름 이니셜…….’강세훈은 손에 쥔 연필을 내려두고 금고 앞으로 걸어갔다.“띵-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그러자 화면에는 카운트다운이 커다랗게 나왔다.아마 30분이 지나야 두 번째 시도를 할수 있을 것이다.강세훈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머릿속에는 각종 숫자와 문자의 조합이 떠올랐다…….아이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그때, 문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강세훈은 몸을 일으켜 천천히 말소리가 들려오는 문가로 걸어갔다.“형님, 태식이와 대철이는 방금 그룹 내부로 입성했습니다…….”아주 낮은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강세훈은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자꾸 끊기는 대화에 강세훈은 절로 인상을 썼다.‘회사 사람들은 아빠한테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나? 왜 형님이라고 하는 거지?’‘그리고 태식이와 대철이는 누구인 걸까?’‘이름을 들어서는 어디 깡패 이름 같은데?’“형님, 고객 서비스팀 부장은 대부분 회사에서 오래 일을 한 경력직이 담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태식이를 데려오면 많은 불만을 불러올지 걱정이 됩니다.”“걱정할 게 뭐가 있어…….”강남천은 길게 담배를 뱉어내며 말했다.“내가 여기 있는데 감히 누가 뭐라고 해?”“네, 그럼 저는 이
강남천은 눈을 가늘게 떴다.강세훈은 강현석을 똑 닮았다. 똑같은 눈매와 똑같은 입술 라인,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마저 비슷했다.만약 키와 체격이 조금 더 컸더라면 강남천은 마치 15살의 강현석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지난 20년 동안 강남천은 강현석의 발 밑에서 지냈다.그는 강현석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네 허튼 질문에 답할 여유가 없어!”강남천은 매서운 눈길로 아이를 노려보았다.“지금 내가 묻는 물음이나 대답해! 지금 여기서 뭘 찾고 있었던 거야?”그의 물음은 마치 화살이 되어 강세훈의 마음을 찔렀다.아무리 총명한 아이라고 해도 이런 윽박지름을 견뎌낼 멘탈이 있을 리가 없었다.아이의 입술이 점점 새하얘지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제 물건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그게 왜요?”차갑고 침착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강세훈이 고개를 들어보니 도예나 또각또각 걸어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게 보였다.불안하던 마음이 드디어 진정되는 기분이었다.도예나는 강세훈을 등 뒤로 감추고 차가운 눈길로 남자를 바라보았다.“어제 도시락을 가져다주면서 귀걸이를 사무실 책상에 떨구고 간 것 같아서 세훈이한테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강남천이 입술을 매만지며 물었다.“그래요?”도예나가 냉소하며 말을 이었다.“세훈이가 사무실을 좀 뒤졌다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다니, 보면 안 될 물건이라도 숨겨놨나 보죠?”여자는 남자의 귓가에 입을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자 스타킹이에요, 아니면 속옷?”강남천은 굳은 얼굴로 일관하다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한참 도예나를 바라보던 강남천이 입을 열었다.“제가 그동안 도예나 씨를 잘못 봤나 봐요. 질투가 나서 어린아이를 이런 일에 끌어들이다니.”“저도 그냥 평범한 여자예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강인하지 않죠.”그녀는 강남천의 셔츠 깃을 정리해 주며 말했다.“세훈이 데리러 왔어요. 천천히 일보고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와요.”그리고 그녀는
손아귀에도 두꺼운 굳은살이 있는 걸 보아, 총을 사용하는 일도 자주 있은 모양이었다.‘강현석 씨 주위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는 거지?’그녀는 1~2초 사이에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금세 생각을 접어두고 강세훈 앞으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세훈아, 김 보좌관님이랑 먼저 집에 돌아가 있을래? 엄마는 늦게 돌아갈 것 같아.”강세훈은 방금 정말 공포를 느꼈다.아이는 아버지가 예전과 다르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너무 많은 새로운 정보에 강세훈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먼저 가볼게요. 엄마, 안녕.”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보좌관을 따라나섰다.아이가 떠나는 걸 눈으로 확인한 도예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소파 위로 앉으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어떤 모임인데요?”“그냥 비즈니스 모임이에요.”강남천이 덤덤하게 말했다.“참석하고 싶지 않다면 강요는 하지 않을게요.”“내가 가지 않는다고 하면 캐서린과 함께 갈 건가요? 아니면 주 비서?”도예나가 두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불화설이 있는 이 상황에서 내가 참석하면 불화설이 사그라지지 않겠어요? 참, 새로 산 드레스가 없는데 드레스 보러 같이 갈래요?”강남천은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오전 10시, 연회까지는 아직 두 시간 정도 있었다.그는 회색 금고를 서랍 안에 넣으며 말했다.“가요, 드레스 사러.”도예나는 그에게 팔짱을 걸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탔고 나란히 강씨 그룹을 벗어났다.강남천이 직접 운전을 해 어느 피팅룸에 도착했다.도예나는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저번에 데려간 피팅룸도 괜찮던데, 왜 그곳을 가지 않은 거예요?”“여기도 꽤 괜찮은 편이에요.”강남천이 먼저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도예나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는 더 이상 없었다.두 사람의 등장에 직원이 반갑게 맞았다.“대표님, 사모님, 안녕하세요. 저번에 실장님으로 예약해 드릴까요?”도예나는 소파에
연회는 성남시에서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비즈니스 파티로, 주최 측은 많은 상업 큰손을 초대했다.연회가 시작하기 전, 호텔 입구에는 집 한 채 가격은 족히 넘는 고급스러운 차들이 줄지어 도착했고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이 우아하게 차에서 내렸다.이윽고 한 검은색 차량이 호텔 입구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린 남녀가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강현석 대표와 사모님 아니야?”“불화설이 나더니, 부부 금실 좋아 보이는데?”“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게 뭔가 쇼윈도 부부 같지 않아?”“내 친구가 강씨 그룹을 다니는데 강현석 대표가 요즘 외국 여자랑 엄청 가깝게 지냈대. 두 사람이 단둘이 사무실에도 자주 있었다고 하는데, 남녀가 갇힌 공간에, 한 시간 넘어 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사촌 언니 남편의 동생이 강씨 별장 이웃집에서 기사 일을 하시는데 강현석 대표와 도예나 씨가 매일 싸우는 걸 목격했대. 심지어 강현석 대표는 보름 동안 외박하고.”“그게 사실이야? 그런데 사실이라면 두 사람이 왜 공식 석상에 나란히 나타나겠어?”“결혼하자마자 이혼하면 주가에도 영향을 끼칠 테니까 금실 좋은 척 연기하는 걸 수도 있지.”“……”사람들은 두 사람에 대해 끝없이 의논했고 수군대는 소리는 두 사람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잦아들었다.상업계 큰손들은 어렵게 강씨 그룹 대표를 만나게 되자 저마다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강 대표님, 저번에 말씀드린 프로젝트…….”“강 대표님, 저기에서 차라도 한잔…….”40~50살은 족히 되는 사람들이 자꾸 강남천을 휴게실로 인도하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재촉했다.도예나는 침착하게 미소를 지으며 연회장을 둘러보았다.그녀는 손동원과 이민성을 찾고 있었다.결혼하고 나서 이 둘은 강현석과 두어 번 당구를 치러 갔었다.그러니 그녀는 그들에게 강현석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않았는지를 묻고싶었다…….“도예나 씨 누굴 찾고 계시나요?”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이지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서 벗어났다.이지원은 화가 나 얼굴이 새빨개졌다.‘도예나가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않았어도 확 깔아뭉갤 수 있었는데.’최종 보고서를 제출하기 전에 이지원은 도예나를 함부로 할 수 없어 짜증이 났다.이지원이 바로 장지원을 찾아가서 고자질하려는 찰나 그녀의 사촌 동생인 장명훈이 눈에 보였다!두 사람은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아 격식을 차리지 않고 평소에는 이름을 불렀다.“명훈아, 너도 참석한 거야? 이런 연회에 큰 관심 없었잖아.”이지원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내가 방금 누구랑 대화했는지 봤어?”장명훈은 아직 애티가 나는 얼굴이었다. 빨간 입술, 깊은 눈망울, 그러나 서늘한 눈길을 가졌다.장명훈이 차갑게 대답했다.“네가 누구와 말을 섞든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두 사람은 사촌이고 같은 지붕 아래에서 자랐지만, 크면서 서로 이익 관계 때문에 사이가 틀어졌다.“성남시 최고 미녀, 심지어 유명한 칩 디자이너인 도예나.”이지원이 말을 이었다.“내가 옐리 토스 그룹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도예나 씨 덕분이지. 심지어 나를 장씨 가문 후계자 자리로 만들어 주겠대. 명훈아, 나는 사실 후계자 자리는 크게 욕심이 없어. 근데 도예나 씨가 이렇게 애써주시는데 나도 실망은 시키지 말아야겠지, 안 그래?”정말 비아냥거리는 데에는 이지원이 최고였다.장명훈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그래, 성공하길 바랄게.”그런 장명훈을 보며 이지원은 흥미를 잃었다.‘난 또 후계자 자리에 관심이라도 가지는 줄 알았네. 예전과 똑같아, 나무처럼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권력으로 장명훈을 자극할 수 없다면…….’이지원이 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명훈아, 이 말은 내가 안 하려다가 너 생각해서 하는 거야. 그거 알아? 삼촌, 그니까 네 아버지가 요즘 도예나 씨랑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어. 도예나 씨에게 아주 비싼 결혼 선물도 줬는걸…… 뭐 여기까지만 말할게. 혼자 잘 생
도예나와 장서원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두 사람 모두 검은색 옷차림이라 사람들 눈에 크게 띄지 않았다.“도예나 씨, 요즘 많이 피곤하신가요? 다크써클이 심하세요.”장서원은 도예나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잠이 오지 않는다고 수면제 먹지 말고 따뜻한 우유를 마시거나 반신욕을 하시면 수면에 도움이 될 겁니다.”도예나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장서원은 조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실례인 줄 알면서도 묻습니다. 혹시 결혼 생활에 문제라도 생기신 겁니까?”도예나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아, 죄송합니다!”장서원이 급하게 사과했다.“제가 가십을 즐기는 게 아니라…… 정말 걱정이 되어서…… 너무 사적인 질문이라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저와 제 남편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도예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장서원은 50살이 넘어가는 나이에 사람 표정을 쉽게 읽어내는 방법을 터득했다.그래서 그는 도예나가 대답을 얼버무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아마도 결혼 생활에 작지 않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그러나 장서원은 더 이상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도예나에게 있어 장서원은 낯선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그날 강현석과 도예나의 불화설을 보고 장서원은 잠을 설쳤다. 그는 자신이 찾지 못한 딸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예나와 강현석이 정말 이혼하게 된다면 혼자 남겨진 예나를 장씨 가문에서 보살필 수 있지 않을까?’그래도 장서원은 그보다 도예나가 결혼 생활에서 행복하기를 더 바랐다…….“아버지, 여기에서 뭘 하시는 거예요?”장명훈이 걸어왔다. 그는 도예나에게로 시선을 고정하며 물었다.“이분은?”장서원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도예나 씨야.”“반가워요, 도예나 씨.”장명
그녀는 연회장을 빙 둘러보아도 강현석을 찾지 못했고 결국 웨이터에게 물었다.“혹시 강현석 씨를 보셨나요?”웨이터는 아주 공손하게 대답했다.“20여 분 전에 강현석 씨가 베란다가 있는 휴게실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고마워요.”도예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또각또각 베란다로 걸어갔다.연회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이미 떠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베란다 쪽에는 텅 비어있었다.그러나 저 멀리 베란다 쪽으로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그곳을 향해 걸어가는데 누군가 그녀를 막아섰다.“사모님,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도예나는 김용식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절 막아서는 겁니까?”“죄송합니다, 사모님. 대표님의 당부가 있었습니다.”김용식이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대표님이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도예나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바로 김용식의 손목을 낚아챘다.김용식도 습관적으로 반격을 시작했고, 둘은 베란다 앞에서 싸우기 시작했다.두세 번의 힘 겨루기 끝에 김용식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손을 거두었다.“사모님, 제발 저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주세요.”“난처해지고 싶지 않다면 당장 비켜!”도예 나가 차갑게 말했다.“나를 막아 설수록 막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그리고 당신 따위가 날 막아 설 수 없어!”그녀는 검은색 드레스를 들어 무릎을 드러내더니 높은 하이힐로 김용식의 무릎을 내리쳤다.김용식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바닥에 무릎을 내리 꿇게 되었고 반격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김용식은 무심결에 자신의 허리춤으로 손이 갔고 옷자락이 들리는 순간, 도예나는 그의 허리춤에 있는 총기를 발견했다.‘정말 총을 소지하고 있을 줄이야.’‘이건 불법이잖아!’김용식은 총을 쥐려다가 빠르게 도예나의 발목을 끌어안았다.도예나가 냉소했다.“강현석 씨에게 부하 직원이 감히 나에게 손을 댔다고 말하면 당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상상이나 되나요?”김용식은 빠르게 발목에서 손을 뗐다.도예나는 다시 발을 들어 김용식의 명치 쪽을
“퍽!”뺨을 때리는 소리가 휴게실에 울려 퍼졌다.캐서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입안으로 피비린내가 느껴지고 반쪽 얼굴이 얼얼해지는 게 느껴졌다.도예나의 손도 아픈 건 마찬가지였다.그녀는 거의 전신의 힘을 다해 따귀를 때렸다.도예나는 캐서린을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뱉었다.“부부가 대화하는데 당신이 뭔데 끼어들어요?”캐서린은 입술을 덜덜 떨며 말했다.“저기…… 도예나 씨. 저와 강현석 씨는 진심으로 사랑해요. 그러니까 제발 우리를 위해 이혼해주세요…….”도예나는 기가 막혀 그 자리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이어 그녀는 또 뺨을 날렸다.그동안 너무 참고만 지냈다. 이 두 뺨은 강현석을 향해 날리고 싶었으나 캐서린이 주제도 모르고 끼어든 탓에 고스란히 그녀가 받아버렸다.두 번으로는 부족했다. 도예나는 숨을 고르고 세 번째 뺨을 날렸다.연속 세 번이나 맞은 뺨은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그만 해요.”강남천이 도예나의 손목을 잡았다.“나와 캐서린 씨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어요. 정말 오해에요.”도예나는 자기 손을 휙 낚아챘다.그리고 고개를 숙여 떨어뜨린 와인병을 다시 주어 그의 얼굴에 쏟았다.“강현석, 당신이란 사람 참 역겨워.”그 말을 끝으로 도예나는 몸을 돌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벗어났다.캐서린은 빨갛게 부은 뺨을 쥐고 억울한 말투로 말했다.“남…… 현석 씨, 저 여자 얼마나 무서운 여자인지 봤죠? 날 때렸으면 됐지, 당신에게 끝까지 와인을 퍼붓는 것 좀 봐요. 당신은 강현석도 아닌데 왜 참고만 있었어요? 이혼해요, 이혼하면 다시 들킬 일도 없고…….”“닥쳐!”강남천은 인상을 팍 쓰며 소리 질렀다.술을 평소보다 조금 더 마셨다고 강남천은 캐서린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그는 캐서린과 관계를 맺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도예나가 화를 내고 가버리자, 그와 캐서린이 관계를 맺었다는 건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다시 말하는데,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도 마!”강남천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맞